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と韓国の政治・外交の“差”を理解するキーワード「感動」 澤田克己(サンデー毎日×週刊エコノミストOnline) - Yahoo!ニュース
한국과 일본의 사이에서 보여지는 감각의 차이를 상징하는 단어 중 하나는 감동이지 않을까? 일본을 잘 아는 한국인 연구자의 얘기를 듣고나서
그렇게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는 정치적인 화제에도 잘 쓰여지지만, 일본에서 정치를 얘기를 할 때, 그 정도로 쓰여진다고 할 수 없다. 배경에는
뭐가 있는지 생각을 해 보고 싶다.
◇사도의 조선인 노동자에 관한 전시를 보고난 후...
세계 문화유산으로의 등록이 결정이 되었던 "사도섬의 광산"에 갔고, 조선인 노동자에 관한 전시를 봐 온 감성을 밝히는 단어였다. 7월의 등록
결정이 있어서 한일 양 정보가 협의를 하여, 한반도 출신자가 일본인 보다 가혹한 작업에 종사를 했다는 것 등을 현지에서 전시하는 것으로 합의
를 했다. 일본에는 양국에 의한 사전 협의로 결론이 난 걸 평가하는 의견이 대 부분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윤석열 정권에 비판적인 진보파의 야당
과 미디어가 강제노동을 명기하지 않았다고 맹반발 했다.
이 연구자는 "한국에서는 심한 내용이다 이라고 보도가 되었지만, 실제로 가보니까, 나쁜 게 아니었다" 이라고 평가를 하면서도, 불만이 남는 점
으로써 "감동이 없었다." 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되었지만, 성의를 느낄만한 것은 없었다" 이라고 한 것이다.
8월말에 열렸던 전문가 대화이기도 한 한일 포럼에서의 발언이다. 현재의 국제 정세를 생각하면 연대 강화는 필요하지만 양국으로 부터의 참가
자의 공통인식 이었지만, 그럼에도 논의의 온도차는 느껴졌다. 미래지향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일치를 했으면서, 양국간의 문제에 다가가지
않을려는 일본측과 미련이 남는 한국측 이라고 하는 대비가 보여졌다. "역사인식 문제에서의 일본측의 노력이 부족" 이라고 하는 감각이 한국측
에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감동 인 것처럼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정치에 감동이 필요하다
원래부터 정치와 외교를 얘기할 때는 감동 이라고 하는 단어를 쓰는 빈도는 한일이 크게 다르다. 교도통신과 한국의 연합뉴스의 데이터 베이스
로, 작년 9월부터 올해 8월까지의 1년간 정치 장르에서 배포가 된 기사를 조사했다. 그러자 감동을 포함한 기사는, 교도통신의 11개의 기사에 대
해서 연합뉴스는 328개의 기사였다
게다가 교도통신의 기사는, 스포츠와 문화 예술에 관련한 총리와 각료가 감동했다 이라고 얘기하는 것 뿐이었다. 한 편으로 연합뉴스는, 총선거
와 여당 대표선거 등 정치 그 자체레 관한 뉴스가 많다.
자주 나오는 것이, 선거에서 유권자에게 호소를 하기 위한 감동이 요구가 된다는 논법이다. 정당주도의 선거가 정착을 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양
대 정당의 공인을 얻지 않으면 당선은 어렵지만, 당 지도부는 때에 따라 현역의 거물 의원을 공인에서 빼는 쇄신을 어필한다. 아니면 거물 의원
이, 당의 쇄신을 위해서라도 스스로가 불출마를 선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쓰여지는 단어가 감동인 것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올해 4월의 총선거에서도 여당 간부가 "(공인을 받지 못 한 걸) 받아들이는 분들의 감동적인 헌신이 있었다" 이라고 얘기를
하면서, 야당의 장로 의원이 페이스북에 "감동의 정치가 필요한 건 지금이다" 이라고 썼다. 한국지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여당의 비례대표 명부
에 대해서 "감동은 없고, 억측만 날아들었다" 이라고 비판했다.
◇상대를 보다 아는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정치에서 감동이 중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족주의의 연구자로, "희생자 의식 내셔널리즘" (일본판은 동양경제 신보사)의 저자이
기도 한 임지현 서강대 명예교수는, "한국에서는 정치의 도덕적인 접근을 요구해서가 아닐까?" 이라고 얘기한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특을 "도
덕지향" 이라고 지칭하는 오쿠라 키조 쿄토대 교수(한국 철학)의 지적을 통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도덕지향 이라고 하는 건 "도덕적인가?" "올바
른지의 여부"를 사물의 판단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한국의 외교부 장관 경험자는 필자에 대해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작년 5월에 방한을 하여 역사문제에 "마음이 아픈 기억" 이라고 밝힌것에 대
해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 이라고 하는 것 보다는 인간적인 단어로 잔잔한 감동을 줬다." 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 한편으론 "역사문
제에 대해서 한국은 상대적으로 도덕적인 접근을 하지만, 일본은 법률적인 접근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은 논리보다도 중요하며, 그
점이 일본 외교의 아쉬운 점이다" 이라고 밝힌다.
한일 어느쪽이 맞느냐 이라는 문제가 아닌, 다르냐에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국제사회 에서는, 어느쪽이 일반적으로도 말하기 어렵다. SNS 전반 시
대가 된 현대 사회에서는, 적어도 민주주의 나라에서는 여론을 무시한 외교를 하는 건 어렵다. 그러니까 상대국 여론에 호소하는 퍼플릭 디프로
머시(공공 외교)가 중시가 되지만, 일본에서 언급이 되는 역사전 이라고 하는 건, 되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그 점에서는 중국의 전랑외교
와 오십보 백보이다. 똑같이 한국측의 대일 공공외교도, 일본의 여론을 자극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의문이 남는다.
한일관계에서 다시 생각해야 하는 건, 식민지 시대의 교육을 받은 일본어 세대의 사람들이 한국으로 부터 없어진 것이다. 김대중 정권까지의 한
국에는, 일본의 일을 뼛속 깊이 하는 세대가 정재계의 중핵으로 남아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이 있다면, 감각의 다른 부분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
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은 누구도 없으니까, 한일관계를 제대로 구축을 할려고 한다면 상대를 보다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정
치에 대한 감각의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여, 배경을 알려고 하는 노력하는 건 그 첫 걸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