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극심한 사회 불안이 쌓이고
화재와 오염, 질병 등이 돌자
평소의 반한감정을 힘입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라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일본인 자경단들이 조선인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
일본의 경찰들은 이를 방관하거나
가끔은 동조하는 등의 행동으로
피해를 키웠다
평소에 밝게 인사하던 옆집 사람들도
발음이 안 맞는 사람들을 조선인이라고 죽여대던,
비상식적인 일을 일반인들이 행하던 광기의 시대에,
조선인을 보호한 일본인이 있었다
오카와 스네키치 경찰서장.
당시 46세이던 오카와 서장은 쓰루미 경찰서에 조선인을 하나둘 보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부하 경찰관들조차 동요했다. 오카와 서장은 “조선인들은 모두 선량한 사람(良民)”이라며 설득했지만 쉽지 않았다. 동요가 이어지자 오카와 서장은 조선인들을 근처에 있던 절 본당으로 이동시켰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관 30여명을 배치했다. 조선인의 수가 계속 늘자 그는 다시 경찰서로 이들을 옮겼다.
대지진 사흘째인 9월 3일, 1000명이 넘는 무리가 쓰루미 경찰서를 에워쌌다. “경찰서가 조선인 보호소냐, 조선인을 내놓으라”는 위협이 이어졌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오카와 서장은 “조선인에게 손을 대볼테면 대보라. 한 명이라도 넘겨줄 수 없다”고 맞섰다. “한 명이라도 탈출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자경단의 항의에 그는 “만약 한 명이라도 도망치는 사람이 있다면 할복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자경단은 돌아갔고, 그가 이렇게 구한 조선인은 약 300명에 이르렀다.
경찰 기록 외에도 당시 그의 행적을 좇은 기록이 있다. 재일동포 작가 박경남 씨가 오카와 서장의 아들과 목격자들을 취재해 1992년 출간한 책『두둥실 달이 떠오르면』이다. ‘불량한 조선인’을 내놓으라는 자경단의 겁박이 있던 9월3일, 오카와 서장은 “조선인들이 독을 투입한 우물물을 가져와라. 내가 먼저 마시겠다. 이상이 있으면 조선인들을 넘기겠다. 이상이 없다면 이들을 나에게 맡기라”고 일갈했다. 오카와 서장은 왜 조선인을 감싸느냐는 자경단의 힐책에 “어느 나라 사람이든 사람의 생명은 변함이 없다. 인간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답했다.
편지는 오카와 서장의 보호로 목숨을 구했던 조선인들이 대지진 5개월 뒤 보낸 감사장이다. 일본어가 아닌 한자와 한글을 섞어 써내려간 편지 말미엔 8명의 조선인 이름이 적혀있었다. 오카와 유타카는 “한글은 잘 모르지만 한자만 봐도 당시 어떤 마음으로 썼을지 느껴진다”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조부가 한 일인데, 제가 인터뷰를 하니 쑥스럽네요. 살아계셨다면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 경찰관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하실 겁니다.”
그의 손자는 '당연한 일인데 칭찬받아 쑥쓰럽다'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광기의 시대에 소신을 가지고 홀로 정상인으로 사는 것도
충분히 영웅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광란의 시대여도 의인은 한 명씩 있군요.
일본 정부가 쉬쉬하는 일일수록
이런 분은 우리가 더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광기에 휩쓸리지 않는 인간성 문장으로는 한줄이지만 너무나 힘든일이네 대단합니다
일본이 제국주의를 반성하고 제국주의에 반대한 사회운동가들이나 일제에 비판적인 후세 다쓰지, 가네코 후미코 등을 위인으로 삼았으면 한일관계가 이렇게 뒤틀리진 않았겠지 근데 일본이 선택한 건 일제강점기 주역들 디럭스 에디션이었고
와 저 광기속에 저렇게 반대입장 내는건 진짜 목숨을 건건데 ㄷㄷㄷ
악마가 지배하던 세상에서 악마를 거부하고 인간으로 남겠다고 선언한게 의인이 아니면 무엇일까.....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죽이나!" - 무다구치 렌야 군에서 내려온 민간인 학살과 약탈명령을 거부하며.
어둠 속의 작지만 별을 대신하는 촛불 하나 같으신 분..
