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춘추]
– 양의(楊儀) 등이 군을 정돈하고 출발하자 백성들이 선왕(宣王)에게 급히 고했고 선왕이 이를 추격했다.
강유는 양의에게 명하여 군기를 반대로 하고 북을 울리도록 하여 선왕에게로 향하는 것처럼 하자, 선왕은 이내 물러나 감히 핍박하지 못했다.
이에 양의는 진형을 짠 채 물러나고 계곡으로 들어간 뒤 발상(發喪)했다.
나는 이거 쎄한게 암만 봐도 이거 강유가 아닌것 같음.
제갈량이 상서에게 보내는 공문에 이르길
"이평(李平)은 대신이 되어 과분한 총애를 받으면서도 충성을 다하여 보답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근거도 없는 낭설을 지어내고 방자하게 굴었으며 본인에게 불리한 일은 하지 않고 상하를 미망에 빠지게 했습니다. 재판을 함에 있어 법조를 버리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간사한 일을 하도록 이끌었으며 감정은 저열하고 뜻은 광망해 마치 천지가 없는 듯 했습니다. 스스로가 계획했던 간사한일이 드러나자 의심이 마침내 생겨 대군이 장차 올것이라는 것을 듣고서 병을 핑계대고 저沮현과 장漳현으로 돌아갔으며 군대가 다시 저현에 당도하니 돌연 강양江陽으로 돌아가려 하였는데 이평의 참군인 호충(狐忠)이 간언하자 마침내 그만 두었습니다. 지금 찬적篡賊이 소멸되지 않았고 사직에 어려움이 많은데 국가의 대사는 오직 모두가 화합해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포용하여서 국가의 대사를 망쳐서는 안됩니다.
지금
行中軍師 車騎將軍 都鄉侯 臣劉琰 : 행중군사 거기장군 도향후 신 유염劉琰,
使持節 前軍師 征西大將軍 領涼州刺史 南鄭侯 臣魏延 : 사지절 전군사 정서대장군 령양주자사 남정후 신 위연魏延,
前將軍 都亭侯 臣袁綝 : 전장군 도정후 신 원침袁綝,
左將軍 領荊州刺史 高陽鄉侯 臣吳壹 : 좌장군 령형주자사 고양향후 신 오일吳壹,
督前部 右將軍 玄鄉侯 臣高翔: 독전부 우장군 현향후 신 고상高翔,
督後部 後將軍 安樂亭侯 臣吳班 : 독후부 ㅎㅈ군 안락정후 신 오반吳班,
領長史 綏軍將軍 臣楊儀 : 령장사 수군장군 신 양의楊儀,
督左部 行中監軍 揚武將軍 臣鄧芝 : 독좌부 행중감군 양무장군 신 등지鄧芝,
行前監軍 征南將軍 臣劉巴 : 행전감군 정남장군 신 유파劉巴,
行中護軍 偏將軍 臣費禕 : 행중호군 편장군 신 비의費禕,
行前護軍 偏將軍 漢成亭侯 臣許允 : 행전호군 편장군 한성정후 신 허윤許允,
行左護軍 篤信中郎將 臣丁咸 : 행좌호군 독신중랑장 신 정함丁咸,
行右護軍 偏將軍 臣劉敏 : 행우호군 편장군 신 유민劉敏,
行護軍 征南將軍 當陽亭侯 臣姜維 : 행호군 정남장군 당양정후 신 강유姜維,
行中典軍 討虜將軍 臣上官雝 : 행중전군 토로장군 신 상관옹上官雝,
行中參軍 昭武中郎將 臣胡濟 : 행중참군 소무중랑장 신 호제胡濟,
行參軍 建議將軍 臣閻晏 : 행참군 건의장군 신 염안閻晏,
行參軍 偏將軍 臣爨習 : 행참군 편장군 신 찬습爨習,
行參軍 裨將軍 臣杜義 : 행참군 비장군 신 두의杜義,
行參軍 武略中郎將 臣杜祺 : 행참군 무략중랑장 신 두기杜祺,
行參軍 綏戎都尉 臣盛勃 : 행참군 수융도위 신 성발盛勃,
領從事中郎 武略中郎將 臣樊岐 : 령종사중랑 무략중랑장 신 번기樊岐
-이엄전
이 부분 보면 강유는 양의보다 서열이 낮게 나옴
그런데 왜 강유가 명하는건지 의아함
양의(楊儀) 등이 군을 정돈하고 출발하자 백성들이 선왕(宣王)에게 급히 고했고 선왕이 이를 추격했다.
위연은 양의에게 명하여 군기를 반대로 하고 북을 울리도록 하여 선왕에게로 향하는 것처럼 하자, 선왕은 이내 물러나 감히 핍박하지 못했다.
이에 양의는 진형을 짠 채 물러나고 계곡으로 들어간 뒤 발상(發喪)했다.
하지만 이렇게 강유를 위연으로 바꾸면 깔끔해지는
저 부분은 사실 위연이 아닐까
위연까지는아니라해도 강유는 직위상 아니여야할탠데 강유 올려치기같음
거기다 저때 양의를 움직였다면 양의보다 상급자일텐데
그럼 위연이 양의와 별도로 움직여서 먼저 회군했다는 본전의 다른 기록들과는 상충되지. 당시 촉군의 관등이나 명령체계에 대한 습착치의 무지로 인한 오기거나, 정황상 후발대를 지휘하고 있었을 강유의 독자 행동에 대한 표현의 과장으로 볼 수 있는데 난데없이 위연이 소환되는 건 다른 기록들과 교차검증했을 때 근거가 부족함.
여기서 내가 위연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본몬의 서열에 나와있다시피 저기서 양의보다 높고 제갈량 다음가는 통제권을 가지는 조건에 만족하는게 정서대장군 위연이기 때문임.
내가 저기에 위연이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와 강유가 들어가게 된 경위로 생각하는 이유는 위의 댓글에서 이미 서술했으니 그거에 대한 직접적인 이견이 없다면 따로 댓글을 더 달진 않겠음.
으으음 굳이 적자면 양의가 사마의 군에 행동을 하러 나온건 사실임. 진서에서도 양의가 나왔으니 이건 확실할테지. 한진춘추는 그걸 적은 것이고 강유의 독자 행동과는 거리가 있어보임. 그럼 그 명령이 누구에게서 나왔을까 생각하면 양의의 상급자 위연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
강유의 '명(令)'이라는 표현이 한진춘추의 오기 또는 과장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진서 선제기가 당시 촉군의 명령체계를 비교적 제대로 인지하고 교통정리한 서술로 볼 수 있다는 것까지는 서로 동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함. 하지만 최소한 마지막줄에 대해서는, 위연이 양의보다 앞서 이미 남정으로 출발했고 서로 불목한 상태였다는 본전의 기록을 감안하면 위연이 아닐 수밖에 없다고 생각됨.
위연이 양의보다 앞섰다는 시점은 사마의 낚시 이후인데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는건지 다시 설명 좀 해줘
위연은 '양의가 출발하기 전에' 먼저 본인의 부대를 끌고 되돌아갔고(延大怒纔儀未發率所領徑先南歸所過燒絕閣道, 촉서 위연전) 사마의가 촉군을 추격하기 시작한 건 '양의가 정군하고 출발하자 백성들이 와서 보고'한 이후임.(楊儀等整軍而出百姓奔告宣王宣王追焉, 촉서 제갈량전 주석 한진춘추) 두 기록의 타임라인대로면 위연 출발-양의 출발-사마의 출발이 되는데, 위연이 양의보다 앞선 시점이 사마의 낚시 이후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알려주면 고맙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