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우연히 고흥 지역인의 블로그를 한번 읽어보고 전하는 이야기라, 정확하겐 전달하기엔
어려움이 있어서, 생각나는대로 써봅니다...
일제시대때 전라도 10대 부자에 고흥 출신의 김정태씨가 있었습니다, 2만석지기 지주였다고 하네요.
어릴때 고흥 살아본적 있어서, 고흥 그 좁은 반도 땅에 2만석 지기 땅부자가 살수있나? 의아했는데..
아마 영광 군수도 하고 그래서 여기 저기 땅이 있었던걸로 추측해 봅니다..
김정태씨는 고흥 출신이라 일제시대때 공무원 생활을 거기서 하고있었고, 군수되니까, 타지역으로 가게됐는데,
이것도 고흥 유지들이 김정태씨 집안이 대대로 하급관리 출신이었다고 존중도 안하니까, 영광으로 일부러
갔다고 하더군요. 유지들은 양반가의 자식들이라 자존심이 꾀 내세웠나봅니다..
여하튼, 고흥에는 옛날 군청 건물 뒷쪽으로 쭉 올라가면 무슨 공원이 있는데, 이분의 반신 동상이 있고,
최근에는 친일 인사라고 이 동상도 철거 예정이 됐다고 합니다. 원래는 전신상이었는데, 일제시대때 공출로
동상의 절반을 보내서, 지금은 상반신만 있는 좀 기묘한 모습을 볼수있죠..
이분 얘기중에, 옛날 이야기 같은 이야기가 있는데, 조상묘 풍수에 대한 이야기와 거기서 비롯된 자식들의
운명에 관한겁니다.
고흥 시장쪽에 유명한 지관이 여인숙에 묵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김정태씨는 밤에 돈 보따리를 들고 그 지관
을 만나서, 좋은 자리가 없냐고 물었는데, 고흥쪽에는 딱 한군데가 있는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묘를 쓰면 자식 두명이 벙어리가 되거나 귀머거리가 되는 자리긴 하는데, 당대에 부자되는 자리라고
소개하니까, 그정도면 문제 될것 없다고 돈 보따리를 지관에게 주니까, 지관은 낮에 이장하면 이목이 집중되니까,
밤에 묘를 이장하라고해서, 그말대로 김정태씨 조상의 묘를 밤에 쓰게 됩니다.. 고흥 동교 뒷산이 제당산인데,
이산의 서쪽은 경주 이씨의 문중땅이고, 동쪽이 아마 김해 김씨의 문중 땅이라 가능했던 일 같은데요. 김정태씨도
김해 김씨인것 같습니다..
하급 관리때에 김정태씨가 돈을 모았던 방법은, 고종때는 동학도들이 반란을 일으키다 잡히면, 일본측에서 총살하
라고 명령이 내려졌는데, 원체 고향 사람들에게 인심을 잃기 싫었던 김정태씨는 돼지피나 염소피를 어디에 싸서 준비해
놓고, 총을 쏘면 그 피 주머니를 터트려 쓰러지라고 미리 계획을 짜놓고, 그후 그 동학도들과 가족들 전체가 도망을
가게 만들고, 댓가로 재산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외에도 일제시대땐 토지 조사할땐, 주인없는 땅이나 그런 문제가
생길수있는 땅들을 자신의 소유로 바꿨다는 소문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하급 관리에서 2만석 지기 땅부자가 될수있었겠지요..물론 일제에 충실히 따라서 승진도 잘했고, 여러 훈포장을
받고 영광 군수까지됐기도 했고...여하튼 전라도 10대 부자까지 될수있었다니 대단하긴 했나봅니다..
지금도 옛날 고흥 군청 뒷길을 쭉 올라가다보면 기와집들이 여러채 있는데, 전부 김정태씨 소유였었고, 가족들이
이곳에 살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지관이 말했던 불행이 6.25때 생기게 됩니다. 인민군들이 고흥에 들어와서 악질 지주들 인민재판 한다고,
김정태씨 두 아들을 잡았는데, 얼마후 인민군들이 후퇴하면서 이 두 아들을 같이 데려가다가,도중에 사살했다고 합니다.
아마 인천상륙작전 이후 같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고흥의 할아버지들은 정말 그 지관이 용하다느니, 진짜 그말대로 됐다는 얘기들을 하곤했다고
합니다..전설 같은 이야기라 아직까지도 그 이야기가 전래돼 회자되고 있답니다. 경로당 할아버지들 사이에서 말입니다.
http://www.younghonam.com/news/articleView.html?idxno=566 김상형(金相亨, 일본식 이름: 金子相亨, 1897년 3월 3일 ~ 1953년 10월 1일)은 김정태의 아들로 역시 고흥읍 출신이다. 일제 강점기의 관료를 지내며 대를 이어 친일 행적을 남겼다. 참고로 한국전쟁 휴전일은 7월입니다
김정태씨 8명의 자식중에 아들 둘이 죽었는데, 첫째 김상형씨와 둘째가 인민군에 끌려가 죽었다고 하네요. 다시 읽어봤어요. 인천상륙작전으로 후퇴하면서 같이 데려가서 몇년 있다가 죽임 당했나보네요.
일제시대 여성화가 나혜석 첫사랑 최모씨가 고흥에서 군수로 있던 형 따라서 고흥에 폐병 요양차 갔다가, 거기서 죽어서 나혜석이 묘비를 써줬고, 그 묘비에 나혜석 이름이 써있다..이 비석를 찾는 이야기중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https://blog.naver.com/swlee8585/221062578655
글쿤요. 링크 좀
http://www.younghonam.com/news/articleView.html?idxno=566 김상형(金相亨, 일본식 이름: 金子相亨, 1897년 3월 3일 ~ 1953년 10월 1일)은 김정태의 아들로 역시 고흥읍 출신이다. 일제 강점기의 관료를 지내며 대를 이어 친일 행적을 남겼다. 참고로 한국전쟁 휴전일은 7월입니다
김정태씨 8명의 자식중에 아들 둘이 죽었는데, 첫째 김상형씨와 둘째가 인민군에 끌려가 죽었다고 하네요. 다시 읽어봤어요. 인천상륙작전으로 후퇴하면서 같이 데려가서 몇년 있다가 죽임 당했나보네요.
누런소
글쿤요. 링크 좀
일제시대 여성화가 나혜석 첫사랑 최모씨가 고흥에서 군수로 있던 형 따라서 고흥에 폐병 요양차 갔다가, 거기서 죽어서 나혜석이 묘비를 써줬고, 그 묘비에 나혜석 이름이 써있다..이 비석를 찾는 이야기중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https://blog.naver.com/swlee8585/221062578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