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
by 무랭
너무 세심했다. 내 성격은 딱 이 단어로 설명되었다. 세심하다는 것은 좋은 쪽으로 본다면 철저하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꿰뚫는다, 뭐 이딴 말들로 치장할 수 있겠지만…
과유불급. 지나치면 독이 된다. 세심함은 너무나도 철철 넘쳐 그 이상을 나아갈 수가 없었다.
대화를 할 때마다, 이 이야기를 하면 저 사람은 분명 상처 받겠지? 내 이야기를 하면 저 사람은 날 업신여길 거야, 그때 그 사건을 이야기하면 화를 내려나? 등등,
누구나 단순히 지나치는 짧은 그 상황을 내 머릿속에서는 전쟁이 치러지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 켠에 우두커니 방관하며 자리만 지키다보니 주위 사람들은 점점 멀어져 마지막은 외톨이 신세였다.
거래처와의 계약, 클래임 해결, 출장, 영업, 윗선과의 마찰, 후임 관리… 모든 것이 나에게는 지옥이었다. 이래야 할까? 저래야 할까? 이렇게 하면 이런 일이 터질 거야. 요렇게 하면 또 다른 일이 터질 거야.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냐고!
세심함은 나쁜 쪽으로 본다면 소심함이었다. 소심함. 우유부단. 너무나도 많은 것에 신경을 쓰다 보니 선택조차 할 수 없었다. 항상 수많은 갈림길과 그 결과가 상상됐다. 좋은 결과라도 떠오르면 그 쪽을 따르겠는데, 아쉽게도 모든 것이 실패와 패배뿐이었다.
연애도, 이런 내 모습에 질려버린 연인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길게 이어갈 수조차 없었다. 지금 저 손을 잡으면 화를 낼까? 부끄러워할까? 좋아할까? 아니, 고백부터 난관이었다. 내가 좋아한다고 한다면 받아줄까? 떠날까? 어색해질까? 어이없어 할까? 이런 나약한 모습을 보면서 좋아할 여성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어차피 여성은 강한 남성에게 끌리기 마련이니까. 그래, 뭔가 잘 못 됐어. 시작부터 난 잘 못 된 거야.
세심함. 이건 치장이었다. 그래, 이 세심함이란 말조차도 치장이었어. 넌 소심 한 거야. 그것도 중증으로… 나는 왜 이렇게 설계되어 태어났을까? 정말 신이 있다면, 따지고 싶었다. 왜 저에게 이런 고통을 주셨나요? 왜 이렇게 만들어졌나요? 그냥, 남들처럼 무뚝뚝하게 지나칠 수 있고, 남들처럼 앞뒤 안보고 돌진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고 싶었어요!
정치인이 부러웠다. 그 철면피가 탐났다. 수십억을 해쳐먹어도 당당히 고개를 쭈뻣 들며 걸어가는 그 모습이 부러웠다. 영화 속 주인공이 부러웠다. 문제가 발생하면 다 때려 부수고 보는 그들이 부러웠다. 개그맨이 부러웠다. 온갖 뻘쭘한 짓을 다 하고도 그것을 반복, 또 반복하며 웃음을 주는 그들이 부러웠다.
40년의 인생이 이렇게 괴롭게 흘렀다. 남은 것이라고는 얼마 안 되는 퇴직금과 좁은 방 한켠이 전부였다. 가족은 형성조차 못했다. 친구라고는 카톡으로 몇 마디 나누는, 만나보지도 못 한 두 사람 정도였다.
“천국? 그래, 가서 따지자! 난 왜 이렇게 설계된 것인지, 대들어보자!”
종교 따위는 믿지도 않았지만- 이런 성격에 종교의 그 비현실적인 논리가 들어오겠는가- 천국이 있다면, 설령 만에 하나 있다면 모든 원망을 쏟아 부어 보자. 혹시 아나? 불쌍하다고 거둬줄지.
어차피 내 죽음을 슬퍼할 사람도 없다. 우두커니 서서 천장에 달린 밧줄을 바라봤다. 머릿속에서는 그래선 안 된다고 난리였지만, 소용없었다. 목이 밧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의식이 흐려져 갔다.
***
“안녕하세요. 사망자 관리 시스템입니다.”
끝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내 육신은 정지했지만 의식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음료수를 쪽 빨아들이는 빨대의 흡입력처럼 순식간에 끌려 들어간 내 의식은 거대한 홀, 광장과 흡사한 웅장한 장소에서 계속 활동이 되어갔다.
“허 진웅씨, 맞으시죠?”
외국 배우 같이 이질적으로 생긴 남자가 하얀 테이블 뒤편에 앉아 나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여유 있는 미소와 함께 두 다리를 쭉 뻗고 있었다.
“네? 아, 네.”
염병할, 죽어서도 이 성격은 그대로다. 한번 확인하고 그 이후에 확답을 하고. 빌어먹을!
“음, 지금 검토를 마쳤습니다. 많은 원망이 있으셨군요. ■■이시네요.”
“…네.”
“이런, 어쩌죠? ■■은 죄악입니다. 본인도 잘 아시죠?”
죄악. 그래, 죄악. 난 내 스스로 육신을 파괴시킨 거니까. 신이 준 고맙고도 소중한 몸뚱아리를 내 맘대로 박살낸 거니까. 하지만, 이렇게 된 이유는 다 너희들 때문이야, 너희들이 이 따위로 설계를 했기에 내가 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거야! 제대로 된 인간관계조차 가지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피말리며 살아갔다고! 이건 다 너희들 때문이야! 염병할, 이런 몸을 주셔서 정말 감사하네요!
