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폰타인 사람은 모두 「죄」를 안고 태어난다. 정의의 나라인 폰타인이 아무리 심판해도 없앨 수 없는 죄를⋯.
언젠가 폰타인의 해수면이 상승해 죄를 짊어진 자들은 모두 서서히 수면 아래 잠길 것이다⋯.
⋯결국 모든 이는 바다에 용해될 것이며, 오직 물의 신만이 신좌에 남아 눈물을 흘리리라.
그때⋯ 비로소 폰타인 사람의 죄도 씻겨나가게 될 것이다.

라는 귀찮고 성가신 예언을 해결하기 위한 모두의 발버둥이 폰타인 5막의 내용이었지.
기억하고 있으려나?

모두의 발버둥이라고 해도 실제로 대부분의 일을 한건 푸리나와 너인 것 같다만.

맞아맞아, 무척 고생했다구.

맞아, 푸리나가 특히 고생을 많이 했지. 정말 고마워.
그런데, 500년에 걸쳐 폰타인을 구하기 위한 내 계획이 구멍투성이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어서, 나름대로 할말이 있어서 나와봤어.
어쨌든 나도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는 있었으니까.
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말하자면?

이 계획은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는게 맞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더라구.

모든 폰타인 사람을 구하기 위한 신의 유일한 계획이 그래도 되는거야???

뭐 어쩌겠어, 다른 방법이 없었는데. 그럼 하나 하나 짚어보자구.
먼저 폰타인 사람의 원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
바로 원시모태 바다의 힘으로 인간으로 의태한 폰타인 사람들을 진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이야.

'죄를 짊어진 자들은 모두 서서히 수면 아래 잠길 것'이라고 예언되었으니,
폰타인의 원죄를 해결하지 않는 한 한 번 해수면 상승으로부터 모두를 지켜내도 언젠가 반드시 모두가 수면 아래 잠기는 것은 필연적이겠지.

맞아. 폰타인 사람들을 전부 국외로 대피시키건 비공정을 만들어 바다에서 높이 떠나보내건 의미 없어.
원죄가 남아있는 한, 죄를 짊어진 자는 전부 수면 아래 잠겨 녹아내릴테니까.
예언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원죄를 해결하면서, 폰타인 사람들을 진짜 인간으로 만들 필요가 있지.

죄를 없애는 방법...즉 죄의 대가를 치르거나, 죄를 지은 자에게서 용서받는거구나?

정답이야. 에게리아의 죄는 천리의 허가 없이 원시 모태 바다의 힘을 훔쳐서 물의 정령을 인간으로 만든 것.
그렇기에 천리는 에게리아에게 예언이라는 천벌을 내렸지.

하지만 천리한테 용서해달라고 빌어봤자 의미 없겠지. 게다가 천리 또한 찬탈자인걸.
원시 모태 바다의 힘을 훔쳤다는 죄를 용서받기 위한 더 적합한 자, 이 세상의 물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가진 자는 따로 있지.
안 그래?

그렇기에 너는 나를 폰타인 성으로 불러들였지.
하지만, 만약 내가 용왕의 대권을 돌려받고도 인간을 구하지 않았다면 어쩌려고 그렇게 했나?
내가 인간을 아끼고 용서하게 되리란 근거는 아무리 그래도 없었을텐데.

그건 아니야. 난 네가 폰타인 성에 남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으니까.

대체 어떤 근거로?

당연히, 폰타인 최고의 배우이자 나의 또 하나의 측면인 인간 푸리나를 믿었지.

으흠, 내가 폰타인 최고의 배우이자 최고의 인기인인건 맞지만, 자기 과신이 너무 심한건 아니야?

딱히 그렇지는 않아. 네가 해줘야 했던건 인간에 관심이 없는 용왕을 매료시키는 것도, 반하게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보다 더 사소하게, 조금만 더 지켜볼까?하고 생각해서 인간들의 곁에 머무르게 하는게 목적이었지.
현실적인 예시로, 원균한테 배 50척을 주고 적군 50척을 막으라고 하는건 멍청한 전략이지만,
이순신 장군한테 배 50척을 주고 적군 50척을 막으라고 하는건 합리적이고 타당한 전략이잖아?
계획을 실행하는 자의 능력을 계산에 넣는 것은 당연한 일인걸.

그리소 용왕은 권능의 찬탈자인 우리 일곱 집정관들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을테니까.
푸리나가 아무리 폰타인의 모두를 잘 속여넘겨도, 어느날 용왕이 찾아와서 "포칼로스! 빚을 청산할 때가 왔다!"하고 공격하면 그냥 망하는걸.
그럴바엔 선수쳐서 먼저 불러들이고, 조금이라도 생각의 여지를 만들어내는게 최선이지.
뭐, 아주 푹 빠져버린다는 것은 기대 이상이었지만.

