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도 회자되는 희대의 명문 을묘사직소의 주인공인 남명 조식.
남명이라는 호부터가 장자에 나오는 대붕이 날아가는 곳.
젊은 시절부터 유교 경전 뿐만 아니라 노장 사상과 관련한 서적을 많이 탐독하기도 했고 그 노장 사상은 조식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침.
학문적으로 라이벌리를 형성한 퇴계 이황이 괜히 "노장에 물들어 있다"고 비판한 게 아님.
거기에 조식은 불교에도 우호적으로 접근했고 그 유명한 사명대사와도 교류한 바도 있음. 뭐 원래 조선 사대부들은 국가 이념으로 숭유억불을 내세웠어도 사적으로는 승려들과도 잘만 교류한 사람들이 적잖아서 이게 조식만의 특별한 부분은 아니지만 최소한 불교에 관해선 의외로 이황보다 좀더 유연한 편이었지.
이렇듯 꼬장꼬장하고 불같은 선비 이미지와는 달리 유교만을 절대화하지 않고 다른 학문이나 사상에도 유화적으로 접근하는 등 의외로 유연한 측면이 있었지만 정작 조식의 학통을 이었다는 정인홍이나 북인들은 비타협적이고 독선적인 면모가 많이 두드러진다는 게 어찌 보면 아이러니.
조식보고 노장에 물들었다고 한 이황도 정작 '활인심방'이라는 도교 도인체조 책을 썼던.... 저 시절에 은근 도교에 한 다리 걸친 사람들이 있다보니 한국 내단 도교쪽에서 유학자 상당수를 도교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건 좀 무리수긴 함.
사실 선비적 풍류의 근원은 유가가 아니라 도가 아닌가 합니다.
조식보고 노장에 물들었다고 한 이황도 정작 '활인심방'이라는 도교 도인체조 책을 썼던.... 저 시절에 은근 도교에 한 다리 걸친 사람들이 있다보니 한국 내단 도교쪽에서 유학자 상당수를 도교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건 좀 무리수긴 함.
나중에 그 송시열조차도 '도가 서적 가져오면 추천서 써줌 ㅇㅇ' 이랬으니 ㅋㅋ 사실 도가 사상은 의외로 조선 유학자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게 사실임. 근데 역시 유학자 상당수를 도교로 분류하는 건 무ㅡ리
사실 선비적 풍류의 근원은 유가가 아니라 도가 아닌가 합니다.
공자가 주나라의 수도에 있을 때 노자를 만난 적이 있고 조언도 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어찌 보면 이 이야기가 내포하는 것도 유가와 도가의 애증(?)의 관계 일수도 있겠지요.
조금 제 방식 해석을 덧붙여보자면, 유가는 세상과 삶의 이치를 규명하는 학문이고 본질의 성질이 이치에 맞게 돌아가며 세상이 돌아가고, 이에 따라 돌아가는 세상을 표현하는 양식이 예라는 결론으로 나타나는 흐름을 가졌다고 봅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과 기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인간의 본질이 펼쳐지는 이 세상 그 자체, 자연까지 설명을 하지 못하죠. 유가는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행위를 대상으로 하니까요. 그래서 그냥 존재하는 자연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가장 좋은 해석을 도가에서 찾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유가가 세상을 이해하고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며 세상의 이치가 자연과 어울어지는 경지를 탐미적으로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유가적 이성과 도가적 감성이 어울어지기 쉬운 것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 있습니다.
차이점이 있겠지만 바탕 사상은 같다고 여겨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