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三年 삼년산성을 쌓다
十四年春二月 모로성을 쌓다
十六年秋七月 명활성을 수리하다
十七年 일모·사시·광석·답달·구례·좌라 등의 성을 쌓다
十七年秋七月 고구려 왕 거련이 백제를 공격해 한성을 함락하고 백제 왕을 죽이다
十八年春一月 왕이 명활성으로 옮겨 거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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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마립간 : 그냥 성을 존나 쌓으면 됩니다.
참고로 이 자비 마립간이 세운 성 중 가장 역대급 성이 바로 삼년산성.
이 성은 전적이 무려 149전 1패.
다만 고구려도 고구려인지라 상황 파악이 끝난 후 신라를 공격하긴 했음.
물론 저 미친 성들을 다 뚫진 못했고(...)
이런 좋은 지형을 두고 일본군이 문경세제 그냥 통과하도록 냅둔 신립은 왜..
존나 많이 지어놔서 이후시대에 요새들은 전부 삼국시대에 이미 요새화 해놓은 전적이 있음
신립 : 아 보병에는 기병이지. 전술의 기본 모름? 거기다가 급하게 모은 병사들이라 통제가 안 되면 곤란하다고 통제하기 쉬운 가급적 평지에서 배수진을 치면 급하게 모은 병사라도 성과를 낼 수 있음. 하지만 신립은 몰랐다.. 일본군의 장창. 야리가 7m가 넘어서 기병으론 돌파하기 힘들다는 점과 탄금대가 늪지에 가까웠다는 걸(..)
당시 신립이 바보도 아니고 나름 이유 분석한거 보니까 말 그대로 상황상 어쩔수 없었음 본인이 아는 정보와 상황 토대로 나름 최악에서 차악의 선택을 한거임
신립 : 우리는 고구려 마냥 기병군이니까 산성 필요없다고 아 ㅋㅋㅋㅋ 부하들 : 영감! 땅이 너무 질퍽한뎁쇼?
대충 길목에 있는 언덕마다 산성있었다고
근데 삼국시대때 작든 크든 성이 ㅈㄴ 많긴 했나봄? 전쟁 했다하면 서로 성 몇십개 백개씩 뻇고 그러던데.
근데 삼국시대때 작든 크든 성이 ㅈㄴ 많긴 했나봄? 전쟁 했다하면 서로 성 몇십개 백개씩 뻇고 그러던데.
()도로롱
대충 길목에 있는 언덕마다 산성있었다고
()도로롱
존나 많이 지어놔서 이후시대에 요새들은 전부 삼국시대에 이미 요새화 해놓은 전적이 있음
고대인들도 요충지는 다 알아서 위치 좀 괜찮으면 성의 흔적이 있지
신라 성 특. 산에 있음 ㅋㅋㅋ
이런 좋은 지형을 두고 일본군이 문경세제 그냥 통과하도록 냅둔 신립은 왜..
냉법냉법냉법냉냉법
신립 : 우리는 고구려 마냥 기병군이니까 산성 필요없다고 아 ㅋㅋㅋㅋ 부하들 : 영감! 땅이 너무 질퍽한뎁쇼?
신립 : 아 보병에는 기병이지. 전술의 기본 모름? 거기다가 급하게 모은 병사들이라 통제가 안 되면 곤란하다고 통제하기 쉬운 가급적 평지에서 배수진을 치면 급하게 모은 병사라도 성과를 낼 수 있음. 하지만 신립은 몰랐다.. 일본군의 장창. 야리가 7m가 넘어서 기병으론 돌파하기 힘들다는 점과 탄금대가 늪지에 가까웠다는 걸(..)
장창병까진 어찌어찌 해볼만 할수도 있는데 거기서 늪지대가?ㅋㅋㅋ
신립은 기병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르는게 아닌가싶음
대충 신립이 바보다 짤
냉법냉법냉법냉냉법
당시 신립이 바보도 아니고 나름 이유 분석한거 보니까 말 그대로 상황상 어쩔수 없었음 본인이 아는 정보와 상황 토대로 나름 최악에서 차악의 선택을 한거임
조총병 : 데헷 장창 사이에 섞여서 너도 한방! 나는 한방 아님. ㅎ
그리고 상식적으로 조총병들 상대로 기병이 뭘 할 수 있는데....
여진족퇴치때처럼 적당히 넓은 벌판만 있으면 기병이 이길거라고 생각했나보지 근데 거기에 뻘이..
