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참전을 결심할 때,
미군 1개 사단을 상대하려면 중공군 10개 사단이 필요할 거라 가정했었습니다
그만큼 중국측 역시 자신들의 화력과 전투력 열세를 잘 파악하고 있었던 거죠
화력과 장비가 불충분할 때 공세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밖에 없습니다
병력 희생을 각오하고 보병 돌격을 할 수 밖에 없죠
보병 돌격만이 유일한 공세 수단이라면,
가능한한 병력을 집중하여 소수의 적에 대해 다수의 병력을 투입하는게 가장 현명합니다
그리고, 중공군의 저 당시 전술은
단순한 인해전술이 아니라,
경보병의 잇점을 살려 우회 기동하여 보급로를 차단하여 심리적 보급적 불안을 야기한 후,
마지막 단계가 상대 진지에 대한 보병 돌격이었습니다
가장 취약한 한국군을 공격하여 우회 기동로를 확보하고,
포위 공격을 하는 방식이었죠
그래서 이 시기 한국전쟁의 가장 많이 발생하는 전투 방식이
보급로와 후퇴로를 차단당한 UN군에 대한 포위섬멸전,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포위돌파전이었습니다
미군 1개사단이 포위되었던 군우리 전투라던가(미2사단이 인디언 태형),
미해병 1사단의 장진호 전투,
미 23연대 전투단의 지평리 전투 등
한국전쟁에서 발생했던 많은 전투들이 포위전 형태였던 게 중공군의 이런 우회기동 포위전술 때문이었죠
그리고 중공군은 그런 팽덕회를 팽 해버렸습니다
50%만 많아도.. 존나 많은거잔아..
차량으로 이동하며 자주포와 전차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10만이랑 대다수가 볼트액션소총이랑 수제식 박격포로 무장한 15만 어느쪽이 강할까? 심지어 제공권도 없는데
몆배도 아니고 고작 50% 많은 거로 인해전술로 사람 때려박아 이겼다고 평가할 거면 전쟁사 대부분은 인해전술이지
많다고 다 전력이 되는게 아니란걸 밀덕 아닌사람들은 이해를 못함ㅋ
기본적인 보병무기만해도 비교가 안됨 당시 중국군은 노획한 일본무기로 무장한 경우도 나름 무장을 잘한편임
압도적 병력우위로 말아쳐먹은 사례는 다수 존재하니까
그리고 중공군은 그런 팽덕회를 팽 해버렸습니다
ㄹㅇ 동양의 한니발인데 이걸 버리네
50%만 많아도.. 존나 많은거잔아..
차량으로 이동하며 자주포와 전차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10만이랑 대다수가 볼트액션소총이랑 수제식 박격포로 무장한 15만 어느쪽이 강할까? 심지어 제공권도 없는데
우리나라 산지가 많아...
기본적인 보병무기만해도 비교가 안됨 당시 중국군은 노획한 일본무기로 무장한 경우도 나름 무장을 잘한편임
근데 현실은 본문처럼 밀린것도 맞잔아.. 굳이 인원수로 밀렸다는게 아니라 전략도 나름 갖췄다는거고 인원수도 %로 많았다는건 전쟁시에선 엄청 많은거지
게다가 딱히 본문 내용에 태클거는것도 아니고 그냥 많다는거에 태클이 달리는건 어쩌라는겨..
몆배도 아니고 고작 50% 많은 거로 인해전술로 사람 때려박아 이겼다고 평가할 거면 전쟁사 대부분은 인해전술이지
아니 니가 전술까지 박아 넣은거라메.. 게다가 50%도 적은게 아니라고 라는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초기 증원이 UN군보다 많았다 = 존나 많은거 맞잔아? 내가 본문이 틀리다고 한것도 아니고 초반 증원군이 최대 50%이상 많았다는거에 존나 많은거잔아 한게 틀리다는거야? 난 네 본문을 보고 쓴건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그냥 병력 분산 안하고 전군 어택땅으로 일점 돌파만 하겠다는 일차원적 전략으로 뒤가없는걸 행했다고 볼 수도 있지. 병력을 진심으로 소모품이라 생각해야 가능한. 저렇게 돌파하면 보급 어떻게 하려고?
