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순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연 안동김씨의 시조격 인물이다.
세간의 평가가 어린 왕을 휘두르며 세도정치를 연 탐욕스러운 권신 이미지인 것과 달리,
의외로 현실 김조순 자체는 순조의 장인으로서 왕가의 권위를 유지하려고 애쓰며
본인 공적은 낮추고 겸손을 떨며 부정축재로 규탄된 적이 없어서 의외로 당대에는 청렴하거나 비리를 티가 안날 정도로만 조금만 하던 타입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당대에 세도정치가 열리게 된 것은 김조순 본인이 주요 업무를 앞서서 처리하던 성향 + 어린 순조의 소극적인 성향 + 조선 후기의 체제 등의 문제가 복합된 결과로 보인다.
요즘으로 치면 일할때 스마트폰 본거니까
연애소설이라 써놧지만 야설일지도 몰라
정조가 슈퍼울트라꼰대였다며
킹세종이 요즘 넘들이 경전을 안읽고 삼국지만 읽는다고 한탄하셨던가 아마
삼국지 보는것도 헛된거 본다고 혼나던 시대였어
너 정조가 얼마나 진상꼰대인지 모르는구나
성경 본다고하면 저딴거 수준떨어져서 어차피 유교가 간단하게 쳐바른다고 할정도로 슈퍼 근본주의자
요즘으로 치면 일할때 스마트폰 본거니까
그렇기도 하지만 정조가 소설 같은 글을 잡문이라고 극혐하는 꼰대였음.
연애소설이라 써놧지만 야설일지도 몰라
진짜 야설이었으면 반성문으로 안끝났을걸?
유교국가 주딱이 야설을 허용할리가 그치만 존나잘쓴 명작 순애물이란건 팩트일거임
옹기봇
너 정조가 얼마나 진상꼰대인지 모르는구나
"김상궁의 은밀한 매력 시리즈" 이런거 아니었을까 ㅋㅋ
킹세종이 요즘 넘들이 경전을 안읽고 삼국지만 읽는다고 한탄하셨던가 아마
그것도 정조. 삼국지 같은 잡스러운 책 좀 읽지 말라고 했음
저 때 삼국지면 돗자리 장사꾼이 힘을 숨김. 아비가 세명입니다만, 문제라도? 유부녀와 만남을 추구하면 안되는걸까? 제로에서 시작하는 천하삼분지계 이런 취급이지 않을까?
정조가 슈퍼울트라꼰대였다며
말루
성경 본다고하면 저딴거 수준떨어져서 어차피 유교가 간단하게 쳐바른다고 할정도로 슈퍼 근본주의자
요즘것들 글쓰는 스타일이 영하고 엠제트하다고 틀딱시절로 원시회귀 하라고 틀니 따닥댄 경력도 있는 량반이니.
근데 그건 시대상 그럴만 함 ㅋㅋㅋㅋㅋ 솔까 성경은 안믿는 사람들이 보면 뜬구름 잡는 신화잔아
구절 보면 무슨 누가 몇살에 누굴 낳고 언제 죽고 파트보면 그니까 야훼 믿으면 이만큼 잘살고 많이 낳는다 그냥 ㅅㅂ 족보책이지
슈퍼꼰대 영조를 뛰어넘는 슈퍼울트라꼰대 ㅋㅋ
문체반정으로 명청대 문체는 아예 용납하지 않는 꼰대였음. 저 연애소설 본다고 혼낸거도 연애소설 문체가 명청대 문체여서 혼낸거고
근무중에 웹소설 읽고 있으면 안되는게 맞지
당직서는데 폰으로 게임하거 있으면 반성문은 써야지
삼국지 보는것도 헛된거 본다고 혼나던 시대였어
요즘은 교양쌓으라고 삼국지라도 읽으라는ㅋㅋ
그건 정조가 좀 꼰대스러워서 그런거고. 영조는 삼국지, 수호지 많이 읽음. 정조가 한거는 요즘으로 치면 ‘웹소설 같은 거 볼 시간에 고전 명작 읽어라’라는 소리긴 함
연애결혼 유행한거는 100년도 안되었는데 저시절 연애소설이면...
사실 정조가 ㅈㄴ 불같은 핵꼰대이기도 했었던지라
연암 박지원의 경우 ㄹㅇ 개털림 김조순은 점잖게 혼난거임
문체반정이라고 북경에서 유행하는 최신? 소설도 수입조차 금지 무조건 수백년 전 고전만 읽어라 하던 시절...
쉽게말하면 커뮤에서 쓰는 용어들을 공문에 넣기 시작해서 강제 교정 시킨거
커뮤 용어라고 퉁치기에는 뭣한게 이미 당대 중국인들도 잘 안 쓰는 옛날옛적 문체만 끝없이 강요한 거라...
소위 경전에서 나온 문장 형태만 복붙 고쳐쓰기 강요한 건데... 사실상 유학에서 약간이라도 벗어난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사상 고정으로 이해하는 게 더 적절하지 않나 싶음
반성문에 자기핑계 안쓰는게 답이구나
정조 문체반정까지 한 성리학 개꼰대
본문의 김조순은 세도정치를 연 바로 그사람이다
일할때는 읽지마라, 이건 가져간다.
반성문 쓰게 한 거에 앙심 품고, 안동 김씨 세도 정치 빌드업했다는게 정설(아님)
연애소설 봐서 문제다 (x) 일할 때 딴짓했고 그걸 임금한테 걸린게 문제다 ㅋㅋ
김조순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연 안동김씨의 시조격 인물이다. 세간의 평가가 어린 왕을 휘두르며 세도정치를 연 탐욕스러운 권신 이미지인 것과 달리, 의외로 현실 김조순 자체는 순조의 장인으로서 왕가의 권위를 유지하려고 애쓰며 본인 공적은 낮추고 겸손을 떨며 부정축재로 규탄된 적이 없어서 의외로 당대에는 청렴하거나 비리를 티가 안날 정도로만 조금만 하던 타입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당대에 세도정치가 열리게 된 것은 김조순 본인이 주요 업무를 앞서서 처리하던 성향 + 어린 순조의 소극적인 성향 + 조선 후기의 체제 등의 문제가 복합된 결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