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아... 진짜 자기같은 덱 찾았네."
남해의 8강 상대는 박영애. 밴픽으로 공개된 다른 두 덱은 각각 [어스머신]과 [로즈 드래곤]. 그리고 16강에서 영애가 썼던 덱은 [라뷰린스]였다.
마치 영애의 그림자처럼, 영애가 하는 동작을 백은색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가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이상하기보다는 꼭 쌍둥이 자매의 공연이나 개그 같았다. 남해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오호호~ 이걸로 낙승이와요!"
-"오호호호!"
특히나 경기의 향방이 정해진 순간은 하이라이트.
둘이 동시에 같은 포즈를 취하며 웃는 모습은 낙랑이까지 자신도 모르게 풋, 하고 웃어버릴 정도였다.
"밴은?"
"저거. 아니, 덱에서 [차원 장벽]을 세트한다니. 저게 말이 돼? 상검이 저거 맞으면 그냥 즉사야 즉사."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낙랑과 함께 영애의 16강 로그를 분석하며 남해는 제일 먼저 노트의 [라뷰린스]에 빗금을 쳤다. 아가씨가 징그럽고 함정이 예뻐요~ 하는 감상은 감상이고 이렇게 밴픽을 통해 선택지가 제시된 상황에선 절대 상대할 생각이 없다.
낙랑도 라뷰린스의 밴 이야기에 뭔가 즐거운지 고갤 힘차게 끄덕이며 자신의 D-패드 메모장에도 같이 빗금을 쳤다.
"그럼 남해 넌?"
"...해황."
"또? 엄청 큰 거 준비 해놓고는 쓰지도 않게?"
"응."
낙랑은 남해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날 남해가 보여줬던 그 콤보라면 무조건 먹힐텐데.
더 높은 자리에서 쓰고싶은 마음은 이해가 갔지만 이러다가... ...아니야, 남해가 탈락할 리 없어. 남해라면 무조건 이번에도 이기고 더 높이 올라갈테니까.
남해는 다음 듀얼에 대해 고민하느라 낙랑이 그런 생각을 하는지, 표정은 어떤지 돌아볼 새도 없었다.
[어스머신]은 영애가 쓰는 걸 보진 못했지만 어떤 덱인지는 알고 있다. 비유적으로, 그리고 문자 그대로 상대를 트럭처럼 들이받아 한순간에 승패를 결정짓는 덱이다. 이번 대회에서 본 덱 중에는 [갤럭시]랑 가장 비슷한 타입의 덱.
그리고 [로즈 드래곤]은 전개 덱에 가까운 타입의 덱이다. 엄밀히 말하면 로즈 드래곤이 조금 들어간 식물GS에 가까운, 순식간에 몬스터를 늘어놓아 락을 굳히는 플레이가 특기. 영애의 듀얼은 아니었지만 [선인장 클로저]를 써서 게임을 닫아버리던 듀얼은 정말 뇌리에 깊게 남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어느 쪽을 대비해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만 반복된다.
...
"저쪽의 밴은 해황에 갈 거야."
"역시 그럴 것 같사와요."
영애의 옆에서 차갑고 건조한 목소리의 조언이 전해졌다. 영애의 친척, 그리고 남해와 같이 중부 교대표 무대에 섰던 적도 있는 듀얼리스트 백장미였다.
올해 초, 아직 봄이 오기 전... 누군가와 듀얼을 하고 온 영애는 뭐라도 크게 느낀 것처럼 바뀌었다.
적어도 장미는 그렇게 느꼈다.
그 날 저녁에 전화로 듀얼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부탁해온 영애는 정말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그렇게 된 이유를 물어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두루뭉술한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이젠 알겠네...'
남해의 듀얼을 분석하는 동안의 영애는 달랐다. 장미가 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니, 조지명식에서... 객석에서... 남해를 볼 때의 눈빛 자체가 달랐다.
그때 말한 다시 만나고 싶다는 사람이 얘였구나. 저 애라면 장미도 납득할 수 있었다. 영애 말마따나 또래의 나이인데 자길 이렇게 변화시킬만한 실력도 있는 아이.
아직 직접 맞붙은 적은 없었지만 교대표 자리에 같이 앉아있던 적은 많이 있었고 나름 그럴싸한 사연과 로열로더 자리 덕분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쪽으로는 아마 라뷰린스에 밴 카드를 쓸 거야. 차원 장벽에 맞으면 상검은 그대로 기능정지고 사이버스도 견제 카드들에 그렇게 강한 테마는 아니니까."
장미는 그렇게 말하며 태블릿에 스윽, 하고 [해황]과 [라뷰린스]에 빗금을 쳤다.
"밴 카드는 어디다 쓸래?"
"상검이와요!"
"이유는?"
"으으으으음... 이번 듀얼에서 생각한 픽은 어스머신인데, 어스머신은 턴 받아서 뚫는 덱 아니겠사와요? 그런데 견제 카드가 많은 상검에게 턴을 받으... 면, 생각대로 풀리지 않사와요."
영애는 그렇게 말하며 [상검]에 가위표를, [어스머신]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장미는 거의 자기 생각을 그대로 말한 것 같은 영애의 의견에 속으로 많이 발전했다 생각했다. 올해 초까지는 덱 고르는 안목도 없던 그 애가 아니다.
"셀프 밴은 라뷰린스?"
"로즈 드래곤이와요."
더블 밴에 성공한다면 심리전에서 한 수 먹고 들어갈 수 있을텐데. 그래도 영애는 별다르게 고민하지 않고 태블릿에 터치펜으로 [로즈 드래곤]에 빗금을 쳤다.
장미는 거기까진 간섭하지 않았다. 만일 밴이 라뷰린스가 아니라면 이쪽은 최고의 패를 쥔 채로 시작할 수 있고 라뷰린스에 밴 카드가 쓰여도 어스머신이라면 어느 덱과 상대해도 해볼만 한 덱이다.
