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만은, 모르고 보더라도 아내가 죽을거라는 복선이 너무 대놓고 명확하게 드러나서 오히려 결말은 뻔하고, 아내가 죽는 장면이 언제 나올지를 기다리고 읽게 된다. 이 때문에 21세기 현대인들에겐 "너무 뻔한 내용"으로 저평가되지만, 사실 그게 작가의 의도다.
이 소설은 아내가 죽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당시 서민들의 비참한 삶의 애환을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아내의 죽음'을 예정된 결말이자 소재로 지정하고 그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과 감정의 팽창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즉, 아내가 언제 죽을지 기다리고 읽으라는게 작가가 의도한 바 그대로다.
아마 찾기 힘들거라고 생각됨
일본에 인력거가 도입된게 1870년인데, 30년 후에 철도가 많이 깔리면서 쇠퇴했고, 다이쇼 시대에는 택시가 도입됨
그래서 일본 본토에서는 전성기가 짧고..
저런 소설을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인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정말 빈민층의 소설은 드문 편인 것 같음. 일본어에서의 작문은 한자때문에 어느정도 식자층이여야 가능하기에..
실제로 원본을 찬찬히 읽어보면 김첨지는 이미 아내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음이 드러남. 선술집에서 친구에게 뜬금없이 아내가 죽었다고 말한다든가. 일하는 중간에도 영문모를 불안감에 휩싸인다든가... 사실 이미 집을 떠나는 시점에 죽어있었고, 그걸 외면한 채 일단 일하러 밖에 나가고, 이미 죽은 아내를 위해 뒤늦게 설렁탕을 챙겨들어오는 후회 피폐물로도 해석 가능하다.
그의 아내가 기침으로 쿨럭거리기는 벌써 달포가 넘었다. 조밥도 굶기를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약 한 첩 써 본 일이 없다. 구태여 쓰려면 못 쓸 바도 아니로되 그는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信條)에 어디까지 충실하였다. 따라서 의사에게 보인 적이 없으니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으되 반듯이 누워 가지고, 일어나기는 새로 모로도 못 눕는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난 이글 볼때마다 '너무 뻔한 내용이라고 저평가하는 현대인들'이라는 문구가 이해가 안됨.
애초에 말이 복선이지 그냥 대놓고 죽었다고 알려주는거나 다름없고, 그냥 읽다보면 예정된 비극을 애써 외면하는 김첨지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마련인 작품인데... 그걸 '결말이 뻔히 보인다'고 느꼈다? 걍 읽기 싫은데 억지로 읽으면서 읽는 내내 '아내 죽는다', '아내 죽었을거야', '거봐 죽었잖아' 이런 생각 밖에 안했다는 소리임.
이건 현대인의 문제가 아니고 그냥 작품이 너무 유명할때 소수의 인원한테 발생하는 문제지. 우리 엄마가 아빠땜에 억지로 엔드게임 같이보고는 '화려하게 삐슝 빠슝하는데 난 싸우는거 보기도 싫고 재미없었다'고 말한 거랑 비슷한 종류의 일인데.
아팠던 적이 있었다는 내용이 아마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고, 얼굴이 하얗다(창백하다?)라는 표현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기에 일단 병약체질이었던 것은 확정. 거기에 서울에 살던 여자애가 시골로 왔다는 자체가 요양하러 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기에 원래 약했던 아이의 증세가 안좋아져 시골로 요양온 차에 감기까지 걸리면서 결국 사망했다...라는 흐름으로 보는 것이 맞을 듯. - 무엇보다 유언까지 남겼다는 것이 스스로의 죽음을 직감하고 받아들였다는 의미이기도 하겠고.(단순히 비맞고 감기에 걸렸다고 유언을 남기는 일은 없을테니)
좀 깊게 들어가면 당시 서민들의 삶은 아무리 잘되도 마지막엔 파국밖에 안남는다는거지..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스토리가 너무 뻔해서 운수 좋아가지고 설렁탕집 아줌마 서비스로 들어간 회복 포션 마시고 건강 챙기는 소설이잖소.
저 뻔한 결말을 김첨지도 속으로는 예상하고 있어서 애써 선술집에서 친구와 술마시며 결말을 외면하고싶어하는게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지게 하지
아내를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는 당시의 아버지를 그려냈지
으읏 첨지가키
씨익
좀 깊게 들어가면 당시 서민들의 삶은 아무리 잘되도 마지막엔 파국밖에 안남는다는거지..
하늬도지
씨익
파국 싫어요 무국 좋아요
보아라 파국이다
어쩐지 쥰내게 맛있더래니...
