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읽히는 스토리에 대한 잡담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72752086 (3막 구조 및 캐릭터 아크)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72803896 (아이디어를 3막 구조로 바꾸는 방법)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73029900 (캐릭터 소설에 관한 글)
위는 먼저 읽으면 좋은 글
사실 나 따위가 작법글을 이 이상으로 쓰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다가
이런 글을 쓰는 게 남들 보라고 하는 것도 맞지만, 쓰면서 나도 내 생각이 정리가 되는 거라서
내 생각을 정리할 겸 한 편 더 씀
때문에 이번 글은 어떤 특정 텍스트에 의존하기 보다는, 내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씨부리는 거에 가까움.
꾸준히 읽히는 스토리라고 제목에 적었지만
이번에 얘기할 건 이야기의 주제에 관한 거임.
모든 이야기에는 주제가 있음.
문학사에 남을 만큼 거창하고 사색적인 주제 혹은 실천적인 주제도 있지만
진짜 별 거 없는 주제도 있음.
전자의 주제는 우리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볼 수 있는 것들이고
후자의 주제는 흔히 웹소설, 소년 만화, 라이트노벨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지.
(결론은 모든 이야기에는 주제가 있단 건데, 그 주제의 깊이는 작가의 본인의 사색의 깊이에 달린 거라서 스토리 메이킹이라는 테크닉적 측면에서는 딱히 말할 수 있는 게 없음)
우선 3막 구조를 간단히 짚고 넘어가야 할 거 같음.
예전에 3막 구조에 대해 쓰면서 내가 3막의 주제적 측면에서 의미는
1막 - 질문 제시
2막 - 질문 연기
3막 - 해답 제시
라고 했었음.
3막 구조라는 형식만 이야기에 적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야기의 주제도 질문의 형식으로 바꿔서 얘기할 수 있음.
(그리고 3막 구조는 매우 강력한 형식이어서, 어지간히 전위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면 거의 다 들어맞음)
스토리를 짤 때, 스토리 전체의 응집력을 강하게 하려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명확하면 좋고
반면에 서사보다는 캐릭터성을 강조한다고 치면, 에피소드 별로 그때그때 끌리는 주제를 쓰는 게 좋다는 게
내 경험상 아는 거임.
우선 '원피스'의 전체적인 주제를 보자.
3막의 형식으로 주제를 파악하자면
질문 제시 - 루피는 해적왕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질문 연기 - 루피가 동료를 모으는 과정, 원피스의 정체에 대한 설명, 이런 장애물 속에서도 루피가 꾸준히 해적왕을 꿈꾸는 모습
해답 제시 - (아직 완결이 나지 않은 이야기지만, 추측을 해보자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루피는 해적왕이 된다.
캐릭터의 행동 방식을 결정하는 건 물론이고, 독자들이 이 이야기를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이 '주제적 질문'의 해답을 보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님.
독자들이 30년 가까이 이 이야기를 계속 보는 이유가 '루피는 해적왕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보기 위해서임.
그럼 이야기의 전체 주제를 잘 잡으면 독자들을 계속 빠져들게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는데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를 보면 또 다름
하루히 시리즈를 보면서 이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본 사람 있음?
혹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 있을까?
하루히의 정체가 궁금하긴 하지.
하지만 그건 시리즈 전체의 주제적 질문이라기보다는, 하루히라는 개별 캐릭터의 속성에 가깝지 않음?
하루히 시리즈를 보면서 독자들이 기대하는 건
개별 에피소드에서 캐릭터들이 어떻게 해당 에피소드에서 맞닥뜨린 장애물들을 해결할 것인가, 이잖아.
개별 에피소드의 주제적 질문을 잘 잡고, 캐릭터들의 역동성을 통해 그 질문을 해결해가는 과정에
하루히 시리즈의 재미가 있는 거지.
(다른 예시를 가져오자면, '릭 앤 모티'를 보면서 시청자들이 재미를 느끼는 건 이야기 전체의 주제를 파악하는 거보다는 각각 에피소드의 이야기를 즐기는 거잖아)
대서사시인 원피스와 개별 에피소드가 중구난방으로 흩어진 하루히 시리즈를 가져다 비교를 했는데
아마 인기 있는 작품들은 적절히 전체 이야기와 개별 에피소드의 비중이 잘 조화가 된 작품일 거임.