그렇지만 장미도 영애의 진심은 알지 못했다.
영애는 라뷰린스를 남겼을 때의 이득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영애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 최고의 덱은 이 덱이다. 남해와 처음 붙었던 덱도 결국 핵심 파츠는 헤비급 기계족 몬스터들로 구축돼있던 덱.
그렇기에 이번 듀얼에는 이 덱을 들고 남해와 승부하고 싶었다. 장미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
8강 경기도 며칠 남지 않은 밤.
남해는 접이식 침대에 앉아있었다. 여태까지의 새파란 그것이 아니라, 와일드카드전 이후 목사님이 새로 사준 깔끔하고 편안한 새 접이식 침대였다.
그리고 남해의 앞에는 상검과 사이버스가 든 덱 케이스가 놓여있었다. 남해는 둘을 보며 한참을 말 한마디 없이 고민했다.
그때 의자 앞에 스르륵 금빛 불티를 튀기며 수직으로 선 검 한자루가 생겨났고 그 검자루 위에 손을 얹은 모습의 용연도 의자 위에 생겨났다.
-"무엇을 그리 고민하십니까?"
"다음 듀얼 때문에. 내 생각에는..."
남해는 그렇게 말하면서 사이버스 덱의 케이스를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자기가 영애라면 상검에 밴 카드를 던질 것이다. 해황은 자신이 밴할 덱이니 두 덱을 빼면 자연스레 사이버스가 남는다.
지금의 사이버스도 약한 덱은 아니다. 아니지만...
-"다음 승부가 걱정이시군요."
"응."
-"주군, 혹여나... 소생의 생각을 풀어보아도 괜찮겠습니까?"
남해는 용연을 잠시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연은 수염을 매만지다가 자신의 상검을 스르르 없애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편대平臺-덱-는 비유하자면... 그렇지요. 아주 훌륭한 부대이외다. 병사들은 가히 막강지병莫强之兵이라 단언할 충성심 깊고 훌륭한 이들이요, 그 위의 군관들은 다들 용맹해 견갑이병堅甲利兵이 따로 없이 한 사람 몫은 능히 해내는 인재들입니다."
"어... 그런데..."
-"하지만 한 가지가 빠졌습니다. 일기당천一騎當千, 만인지적萬人之敵, 전장에 나섰다 하면 향방을 가르고 승패를 결정지을 장수가 그 안에는 없지 않습니까?"
남해는 용연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남해의 표정을 확인한 용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야기를 쭉 이었다.
-"이대로라면 무장지졸無將之卒에 고군약졸孤軍弱卒이니 차라리 상검을 쓰고 싶다. 허나 상대 또한 이 사실을 잘 알 터, 당연히 상검은 쓸 수 없게 될 것이고... 해황은 아직 꺼낼 차례가 아니니 결국에는 선택지가 하나 뿐이라."
용연은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 검지를 세우고 사이버스의 덱 케이스를 사뿐 짚었다.
-"어찌할 도리가 있겠습니까?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이 편대라도 고르는 수밖에."
"저기, 용연."
-"왜 그러십니까?"
"...너무 어렵고 복잡한 말이 많아서 잘 이해하기 어려워."
용연의 말은 자주 이렇다. 한자와 고사성어를 많이 쓴다. 비유적인 표현 또한 마찬가지.
남해가 용연과 함께 지낸지도 꽤 시간이 흘렀지만 그래도 어려운 건 어려운 법. 말은 안 꺼냈지만 남해는 근래에도 용연이 이렇게 말하면 그냥 뜻을 짐작할 뿐 구체적인 의미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남해의 말에 잠시 용연은 생각을 정리하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 덱, 전개 파츠도 많고 중간다리도 양호한데 막상 제대로 된 피니셔나 히든카드가 없지 않습니까?"
"어? 어... 응."
-"그렇다고 뭐 질질 끌려갈 때 상황을 타개할 비장의 수도 없고. 그런데 지금 그 덱 외에는 꺼낼만한 수단도 없으니."
용연이 너무 자연스럽게 평범하고 남해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말을 하자 오히려 남해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 놀라움과 별개로 이야기는... 남해도 공감하는 이야기였다. 용연의 말은 남해의 생각과 거의 똑같았으니까.
토커들은 대부분 공세에 특화된 몬스터들이고 믿음직한 카드도 맞다. 그러나 어쨌든 원래 공격력 2300에 링크 3의 중형 몬스터.
전개에 특화된 하급 몬스터들은 몇 번이나 막혀도 한 번의 기회만 붙든다면 반격태세를 갖출 능력이 있다. 그래도 결국에는 하급 몬스터. 혼자 듀얼의 흐름을 바꿀 순 없다.
만일, 만일 딱 한 장으로 흐름을 변화시킬 대형 몬스터 하나만 이 덱에 더할 수 있다면...
"하지만 없잖아. 없는 걸 어쩔 수 없지."
남해는 이런 덱으로도 대형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한 방법을 몇 장 덱에 투입했다. 그 외에는 멋쩍은 표정을 짓는 것 외에는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쩌면... 언젠가는 그런 한 장이 없어서 무너지는 듀얼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용연은 검지로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남해의 카드 케이스 하나에서 스으윽 낚싯줄이라도 잡아당긴 것처럼 카드 한 장이 용연의 손으로 쏘옥 날아들었다. 용연은 그 카드를 한 번 확인하고는 남해에게 스윽 내밀었다.
-"대책이 필요합니다. 병법의 기본은 적은 병사로 많은 병사를 대적하지 않는 것입니다.
허나 그래야만 한다면... 전체 병력이 뒤처질지언정 전장에서만큼은 더 많은 병사를 동원해 일점집중一點集中하는 것이 활로이니."
남해는 그 카드를 받고서 확인했다. 아, 그렇지. 이런 카드도 있긴 했지.
