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지인의 작품을 허락받고 올리는 겁니다. 본래 장편의 프롤로그였다는데, 좀 쓰다가 더 안 쓰네요....
========================
"마스터."
"늘 마시던 걸로?"
"마시던 걸로."
암호와 수수께끼로 이루어진 것 같은, 언어의 나열에 생략이란 기법을 삽입하는 걸로 신비감과 주목을 끌어모으는 말들이 오간다. 극단이었다면 훌륭한 배우가 됬겠지만, 이곳은 바(bar)고, 야심한 밤의 지친 어깨를 늘어뜨리기 위한 휴식처에 지나지 않는다.
마스터의 손놀림이 맹수마냥 호쾌해지고, 귀족집 규수처럼 조용해지면서 빈 삼각잔을 채운다. 여인의 입술 같은 분홍빛 칵테일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조용한 봄날의 바다처럼 파랑을 일으키는 그 술에 그의 얼굴이 담겼다.
젊고, 패기 있는, 과거의 모습이.
"늘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네만, 프레데릭 교수."
"흐음?"
교수라 불리기엔 지나치게 젊은 얼굴의 교수는 들어올린 칵테일 잔을 멈추고 고개를 까딱였다. 무슨 뜻이냐고 묻는 듯한 능청스러운 얼굴이 뛰어나온다. 그는 그 질문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올해 68세의 프레데릭 교수는 오벤초 대학의 생물학과 교수를 맡고 있다.
이 예술의 도시, 꽃의 도시에 대학 교수라는 이름이 그렇게 희귀한 것은 아니고, 그가 그들 중에서도 이름을 날릴만큼 유명한 것 또한 아니다. 본인도 자신의 유명세에는 별로 관심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2년 전.
프레데릭 교수가 사는 이 도시, 문화의 수도엔 음흉한 소문이 흘렀다.
"프레데릭 교수가 각고의 개발 끝에 젊음을 되찾는 약을 만들었다."
우스운 이야기였다. 이 도시는 문화의 도시, 예술의 도시라는 이름 말고도 마학(魔學)의 도시라는 이름도 갖고 있었다. 그 탓에 과거에 존재했다고 하는 연금술사의 꿈이 시공을 초월해 이루어졌다는 소문을 허투루 넘길 수 없었겠지만 마학이란 건 결국엔 어린애들의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젊은날의 혈기에 홀릴 순 있어도 시간에 희석 되어가리라. 다만, 그것도 실례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프레데릭 교수는 젊어졌다.
그 옛날의 희곡가 [기뤼]가 와서 이 남자를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하라 한들, 그런 말 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서술능력과 관찰능력이 필요한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프레데릭 교수는 젊어졌다는 사실과, 그 이상도 이하도 없는 표현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새하얗게 쇠한 하얀 머리카락은 이미 탄력을 가진 잿빛으로 돌아왔고 68이란 숫자 동안 태양 주위를 지구가 돌 시기에, 얼굴에 새겨진 연륜은 마법의 지우개가 지워버렸다.
시공을 뛰어넘은 외모는 프레데릭 교수에게 명성과 돈을 쥐어주었으며, 노인의 처져 있던 어깨가 청년의 혈기로 다부지게 펴졌다.
마스터는 잔을 닦으며 말했다.
"젊어지는 약은 도대체 어떻게 만든 것이오? 집의 암말 같은 아내는 교수의 소문을 들을 적마다 내 잠자리를 탓하지. 도무지 들어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소."
"그렇게 말한들 모르는 건 어쩔 수 없소이다. 자고 일어나니 이렇게 됬는데, 별 수가 있겠소?"
마스터는 피식 웃으며 선반에 잔을 옮겼다.
늘 이런 식이었다. 교수는 배우로서는 매우 저질스런, 항상 일관된 대답을 고수했다. 악마도 신도 없다고 주장하며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을 교수도 이것에 있어선 신이나 악마의 조화라고 말하곤 한다. 실제로 교수의 서재나 그 어떠한 곳을 찾아봐도 젊어지는 약에 대한 정보와 출처는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었다. 본인 스스로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것이 우연에 의한 축복이었든, 아니면 필연에 의한 저주였든 프레데릭 교수는 항상 기분이 좋았다. 늙어버린 몸에서 생기를 되찾은 뒤로는 저런 반응과 언질은 항상 그를 기분좋게 해주는 촉매제 같은 것이었다.
달그락.
교수가 잔을 비우고 내려놓자 옆에 한 남자가 앉았다.
"오랜 여행 끝에 지쳐버린 어깨를 마주할 친구를 얻고자 하네. 잠시 말벗이 되어 주지 않겠는가?"
교수는 천천히 눈을 들었다.