(원피스도 사실 그런 밸런스가 좋은 작품이기도 하고.)
이 지점까지 내가 주저리주저리한 걸 들었으면
여러 깊은 질문이 들 수 있음.
스토리 메이킹의 시선에서 주제적 질문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전체 스토리 vs 개별 에피소드의 비중이라든지 등등등.
근데 내 수준에서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거 같아 글은 이만 줄임.
댓글이나 쪽지로 질문이나 의견 나누는 건 자유임.
근데 여기까지만 글을 쓰면 아쉬우니
하나의 주제 아래 여러 에피소드가 나열되는 형식의 이야기를 쓸 때
도움이 되는 툴을 하나 소개 할 까 함.
꽤 많이 읽혔던 작법서 중 하나라서 굳이 내가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싶긴 함
이 책에서 저자는 LOCK체계라고 부르는 자신의 작법/분석 툴을 소개하는데
Lead(주인공) Object(목표) Confrontation(대결) KO(완승)의 약자라서 LOCK이라고 한다고 함
내용은 간단함. 이야기의 뼈대를 4개의 문장으로 완성시키는 것임.
1. 주인공은 _____________ 이다.
2. 그의 목표는 _____________ 이다.
3. 그는 _____를 적대하는데 ______ 이기 때문이다.
4. ____________를 한다면 결말은 완승이다.
위에 예시로 가져온 원피스를 집어 넣으면
1. 주인공은 고무고무 능력을 가진 몽키 D 루피이다.
2. 그의 목표는 해적왕이 되는 것이다.
3. 그는 다른 해적/해군을 적대하는데 이들이 루피가 해적왕이 되는 걸 가로막기 때문이다.
4. 원피스를 손에 넣는다면 결말은 완승이다.
원피스의 기본적인 주제적 질문을 품고 있는 4개의 문장이 완성됨.
이 책의 저자는 단순히 LOCK 체계를 전체 얼개를 잡는 데에만 쓰지 않고 개별 에피소드를 짜는 데에도 사용하는데
LOCK체계를 살짝 꼬움.
LOCK체계의 주인공 설정 대신 장소에 대한 설명으로 바꾸고
완승은 이야기의 최종 결말에 나와야 하니, 에피소드의 마지막은 다음 에피소드로의 유도로 바꿈.
1. 장소
2. 목표
3. 대결
4. 유도
이렇게 되는 거지.
원피스 위대한 항로 초반부 에피소드를 가져온다면
장소 |
목표 |
대결 |
유도 |
알라바스타 |
비비를 구해서 여행에 필요한 자금 마련 |
크로커다일 |
크로커다일을 이기고 다음 섬으로 |
자야 |
하늘섬으로 올라가는 방법을 찾기 |
베라미 |
루피 일당의 목표를 비웃는 베라미를 깨부수고 하늘섬으로 |
하늘섬 |
하늘섬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기 |
에넬 |
에넬을 쓰러뜨리고 다시 청해 바다로 |
여튼 이렇게 에피소드를 나열하다 보면 끝에는 우리가 처음 LOCK체계를 통해 설계한 결말에 다다르게 될 것임.
마지막으로 내가 소개하는 작법툴을 맹신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음.
정석적인 이야기는 있을지언정 정답인 이야기는 없고
정답인 이야기가 없다는 건 정답인 작법론도 없다는 거임.
그냥 꾸준히 읽고, 분석하고, 쓰고, 그러면서 요령을 찾고 하는 게 최선일 거임.
남이 쓴 작법이론을 공부하는 건 남들의 요령을 내 글쓰기에 사용하려는 목적이지
그 사람이랑 똑같은 글을 쓰려는 건 아니잖아.
다음 작법론 소개글 소재가 떠오르면 다시 오겠음. 요즘 AI의 도움을 받는 창작을 공부 중인데, 그거 관련한 글을 쓸 수도 있음. ㅂㅂ
(와드 박으면 다음 글 쓰면 알려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