“워워, 진정하세요. 너무 화내지 마십시오. 하하, 다 들립니다.”
테이블 뒤편의 남자는 두 손바닥을 나에게 보이며 천천히 흔들어댔다.
“당신의 원망은 잘 알겠습니다. 사실, 당신은 윤회 대상입니다. 죄를 물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윤회? 제가 다시 태어난다는 겁니까?”
“그렇죠.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테이블의 남자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또한, 당신이 원하는 스타일로 맞춰드릴 겁니다.”
“스타일이요?”
“재산 배경이나 권력 배경은 맞춰드리지는 못하지만, 성격은 바꾸실 수 있습니다.”
성격? 성격을 바꿀 수 있다고?
“네, 그렇습니다. 마음 같아선 물질적인 배경도 원하는 대로 맞춰드리고는 싶지만, 재벌가 후손의 경쟁이 너무 쎄서. 다 들어주다가는 재벌 외에는 애를 못 낳아요. 하하!”
남자는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누구를 해코지 한 적도 없고, 재산을 강탈한 일도 없는 당신이 그런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 매우 딱했습니다. 원래, 당신과 같은 성격은 예술이나 과학을 위해 설계된 성격입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생각지 못한 것을 끊임없이 파고들고 표현해 내는데 탁월한 거죠. 그런 분이 세일즈 업에 종사하니 견뎌내지 못한 겁니다. 그 고통, 충분히 이해합니다.”
남자는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 그런 고통을 이해하기에 당신의 죄를 묻지 않고, 다시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원하는 바를 말하세요!”
남자의 얼굴과 마주보았다. 원하는 것은 단 하나다. 그토록 원했던 단 한 가지!
“소심한 것은 질렸어요. 전 대범해지고 싶어요!”
“대범?”
“네! 다시는 전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무조건 반대로 해주세요!”
남자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어깨를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알겠습니다. 당신의 소원은 이루어졌습니다.”
남자의 미소를 보던 와중, 의식이 흐려졌다. 원하는 자로 다시 태어나는 것인가… 기쁨을 느끼며, 전등 스위치를 끊은 것처럼, 의식은 갑작스레 꺼졌다.
***
너무 무감각했다. 내 성격은 딱 이 단어로 설명되었다. 무감각하다는 것은 좋은 쪽으로 본다면 주관이 뚜렷하다, 남자답다, 뭐 이딴 말들로 치장할 수 있겠지만…
과유불급. 지나치면 독이 된다. 뚝심은 너무나도 철철 넘쳐 다른 것들이 침범할 수가 없었다.
대화를 할 때마다, 이 이야기는 재미있어, 그것이 저 사람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도. 남들이 뭐라 하던, 뭔 상관이야? 즐겁기만 하면 되는 거야.
남들은 하나하나 신경 쓰는 그런 상황을 내 머리는 판단하지 못했다. 눈치 없다, 버릇없다, 건방지다, 싸가지 없는 자식, 뒤에서 수근 대는 별의별 소리 속에서도 멘탈에 기스하나 나지 않았다. 당연히 주위 사람들은 하나하나 멀어져갔다. 그저 구색 맞춤, 아부와 비위를 겸비한 자들만이 간간이 곁에 있어주다 뒤통수를 후려칠 뿐, 마지막은 외톨이 신세였다. 뭐 어때, 어차피 인생은 외톨이 아닌가? 공수래공수거!
거래처와의 계약, 클래임 해결, 출장, 영업, 윗선과의 마찰, 후임 관리… 모든 것이 나에게는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이건 네가 해. 저건 네가 해. 불량? 그건 아래 업체에게 넘겨. 판매 부진? 그냥 다 쓸어 넘겨. 알아서 사는 거야. 세상은 강자만이 살아남는 거야, 하하!
무감각은 나쁜 쪽으로 본다면… 음, 글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선택의 순간은 단호하다. 이미 답은 정해져있다. 실패란 없다. 내 판단은 항상 옳다. 수많은 갈림길과 예상은 소용없다. 의미 없는 것이다.
연애도, 속전속결이다. 그저 명품 몇 개에 외제차 하나면 다들 녹아난다. 거짓말 좀 바르고 입만 잘 놀리면 그냥 자빠진다. 후에 싸대기를 맞던, 물잔을 뿌리던, 그때만 잘 넘기면 깨끗하다. 이쁜 걸 어떡해. 난 남자인데. 덤벼들고 봐야지?
사업 다 말아먹고 빚에 허덕이자 그때서야 멘탈에 대못이 꽂혔다. 무감각, 그래, 인정하자. 넌 철면피였어. 주위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 친구도, 동료도, 가족도, 아무 것도 남지 않았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조금만 의견을 수용했다면, 조금만 배려했다면 이런 비참한 말년은 아니었을 텐데…
***
“안녕하세요. 사망자 관리 시스템입니다.”
이국적인 남자의 구구절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래서, 제가 다시 산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또한, 당신이 원하는 스타일로 맞춰드릴 겁니다.”
“스타일이요?”
“재산 배경이나 권력 배경은 맞춰드리지는 못하지만, 성격은 바꾸실 수 있습니다.”
성격? 성격을 바꿀 수 있다고?
성격을 왜 바꿔?
“그냥 갑시다.”
end.
좋네요 이거! 인생 삼수 군요! 느힣
윤회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