계란국잖아
그럼 우리 모두는 대부호의 자식들인거시야
황태 해장국 같소
스토리가 너무 뻔해서 운수 좋아가지고 설렁탕집 아줌마 서비스로 들어간 회복 포션 마시고 건강 챙기는 소설이잖소.
판타지였구나
으읏 첨지가키
플래그!
아내를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는 당시의 아버지를 그려냈지
흑흑, 블누아카 세계관에서는 행복해야 해!
이놈의 육실헐 돈!
집에 안돌아가면 아내가 죽은지 산지 모르니까 그걸로 되겠다
슈뢰딩거의 아내야?
그걸로도 독자는 뻔히 예상되지
... 쯔쯔쯔 ... 왜 안들어 갔겠음? ... 뻔한 얘기지 ...
아무리 봐도 스릴러야..
암울한 시대상. 일제 강점기의 소외된 하층민의 삶이 주제인것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아 오늘 X나 한몫땡기겠구나)
에잉 배민으로 시켜놓고 가지 오라질뇬!
나가지 말았어야됐어 최소 죽을때는 옆에있어줘야지
사실 이미 여러번 안나갔고 그때마다 사랑하는 자식과 함께 쫄쫄 굶었을듯..
빠지지 빠지지 석쇠에서 구워지는 가래떡..
김첨지가 ts환생한게 저 아이구나
읽는내내 "술 좀 그만 마시고 빨랑 설렁탕 들고 가!" 하고 조마조마했지.
그게 개쩜 보는 사람 대부분이 아내가 죽을걸 알고 아내한데 무슨일이 생길질 아는데 계속 긴장감을 가지게 만들어 혹시 싶은 희망도 가지게하고
예견된 결말을 최대한 늦춰보려는 방어적 행동이라는 얘기도 있지
먹고프다던 설렁탕을 결국 먹지 못하고…
김첨지:내가 30원을 벌었어! 30원을!(3원이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일본이나 우리나라느 인력거꾼은 하류인생으로 묘사되는데 일본엔 운수좋은날 같은 인력거꾼의 애환을 다룬 널리 알려진 작품이 없을까 궁금함
아마 찾기 힘들거라고 생각됨 일본에 인력거가 도입된게 1870년인데, 30년 후에 철도가 많이 깔리면서 쇠퇴했고, 다이쇼 시대에는 택시가 도입됨 그래서 일본 본토에서는 전성기가 짧고.. 저런 소설을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인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정말 빈민층의 소설은 드문 편인 것 같음. 일본어에서의 작문은 한자때문에 어느정도 식자층이여야 가능하기에..
남의나라 침략할정도로 최전성기라
저 뻔한 결말을 김첨지도 속으로는 예상하고 있어서 애써 선술집에서 친구와 술마시며 결말을 외면하고싶어하는게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지게 하지
'우리 마누라가 죽었다네.' '읭?' '앜ㅋㅋ 죽긴 뭘 죽엌ㅋㅋㅋ 잘만 살아있다곸ㅋㅋㅋ'
제목부터 전개 결말까지 흠잡을 거 없는 소설
대체 저평가하는놈은 어떤놈이야
뭐긴뭐야 수능에서 저거 틀려서 등급 떨어졌다는 핑계가 필요한 놈이겠지
너무 뻔해서 그렇지 역대 장르를 만든 영화도 지금 보면 에걔? 이 작품이 명작이야? 하는 것처럼 흔하고 잘 아니까 어릴 때면 뻔한 것보단 극도로 비틀린 창작물이 명작으로 보일 시기라서
이런 오라질뇬....
난 몰랐다고...어렸을때 교과서에서 봐서
실제로 원본을 찬찬히 읽어보면 김첨지는 이미 아내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음이 드러남. 선술집에서 친구에게 뜬금없이 아내가 죽었다고 말한다든가. 일하는 중간에도 영문모를 불안감에 휩싸인다든가... 사실 이미 집을 떠나는 시점에 죽어있었고, 그걸 외면한 채 일단 일하러 밖에 나가고, 이미 죽은 아내를 위해 뒤늦게 설렁탕을 챙겨들어오는 후회 피폐물로도 해석 가능하다.
돈 버는 족족 아내 약값으로 다 쓰는 사람이 아내가 오늘은 제발 옆에 있어달라 하는데 뿌리치고 가는 것부터 답나오지. 차마 아내의 임종을 두 눈으로 볼수가 없었으니까
ㅠㅠㅠㅠ
ㄴㄴ 김첨지 신조는 병이란 놈은 약을 먹이면 재미붙여서 더 달라붙으니 약 한첩 쓴 적 없어. 사실 돈이 없어서 그런거겠지만.