-"더욱이 주군이 남길 두 덱 다 테마를 셋, 넷씩 합쳐 만든 덱. 유연성은 당연히 이쪽보다 부족할 것이고 아무리 저 영애가 괄목상대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한들 실력과 별개로 지혜와 경험은 우리가 한 발 앞설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라. 용연은 그 말이 하고 싶었을 것이다.
듀얼은 일대일 면대면의 진검승부다. 준비도 필요하고 대비는 철저해야 하지만 승부 전에 지레 겁먹고 움츠릴 필요 없다.
"응."
...
"이 카드는 이렇게 대처하는게 베스트고..."
경기 당일날, 어느새 경기 시작이 코앞까지 다가와있었다.
대기실을 나서 복도를 걷는 영애의 옆에는 장미가 찰싹 붙은 채로 브리핑에 여념이 없었다.
용연은 그런 장미를 보며 대충 상황을 납득했다.
저 하얀 옷을 입은 애가 영애의 참모로군. 본인의 재능도 빼어난 모양인데 우수한 책사까지 붙어있었다면 저런 성장속도도 납득할 수 있다.
남해는 복도를 나와 듀얼 필드에 오르기 전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무대가 커지고 관중이 늘어나니 심장의 떨림도 그만큼 강해진 기분.
남해는 눈을 감고 가슴팍에 성호를 그은 다음 말없이 두 주먹을 꽉 쥐며 기합을 넣었다.
"후우, 하..."
한편 오늘 경기를 보러 온 원형과 준오의 시선은 막 복도를 나온 남해에게 잠시 머무른 후 무대 장치로 향했다.
"이야, 근데 진짜 8강 오니까 설비 진짜 장난 아니네."
"이번에 블루윙 거기도 시설 고친다는데 그럴만 했다 이정도면 경쟁심 생기지."
한편 오늘 경기를 보러 온 원형과 준오의 시선은 둘보다는 무대 장치쪽에 가있었다.
16강의 장비들도 물론 방송경기가 치러지는 경기장의 장비답게 흔히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8강 경기가 치뤄지는 스카이 스타디움은 4강, 결승까지도 치뤄질 듀얼 필드가 설치된 곳 답게 눈돌아갈 듯 굉장한 설비들 투성이였다.
"아!!"
남해는 뒤에서 들려온 영애의 목소리에 움찔했다. 저 카랑카랑하고 음량 커다란 목소리는 절대 잊을 수 없었다.
설마하는 눈치에 뒤를 돌아본 남해. 영애는 남해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도도도 달려왔다.
"정말 오랫만에 다시 승부하네요!"
영애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먼저 손을 내밀었다. 절대 악수가 거절당할 리 없다는 강한 확신이 담긴 듯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남해는 잠시 망설였지만 영애가 내민 손을 살짝 잡았다. 영애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손을 세게 흔들었다.
"지난번이랑은 다르니까요! 저도, 이 덱도! 다시 만났을 때는 달라지리라 다짐하고 열심히 달려왔으니까!"
"으, 응..."
"이번 승부도 서로 최선을 다하고! 후회없이 끝내는 것이와요!"
남해는 어색한 얼굴로 고갤 끄덕여 동의의 표시를 보냈다.
영애는 남해의 표현에 만족한 듯 자신도 고갤 끄덕이고는 손을 놓고 청코너로 다시 돌아갔다.
-"주군."
"왜."
-"시선 관리하느라 힘드십니까?"
남해는 용연의 말에 움찔했다.
아니, 그치만 그렇잖아. 저 압도적인 [존재감]. 전에도 굉장했는데 그때보다도 좀 더 굉장해지지 않았어?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저 정도인 애가 있던가? 키랑 목소리만 큰 게 아니라니.
-"혈기왕성한 청년이 이성에게 끌리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 허나 그로 인해 일을 그르치는 법은 없어야..."
남해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괜히 몸에 찬 장비들을 다시 확인했다.
-"방심하지마라, 최초의 한 장이 모두를 침몰시킬 수 있다. 포기하지마라, 최후의 한 장이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다! 오늘 치러질 LT유스 8강 1경기 매치업 박영애와 강남해! 강남해와 박영애!!"
-"청코너에는 저번 대회 준우승자 최무진 선수를 16강에서 꺾고 진출한 박영애 선수! 특히 근래에 공식전이나 교내 데이터 보면 기세가 아주 무섭습니다! 박영애 선수가 굉장히 또, 본인도 본인이지만 친척인 백장미 선수가 옆에서 진짜 든든하게 서포트해주고 있거든요!
8강 오르고, 여기서 이기면 간만의 로열로더도 가능합니다!"
-"홍 코너에 있는 강남해 선수도 마찬가지로 로열로더 후보 아니겠습니까? 이번 LT유스는 기존 시드권으로 진출한 선수들!
우승자 오현석 선수에 준우승자 채무진 선수까지 탈락하고 LT유스 한 번도 참가한 적 없는 선수가 반은 돼요 반!"
-"와일드카드로 극적인 진출을 이뤄낸 강남해 선수가 또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저번 시즌 준우승자까지 격파한 무서운 성장속도의 박영애 선수가 다시 이변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경기 앞서 양 선수~~~ 밴픽~~! 시작합니다!!"
LT유스 특유의 밴픽 BGM과 함께 둘의 덱 리스트가 화면에 떠올랐다. 객석으로 돌아간 장미는 남해의 밴픽을 주시했다.
-"먼저 박영애 선수 셀프 밴 카드 [로즈 드래곤]에 썼습니다!"
-"고점이 높지만 안정성이 없는 덱이라는 약점이 있죠. 사전 예상에서도 가장 밴할 확률이 높은 덱이었고요. 그리고 강남해 선수 셀프 밴 카드는 16강과 마찬가지로 [해황]인데요."
-"그리고 밴으로 넘어가면 [상검] 밴! 이거는 16강에서 그런 듀얼 봤으면 밴 카드 안 쓰기 너무 찝찝할 수밖에 없죠! 마지막으로 강남해 선수의 밴 카드는... [라뷰린스]에 낙찰!"
