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까지 한민족은 목욕을 즐겼던 듯하다.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에는 절마다 욕조가 있어
사람들이 절에서 가끔 목욕을 했으리라 추정되기도 하고,
북송 사람이 고려를 관찰하고 쓴 <고려도경>에서는
'아따 고려사람들 겁나 많이 씻네
아침에 일어나면 목욕부터 하고 여름엔 두 번씩 씻음;;
쟤들이 자꾸 우리보고 때 많다고 놀려ㅠㅠ'
이라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주변 민족에 비해 깔끔한 걸 좋아했던 모양이다.
또한 주로 냇가에서 다 같이 모여 씻는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전신욕이 일반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냇가에 물이 그리 많은데
상식적으로 목욕하러 와서 발이나 씻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목욕문화는 조선시대에 들어 도전받는다.
왜냐하면 상술하였듯 목욕장소는 주로 냇가였는데,
고려시대에는 '당연히 목욕=알몸 아님?'이라는 관념 아래
속옷까지 다 벗고 다른 사람과 목욕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유교관념으로 보았을 때
자신의 몸을 다른 사람 앞에서 보여준다는 것은
음란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특히나 아무렇지 않게 남녀가 뒤섞여서 벗고 씻는
혼욕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더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들어 바람직한 목욕문화는
'각자 집에서 씻자!'라는 쪽으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혼자서 씻는다 할지라도
옷을 벗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지배층의 목욕문화는
세수, 손&발 씻기, 사타구니 씻기, 머리 감기 등
부분 목욕으로 변하게 된다.
옷을 벗고 씻어도 예에 어긋나지 않는,
즉 전신욕이 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날은
단오, 유두날, 칠석 등 1년 중 5일이다.
물론 제사 등의 의식 이전에는
몸을 깨끗하게 닦아야 했으므로
이것보단 전신욕을 더 많이 했을 것이다.
다만 전신욕을 할 때도 옷을 완전히 벗으면 안 되고
얇은 옷을 입고서 씻었어야 한다고 하니,
사극에서 옷 입고 씻는 장면이 나오는 건
심의 때문이 아니라 나름(?) 고증인 셈이다.
뭐래 시발;; 찝찝해 죽겠는데
어이구 그래 예의 많이 지키고 살아라 새끼들아
다만 서민들의 경우엔 상대적으로 규율에서 자유로웠고,
특히 육체노동이 많아 땀이 많이 났을 것이므로...
유교적 관념이 도입되었더러도 백성들은 여전히
개울이나 냇가에서 몸을 씻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춥고 물도 얼어버리는 겨울에는
물을 퍼 온 후 뎁혀서 씻었을 것이다.
다만 남녀간에 몸을 보이고 씻으면 안 된다는 관념은
백성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공유된 모양인지,
혼욕 문화는 이후로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나...나도 목욕 좋아하는데! 그렇다, 난 고려인이었던 거시다.
유교 이놈!
조금만 땀이나도 목욕하고 싶었던 건 깔끔을 떠는게 아닌 각인되어있던 것이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