기병 역활이 굉장히 즁요한 여진 소탕전이 커리어 대부분인 양반이라 전면전 방진보병 상대로는 까막눈인게 컸다고봐야
조총병들 앞에 기병을 갖다처박은것도?
신립은 수백단위의 기병을 이끌고 싸워본적밖에 없었음 잘쳐줘야 대대장급이란 얘긴데 그런인물한테 사단을 맡겼으니 그 꼴이 나지
조총온리면 뭘 하고도 남는데 일본이 대기병전술 문외한이라고 해도 일단 장창병이 주력인지라..
근데 사실 야리로 막혔다기보단 전술적으로도 기동전에 완전 쳐발려서ㅋㅋㅋ거기다가 단순히 보기엔 대기병용으로 좋지 당시 야리 진형은 느슨한 진형이라서 본격적인 기병은 못 막음. 근데 기병이 전력을 낼만한 지형도 아니고 그렇다고 징집된 병졸들이 싸울 지역도 아닌데서 싸웠으니
야전 기동하다가 일본군한테 잡혀서 어쩔 수 없이 회전들어간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긴 하더라...
그걸로 전적 미친듯이 뽑아 봤다고 뽑은거지 뭐.. 결국 그시대에는 나름 검증된 인사라는것인지라..
뭐 애초에 조총병 상정 안한것까진 처음 상대해보는 무기라 그렇다 쳐준다고 해도 기병 운용하면서 지형 조사도 제대로 안한거에서 이미 끝이지 뭐...
기병인데 잡혔다고?
해석은 분분함. 그나마 납득해보려는 해석이 조정에서 쥐어준 병력이 죄다 급조에 훈련도 안 된 보병이라 이걸로 뭐 해볼 수도 없으니 자기 주특기이자 유일하게 믿을만한 부대인 기병으로 쇼부보려고 했다는거.
기보 합동이잖아. 진격 속도를 보병에 맞춰야지. 그리고 경로도 중요하고. 상식적인 수준의 무장이라도 최악의 환경인데 이건 반대로 말하면 일본군에게는 최적의 전장이라는 뜻이니.
그니까 본인이 아는 상황에서 차악을 선택한거지 일본군이 강한 이유가 조총이 아님 더 긴 창과 칼의 길이와 전쟁의 압도적인 경험 때문이지 조총이 무슨 게임처럼 빠방 쏜다고 기병들 우수수 나가 떨어지는것도 아니고 당시 조선군도 조총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때의 판단은 연사력과 사거리가 활보다 안좋다 였었고 실제로 제대로 보호 받지 못 하는 조총은 기병들 밥이고 조총이 강력한이유는 조금만 훈련시켜도 사용할 수 있었다지 당시 활보다 성능이 못 했음 낮은 사기치와 습진 훈련도 안된 징집병들 제대로 싸울수 있는 병력은 본인이 끌고 왔던 얼마 안되는 기마대 거기다가 보급과 당시 전황과 신립에게 바라는 조정 이런 상황에서 인간 신립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몰렸겠음 우리야 당시를 게임 중개보듯이 다 아니까 이러쿵 저러쿵하지만 지휘관 입장에서는 다르지
당시 활보다 성능 떨어진다는건 대표적인 오해임. 전쟁 시작되고나서부터는 착각이었단 기록이 꾸준히 나옴. 징비록에서 특히 조총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나 간접적인 기록이 자주 나옴. 다만 탄금대에선 조총의 영향력은 별로 없었고 신립의 완전한 판단 미스와 고니시가 꽤 유능한 기동을 펼친게 패인이겠지만.
기병은 소수고 대부분 훈련도 안된 징집병들이었음 보통 쓸만한 병사 기준이 적어도 몇 달 이상은 훈련시켜야 하는데 이마저도 습진을 겨우 겨우 하는 수준 신립은 당시 징집도 하면서 탈영 방지도 하고 동시에 훈련도 시키고 이동도 해야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음 제대로된 속력이 나올 순 없지
러시아는 왜란기 조총보다 더 화력 센 화승식 머스킷 가지고도 17세기까지 유목기병 상대로 절대적 우위 못 점했고 심지어는 19세기에도 소규모 기습전에는 어어 하다가 대응 못하고 잡혀가서 노예생활 한 적이 많음 조총 같은 전장식 화약무기는 다른 병종과 협력이 잘 이루어지거나, 험지를 끼고 싸우거나, 야전축성이 잘 됐거나 하는 상황 아니면 기병 상대로 이기기 힘듬
그 유우명한 삼단철포 진형짜서 화망 이루면 다 갈아버릴수 있는거 아냐? 게임도 아니고 어디든 한 방만 맞으면 넘어지고 무력화되는게 생물인데 앞에 가던 기병들이 넘어지면 뒤에도 죄다 걸려서 넘어질거 아냐.