-"서로 더블 밴 없이 양 선수 밴픽 확정됐고, 8강 1경기~ 시작하죠!!"
남해도 영애도 밴픽을 확인했다. 서로 예상했던 대로의 흐름, 그리고 준비했던 덱의 순서.
익숙한 동작으로 남해는 허리의 덱 케이스 하나를 열어 푸른 D-패드에 찰칵! 하고 끼워넣었고, 영애 역시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덱 하나를 꺼내 스윽 D-패드에 밀어넣었다.
양 선수가 덱을 세팅하자 D-패드가 덱을 읽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블루투스 기능으로 솔리드 비전 출력 장치들이 연동되며 16강 때와는 또 다른 고요하지만... 심장을 뛰게 하는 기계의 구동음이 마치 둘의 결투를 위한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Duel Stand-by]라는 메세지가 떠오르며 D-패드가 전개됐고, 듀얼 필드 정 중앙에 거대한 동전이 올라왔다.
익숙한 그 동전은 폭풍처럼 몰아쳤다. 그리고 폭풍의 눈은 영애를 선택했다.
""듀얼!!""
두 선수의 덱 맨 위의 다섯 장이 출력됐다.
영애는 처음 보던 때와는 확실하게 달라진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다섯 장의 카드를 한 손에 쥐었다. 남해는 다섯 장의 카드를 슥 확인하고는 눈동자를 영애에게로 향했다. 영애의 하얀 손이 패 안의 카드 하나를 가볍게 집어올렸다.
"먼저 패에서 [머시너즈 기어프레임]일반 소환이와요! 여기에 패의 [중기화열차 데릭크레인]의 효과를 발동!"
영애의 필드에 이름 그대로 외부에 씌우는 장비가 별로 없는, 가느다란 체형의 로봇이 나타났다.
저 카드라면 남해도 알고있다. 남해가 어릴 적에 원래 세계에서 출시 됐던 스트럭쳐 덱에 수록됐던 카드. 덱에서 머시너즈 몬스터를 서치해주는 효과를 가진 몬스터. 줄여서 표현하자면...
초동.
"그 효과에 체인, 패에서 [하나 미즈키]의 효과 발동!"
"그때 그 카드!!"
영애의 나머지 패에는 미즈키를 막을 수단이 없다. 그리고 영애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이렇게 되면 어쩔 도리가 없다. 가는 데까지 간다. 왜냐하면 이 덱은 그런 덱이니까.
"체인은?"
"없사와요."
-강남해/LP 8000 → 9400
끼리리릭...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영애의 필드에 깔린 선로. 선로를 따라 노란 화물열차가 영애의 필드에 도착했다.
영애는 덱에서 카드 하나를 뽑아 필드로 냈다. 그와 함께 화물열차에서 컨테이너 하나가 필드로 내려졌다.
"기어프레임의 효과로 패에 넣은 몬스터는 [머시너즈 언크러스페어]. 이 카드의 효과로 패에서 특수 소환이와요.
여기에 2번 효과로 덱의 [머시너즈 커넬]까지 묻겠사와요."
컨테이너 안에서 뒤틀린 모습의 새카만 로봇이 비틀거리며 걸어나왔다. 말이 로봇이지 흡사 좀비영화의 한장면 같은 기괴한 모습이었다.
"이제 레벨 4 기어프레임과 언크러스페어를 오버레이! [기아기간토 X] 엑시즈 소환이와요! 이렇게 소환한 기아기간토로 [무한기동 록앵커]를 서치!"
영애는 덱에서 카드 하나를 패에 넣었다. 그 다음엔 익숙한 동작으로 D-패드 위에 놓인 카드를 톡톡 터치하고는 필드에 링크 게이트를 열었다. 기아기간토와 데릭크레인이 데이터로 변해 각각 마커 하나 안으로 흡수됐다.
안에서 나타난 몬스터는 은빛의 가제트 몬스터. 남해도 알고 있는 몬스터다. 1학기 동안 지민이 몇 번 썼던 [플라티나 가제트]다. 패의 기계족을 특수 소환하는 효과가 있는 몬스터였고.
[플라티나 가제트/Lnk-2/1600/↙↘]
[무한기동 록앵커/Lv4/1800/500]
-강남해/LP 9400 → 16900
"플라티나 가제트의 효과로 특수 소환한 록앵커의 효과 발동이와요!
패에서 [무한기동 하비스터]를 특수 소환하고 하비스터로 [무한기동 브루탈도우저]를 덱에서 패로 더해요!"
"...쟤 안 멈추냐?"
"폭주기관차네 그냥."
영애의 플레이를 객석에서 지켜보던 원형이 준오를 슥 쳐다보며 말했다. 준오도 공감을 표했다.
남해의 라이프는 순식간에 두 배가 됐다. 그럼에도 영애는 멈출 기세가 조금도 없는 눈치였다.
라이프 1만이라면 지금 메타에서 못 깎을 게 없는 수치다. 그래도 2만, 3만씩 되면 이야기가 다를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영애는 준오의 말처럼 폭주기관차 같은 기세로 플레잉을 계속 이었다.
"록앵커를 릴리스하고 패의 브루탈도우저를 특수 소환하겠사와요!
여기에 브루탈도우저의 효과로 덱의 [무한기동 트렌처]를 특수 소환한 다음 두 중기로 오버레이! [무한기동 리바스톰]을 엑시즈 소환!"
[무한기동 리바스톰/Rk5/2500/500]
쿠르르르... 제트엔진을 단 소방전차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영애의 필드로 전진했다. 원형의 에이스 몬스터 터뷸런스를 떠오르게 하는 모습이었다. 리바스톰의 엑시즈 소재 하나가 사라졌고 영애는 덱에서 또 한 장 카드를 뽑아냈다.