저때 안타까운 점이, 조선인 학살도 있었지만, 발음 조금 틀렸다고 죽임당한 무고한 일본인들도 많았음. 이 사람들은 전후에도 조명받질 못하고 일본인 위안부들과 함께 침묵을 강요 당함. (말하는 순간, 무라하치, 이 무슨 폭거~!) 일본 사회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 당해버림.
사람이 미치다보면 정상으로 돟아오긴 하더라
광기에 휩쓸리지 않는 인간성 문장으로는 한줄이지만 너무나 힘든일이네 대단합니다
집단과 개인은 다르다는 예시인거같음
일본이 제국주의를 반성하고 제국주의에 반대한 사회운동가들이나 일제에 비판적인 후세 다쓰지, 가네코 후미코 등을 위인으로 삼았으면 한일관계가 이렇게 뒤틀리진 않았겠지 근데 일본이 선택한 건 일제강점기 주역들 디럭스 에디션이었고
전범들을 거의 대부분 살려두고 그대로 정치가로 돌아가게 뒀으니, 예정된 수순이었음.
뭣보다 히로히토 이 ↗찐따새끼를 살려둔게 가장 크지 않았나 싶음 ㅇㅇ
적어도 폐위 시켜서 일반인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와패니즘에 빠진 미국 일뽕들 (+ 맥아더)이 극구 말려서...;
악마가 지배하던 세상에서 악마를 거부하고 인간으로 남겠다고 선언한게 의인이 아니면 무엇일까.....
어둠 속의 작지만 별을 대신하는 촛불 하나 같으신 분..
와 저 광기속에 저렇게 반대입장 내는건 진짜 목숨을 건건데 ㄷㄷㄷ
모두가 미쳤을때 홀로 제정신으로 광기에 맞설수 있다면 그는 진정 의인이고 영웅이며 진실로 고결한 자이다.
시대를 앞서간 선인이로구나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죽이나!" - 무다구치 렌야 군에서 내려온 민간인 학살과 약탈명령을 거부하며.
자기 부하들은 가차없이 사지에 밀어넣었지만 민간인 학살만큼은 하지 않았던 무타구치 센세......
진짜 멍청한척했던 인물이였던걸까
멍청한 척 이라기엔 진짜 멍청한 짓도 저질러서 그건 아닐 듯..
ㅋㅋㅋ그런거라면다행이야
중일 전쟁 이 인간으로 시작된거 생각하면 ㅋㅋㅋ
인류 역사는 늘, 다수의 집단 이기심 사이에서 소수의 양심있는 송곳같은 사람들 덕분에, 인류애의 균형을 유지해 왔다.
참 된 경찰
인터넷에서 선날글로 불탈 때 진정 좀 하자는 말 한 마디 하는 것도 힘든데 당장 총칼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저러는 건 쉽지가 않지....
집단의 광기에 홀로 맞서는 건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그야말로 선인이시네.
당시 일제는 시민들까지 군국주의로 세뇌된 상태여서 일본제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조차 무지성으로 일제를 두둔하는 상태였어서 저런 사람들이 더더욱 돋보이지
태평양 전쟁의 광기는 일본인들에게도 더할나위 없는 비극이었음. 그걸 아무리 무슨 영원의 제로니 뭐니 꾸며봤자... 빨간종이 징집영장으로 보이는 인간군상만큼 와닿지가 않음.
저때 안타까운 점이, 조선인 학살도 있었지만, 발음 조금 틀렸다고 죽임당한 무고한 일본인들도 많았음. 이 사람들은 전후에도 조명받질 못하고 일본인 위안부들과 함께 침묵을 강요 당함. (말하는 순간, 무라하치, 이 무슨 폭거~!) 일본 사회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 당해버림.
근대 저 당시 조선사람들은 대항할 생각을 안한건가? 일본 빼고 누가봐도 말도 안되는거로 공격한거잖어 대항할 생각을 아예 안한건가
그럼 오히려 저들에게 명분을 주니까
모두가 YES를 말할 때 NO 라고 말하는건 정말 힘든 일이지.
그런데 내용은 아는 내용이지만 정말 좋은 분에 대한 좋은 내용이 맞긴 한데, 그래서 저 글 초반의 [15엔의 비극]이 대체 뭐라는거임???
그 당시 조선인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서 15엔 발음을 해보라고 시킴 어설프면 조선인이다 하고 죽임.
그렇구나… 알려줘서 고마움!
양민이 그런 뜻이었구나...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