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은 정말로 존재하는가?
뭔가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야 할 의무는 없다.
드래곤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유니콘도 마찬가지다. 이마에서 긴 뿔이 자라는 말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뿐 언젠가는 발견될 수도 있다.
이제 이 같은 관점으로 영혼에 대한 논의로 들어가자.
내가 물리주의자로서 육체를 초월한 비물질적인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명을 할 필요는 없다.
영혼이 존재할 모든 가능성을 들여다보며 "여기도 없군, 저기도 없네" 하며 철저히 검증할 필요도 없다.
다만 영혼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다양한 주장들을 살펴보고, 그 주장들을 조목조목 반박해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 주장들에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만 보여주면 된다.
다시 말해 영혼을 받아들일 만한 근거가 없음을 밝힘으로써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 불을 내뿜는 드래곤의 특성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방식을 영혼에 대입하는 논증은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비록 영혼의 존재를 믿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혼과 같은 비물질적인 존재 자체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비물질적인 존재를 가정하는 것은 과학, 특히 물리학 법칙을 어기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은 과거에 부정했던 존재나 특성들을 발견해나가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직 과학은 영혼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혼의 존재 가능성 자체를 부정한다면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처사일 뿐이다.
강조하지만 나는 영혼이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사실 영혼의 존재를 완벽하게 부정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영혼이라고 하는 존재 자체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물론 영혼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철학자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중요한 점은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위해 반드시 영혼의 '존재'를 반박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니콘의 존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유니콘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다. 왜?
유니콘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주장들 모두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혼의 존재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영혼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다양한 주장들 모두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나는 물리주의의 관점을 취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물리주의의 관점이 타당하다고 가정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혼에 대한 논의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계속 논의를 이끌어가는 동안에도 다양한 주제나 논란에 대한 이원론자들의 견해를 함께 다뤄볼 것이다.
하지만 내 궁극적 목표는 물리주의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대안적 관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을 다루는 동안 그런 문제에 대해 물리주의자들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대답을 제시하고 있는지 주목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여러분에게 물리주의의 관점에 대해 설명하고 결과적으로 여러분이 물리주의를 받아들인다면, 그건 무척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영혼의 존재를 놓지 못하겠다면, 앞으로 내가 제시하는 다양한 주장들을 일종의 가정법으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여러분이 물리주의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점은 이것이다.
물리주의자들처럼 인간을 육체적 존재로 바라볼 때 죽음에 대해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깨닫는 것이다.
셸리 케이건의 저서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 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