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울 명동에서 만난 할배가 썰푼 썰 푼다"
웹에서는 신채호 선생이 뻘소리를 많이 했어도 '실증사학'을 하려고 했다고 실드가 많은데, 실제론 대게 신채호 선생이 했던 '실증사학'이라는것들이 보통은 이런 종류였음. 구한말에는 단군계열, 증산계열, 동학계열 등의 민족종교 경전, 각종 참언서, 가짜 역사서 등 온갖 잡서들이 무분별하게 유통되었는데 신채호 선생은 이걸 좀 고증, 의심 없이 대책없이 받아들인 감이 있음. 덕분에 이런 잡서들이 지금도 유사역사학계에서 절찬리에 쓰이고 있고.
하다못해 이전 세대인 조선 후기 학자들이나 청나라 학자들도 고증학으로 이전시대 사서나 서책 고증해서 위서인지 검증해보는 나름대로 철저한 면이 있었는데 이 양반은 그런게 실종됨. 이 양반 실증사학 대개가 이런식임. 이건 빈말로도 근대 역사학이라고 할 수 없음.
나는 솔직히 이 양반이 원하던대로 만주에 널린 고구려 고분 같은거 잘못 열었다가 '무령왕릉' 이상 참사 안 났을거라고 장담을 못하겠다.
그래서 신채호 선생 독립운동가, 아나키스트로써의 면모 말고 역사학자로의 면모는 빈발로도 실드치면 안 된다고 생각함.
근대적인 역사학 연구 방법을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식민사관에대한 반발을 기반으로 역사서를 서술 했으니 어쩔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