비가 오는지 전신을 적신 우비를 한팔에 걸고 한손으론 갈색 머리칼을 단정하게 넘겨올린다. 악마 같은 남자였다. 미색이 출중한 것도 특별한 것도 없는데 교수는 그렇게 느꼈다. 그런 감정을 운명처럼 느끼며 교수는 살며시 웃었다.
"상관 없네, 친구."
그 대답에 남자는 웃었다.
남자의 웃음이 조금 비틀려 보인다는 생각을, 교수는 가볍게 무시했다.
아마도 저 자연스러운 하대 탓일 것이다. 하지만 교수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젊어지기 전의 노쇠한 육신이 자랑할 것은 하릴 없이 먹은 나이 갯수와 교수라는 위치가 주는 권위 밖에 없었던 그는 젊어지고 생명을 되찾으면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그에게 있어 아주 좋은 변화였고, 또 필요한 변화였다.
하물며 여행자라면야.
교수는 옛날에 잊어버린 줄 알았던 하대의 분노를 새삼스럽게 여기며 물었다.
"자네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라...."
가볍게 시작한 질문에 남자는 무겁고 둔하게 대답했다. 말꼬리를 흐리는 것은 필력 없는 작가와 유능한 배우를 갈라놓는 극점이지만, 그는 단연코 후자일 것 같았다.
"최근에는 던런에 있었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과거의 명소는 아름답기 그지 없었어."
"던런이라. 좋은 곳이지. 나도 예전에 잠시 들려본 적이 있다네. 성당과, 특히나 여자가 이뻤어. 음식 맛은... 뭐 말할 것도 없겠지."
"그건 편견이로군. 잘하는 곳은 다른 나라의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맛있네."
"호오. 그곳은 도대체 어디인가?"
"라인거리에 있는 '양' 간판의 펍이지."
"이런! 술집 아닌가. 술집의 안주야 어느 나라나 훌륭한 것이지. 어떠한 맛도 술맛을 이길 수가 없으니 말이야. 어떠한 산해진미도 술 앞에선 무력해지고 색이 바래지 않나."
"훌륭한 말이야. 술 한방울에 산해진미는 의기소침해지지. 하지만 정말 맛있는 곳이야. 자부할 수 있네."
"그거 기대되는 걸!"
둘은 금세 친해졌다. 마음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연장자의 권위를 손상시켰던 남자를 꺼리는 마음은, 이미 교수에겐 없었다.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다. 이 도시에서 교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고, 당연히 마술과 젊음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이렇게까지 평범하게 대화를 나눠본 기억은 벌써 뇌리의 저편에서 삭아문드러지던 참이었다.
비가 온다는 사실을 그의 우비 덕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교수는 불현듯 고개들 들었다. 반지하의 창문에서 거칠게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에 오늘은 집에 돌아가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거 참. 교수. 지금 당장 집에 다녀와야 할 것 같소. 비 때문에 집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잠시 맡겨도 괜찮겠소?"
마스터가 안절부절해하며 말한다. 교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장소는 지친자들이 어깨를 늘어뜨리는 곳. 그 또한 지금이나 옛날이나 어깨를 맡겨왔던 곳이다. 집도 멀지 않으니 잠시간이라면 어려울 건 없었다.
꼬리에 불씨가 붙은 망아지마냥 가게 밖으로 뛰쳐나가는 그를 보며 교수가 말했다.
"후후후, 이래서 가족이 있는 것들이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가족은 좋은 것이야. 필요한거지."
단호한 남자의 대답에 교수의 눈이 찡그러졌다.
"으음. 마음이 맞는 친구에게도 딱 하나 아닌 것이 있었군. 난 가족이란 짐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네. 사과나무에 열린 사과를, 나무는 정녕 기쁘게 여기고 있을 것인가? 그것은 거머리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네. 아무리 자신의 피를 이었다고 한들 그것은 말뿐이야. 사람을 갈라보면, 사람뿐만 아니라 한낱 들짐승도 까보면 붉은 피가 흐른다네. 결국 피는 다 같아. 그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건 그저 두뇌를 가진 가엾은 인간 뿐."
교수는 칵테일을 들이켰다. 남자를 향한 호의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말을 꺼내면서 자신의 가슴을 스스로 후벼파고 있었다.
"즐거운 이야기나 하세. 스쳐지나가는 인연, 그렇다면 즐거운게 좋지 않겠나."
"....그런가. 하지만 의외라는 말이 하고 싶군."
"의외?"
"생물학 교수인 그대가 모든 피가 다 같다고 말하니 말이야."
술은 마시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던 어느 양조장주의 말이 떠오른다. 교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고, 고단한 하루를 잊기에 술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 만병통치를 주장하는 세일즈맨의 어수룩한 언변도 술기운이 섞이면 그만한 웅변도 없다.
