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분 전.
범인류연방 합동참모본부.
“워싱턴에 핵미사일을 쏘자구요?!?!”
“정확히는 워싱턴 상공에 핵미사일을 쏘자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그 뜻 아닌가요?!?!”
핵미사일 이야기에 라비아타 대통령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그러자 최초 이야기를 꺼냈던 민하준 원수가 그녀를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각하, 미친 소리처럼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저 거대 철충 괴수가 나타난 것이 철충 신호 유도기랑 관련이 있다면, 그것의 존재를 원천적으로 차단해버리는 것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 않겠습니까? 저 철충 신호 유도기라는 것도 결국 사람이 만든 안테나 장치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안테나는 필연적으로 외부의 전자기 펄스 공격에 취약할 수 밖에 없죠.”
“그러니깐, 워싱턴 상공에 핵을 터뜨려서 발생하는 강력한 EMP로 철충 신호 유도기를 꺼뜨려버리자, 이 말이로구만.”
“맞아.”
민하준 합참차장의 말에 라자르 본부장이 맞장구를 쳤다. 핵탄두 그 자체가 아닌, 핵이 터질 때 발생하는 EMP의 효과를 노리자는 것이었다.
“철충 신호 유도기가 거대 철충 괴수의 발밑에 있으니, 현재 원정군이 가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는 철충 신호 유도기를 파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적어도 거대 철충 괴수가 움직이고 다닌다면 모를까, 현재로선 그 조차도 아니니깐 말이죠. 거기다가 펙스가 진즉에 워싱턴 시가지로 들어가는 다리들을 모두 파괴하였으니, 한 번에 많은 병력들이 중심 시가지로 이동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차라리 철충 신호 유도기를 먼저 무력화 시키고, 그 다음을 정리하는 것이 더 빠른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핵폭발을 일으켜서 EMP를 터뜨린다면, 지상에 있는 우리 아군들은 어쩌구요??”
“각하, 우리 군의 장비가 고작 EMP에 무력화 될 정도로 차폐 능력이 없지 않습니다.”
“애초에 우리 군의 모든 장비들은 최초 철충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만든 전력들이니까요.”
라비아타 대통령이 EMP로 아군도 무력화 되면 어떡하냐고 묻자, 민하준 합참차장의 제안을 잠자코 듣고 있던 벨리코프 합참의장이 말하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이겠지만, 연방군이 멸망 전 군대의 제식 장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설계도면 그대로만 생산해서 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연방군은 원래부터 철충을 상대로 세상을 수복하기 위해 창설된 군대인 만큼, 철충을 상대로 한 모든 공격과 방어를 주안점에 두고 만들어진 군대였다. 철충이 할 수 있는 모든 공격을 대비했고, 그들이 취할 수 있는 모든 방어 능력을 상쇄할 수 있는 공격 능력을 보유하였다. EMP 차폐 기능 정도야 당연히 기본 옵션 수준이었다.
거기에 조금 다른 이유기도 하지만, 연방군의 EMP 차폐 능력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연방군의 모태의 특수성에 기한다. 특히 멸망 전 미합중국 해군을 모태로 삼는 연방군 해군과 달리, 연방군 육군은 대한민극 육군을 그 전신으로 삼는다. 멸망 전 대한민국 육군은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까지 북한의 핵위협을 정면으로 상대하던 군대였고, 이 때문에 북한의 핵공격과 그에 따른 후속 피해를 대비하기 위해서 핵공격 대응 능력과 EMP 방호 능력 같은 기술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뛰어났다. 대한민국 육군의 4성 장군 출신이었던 민하준 합동참모차장은 이것이 연방군의 전력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 판단하고 과거 대한민국 국군의 기술을 과감하게 적용하였다.
연방군은 충분한 EMP 차폐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민하준 장군의 제안은 결코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었다.
애시당초 EMP에 의해 전자장비가 무력화 되는 원리는, 전자장비가 버틸 수 있는 전력의 양보다 더 많은 과전류를 흘려보내 장비의 회로 자체를 파괴시켜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니 EMP를 터뜨린다고해서 갑자기 도시 전체에 정전이 일어나고, 하늘에서 항공기가 떨어지고 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설계과정에서 처음부터 외피나 전자장비가 바깥으로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안테나 같은 통신망이나 전신주 같은 전력망 시설은 EMP에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 거대 철충 괴수가 나타난 데에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철충 신호 유도기가 바로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안테나 형태의 신호기였다.
당연히 EMP에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핵미사일을 쏘게 되면 워싱턴 상공 400km 성층권 지점에서 터뜨리게 될 겁니다. 그러면 전자기 펄스(EMP)가 지상으로 방출될 것이고, 철충 신호 유도기를 무력화시킬 겁니다.”
