반쯤 무너진 교실의 칠판 위에
책상과 벽 위에
잠든 후배의 이마 위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요
기록이 적힌 모든 노트의 구석에
입김을 속삭인 유리창 위에
피질과 뉴런의 흐름 속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요
화장실의 거울 위에
강철의 동상 위에
교사 앞뜰에 쌓인 눈 위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요
해변의 백사장 위에
촉촉한 셔츠 위에
레몬나무 껍질 위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요
사막의 바위 위에
죽은 뱀의 시체 위에
은행 금고 위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요
찌그러진 헬멧 위에
탄매 가득한 창고 벽 위에
쓰레기통 속 봉투 위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요
흐트러진 잠옷 위에
커피를 쏟은 서류 위에
어두운 방 안 캔버스 위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요
인적 끊긴 정류장 기둥 위에
운동장에 깔린 매트 위에
깨져버린 체중계 위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요
헐렁한 코트 안감 위에
쓰지 않는 안경 렌즈 위에
나란히 앉았던 의자 위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요
탈취한 호버크래프트의 운전석 위에
감옥의 창살 위에
어스럼이 깔리는 갯바위 위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요
고서관 커튼 위에
먼지와 재와 흙 위에
오래된 책 위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요
잊혀진 성당의 유리창 위에
꽃잎과 카메라 위에
터질듯한 배낭 위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요
그 한 단어의 힘으로
힘들지만 오늘의 삶을 시작해요
참센세라면 글만 봐도 누가 누굴 지칭하는지 다 알것
새벽에 짤 줍다가 이거 보고 급 땡겨서 적어본 괴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