"네. 리바스톰의 효과로 [세리온즈 "킹" 레귤러스]를 패에 추가하겠사와요!
이젠 리바스톰을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1 [무한기동 골라이어스]를 링크 소환! 여기에 묘지로 간 리바스톰도 플라티나 가제트를 릴리스해 부활이와요!"
-강남해/LP 16900 → 25300
이제는 용연까지도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생존점수가 두 배를 넘어서 세 배를 돌파했다. 그런데도 멈출 생각이 없다고?
장기전으로 간다면 솔직히 이쪽이 영애보다 유리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 정도면 장기전이 문제가 아니다. 진지하게 믿는 구석이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리바스톰과 골라이아스를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2 [앤틱 기어 발리스틱슈터]를 링크 소환해서 덱에서 [앤틱 기어 박스]를 패에 더하고... 박스의 효과로는 [무한기동 스크레이퍼]를 패에 다시 추가하겠사와요."
영애는 한 번 숨을 고르고 패를 다시 확인했다. 남해가 기억하던 올해 초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자기가 해야할 플레이와 이어갈 빌드를 알고 확신하고 있다. 영애는 미소띤 표정으로 패 안에서 카드를 하나 가볍게 뽑아 D-패드에 냈다.
"좋아요. 이제 패에서 [세리온즈 "킹" 레귤러스]를 특수 소환하겠사와요!
레귤러스에 장착한 기어프레임을 장착 해제한 다음, 레귤러스에게 하비스터의 효과를 발동이와요!"
-무한기동 하비스터/Lv2 → 10
-세리온즈 "킹" 레귤러스/Lv8 → 10
레벨 10 몬스터가 둘. 남해는 영애와의 첫 듀얼이 떠올랐다. 그때 영애가 쓴 몬스터가 마침 10랭크 엑시즈 몬스터인 구스타프 맥스였지.
영애는 뒤이어 D-패드에 놓인 발리스틱슈터를 한 번 터치하고 패의 카드 하나를 D-패드에 냈다.
"발리스틱슈터를 릴리스하고 패에서 [무한기동 스크레이퍼]를 특수 소환해서 프레임과 슈터를 링크 마커에 세트. 승리를 그 손에! 링크 2 [기관중련 앵거 너클]을 링크 소환하겠어요!"
[기관중련 앵거 너클/Lnk-2/1500/↓→]
뿌우우우-!! 경적음을 울리며 영애의 필드로 황동색 열차가 달려왔다. 열차가 속도를 줄이며 미끄러지듯 영애의 옆에 멈춰섰다. 그리곤 치익- 하고 증기를 한껏 뿜어내며 차체 옆을 열더니 그 안에서 기계팔 한 쌍이 펼쳐졌다.
아직이라는 듯 영애는 D-패드의 화면을 한 번 눌러 묘지 패널을 열었다. 그리곤 빠른 속도로 다섯 번을 연달아 터치했다.
필드 중앙 위 허공에 푸른 패널이 펼쳐지며 [앤틱 기어 발리스틱 슈터], [무한기동 골라이어스], [기아기간토 X],그리고 [머시너즈 기어프레임]과 [무한기동 하비스터]까지.
다섯 장의 몬스터가 패널에 표시됐다.
"스크레이퍼의 효과로 자신을 제외해 다섯 장의 몬스터를 덱으로 되돌리고 덱에서 두 장을 드로우하겠사와요!
-"이렇게 되면... 흐으으음..."
-박영애/패 3장 → 5장
"나 1학년 때 열차라고 하면 그냥 후공 풀스윙 하나밖에 못하던 거 같은데."
"준오 네 엑조디아 빼고는 다 발전하나보다."
그렇게 몬스터를 늘어놓고도 도로 수복된 영애의 패를 보며 준오는 혀를 내둘렀다.
저 정도로 패가 많다면 선턴에 세워둔 포진이 무너진다고 해도 두 번째 페이즈 역시 충분히 내밀 수 있겠지.
그걸 감안해도... 지금 남해의 라이프는 너무 높은 것 같았지만.
"이제 앵거너클의 효과로... 패의 [앤틱기어 박스]를 묘지로 보내 묘지의 카넬을 소생시키겠사와요.
그 다음 레벨 10 카넬과 하비스터를 오버레이, 망설임 없이 올곧게 나아가요! [No.81 초노급포탑열차 슈페리어 도라] 도착이와요!!"
끼이이이이익... 영애의 등 뒤에서 초대형 열차포 하나가 나타났다.
확실히 직접 눈 앞에서 보니 위압감이 다르다. 용연이 그렇게 생각하던 무렵 연기 속에서 열차포 '하나가 더' 나타났다.
하나가 더?
그리고 그 양 옆으로 열차가 또 한 대, 또 한 대 멈춰섰다.
그렇게 네 대의 열차가 종대로 멈춰서자 그제야 슈페리어 도라라고 생각한 열차포들의 뒤에서 서서히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용연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주군?"
"왜?"
-"저 처자는 참 만날 때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군요."
'저것' 따위가 슈페리어 도라가 아니다. '저것들'을 고작 부속지로 쓰는 저 괴물이 슈페리어 도라였다.
남해도 그 거체를 확인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감에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No.81 초노급포탑열차 슈페리어 도라/Rk10/3200/4000]
"이제 슈페리어 도라의 효과로 앵거 너클을 지정하고! 카드 하나를 세트한 다음 턴을 마치겠사와요!"
-박영애/LP 8000/패 3장
-강남해/LP 25300 → 41300
-"강남해 선수 결국 라이프 4만 돌파!!"
-"올해 나온 듀얼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의 라이프인데요! 아니, 이거는 올해가 아니고 작년이랑 재작년 기록까지 합쳐도 제일입니다!"
남해는 할 말이 없었다. 라이프가 이 정도라면 통상적으로 게임이 끝날 데미지를 다섯 번 입어도 마지막 원찬스가 남는다.