하지만 지금 교수의 머리에서 취기는 한달음에 날아가버렸다.
"자네는....누군가? 정부에서 보낸 자객인가?"
"자객? 그저 객일세. 평범하진... 않지만."
"날 노리고 온 것이군?"
분노를 담아 교수는 말했다. 남자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글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옳다고도 할 수 없어. 이해하려 들진 말게. 사람은 항상 생각하는 존재지만 결코 그 생각이 입 밖에서 완전해지는 일은 존재하지 않거든."
"젊어지는 약의 제조법은 나도 모르네. 그건 어디까지나 우연이었어!"
"알고 있어. 우연일테지. 하지만 젊어지는 방법조차 모르는 건 아니리라 생각하네. 아, 물을 필요도 없어."
그의 손가락이 교수의 왼쪽 안주머니를 찔렀다. 그 가늘은 손가락은 군인의 냄새도, 스포츠 선수의 냄새도 나지 않았건만 날카롭게 벼려진 나이프처럼 교수의 가슴을 관통했다.
싸늘하게 식어 진정된 심장을 움켜쥐고 교수가 벌떡 일어섰다.
"자네는..... 자네는 대체....!"
"그것을 아는 사람."
교수는 홀린 것처럼 품 안에서 [그것]을 꺼냈다. [그것]은 매우 작은 도자기병이었다. 와인의 향기를 시간에 담그기 위해 존재하는 코르크 마개가 도자기병을 막고 있지만 형태 자체는 귀엽고 아담한 향수병이다.
그의 심장박동처럼 찰랑이는 눈물 같은 액체가 향수병 안에서 웃고 있었다.
"이걸, 이걸 가져갈 셈인가!? 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가려고 왔는가!!"
"빼앗는게 아니야. 그대는 이미 모든 것을 손에 넣었지. 그대는 충분히 즐거운 삶을 살았어."
그 말이 마치 사형선고처럼 들려왔다.
쇠약했던 그 시절의 자신이 돌아오는 듯한 말에 교수는 고개를 세차게 도리질 쳤다.
"노, 노옴! 그대는 악마구나! 그래서 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가려는 것이야!!!"
"착각하면 곤란해. 난 당신을 죽일 생각은 한치도 없어. 단지 그걸 돌려 받을 뿐이야."
"안된다, 안돼! 이건 나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다! 이것만 있으면 부와 명예쯤은.... 여자 따윈 썩어넘칠만큼 들어와!"
"....."
남자는 침묵했다. 교수처럼 거창한 말투를 구사하는 건 아니었어도 적당히 수다스러운, 적당히라는 가장 애매하고도 완벽한 단어를 몸소 실천하던 그는 그 계율을 깨뜨리고 침묵을 지켰다.
그의 손이 우비 사이로 파고 들었다. 젖은 옷감을 헤치고 들어간 손이 꺼내든 건 한뭉치의 신문.
빗방울에 누덕누덕해지고, 구겨넣어 문자열조차 엉망이지만 그가 보여주는 헤드라인은 교수의 눈동자에 정확하게 보였다.
"이 도시의 여성들을 간살한 사건.... 그대가 저질렀나?"
20대 여성을 표적으로 한 연쇄살인.
경찰들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녀도 결코 잡지 못했다. 생물학 교수로서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탓이었다. 아무리 경찰들이 유능해도 피와 혈액, 인간학에 관해서만큼은 프레데릭 교수를 따라가진 못 한다.
"하, 핫! 그래! 내가 죽였다!! 뭐가 나쁘지? 그들이 원한 건 꽃다운 시절이야! 내가 아니다! 아내란 것도 그래. 악마여, 그대라면 알지 않는가!? 능력이 있다며, 당신이 좋다며 꼬리치지만 늙어버리면 다른 젊은 놈들로 갈아타는 것들이 여자다! 아들놈도 매한가지다. 여자나 만나면서 아비의 등골을 빨아먹는 거머리에 불과해!!!"
"가족을 증오하는 건 그 때문인가...."
"물론이다! 그게 꼴보기 싫어서 이혼했었다. 하지만 젊음을 되찾자마자 당신을 믿었다며 찾아와 그 역겨운 목소리를 흘린다! 그래서 죽였다! 아들도, 아내도! 나에게 추파를 보내던 악마들을 전부!!"
광기는 사람을 매료시킨다. 본인이 발한 광기에 스스로가 취한 교수는 지금 새로운 술을 마신 기분이었다. 천하에 존재하는 어떠한 명주가 사람의 응어리를 이렇게 풀어놓을 것인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욕망과 증오의 화신을 토해내는 것으로 교수의 가슴은 한껏 가라앉았다.
두려움도 사라졌다.
그 또한 이 예술과 문화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자신이 한 행동이 법에 저촉되는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것은 자신히 해왔던 죄과의 살아있는 증거가 되어 그 자신을 옥죌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몇번이고 해왔다.
