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제, 고구려가 망하면서 사라짐 - 당나라가 태워먹었을 거 같긴 한데...모름
2. 고려 때 만들어진 것도 삼국사(기), 삼국유사 외에 남은 게 없음
3. 조선시대 때 임금들이 종종 이러저러한 책들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가 들키면 뒤진다, 내놔라 해서 사라짐
4. 조선시대 때도 고려사 외에 그 이전 시대 역사책을 그닥 만들지 않음
5. 일제 때 총독부가 역사책 수거해서 사라짐
6. 조선시대의 역사관은 쿠데타+성리학 콤보가 원인이 되어 기자조선을 시조로 삼았던 듯, 그래서 고려사 외 딱히 안만든 모양
(고려사는 조선 건국의 당위성을 위해서라도 고려가 매우 X같았다고 써놔야 했을테니까)
암튼 그래서 삼국시대 연구에 중국 사서(25사)가 중요하게 다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건 또 중국의 역사왜곡과 엮일 수밖에 없어서
+ 삼국사기 기록에 대해서도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아서 (특히 초기기록 불신론과 여러 아구가 안맞는 부분)
+ 삼국유사는 야사 취급이니
사실상 제대로 공인받는 기록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
그냥 내가 아는 건 이 정도?
더 정확히 아는 사람 있으면 댓글 좀
고구려 사서는 이세적이 평양성 방화쑈하면서 싸그리 태워먹은게 팩트긴 함.
고구려 사서는 이세적이 평양성 방화쑈하면서 싸그리 태워먹은게 팩트긴 함.
심심해서 구글 잼민이 한테 물어봄 세상 겁나 좋아졌다 대한민국 삼국시대 기록이 부족한 이유 대한민국 삼국시대의 기록이 중국 삼국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이유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합니다. * 문자 사용의 제한: 삼국시대 초기에는 문자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았고, 기록 매체도 부족했습니다. 주로 구전이나 목간 등에 간단한 기록이 남아있을 뿐, 체계적인 역사 서술은 어려웠습니다. * 잦은 전쟁과 혼란: 삼국 간의 끊임없는 전쟁과 정치적 혼란은 기록의 보존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귀중한 기록들이 전쟁 중에 소실되거나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불교의 수용과 한문 중심의 기록: 불교가 전래되면서 불경 번역과 사찰 기록 등이 활발해졌지만, 이는 주로 한문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따라서 토착적인 신앙이나 생활 문화에 대한 기록은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 역사 서술의 시작이 늦어: 삼국통일 이후 신라 중심으로 역사 서술이 시작되었지만, 삼국시대 초기에 대한 기록은 이미 많이 소실된 상태였습니다. * 외세의 침입과 역사 왜곡: 고려와 조선 시대에 외세의 침입과 정치적 변동이 잦아, 삼국시대 기록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부족했습니다. 또한, 중국 중심의 사관에 의해 우리 역사가 왜곡되기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삼국시대의 기록이 부족한 이유는 문자 사용의 제한, 잦은 전쟁, 외세의 침입, 역사 서술의 시작이 늦어진 점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고학적 발굴과 문헌 연구를 통해 조금씩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오~ 감사!
이미 삼국사기 만들때부터 기록이 많이 소실되서 그럼 삼국사기 쓸때 자료가 너무 부족해서 고당전쟁때 안시성주 이름도 삼국사기에 못남았을정도인데 뭐.. 그리고 조선이 고려사 말고 역사서 편찬안한것도 마찬가지 이유임 고려사는 고려실록이 남아있어서 그거 토대로 만들었으니까 그렇다고 조선이 옛역사를 무시한것도 아니고 평양에 단군,기자,동명성왕을 모시는 전각도 지었던걸로 암...
그리고 기록이 소실 될수밖에 없는게 백제 고구려 멸망때 사료가 일단 한번 날아가고 그뒤에 고려때 거란,몽골침입도 있었으니 더더욱 남기 힘든상황이긴함
오죽하면 을지문덕이 실존인물인지 아닌지로 왈가왈부 할 정도
중국이 이민족 정복하면 제일 먼저 하는게 역사책 수거임. 사서 편찬을 프로파간다로 생각하던 나라라. 전쟁 때 불탔을 수도 있고, 아니면 가져간 이후에 토번이 장안 함락시킨적 있었으니 그 때 불탔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신라가 갖고 있던 역사서 견훤이 싹 털어간 이후 행방을 알 수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