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민수전과 맹자의 역성혁명론이 해석되고 부각되며, 마치 애민의 화신 정도전 같은 이미지가 덧대지고 있는데, 솔찍히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함.
정도전의 유교적 통치론과 왕조차 지켜야 하는 법치주의는 오히려 한비자와 감정적 궤가 더 비슷하다고 봄.
인간을 들여다본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소유구조와 통치제도가 인간적인 요소에 의해 영향받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적인 느낌이 더 강하거든.
더구나 삼봉의 왕도를 살펴보면 왕이 지켜야 할 것은 체제이며, 전문 관료들의 목숨 건 챌린지에 버텨야 할 정도로 철저한 유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치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
이를 위해 왕은 인간이 아니라 반신 혹은 철인이 되어야 하는 삶을 강요받아야 하고.
법과 시스템에 의해 인간이 마치 그 안에 돌아가는 부속인 것처럼 정도전이 틀을 짰다면, 아이러니 하지만 혈겁의 왕 태종이라는 이미지와 맞지않게도(?) 이방원이 삼봉의 제도에 인간성을 불어넣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선초의 위대한 개국은 철저한 사상가 삼봉의 이론을 인간이 운영할 수 있는 진짜 제도로 만들어 정착시킨 것이 태종이고 그 위에서 조선을 가뭄에도 쓰러지지 않고 태풍에도 꺾이지 않는 나무로 키워낸 것이 세종이었다 라는 해석을 합니다.
아마 삼봉이었다면 '훈민'은 빼고 '정믐'이라 명명하지 않았을라나 싶은 생각이 드네. 삼봉에게 백성의 교화는 왕에서 시작되어 시스템화 되는 것이니, 오히려 왕도정음이 가까운 생각아니었을까 싶고. 훈민이라는 것이 태종과 세종이 추가해 백성을 인간적으로 바라본 정수라고 보인다면 좀 오버이려나.
그래서 정도전의 이상=훈민정음으로 해석한 육룡의나르샤 결말도 나름 괜찮았음
아마 삼봉이었다면 '훈민'은 빼고 '정믐'이라 명명하지 않았을라나 싶은 생각이 드네. 삼봉에게 백성의 교화는 왕에서 시작되어 시스템화 되는 것이니, 오히려 왕도정음이 가까운 생각아니었을까 싶고. 훈민이라는 것이 태종과 세종이 추가해 백성을 인간적으로 바라본 정수라고 보인다면 좀 오버이려나.
'정믐' -> '정음'
정도전 드라마에서 정도전이 임금을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라고 표현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도구'라는 표현은 실제 정도전의 성향을 잘 표현한 단어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드라마 속에선 이인임의 '정치에는 적 그리고 도구만 있을 뿐'이란 말처럼 정도전이 어느 정도 이인임의 영향을 받았다는 걸 표현한 부분에 가깝지만, 실제 정도전의 문집을 보면 뭔가 인간을 '도구'라고 인식한 느낌도 많이 들기도 해서요. ㅎㅎ 요즘 식으로 치면 코딩에만 미쳐버린 프로그래머를 보는 느낌도 든다능....;ㅁ;
이 시대의 시선으로 보자면, 예외적으로 성공한 꿘입니다. ㅎㅎㅎㅎ
뭐 정도전 드라마 역시 고려 말 신진사대부란 그룹에 운동권을 투영해서 묘사한 측면이 있긴 하지요 ㅎ 이건 정현민 작가 개인의 경험이 반영된 부분이긴 하지만요. 근데 그 드라마가 아니라도 실제 정도전도 꽤 '꿘'스러운 면모가 상당히 많았다는 건 부정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오히려 작가가 한기의 얼음불덩어리 정도전에 인간성이라는 드라마적 요소를 부여한 면이 크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자의 역성론과 계민수전과 왕을 장기판 말처럼 다루려던 정도전에게서 꿘의 교조스러움이 희석되긴 어려웠을 것이라 봅니다.
정도전은 물론 성리학/유학 자체가 지나치게 현대인의 단편적 시각에서 긍정적으로 해석된 게 큼.
양극단적 해석이라 생각함. 현실에서 찾아진 길에 대한 고찰이 생략된 긍정과 부정의 양 극단적 평가.
사극 정도전이 거기에 한 수 보탠것도 있지
사극 정도전이었는데, 정작 정도전은 전혀 잘 그려내지 못한 망작이자 조선초를 다룬 대작. 작품 자체가 좀 양극단스러움요.
아니, 여말 부분은 걸작, 선초는 범작이라고 해야하나.
난 여말선초는 그럭저럭, 정도전은 타임리프한 현대인마냥 표현 이렇게 봄.
다큐가 아닌 드라마로써 여말은 없었던 시선과 캐릭터에 대한 조명이 따른 걸작이라 봅니다. 선초는 많이 실망스러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