그럼 만의 하나 예상이 빗나가서 여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그래, 내가 인간 세상에서 온갖 일을 겪으면서 인간을 싫어하게 되었다면 어쩌려고 그랬지?

뭐, 그럼 일찍 망하나 나중에 망하나 예언 때문에 망하나 용왕 때문에 망하나 그게 그거 아니겠어?
어차피 용왕의 협력이 없으면 예언을 넘어설 방법이 없는걸.
천리를 잠에서 깨워서 이 죄인을 용서해주세요 하고 왈츠를 출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에에...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리고 에게리아와 같이 찬탈자인 천리라면 몰라도, 피해자일 뿐인 용왕에게는 죄를 범한 이를 심판할 정당한 권리가 있어.
모든 죄를 사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면 모든 죄를 벌할 자격 또한 있다는 것이니까.

난 에게리아의 정의인 [존재]를 긍정하고, 나 포칼로스의 정의인 [존속]을 긍정해.
그리고 그렇기에, 우리의 친애하는 최고심판관이 인간과 함께 살면서 인간을 겪어보고서 최종적으로 내린 판결이,
자신의 것을 훔친 도둑에 대한 단죄라면, 뭐 어쩌겠어, 그 또한 정의니 긍정해야겠지.
어찌되었든 난 정의의 신인걸?

...과연, 네 성향을 볼때 그리 이상한 발상은 아니군...

그와 동시에, 내가 동경하고 되고자 한 인간이라는 존재라면, 그들이 가진 눈부심이라면,
아무리 인간에 관심 없는 용왕이라도 감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믿었고 말이지.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아야 된다면 그 피해자를 설득하는 것이 최선이잖아?

흐음~그럼 그 부분은 대충 이해가 되었는데, 내 연극의 경우는?
아무리 그래도 아무런 힘도 없는 인간한테 신을 연기하라는건 무리 아니야?

확실히, 신의 눈은 셀레스티아의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으니 무리라고 해도,
최소한 다른 방법으로 원소의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은 마련했어야 하지 않나?
원소 생물이나 선인 같이 인간이 아닌 존재면 몰라도, 인간이 혼자서 원소를 다룰 방법은 없으니.
무엇보다 어떤 힘도 없는 존재가 강대한 신을 연기한다면 반드시 빈틈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원소의 힘을 다룰 수단이라...어떻게?

그거야 뭐, 신이잖아? 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거 아니야?

없는데?

응?

...그렇군, 에게리아는...

순서대로 짚어볼까.
먼저, 이 티바트에는 신의 눈이나 신의 심장이 없어도 원소나 신비한 힘을 다룰 수 있는 존재들이 있어.
리월에 존재하는 선인이나, 이나즈마에 존재하는 요괴들이 대표적이지.
그들을 대표하는 바위의 신이나 번개의 신은, 신의 심장이 없어도 강대한 힘을 다룰 수 있고.
물의 신의 권속인 물의 정령들도 물의 힘을 쓸 수 있지.

하지만 난 에게리아에 의해 인간이 된 전前 물의 정령이야. 당연히 인간이 되면서 물 원소를 다루는 능력도 잃어버렸지.
신체연령적으로 볼때 인간이 된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뭐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고.
물론, 정상적으로 신좌를 계승받았다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겠지.
집정관 시스템에는 신의 심장을 기점으로 사람들의 신앙심을 신의 힘으로 치환해주는 기능이 있으니까.
평범한 정령이었던 바람의 신이 신으로서 힘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니까 말이야.
전대에게 그동안 쌓인 신의 힘까지 물려받는다는 이상적인 경우라면 말이야.

물의 신 에게리아는 500년 전 켄리아 대침공 당시,
수메르 전선에서 심연의 침공을 막기 위해 풀의 신 룩카데바타, 화신의 딸 시무르그와 함께 싸웠다.
그리고 파라컬트의 하늘에 뚫린 심연의 구멍을 막기 위해, 그녀들의 모든 힘과 목숨을 희생해서 심연을 막는 오아시스를 만들어냈지.

파라컬트면 폰타인 바로 앞이잖아? 거기서 막지 못했다면 그대로 폰타인까지 뚫려버리는게...
근데 룩카데바타가 누구야?

당시 폰타인에는 신 이외에는 특출나게 강력한 권속도 없었으니까, 에게리아와 두 신들이 심연을 막지 못했다면 그대로 멸망했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룩카데바타는 수메르에서 나는 어느 버섯의 이름이네.
음, 잠시 헷갈렸군. 풀의 신은 나히다였지.
아무튼, 당시 심연의 힘을 막기 위해 모든 힘을 소모한 풀의 신은 작고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자신을 끌고가는 인간들의 손길에 저항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에게리아와 시무르그는 힘을 소모하는 것을 넘어, 목숨까지 잃어버렸고.

