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왜적과 대진할 때, 왜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감히 돌진해 오니,
우리 군에는 창을 들고 검을 찬 자가 있다 하여도 검은 칼집에서 꺼낼 겨를이 없고,
창 또한 교전에서 쓰이지 못하여 맨손으로 다 흉검에 당해 패하고 말았다.
이는 모두 교전법이 전수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무예제보「주해중편 교전법」유성룡이 아뢰기를,
"삼색 군사(三色軍士)가 2천여 명인데 둔전(屯田)에 나누어 보내서 현재 서울에는 남아 있는 자가 몇 사람 없습니다.
이 군사들은 중국 장수들도 쓸 만하다 하였는데, 울산의 전투를 치르고 부터는 더욱 칭찬하여 말하기를,
‘이 군사 1천 명이면 중국 포수(砲手)5천 명은 충분히 당하겠다.’ 하였고,
유 제독 휘하의 군사들도 또한 칭찬하기를 ‘절강(浙江)의 포수보다 훨씬 뛰어나다.’ 하였습니다.
이는 대개 절강의 군사들은 포(炮)만 쏠 뿐인데, 이 군사들은 말을 달리며 활을 쏘고 포를 쏘는 등
여러 가지 기예에 모두 능하기 때문에 절강의 군사들보다 뛰어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선조실록왜군이 칼 들고 달려오면 쫄아서 칼도 못 꺼내고 당하던 수준이었지만
왜란이 끝날 때 쯤엔 수준이 대폭 올라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