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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문의 협의는 "분쟁은 발생할 수 밖에 없으며 이는 좋은 말로 묻어두는게 아니라 해결되어야 한다"임.
이 두 가문의 사상은 갈등할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국적인 목표와 그에 이르기 위한 방법론으로 볼 수 있음.
남궁가의 태평성대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하는것이 아닌 상호이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데,
당문의 협의는 피를 흘려서라도 갈등을 올바르게 해결하는것이 목적임.
현실적으로 강자가 약자를 이해하려하지 않는것을 당문의 협의를 통해 '이해하게' 만드는 것.
이는 광주 당문 당수홍의 말을 반박하는 장문인의 말에서도 드러남.
당수홍은 선과 의, 불법으로 세상을 교화한다고 말하지만, 해석하면 아무런 실속이 없는 헛소리임.
작은 일을 없애고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는 것은 상호이해가 아니라 강자의 일방적인 압제에 불과하기 때문.
남궁가에서 주장해온 천하태평-대동사상은 당문의 협의와 공존할 수 있고, 오히려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있음.
하지만 당수홍의 주장은 글러먹은 소리이기 때문에 장문인이 남궁가는 존중해도 당수홍에게는 느금마를 시전함.
대동을 추구하던 노태야(남궁광), 가주(남궁원)가 살아있을 때 남궁세가가 친당문 성향이었던 이유 역시 같음.
양측의 사상이 서로 맞물릴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관계였던것.
조금 꺾어서 이해하면 남궁세가 입장에서 당문은 스스로 움직이는 당문세가의 칼이라고 봐도 되는거군
소수자의 의견응 피력할 수 있게 돕는 역활이 당문 모두의 의견을 아우러 협의를 하는게 남궁 대세에 따르지 않는 소수의 의견이라도 옳은 경우나 정답인 경우도 있으니 남궁세가는 당문이랑 친해지는게 좋지
낭궁심: 너희들이 우리 할아버지 독살한거 아님?
남궁원의 행동이나 장문인의 말을 보면 알겠지만 남궁가는 적극적으로 남에게 먼저 은혜를 베품 당수홍과 남궁광의 차이가 남궁은 자기의 억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백년에 걸쳐 선불을 지불한 거고 당수홍은 자기 사람에게 대리 지불을 시킨 거지 남궁의 역할은 세상 모두에게 자기가 선불을 지불해서 자기 말을 존중하게 한 후, 중간다리 역을 하는 거였고 당문 역할은 불의한 일을 보면 솔레스탈빙처럼 갑자기 나타나서 무력 개입을 해버리는 거였지 남궁이 알아서 천하에 불의한 일이 안나타나게 미리 잘 중재한다면 당문은 나설 일이 없긴함 문제는 남궁의 아직 네고시에이션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는데 당문 불의 센서가 작동해서 출동해버리는 경우지
이래서 진짜로 당문과 남궁의 결합이 될 수 있었을 소사매 결혼을 서행으로 훼방놓았다는 말이 있지
무협으로 해석하면 일종의 만류귀종 같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듬 사실 겉으로 보면 남궁세가와 당문이 전혀 다르긴 함. 남궁세가는 스토리 내내 중재자로서 행동하고, 당문은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스스로 추구하는 협의가 강조됨.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중히 여기는 남궁세가는 다른 이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야 하고 자기 자신의 협의를 관철하고자 하는 당문은 다른 무림인들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아야 됨.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중재자로서 권위가 있기위해선 남의 말만 경청해서 될게 아니고 뚜렷한 자기만의 신념이 존재하고 그런 태도를 지속적으로 보여줘야 됨.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협의가 나만의 아집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만한 대의안에서 움직여야 함. 그렇게 생각하면 남궁세가와 당문은 정반대의 면모를 통해서 자기들이 추구하는 바를 위해 필요한 훼손되어선 안되는 대전제를 보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음. 무림대회에서 남궁원이 당중령의 옛 이야기를 할 때, 당문이 이어온 맥에 어긋나기에 그 자리에 모인 무림인들과 함께 할 수 없다고 오만하게 말해놓고서 정작 극락교가 처들어왔을 때는 대의에 어긋나지않게 가장 먼저 싸우러 나선 모습을 이야기 하는데 이게 남궁세가 입장에선 당문을 존중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예시라고 생각함.
당문: 너 패고 니 할배도 찾아서 파주마!! 남궁심: 음...아니군!
조금 꺾어서 이해하면 남궁세가 입장에서 당문은 스스로 움직이는 당문세가의 칼이라고 봐도 되는거군
낭궁심: 너희들이 우리 할아버지 독살한거 아님?
밍밍한커피
당문: 너 패고 니 할배도 찾아서 파주마!! 남궁심: 음...아니군!