“하지만 철충 신호 유도기가 설치된 곳이 백악관 뒷마당이라면서요. 백악관에 전자기 펄스에 대비한 비상 발전 시스템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먹힐까요?”
“각하, 여기서 말하는 무력화라는 것은 발전기로부터 오는 전력을 차단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호기 자체에 임계점을 넘는 강력한 과전류를 흘려보내 신호기 자체를 손상 및 파괴시킨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백악관 지하의 비상 발전기를 가동한다 한 들, 수리라도 하지 않는 이상 신호기를 다시 복구시키는 것은 불가능 할 겁니다.”
“한술 더 떠서, 아예 처음부터 수리 조차 못 하게 만들 수도 있죠.”
“그렇군요. 그럼 만약 그렇게 했을 경우에 우리 군이 입을 피해는 없나요?”
“아예 없지는 않을겁니다, 각하. EMP가 상공에서 터지고 난 후 최소 두 시간에서 네 시간 동안은 아군의 통신망도 무력화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 동안 워싱턴 현지와의 통신이 불가능해질 겁니다. 작전에 성공을 해도, 작전에 실패를 해도 우리가 그 결과를 바로 알 방도가 없다는 소리이죠.”
“그럼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요? 굳이 우리 군의 통신망이 무력화 될 것을 각오하고 할 만한 작전인가요, 합참차장?”
“각하, 아직까지는 저 거대 철충 괴수가 원인미상의 이유로 발목이 묶여있다곤 하지만, 언제 족쇄가 풀려서 이동할지 모릅니다. 원정군의 지상 병력도 아직 대다수가 워싱턴 시가지로 진출하는데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구요.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이 녀석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거기다가 철충 신호 유도기를 손상시킨다면,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서 건너온 철충들이 있잖습니까? 운 좋게 이이제이를 할 수 도 있을 테구요. 아직 잔존해있는 펙소 콘소시엄의 병력들과 마리오네트 병력들을 상대로 철충들이 역으로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소리입니다.”
민하준 합참차장이 라비아타 대통령의 물음에 답변을 끝내자, 이번엔 레모네이드 알파가 우려스럽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차장님, 전자기 펄스를 이용한다느니 해도, 어쨌든 결과적으로 핵을 사용하는 거잖습니까? 그렇다면 나중에 펙소 콘소시엄에서도 핵을 사용할 명분을 주는 것이나 다름 없지 않을까요?”
“다른 레모네이드 비서들도 그렇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레모네이드 제타라면 필시 그러고도 남을 사람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명분을 만드는 여자니까요. 분명히 나중에 우리가 핵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 문제를 삼을 겁니다.”
“언니, 그러진 않을 거예요.”
그러자 자리에 같이 있었던 시에테.
그러니깐 레모네이드 베타가 답하였다.
“어째서?”
“엡실론이 있으니까요. 그녀가 워싱턴 상공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두 예의주시하고 있을 거예요. 성층권에서 핵이 터져도, 그것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앱실론 밖에 없어요. 막말로다가 그냥 태양풍이 불어닥쳐서 그랬다 라고 앱실론이 말하면, 제타도 그 이상 뭐라고 반박하진 못할 거예요.”
“엡실론이?”
“그녀도 회장을 부활시키는 데에 예전부터 은근히 반대를 해왔었으니까요. 더군다나 언니도 알다시피, 엡실론은 성층권에 있는 궤도정거장에 머물러 있으니 오메가나 다른 충성파 레모네이드들의 의심은 받아도 실질적으로 물리적인 제재를 가할 수가 없겠죠. 그녀라면 믿어도 되요.”
“허면, 그럼 다른 분들 의견은 어떤가요?”
“워싱턴 상공에 EMP를 터뜨리자는 계획에.”
라비아타 대통령의 물음에 각군 참모총장, 차장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핵을 쓴다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한 편으론 민하준 합동참모차장의 말대로 가장 신속하고 정확한 방법으론 이것 말고 없기도 하였다.
각군 참모총장, 참모차장들이 합참차장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핵무기와 관련하여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공군참모총장인 메이 로즈 원수가 물었다.
“핵은 어떻게 투발할 계획이죠?”
“전략사령부에서? 아니면…….”
“이미 태평양함대에 우리 군의 컬럼비아급 전략원잠이 있지 않습니까? 우린 그걸 사용할 겁니다.”
“가장 신속하고, 가장 정확하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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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중 삽화로 사용되는 그림과 사진의 출처는 구글링과 핀터레스트입니다.
아, 역시 아자즈.
개연성의 천재.
12구역 인상적이었는데 엡실론은 메인 몇구역쯤에 제대로 나오려나싶네요.
글고보니 앱실론도 나와야하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