신립은 기존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당시 보유 중인 병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거임. 그게 완전히 틀린 선택이었다는걸 직접 싸워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는게 문제지 임진왜란 전에 일본이랑 싸운거 중에서 제일 규모 큰게 을묘왜변이었는데 이때 왜구들은 야전을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못했음 을묘왜변 초기에 조선 병력이 너무 적어서 우왕좌왕하다 피해가 커진게 좀 있긴한데 그거 감안해도 왜구의 야전 실력이 형편없었음 어느 정도냐면 제주도에서는 보병 70명이 진을 치고 버티면서 기병 4명이 돌격했는데 그걸 1000명이 못 막아서 패배했을 정도 그런 상황이다 보니 얘네는 주특기가 풀숲에 숨어서 조총 쏘는 거였음 야전으로 붙으면 기병한테 깨지니까 그래서 신립은 아직 쳐들어온 일본군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고, 기존의 대 왜구 실전경험에 따르면 무조건 야전을 유도하는게 유리하니까, 그렇게 한거임 아마 신립 입장에서는 오히려 문경새재 들어가자고 하는 김여물이 ㅁㅊㄴ으로 보였을거임 그때 거기에는 성곽이 없어서 말 그대로 산악지대 풀숲에서 싸워야 하는데, 왜구의 장기(라고 알고 있는) '풀숲 매복 사격전' 을 하자고 하니까 오히려 아군의 장점은 갖다버리고 적이 원하는 식으로 싸우자고 하는 것처럼 보였을 거임
일단 삼단철포는 에도시대 군기물에서 처음 나온 이야기고, 그 비슷한 전술을 썼을 가능성은 있지만 확정난 건 아님 글고 화승총은 명중률이 낮고 재장전 시간이 길기 때문에 조를 나눠서 '삼단철포' 한다고 해도 기병돌격을 100% 저지할 수 있는 수준의 화력은 안나옴 유럽이 화승총을 대거 사용한 게 17세기인데 이때 기병 비율도 어마무시하게 늘어나서 이때를 기병의 시대라고도 부르는데 괜히 그런게 아님
그래서 일본군이 탄금대나 벽제관처럼 기병 상대로 승리한 전투 관련 기록을 보면 조선이나 명나라나 조총 이야기보다는 대도 이야기릏 함 즉 노다치같은 큰 칼로 기병을 상대했다는거
그리고 뭣보다 조총 연속 사격이 그렇게 강력했다면 청나라가 정묘호란 병자호란 연달아 이기고 명나라까지 이겨내면서 천하통일하는 일은 없었을 거고, 타타르의 멍에를 벗은 이후의 러시아마저도 크림 칸국의 약탈전을 못 막아서 모스크바가 불타는 경험을 하지 않았을 거임
밀고 들어가기도 힘들고 들어간 다음에 정복 유지하기도 힘들고. 지역의 귀족층을 통합해야 정복이 유지되는데, 신라는 골품제로 그게 가능했던 반면 고구려는 완전히 자국중심 천하관이라 피정복지역 귀족들을 대우 안 해줬을거 같고.
딱히 그건 아님. 실제로 고구려에서 갑자기 등장한 성씨들이나 외부에서 온 세력을 포용하는 모습은 꽤 보여서. 실제로 을지문덕도 그 출신에 대해 의구심이 있음.
중국쪽 초원쪽에서 귀부한 집안이랑 한반도 남쪽에 정복당한 지역 집안이랑 대우가 같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함 광개토대왕릉비 보면 남쪽 사람들은 걍 노예 취급이더만.
딱히. 속민. 신민 표기가 뭔 노예 취급임
여튼 지배당한 예속민들 귀족을 동급으로 대우해줬을거 같지 않음.
꺼라위키발이지만 149전 1패는 거짓이라고 하는데
경북의 지랄맞은 산악지대....
고구려는 중국쪽 전선도 방비해야해서 온전히 국력을 한반도로 쏟기 힘들었을듯
삼년산성이 149승 1패라는건 헛소문임. 그딴 기록없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