그의 아내가 기침으로 쿨럭거리기는 벌써 달포가 넘었다. 조밥도 굶기를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약 한 첩 써 본 일이 없다. 구태여 쓰려면 못 쓸 바도 아니로되 그는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信條)에 어디까지 충실하였다. 따라서 의사에게 보인 적이 없으니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으되 반듯이 누워 가지고, 일어나기는 새로 모로도 못 눕는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김첨지 운이 좋아질 수록 더 크게 슬퍼지는 결말이었지
결말이 다가오지 않기를 바란 첫 작품이지...ㅜㅠ
진짜 술술 읽히는 장르물도 아닌데 술술 읽히는 소설 구운몽다음으로 처음이었음.
근데 구운몽은 생각해보니 장르소설이구나...
조선시대 하렘물 라노베
환생물 + 능력물 + 하렘물 + 마지막으로 아 ㅅㅂ 꿈 완벽하다.
난 김첨지가 아내의 죽음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래서 집에 가는걸 최대한 늦춘게 아닐까 싶었음. 진실을 목도하기 싫어서.
실제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복선이나 장치가 곳곳에 있지
그러다 유난히 운수가 좋아서... 어쩌면 이 운좋은 하룻동안 아내도 조금은 건강을 되찾았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에 설렁탕까지 사서 들어갔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내의 임종을 차마 보기가 무서워서 집을 나왔지만 그럼에도 아내에 대한 희망을 놓지 못해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감
어쩐지 오늘 운수가 좋더라니
후반부 주요 갈등 구도가 어쩐지 계속해서 아내가 죽었을 것만 같은 김첨지의 불안함과 그럼에도 이 운수 좋은 날을 조금이라도 즐기고 싶은 마음 사이의 대립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난 이글 볼때마다 '너무 뻔한 내용이라고 저평가하는 현대인들'이라는 문구가 이해가 안됨. 애초에 말이 복선이지 그냥 대놓고 죽었다고 알려주는거나 다름없고, 그냥 읽다보면 예정된 비극을 애써 외면하는 김첨지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마련인 작품인데... 그걸 '결말이 뻔히 보인다'고 느꼈다? 걍 읽기 싫은데 억지로 읽으면서 읽는 내내 '아내 죽는다', '아내 죽었을거야', '거봐 죽었잖아' 이런 생각 밖에 안했다는 소리임. 이건 현대인의 문제가 아니고 그냥 작품이 너무 유명할때 소수의 인원한테 발생하는 문제지. 우리 엄마가 아빠땜에 억지로 엔드게임 같이보고는 '화려하게 삐슝 빠슝하는데 난 싸우는거 보기도 싫고 재미없었다'고 말한 거랑 비슷한 종류의 일인데.
근데, 사실 딱히 변한거 없지 않음....운수 좋은 날이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지금 2024년의 사회도 별 다를 건 없지 않음?
소나기 소녀는 원래 병이 있었던거임 아니면 비오는날 감기로 죽은거임?
원래 폐병이 있던 아이가 요양차 시골 내려 왔다가 비 맞고 폐병이 악화돼서 죽은게 아닌가 싶긴 한데...
아팠던 적이 있었다는 내용이 아마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고, 얼굴이 하얗다(창백하다?)라는 표현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기에 일단 병약체질이었던 것은 확정. 거기에 서울에 살던 여자애가 시골로 왔다는 자체가 요양하러 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기에 원래 약했던 아이의 증세가 안좋아져 시골로 요양온 차에 감기까지 걸리면서 결국 사망했다...라는 흐름으로 보는 것이 맞을 듯. - 무엇보다 유언까지 남겼다는 것이 스스로의 죽음을 직감하고 받아들였다는 의미이기도 하겠고.(단순히 비맞고 감기에 걸렸다고 유언을 남기는 일은 없을테니)
저평가래..
그나마 아내 장례라도 잘 치뤄주라고 그렇게 운이 좋았나보다 싶었음. 그래서 더 비참했고.
츤데레가 과하면 일어날 수 있는 비극
어릴 때 무방비 상태로 읽다가 눈물 뚝뚝 흘린 기억이 남 ㅋㅋㅋ 왜 이리 슬픈 거야 이호철 ‘나상’도 지금보면 클리셰 그 자체인데 알면서도 눈물 터짐.
운수 좋은 날 처음 읽었던게 중학교 초반이었나 초딩 때였나 그래서 결말 예상 못했는데.....
어릴때 보면 복선을 예상못하고 결말도 예상못함
저평가????? 누가 감히 저평가를 해???
애완동물 공동묘지 생각나는구만 막 즐거운 풍경 행복한 모습 보여주고 다음파트 시작지점에 "그 비극이 일어나기 한달 전..."이 ㅈㄹ 계속함 빌어먹을 명작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