소수자의 의견응 피력할 수 있게 돕는 역활이 당문 모두의 의견을 아우러 협의를 하는게 남궁 대세에 따르지 않는 소수의 의견이라도 옳은 경우나 정답인 경우도 있으니 남궁세가는 당문이랑 친해지는게 좋지
이래서 진짜로 당문과 남궁의 결합이 될 수 있었을 소사매 결혼을 서행으로 훼방놓았다는 말이 있지
서행의 사상이 저 두 가문과 정반대되니까ㅋㅋㅋ
남궁원의 행동이나 장문인의 말을 보면 알겠지만 남궁가는 적극적으로 남에게 먼저 은혜를 베품 당수홍과 남궁광의 차이가 남궁은 자기의 억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백년에 걸쳐 선불을 지불한 거고 당수홍은 자기 사람에게 대리 지불을 시킨 거지 남궁의 역할은 세상 모두에게 자기가 선불을 지불해서 자기 말을 존중하게 한 후, 중간다리 역을 하는 거였고 당문 역할은 불의한 일을 보면 솔레스탈빙처럼 갑자기 나타나서 무력 개입을 해버리는 거였지 남궁이 알아서 천하에 불의한 일이 안나타나게 미리 잘 중재한다면 당문은 나설 일이 없긴함 문제는 남궁의 아직 네고시에이션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는데 당문 불의 센서가 작동해서 출동해버리는 경우지
그 부분도 있고, 당수홍의 평화는 이해가 아닌 인내(를 가장한 굴복)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게 또 남궁가의 사상과는 달라서. 애초에 남궁가는 "그래 뭐 서로 죽일 수도 있지. 근데 금나라든 서하든 니교든 뭐든 칼을 겨누고 싸우더라도 서로 이해하는걸 포기해서는 안됨"이니.
힘이 없다면 옳아도 억압받고 가난한다고 해서 노비가 되어야 하는 현실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하나라도 있다면 무림협객은 사라지지 않을것이며 오늘 당문이 사라져도 그 정신은 팔백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을테니 오늘 우리가 흘릴 피는 헛되지 않으리라 너희 힘이 의고 다수가 정의라 떠드는 자들아 오늘 우리가 너희의 어미를 패주마
무협으로 해석하면 일종의 만류귀종 같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듬 사실 겉으로 보면 남궁세가와 당문이 전혀 다르긴 함. 남궁세가는 스토리 내내 중재자로서 행동하고, 당문은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스스로 추구하는 협의가 강조됨.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중히 여기는 남궁세가는 다른 이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야 하고 자기 자신의 협의를 관철하고자 하는 당문은 다른 무림인들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아야 됨.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중재자로서 권위가 있기위해선 남의 말만 경청해서 될게 아니고 뚜렷한 자기만의 신념이 존재하고 그런 태도를 지속적으로 보여줘야 됨.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협의가 나만의 아집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만한 대의안에서 움직여야 함. 그렇게 생각하면 남궁세가와 당문은 정반대의 면모를 통해서 자기들이 추구하는 바를 위해 필요한 훼손되어선 안되는 대전제를 보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음. 무림대회에서 남궁원이 당중령의 옛 이야기를 할 때, 당문이 이어온 맥에 어긋나기에 그 자리에 모인 무림인들과 함께 할 수 없다고 오만하게 말해놓고서 정작 극락교가 처들어왔을 때는 대의에 어긋나지않게 가장 먼저 싸우러 나선 모습을 이야기 하는데 이게 남궁세가 입장에선 당문을 존중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예시라고 생각함.
어쨋든 양자는 결국 무림이 일게 싸움하는 무부가 아닌 협의를 추구하는 존재가 되어야한다는 공통된 지점이 있는데 그 곳으로 가는 방법론이 서로 대치되더라도 종국에는 서로 같은 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는거 같음.
남궁세가는 대동이란 이상을 꿈꾸지만, 당문은 이상보다 현재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거로 보이니 둘이 바라보는 지점은 다르다고 생각함. 남궁세가가 당문을 존중하는 것은 행동이 과격해도 마교 상대로 앞장서서 싸우는 협을 내세우는 부분이고 당중령은 숭산과 남궁세가가 이상을 위해 싸우면서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는 것을 알기에 존중하는 건데 광주당문 당수홍은 고통을 남에게 떠넘기면서 존중은 받고싶어하는 위선적인 부분때문에 까이는거고, 이는 하후란 루트에서 목숨 구걸로 잘 보여주니. 대사형이 남궁가문 고깝게 보는 부분이라든가 (견갑 개그가 아니라 담패도 사건에서 체면 차리느라 자기 식구 보호 제대로 안챙기면서 진실을 파악하는 거에 힘쓰지 않은 부분.) 조활도 선택지에 따라 남궁온의 이상론을 듣고 동의 안하면 남궁온은 상관준과 조활은 현실에 충실한거니 미래는 나에게 맡기라 말하는데 당중령이 아닌 당문의 입장에서는 남궁 가문의 행동들을 현실도 제대로 못챙기는 헛소리로 받아들인다 해석할 수 있기에 본문에서 말하는 남궁과 당문이 사상이 맞물려 존중하는게 아니라 서로의 행동과 업적으로 보여준 모습에 따른 존중 아닌가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