사람의 목숨 따윈 굉장히 무르다는 것을.
아들을 죽였을 때처럼, 남자도 여자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난."
가슴 안의 흉기가 숨을 죽였다.
남자의 목소리는 그렇게 선수를 취하고 이어졌다.
"그대가 나쁘다곤 말하지 않아. 겨우 열. 겨우 열이다. 신화에서 이르길, 사람은 던지는 돌에서 태어났던 존재다. 그만큼 흔하고, 가벼운 것이지. 아이도 한손에 들 수 있을만큼."
품 안으로 파고 든 손길이 무뎌진다. 떨리는 목소리의 교수는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되물었다. 그것은 자신이 받은 면죄부가 진실된 것인지 묻는 확인작업 같은 것이었다.
"나를, 이해하는 것인가...?"
"그럴지도. 하지만 내가 해야 할 것은 달라지지 않아."
남자의 손이 그에게 향했다.
"젊어지는 약을 돌려다오. 그대는 이미 효력을 봤어."
"으, 으으.... 악마야, 이건 안된다. 이건 안된단 말이다. 나에겐, 나에겐....!"
"이미 젊어졌으면서 무엇을 또 바라는거지?"
"그렇다해도... 이건 나에게 또 다른 생을 줄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는 말을 아꼈다. 아끼고 아낀 목소리를 꺼낼 순간을 위해 그는 호흡을 골랐다.
"강제로 빼앗겠다."
단호한 말은 칼처럼 교수의 몸을 갈랐다. 죽었다. 이성의 생명은 죽어버리고 광기와 본능, 욕망에 충실한 내면의 악마가 튀어나와 가슴팍의 도자기병을 꺼냈다. 그리고 교수는 지체없이 그것을 입 안에 털어넣었다.
남자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이, 이 무슨!"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제 어떡할거냐! 악마여, 내 배를 가를테냐? 하지만 그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짓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교수는 품 안에서 망치를 꺼내들었다.
"그대는 나에게 죽는다!"
프레데릭 교수가 뛰어들었다. 멀리서 있을 땐 몰랐지만 가까이서 느껴지는 찰나의 영원은 남자의 모습을 꽤 크게 보여주었다. 마치 난쟁이가 거인국에서 거인들을 볼 때의 경외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교수는 멈추지 않았다. 광기에 휩쓸려 자신을 잃어버린 그에게 남은 것은,
떨그렁.
아무 것도 없었다.
"어....?"
망치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자신이 낸 소리에 프레데릭 교수는 반사적으로 목을 감싸쥐었다. 감싸쥔 감촉이 달랐다. 이것은 인간의 피부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당연했다. 인간의 피부가 아닌 옷소매의 옷감이었다.
"이게, 어떻게...."
커보인 것 같았던 남자는 지금에 와선 매우 커다랬다. 자신보다 다섯배는 될법한 남자의 크기에 교수는 목소리조차 잘 나오지 않았다.
마치 시간을 되감은 것처럼 교수의 몸은 옷 안에서 쭈그러들고 있었다.
되감기고, 되감기고, 되감기고.
고장난 태엽시계를 몇번이나 되감은 것인지 교수의 몸은 계속해서 자그맣게 변해갔다.
청년.
소년.
아이.
신생아.
그리고 두개의 단백질 조각.
남자는 그가 떨어뜨린 도자기병을 주머니에 챙겨넣었다.
"결국 이번에도...."
옷 밖에 남지 않은 그의 자취를, 남자는 손을 휘둘러 불태워버렸다. 마학에 심취한 학자나 꼬맹이들이 봤다면 눈이 휘둥그레질 기사(奇事)건만 남자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본디 그런 것이다. 자신에게 익숙하고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일 수록, 세상은 쥐어준다.
끼익!
문이 열리며 마스터가 들어왔다. 소나기를 흠뻑 맞은 그가 개마냥 몸을 흔들어 빗물을 털어냈다.
"이런 속도면 강이 범람하겠어. 음. 자네, 여기 있던 분은?"
마스터의 물음에 남자는 조그맣게 대답했다.
"돌아가셨소."
"그런가... 원래 그런 분이지. 그래도 나쁜 분은 아니야. 젊었을 때나 예전이나 참 따뜻한 분이거든. 아내와 이혼한 뒤로는 자신의 재산을 고아들에게 기부하면서까지 말이야."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글이 뭐랄까... 굉장히 고급스럽게 적으신 것 같아요^^ 잘 읽고 갑니다^^
지인이 글을 재밋게 쓰시네요. 젊음의 약을 가져간 남자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전개입니다.
글이 뭐랄까... 굉장히 고급스럽게 적으신 것 같아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