이 정도면 객기가 아니다. 틀림없이 저런 일을 벌일만한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다.
세트 카드는 고작 한 장. 필드를 완봉할 수 있는 구축도 아니다.
남해는 영애의 필드를 스윽 둘러보다가 영애와 눈이 마주쳤다. 영애는 눈이 마주치자 밝고 자신만만한 미소로 답했다.
"흐흥."
그래. 영애의 뒷배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저 필드를 상대할 것인가?
우선 스스로를 코스트 삼아 효과의 발동을 무효로 하는 레귤러스가 있다.
필요한 몬스터에게 절대내성을 부여할 수 있고 수비력도 4000에 달하는 도라도 영애의 등 뒤에서 마치 성벽처럼 서있다.
여차하면 앵거 너클도 다른 대형 몬스터랑 교대할 수 있을테지. 세트 카드는 덤.
"내 차례다. 드로우!"
드로우한 카드를 확인한 남해는 그 카드를 패에 넣고 다른 카드를 먼저 뽑았다.
"먼저 레귤러스를 대상으로 [참기 서브트라]의 효과 발동. 레귤러스의 공격력을 1000 내리고 서브트라를 특수 소환한다."
[참기 서브트라/Lv4/1000/1000]
남해의 필드에 주황색 로봇이 데이터 조각을 휘날리며 나타났다. 레귤러스의 효과는 아직 격발되지 않고 있다. 좀 더 결정적인 순간을 노리고 있는 모양이겠지.
-세리온즈 "킹" 레귤러스/A 2800 → 1800
"그 다음 패에서 [파이어월 디펜서]를 일반 소환. 그리고 디펜서를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1 [링크 디코더]를 링크 소환!"
[링크 디코더/Lnk-1/300/↓]
남해가 패 한 장을 더 뽑아들었다. 파이어월 디펜서가 애로우 헤드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디코드 토커를 닮은 작은 몬스터가 링크 게이트 안에서 뛰어나왔고, 게이트 반대편에서는 파이어월 디펜서를 닮은, 그러나 좀 더 크고 드래곤스런 형상을 한 몬스터가 날아올랐다.
"디펜서의 효과로 덱의 [파이어월 팬텀]을 특수 소환!"
"거기에 대해 체인이와요! 세트 카드 [머시너즈 오버드라이브]를 도라를 대상으로 발동, 그리고 오버드라이브의 효과에도 도라의 효과를 체인하겠사와요!"
도라의 효과는 대상으로 찍은 카드에게 내성을 부여해준다. 그리고 그 내성은 피아를 가리지 않는다.
오버드라이브의 효과는 대상과 다른 이름의 [머시너즈] 몬스터를 덱에서 특수 소환한 다. 그리곤 대상이 됐던 그 몬스터는 파괴된다.
두 효과를 한 번씩 읽어본 낙랑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저러면 막히지 않아...? 파괴가 안 되는데."
"그냥 효과를 받지 않는 것 뿐이니까 비대상이든 대상이든 짚을 순 있지. 그 다음 처리가 안 되는 거 뿐이야."
"하지만 파괴가 안되면 소환도 안 되지 않아?"
"대부분 카드는 그렇지. 하지만 오버드라이브의 효과는 [소환하고, 대상 몬스터를 파괴]하는 효과야. 소환이 먼저 처리되니까 파괴되지 않아도 상관 없어."
슈페리어 도라에 연결된 열차포 하나가 과부하된 듯 혼자 덜컹거리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곧 슈페리어 도라의 전신에서 웅웅거리는 엔진음이 났다. 과부하된 엔진열은 옆의, 그 옆의, 그리고 한 끝의 열차포로 보내졌고 이내 조용해졌다.
아무 일도 없던 듯 고고하게 서있는 거인의 앞, 영애의 듀얼 필드로 몬스터 하나가 소환됐다.
"소환할 몬스터는 [머시너즈 카넬]이와요!!"
[머시너즈 카넬/Lv10/3000/2500]
"소환에 체인 있으신가요?"
장미는 영애의 플레이에 내색하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만족했다. 지금 남해의 플레이는 예선전에서의 그것과 거의 비슷하다. 일반 소환권도 썼고 나올만한 전개 파츠들도 여럿 늘어섰다. 이쯤에서 한 번 스윙해버리면 꽤나 아프겠지. 드래스틱 드로우 같은 2회차 시도? 그걸 위한 레귤러스다.
영애의 눈이 반짝거렸다. 장미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였다.
영애는 남해가 아직 남겨둔 비장의 수가 있기를 바라는, 그리고 반드시 있다고 믿는 눈이다. 남해에게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면 다음 선택지는 하나.
"슈페리어 도라를 대상으로 카넬의 몬스터 효과 발동!"
카넬의 체인소드가 키이이잉-!!하는 고음과 함께 맹렬하게 작동했다. 적 뿐 아니라 공기마저 찢어버릴 듯 격렬한 소음.
남해는 그제야 D-패드를 터치했다.
"그쪽에 체인 있어. 필드의 서브트라, 패의 [도트스케이퍼]를 묘지로 보내고 패에서 [금지된 일적] 발동."
영애의 손이 멈췄다. 빠찍-!! 하는 소리와 함께 카넬과 레귤러스가 방전되고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어... 어라?"
-세리온즈 "킹" 레귤러스/A 1800 → 900
-머시너즈 카넬/A 3000 → 1500
남해는 한 번 심호흡을 하고 패에서 카드 하나를 더 꺼냈다. 뒤이어 D-패드의 묘지 칸에서 카드 하나가 스윽 밀려나왔다.
"묘지로 보내진 [도트스케이퍼]를 자신의 효과로 부활시킬게. 체인 없지?"
초동 전개가 견제 당하는 일은 남해에겐 정말로 익숙한 일이었다.
특히나 남해는 예선 뿐 아니라 와일드카드전까지 치루며 가진 수가 더 많이 노출됐으니까. 그러니까 이 정도는 예상 안.