에게리아는 상냥하면서도 정의로운 책임감 있는 여신이야.
폰타인에서 해결하지 못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면 어떻게든 돌아왔을테고.
하지만 목숨까지 불태워서 세상을 지켜야 되는 싸움에서 힘을 아낄 여유가 어디 있었겠어?

그러니까 언니가 계승받은 신의 심장은...

어떠한 신력도 담겨있지 않은, 텅 빈 그릇이었단 거군.

뭐, 폰타인 사람들의 신앙이 실시간으로 모이고 있으니 신력이 조금씩 차오르긴 했지만, 진짜 신에 비하면 새발에 피지.
정리하자면 나는 얼마 전에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인간의 몸과 에게리아가 죽으며 계승받은 텅텅 빈 신의 심장,
그리고 끝내주게 잘돌아가는 천재적인 내 머리만을 가지고,
신을 잃은 폰타인 국민과 정세를 안정시키고, 폰타인을 지킬 무력을 수중에 넣는 것과 동시에,
수천년 동안 누구도 거역하지 못한 천리를 거역할 계획을 짜내야 되었단 말씀.

해도 너무한거 아니야? 무리난제도 정도가 있지.

물론 내가 전면에 나서서 신으로서 행세한다면 폰타인을 안정시키는 것도,
시간과 함께 모이는 신앙의 힘을 가지고 폰타인을 지키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그래서는 도무지 예언에 대항할 방법이 없단 말이지.
한 번 앞에 나서면 방향을 바꾸는건 쉽지 않을테니까, 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오래, 아주 오랫동안 고민했고.
결국 방법을 떠올렸지. 역시 난 천재라니까.

처음의 상황이 그랬다는건 이해했는데 말이야,
계시 판결 장치와 하나가 되서 신앙을 그러모았으면 그 힘을 나한테 조금 나눠줄 수도 있던거 아니야?
신좌를 파괴하기 위해 막대한 힘이 필요하다고는 해도, 내가 계획이 완성되기 전에 일찍 들키면 말짱 도루묵일텐데.

그 의문에도 아주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가 있단다, 동생아.

뭔데?

푸리나의 서사를 좀 더 극적이고 처절하고 안타깝게 만들기 위해선,
문자 그대로 아무 힘 없는 무력한 인간이 500년간 신을 연기해왔다는 이야기가 필요했기 때문이지.
거기다 내가 인간성을 믿는다고 말했으면서 정작 그 연기에 신의 힘을 빌려줬다면 인간찬가적인 의미 또한 옅어지지 않니?

뭐야 그게?!

뭐, 어떠한 진실도 털어놓지 않고 거울 속의 내가 물의 신과 어떤 연관도 없다는 것을 추측의 여지도 없게 확실하게 보여주면서,
물의 신은 어디에도 없으며 푸리나 자신의 연기 말고는 폰타인을 구할 방법이 없다고 믿게 만들어야,
언젠가 푸리나가 치명적인 심판에서 패배해 절망하여 울게 만들 수 있다는 소소한 이유도 있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은걸.

역시 교활하군, 포칼로스. 리니가 계시 판결 장치에서 목소리를 들은 것도 심판을 위한 준비였겠지?

글쎄, 어떨까? 아무튼 세계수의 예언이 사람의 속마음까지 기록하지 않는 이상,
푸리나가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채로 연기한다해도 계획엔 어떤 이상도 없거든.
푸리나의 의지와 각오는 이미 잘 봤을테고, 만약 진실을 알고 있었다고 해서 몰아붙여졌을 때 연기를 포기하고 계획을 털어놓았을까?
라는 의문에는 역시 '그러지 않았을거다'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걸.

하지만 쌍둥이 사기단이 전 세계를 속이고 있다가 핵심적인 비밀인 자기희생을 동생에게마저 숨기고 있던 언니가 모든 죄를 끌어안고 죽고,
언니의 소원을 이은 동생이 혼자 남아 살아간다는건 어딘가 맛이 좀 부족한걸.
푸리나의 매력을 더 확실하게 어필하고 이야기를 처절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극적인 요소를 추가해야겠지?

그 방법이 500년동안 나를 괴롭히는거란건 너무하지 않아? 사람의 마음이 없는거야?!

미안, 이 언니는 인간이 되지 못하고 죽은 신이란다. 따지려면 류웨이한테 따지렴.
어라, 슬슬 막을 내릴 시간이네. 죽은 사람이 너무 오래 나와있으면 안되겠지?
그럼 안녕, 느비예트. 푸리나.
500년 간의 너희의 역할이 마음에 들었길 바랄게.

불리할 때 말 돌리고 도망치는건 둘 다 똑같군 그래...

아니, 그걸로 끝이야? 좀 내가 고생 안하고 편하면서도 내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다른 방법 없었어?!
언니?? 거울 속의 나??? 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