그래서 보급 못해서 중간에 진격 멈췄음 서울 점령할 때 쯤에는 전멸 직전이었고 중공군이 빠르게 진격해서 묻혔지만 사상자는 un군의 몆배였음
의외로 6.25는 무지성 어택땅이 아니라 중공군이 전략전술면에서 더 우위이던 거 맞음.
어택땅 일점돌파는 아닌데 산지가많은 한국지형을 용해서 산악행군과 분산침투, 전방향 포위공격으로 아군을 짤라먹고 난전을 일으킴. 그러면 un군은 적.아를 구분하고 화려지원을 용이하게하기위해 일시후퇴해서 전선재배치를 시키려하고 중공군에 짤려나가게 된거죠. 또 보급은 인력후송후 전투참여하는 전방부대에만 보급 전달후 후방수송 기다리는 형식으로 했죠.
부대 전력 30% 잃으면 전멸로 판정하는데 숫자부터 50% 많았다면 인해전술이라 할만한데...
그거도 1, 2차 국공내전과 중일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이 돌파
참고로 1942년 이후의 소련군도 인해전술로 단순히 밀어붙인 게 아니라 제공권, 기만술, 화력집중, 제병합동 등등 현대적인 군사전술을 성공적으로 총동원해서 이긴거임.
우라돌격하고 반자이돌격은 넘사벽 차이지 초반에 나치 집단군한테 몽땅 포위섬멸당하고 전황이 정말 심각할 때만 아니라면 소련군은 언제나 중화기를 잔뜩 동원해서 밀고 들어갔음
독소전도 초기에는 독일군 숫자가 더 많았죠...
20%~50% 많으면 엄청 많은거자너;;;
많다고 다 전력이 되는게 아니란걸 밀덕 아닌사람들은 이해를 못함ㅋ
토코♡유미♡사치코
압도적 병력우위로 말아쳐먹은 사례는 다수 존재하니까
무장 열세에, 제공권 없이 이긴다는 게 말이 쉽지...ㅋㅋㅋ
팽덕회 아니였음 개쳐발렸을듯
이런글애서 이러쿵저러쿵들 하지 말고 그냥 국방티비 역전다방의 625편 볼것을 권함
중국이 참전을 결심할 때, 미군 1개 사단을 상대하려면 중공군 10개 사단이 필요할 거라 가정했었습니다 그만큼 중국측 역시 자신들의 화력과 전투력 열세를 잘 파악하고 있었던 거죠 화력과 장비가 불충분할 때 공세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밖에 없습니다 병력 희생을 각오하고 보병 돌격을 할 수 밖에 없죠 보병 돌격만이 유일한 공세 수단이라면, 가능한한 병력을 집중하여 소수의 적에 대해 다수의 병력을 투입하는게 가장 현명합니다 그리고, 중공군의 저 당시 전술은 단순한 인해전술이 아니라, 경보병의 잇점을 살려 우회 기동하여 보급로를 차단하여 심리적 보급적 불안을 야기한 후, 마지막 단계가 상대 진지에 대한 보병 돌격이었습니다 가장 취약한 한국군을 공격하여 우회 기동로를 확보하고, 포위 공격을 하는 방식이었죠 그래서 이 시기 한국전쟁의 가장 많이 발생하는 전투 방식이 보급로와 후퇴로를 차단당한 UN군에 대한 포위섬멸전,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포위돌파전이었습니다 미군 1개사단이 포위되었던 군우리 전투라던가(미2사단이 인디언 태형), 미해병 1사단의 장진호 전투, 미 23연대 전투단의 지평리 전투 등 한국전쟁에서 발생했던 많은 전투들이 포위전 형태였던 게 중공군의 이런 우회기동 포위전술 때문이었죠
'항상 유리한 싸움을 한다'가 전략전술의 기본인데 말처럼 쉽게 안 되지.
미군도 완편 상태는 아니었음. 전쟁 끝났다는 분위기라 포병 전력이 뒤쳐진 상태였음. 포병 지원만 있었어도 안 밀렸을 거라는 평이 있을 정도.
중국이라 가능한 전술이 아닐까 생각함....소련이라던지...
오해가 자꾸 생기는게 인력 갈아넣기가 아니라 고도로 정규화된 병력들이 우수한 전술을 부렸던거임. 소련 들이박기랑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