디코더의 등 뒤에 링크 게이트가 열렸다. 도트스케이퍼와 파이어월 팬텀이 상단 마커와 하단 마커 안으로 빨려들어갔고 링크 게이트 안에서 [코드 토커]가 등장했다. 그리고 손에는 검 대신 창이 들려있었다.
[코드 토커 인버트/Lnk-2/1300/↔]
"팬텀과 [코드 토커 인버트]의 몬스터 효과 발동! 먼저 팬텀의 효과로 덱에서 [사이바넷] 카드 한 장을 패에 넣고 다시 패 한 장을 버린 다음, 패에서 [동글도토리]를 특수 소환해서 도토리의 효과로 [동글 토큰]을 특수 소환한다!"
남해는 계속해서 D-패드를 터치했다. 어느새 남해의 눈빛도 승부욕으로 불타는 그 눈이 되었다. 객석의 낙랑은 그 눈을 보고 안심했다.
"동글도토리와 링크 2 코드 토커 인버트를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3 [트랜스코드 토커]를 링크 소환!"
트랜스코드 토커가 저격 소총을 들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이윽고 트랜스코드 왼편에 링크 게이트가 하나 열렸다. 창 없이 맨 몸이 되버린 인버트가 그 안에서 나타났다. 인버트는 그대로 트랜스코드의 앞으로 달려나가 디코더의 발 아래에 생긴 링크 게이트 안으로 디코더와 함께 들어갔다.
"트랜스코드의 효과로 묘지의 인버트를 트랜스코드의 오른쪽에 부활시킨 다음, 링크 디코더와 인버트를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3 [슈팅코드 토커]를 링크 소환한다!"
트랜스코드와 닮은, 그러나 확연하게 대비되는 푸른 갑옷의 토커가 활시위에 손을 얹으며 남해의 필드로 걸어나왔다. 그 뒤에는 몸 곳곳에서 지직거리는 소릴 내는 저화질 모습의 링크 디코더도 있었다.
링크 디코더와 동글 토큰이 데이터로 분해되며 한 번 데이터 스톰을 일으켰다. 데이터 스톰 안에서 파도치는 소리와 함께 푸른 마법사가 나타났다. 마법사가 지팡이를 한 번 휘둘러 머리 위로 도트스케이퍼를 소환했다.
그리고 도트스케이퍼가 촉매가 되어 마법사와 도트스케이퍼는 방금 모습처럼 데이터 스톰을 일으켰다. 칼바람 소리와 함께 녹색 갑옷을 입은 토커가 필드에 나타났다.
[트랜스코드 토커/Lnk-3/2300/↕→]
[슈팅코드 토커/Lnk-3/2300/←↕]
[엑스코드 토커/Lnk-3/2300/←↑→]
"엑스코드 토커의 효과로 양 끝의 몬스터 존을 봉쇄한다!"
이건... 장미도 생각 못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면 앵거 너클의 효과를 쓰려면 자신을 코스트로 써야한다. 하지만 앵거 너클은 엑스트라 몬스터 존에 있으니 메인 몬스터 존에선 자리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앵거 너클은 공격력이 한참 낮은 과녁에 불과하다. 여기에 앵거 너클이 파괴되어도 묘지의 카넬은 빈 곳이 없으니 부활할 수 없을테고.
[슈팅코드 토커/A 2300 → 2800]
[트랜스코드 토커/A 2300 → 3300]
[엑스코드 토커/A 2300 → 2800]
"배틀. 슈팅코드 토커의 몬스터 효과 발동! 링크 앞의 몬스터는 트랜스코드와 카넬의 두 장. 그러므로 공격 기회는 세 번!"
"그 효과에 체인! 레귤러스의 몬스터 효과 발동이와요!"
효과가 막힌 레귤러스가 효과를 막을 수 있을 리 없다. 영애 스스로 최대한 입을 데미지를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슈팅코드 토커로 앵거 너클을 공격! 클로즈 슈팅!!"
"앵거 너클의 효과도 발동이와요! 데릭크레인, 부탁하겠사와요!!"
파악-! 슈팅코드 토커가 쏜 화살에 데릭크레인의 전면부가 일격에 관통당했다. 앵거 너클은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불꽃을 뿜어내며 폭발했다. 슈팅코드 토커의 화살 끝은 방향을 돌려 도라 옆의 카넬을 노렸다.
팍-!! 카넬 역시 단 한 발로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며 무너졌고 상반신이 땅에 추락하자 완전히 산산조각나며 필드에서 사라졌다.
파팍-!!! 데릭크레인의 파괴와 함께 충원된 두 번째 카넬 또한 슈팅코드의 화살에 헤드 파츠가 박살나며 마치 고철 더미처럼 우르르 무너져내렸다.
-박영애/LP 8000 → 6700
"그 다음은..."
남해는 말꼬리를 흐렸다. 슈페리어 도라의 수비력은 4000에 달한다. 코드 토커 몬스터들의 공격력으로는 도저히 손도 댈 수 없는 수치다.
만일 이 덱에도 공격력 4000, 5000은 가볍게 낼 수 있는 몬스터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용연의 말마따나 혼자 그럴 수 있는 몬스터는 지금 이 덱에 들어있지 않다.
"배틀 페이즈를 마치겠어. 슈팅코드 토커의 효과로 덱에서 카드 세 장을 드로우한다."
-강남해/패 없음 → 3장
남해도 돌파할 수단이 아주 없진 않다. 게다가 지금 자신의 라이프는 4만이 넘는다. 좀 더 여유를 가져도 좋겠지.
남해는 드로우한 카드들을 한 번 훑어보고 [End Phase] 패널을 눌렀다.
"그럼... 턴 종료."
-강남해/LP 41300/패 3장
영애가 생각 못한 방식의 플레이였다. 더 깔끔하게 대처할 방안이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아. 오히려 이쪽이야말로 기대하고 기다려온대로다. 자기가 호적수로 결정해둔 사람이니까 이 정도는 당연한 일이다.
