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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공부를 해야 한다.
우리 때는 학교가 없어서 천막을 치고 공부했다.
머리위에서 포탄이 날아다녀도 우리는 꿋꿋이 공부했다.
공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한다.
우리 학교에 새로 취임한 교장선생님의 말씀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교장 선생님은 아무리 좋게 봐도 5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포탄이 날아디던 시절은 한 60년쯤 전이었을 텐데, 대체 그때 뭐하고 계셨던 걸까?
엄마 뱃속에 있엇던 시간까지 챙겨도, 그 시간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을텐데.
어찌되었건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냥 학생인게 죄지.
비좀 온다고 학교를 빠질 수는 없지, 학생이라면 당연히 공부해야한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내가 한 말이 아니다.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학교 선생님들의 흔한 말씀이다.
문제는 이게 좀 온다는 비 정도가 아닐 것 같다는 것이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우산을 펼쳤다. 학교는 검은 아스팔트길 너머에 있었다.
보도까지 찰랑이는 빗물을 보니 욕이 절로 나온다.
분명 버스를 탈 때까지만해도 그냥 평소보다 많다는 정도였는데, 버스가 달릴 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지금은 아예 커다란 양동이로 내 머리 바로위에서 물을 퍼부어대는 기분이다.
나는 멍한 눈으로 깜빡거리는 초록색 신호등을 바라보았다. 차도는 이미 물로 일렁이고 있었다.
그래, 물이 이랑을 만들면서 출렁이고 있었다.
물 아래로 언듯언듯 차도에 그려진 횡단보도의 하얀색 줄무늬가 보인다.
이걸 건너야 하나, 말아야 하나.
차마 저 찰랑이는 물속에 발을 들이밀고 싶지 않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물속에 발을 들이밀었다. 예상대로 차가우면서도 끈쩍끈적한 감촉이 발에 전해진다.
저 멀리 드넓은 학교 운동장이 보인다. 그곳역시 싯누런 황토물로 출렁이고 있었다.
습한 흙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비만 오면 우리학교 이렇게 난리나는 거, 왜 이러는지 아냐?"
진수가 한 말이 떠오른다. 내 옆자리에 앉던 녀석은 뾰루지로 바글바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 우리 학교 근처에 커다란 개울이 있었대. 집 짓겠다고 공구리쳐버린 거지."
왠지 믿기지가 않는다. 곳곳에 아파트며 상가가 가득한데, 어떻게 이 아래에 개울이 흐른단 말인가.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다들 땅값 떨어진다고 말을 안해서 그렇지 이지역이 유난맞게 습기가 많단다."
그게 뭐 어쨌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이렇게 흙탕물을 헤치며 횡단보도를 걷고 있자니 새삼 이게 다 개울 복개 공사때문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로 모자라, 땅속에 웅크리고 있던 개울까지 솟구친게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렇지 않고서 이 많은 물이 어디서 왔겠어.
나는 투덜거리면서 보도블럭위로 올라섰다.
출렁. 발목 언저리에서 동심원이 그려진다. 빗방울 때문인가? 빗방울 치고는 파동이 좀 큰데?
나는 고개를 젓고는 교문을 향해 걸어갔다.
교문에 들어서려는 순간, 검은색 물줄기가 학교 운동장을 횡단하는 것이 보였다.
뭐지, 저거?
꼭 커다란 잉크병을 엎지른 것 같았다.
"기름이라도 새나?"
그런데 여기 근처에 주유소같은 게 있었나? 그럴 리가 없다.
다만, 다만...나는 고개를 돌렸다.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폐공장이 하나 있다.
문을 닫은지 오래된 곳이었다.
같은 반 녀석들이, 가끔씩 그곳에서 울음소리와 함께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며, 귀신이 나온다고 낄낄대던 곳이었다.
혹시 그곳에서 기름이 새는 걸까? 그렇다고 해도 꽤 거리가 있을텐데. 여기까지 기름이 밀려온다라.
어쩐지 기분이 나쁘다.
똑똑. 우산 살대 끝에서 빗방울이 듣었다.
일렬로 늘어서 있던 검은 색 물결이 흐려지고 있었다. 이제는 꽤 흐려져, 거진 지워져 있었다.
아마도 비가 내리면서 희석된 모양이다.
뭐 괜찮겠지. 나는 슬리퍼를 끌며 운동장 한 가운데로 걸어들어갔다.
저벅저벅.
왠지 물소리가 찰랑이는 경쾌한 소리가 아니라, 질퍽하고 무거운 소리로 들린다.
지익, 직.
발을 끄는 듯한 소리가 난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소리가 끊겼다. 아, 아무것도 아닌가보다. 그냥 내 걸음소리인가.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운동장 가운데쯤 오자, 잠시 소강상태였던 비가 다시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파박, 파박, 파박. 비가 우산을 때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양동이를 머리에 쓴 기분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가 소리에 둔감해진 것은.
파바박! 물살을 헤치고, "그것"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채찍처럼 생긴 뭔가가 나를 후려쳤다.
나는 철퍼덕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화끈거리는 통증이 얼굴 왼편 전체에 전해졌다.
나는 뺨을 쓸어보았다.
붉은 피와 함께 부드러운 뭔가가 손에 쓸려나왔다.
그리고, 입안 전체에 냉기가 밀려들어왔다.
"우어야?"
발음이 샜다.
나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러자 붉은 피가 왈칵 얼굴에서 쏟아져내렸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내 주위로 몰려드는 검은색 기름띠를.
아, 이건 기름띠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었다.
그 폐공장...예전에 무슨 화학 공장이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니, 무슨 농업 연구소였던가....
농업 연구소...
거기에 뭔가 있었던 것 같아...
아니, 아닐지도 모르지.
그냥 어쩌다가 생겨난 것일지도...
개울을 복개했다니까. 예전부터 살고 있던 뭔가가 드디어 기어나온 걸지도.
어차피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순간, 기름띠가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수천개의 뾰족한 침을 가진, 거대한 채찍.
그것이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웬장."
이제 과제 걱정은 없겠군. 아, 책상 두번째 서랍에 USB를 넣어뒀었는데.
그건 발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니동영상을 좀 받아뒀었는데.
그게 내 마지막 생각이었다.
어둠...깊은 어둠이 곧바로 밀려왔다.
"철썩."
그리고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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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수정했습니다.^^
분명 브금이 빗소리일텐데 고기굽는소리로 들려..
분명 브금이 빗소리일텐데 고기굽는소리로 들려..
http://bgmstore.net/view/22V16 이쪽 브금이 더 ㄱㅊ지 않을까용
네, 브금 바꿨어요.ㅎㅎ..;;
기름띠 하니까 예전에 봤던 스티븐 킹의 단편이 생각나는군요
브금이 귀에거슬려 글이 잘들어오지 않는군요
막판 USB얘기에서 소오름 실화인가했네
2편이 기대됩니다...오늘 같은 날 적절한 자작 소설이네요...(집중호우에 침수된 운동장에서 벌어진 일이라니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