-"박영애 선수 이 정도면 기회 충분합니다!"
-"슈페리어 도라도 아직 건재하고 패도 충분히 있습니다. 받는 턴에 할 플레잉에 따라서 필드 흐름 다시 가져올만 하거든요!"
"전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겠어요! 드로우랍니다!"
[Draw Phase] 패널이 빛났다. 영애는 정면의 남해를 향해 그렇게 외치며 카드를 뽑았다.
"먼저 묘지의 [머시너즈 오버드라이브]의 효과 발동이와요.
묘지의 레귤러스, 기어프레임, 그리고 박스를 덱으로 되돌리고 덱에서 한 장 드로우하겠사와요."
D-패드의 자동 셔플 기능과 함께 영애의 덱이 사라락 소리를 내며 섞였다.
그 다음에는 다 섞인 덱 맨 위에서 카드 한 장이 스윽 밀려나왔고, 영애는 방금 뽑은 카드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냈다.
"패에서 [폭주궤도 플라잉 페가수스]를 일반 소환이와요! 플라잉 페가수스의 효과 발동, [중기화열차 데릭크레인] 재생이와요!"
날개달린 말이 끄는 열차가 영애의 필드로 스윽 내려왔다. 말에 탄 기수가 저 높이 검을 치켜들자 바닥에 차원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끼이이익...하는 쇳소리와 폐차 직전의 모습이 된 데릭크레인이 마치 짐짝처럼 올라왔다.
"플라잉 페가수스의 두 번째 효과로 두 몬스터의 레벨은 같아진답니다!"
"그러면 레벨 10 몬스터가 두 장이니..."
"네, 맞사와요. 뜨거운 열정을 싣고 종점까지 달려서, 랭크 10 [초노급포탑열차 구스타프 맥스]! 엑시즈 소환이랍니다!"
[초노급포탑열차 구스타프 맥스/Rk10/3000/3000]
끼기기기긱... 끼이이익... 도라보다는 한 체급 작지만 여전히 올려다볼 정도로 거대한 몬스터가 그 옆에 스으윽 미끄러지듯 달려왔다.
영애와 처음 만났을 때 봤던 그 카드. 고급진 듀얼링에서 본 생생한 현장감도 그때 그 플레이도 남해에겐 잊기 어려운 기억이었다.
설마 라이프가 4만이 넘는 자신에게 그때 같은 플레이를 할 리는 없을테지만... 불현듯 돌아오는 불안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때 그 카드네."
"네, 그래요. 구스타프 맥스의 몬스터 효과 발동이랍니다. 받아주시와요. 빅 캐논!"
끼익... 끼이이익... 덜컹. 구스타프 맥스의 주포가 저 높이 올라갔다. 이윽고-
쿠움-! ...콰아앙-!! 심장이 떨어질 것 같은 발포음이 들리고, 잠시 후 천지를 뒤집을 것만 같은 대폭발이 남해를 덮쳤다. 남해는 귀가 먹먹한지 눈을 크게 뜨고 숨을 몰아쉬며 몸을 움찔거렸다.
-강남해/LP 41300 → 39300
"후, 후아... 휴우... 윽."
"많이 놀라셨나요? 아직이랍니다! 랭크 10 초노급포탑열차 구스타프 맥스를 엑시즈 체인지!"
구스타프 맥스의 거체를 연료삼아 은하가 나선형으로 폭풍처럼 몰아쳤다.
은하수가 걷히면서 성운을 헤치고 선로를 달려서 도라에 버금갈 초대형 열차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열차는 한 대가 아니라... 한 쌍이었다. 아니, 더는 열차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열차가 아니라 바퀴가 달린 요새에 더 가까웠다.
-"주군."
"왜...?"
-"소생이 오늘 놀랄 일은... 방금 그게 마지막일거라 생각했습니다만..."
용연이 말꼬리를 흐렸다. 남해도 같은 마음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남해는 가슴팍에 성호를 긋고는 그 손으로 주먹을 꽉 쥔 채 자신의 가슴에 갖다 댔다.
"선로도 포탄도 마음도! 닿을 때까지 폭주하는 것이와요!! 엑시즈 체인지, 랭크 11 [초노급포탑열차 저거너트 리베]!!"
[초노급포탑열차 저거너트 리베/Rk11/4000/4000]
남해도 용연도 그 몬스터 앞에서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집채만한 도라조차 저 괴물 옆에서는 어른 옆의 아이처럼 보이고 있었으니까.
남해의 필드에 서있는 세 코드 토커들도 놀라서 굳어버린 것 마냥, 고개를 저 높이 들고 눈 앞에 보이는 강철의 거대괴수에게 그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남해는 한참이나 넋을 놓고 그 몬스터를 쳐다보다가 다시 D-패드로 시선을 옮기고 그 효과를 확인했다.
"그 다음 묘지의 앵거 너클과 플라잉 페가수스를 제외해서 패에서 [기관 연결]을 장착시키겠어요.
여기에 패의 [엑시즈 유닛]도 장착하면 랭크에 200을 곱한 만큼 공격력이 또 오른답니다. 추가로 [정크 어택]까지 장착이와요."
-초노급포탑열차 저거너트 리베/A 4000 → 10200
"여기에 [헤비 포워드]를 발동, 이 카드를 리베의 아래에 겹친 다음 마지막으로... 저거너트 리베의 몬스터 효과 발동이와요. 소재 하나를 제거하는 것으로 이 턴 저거너트 리베-폭주하는 사랑-에게 공격력을 2000 더 높이겠사와요!! 라이덴샤프트 셋젠!"
-"이렇게 되면 지금 저거너트 리베의 공격력은 12200!! 올해 최고 기록인 16강 프라임 포톤의 공격력 11200점보다 1000 포인트 더 높습니다!!"
-"작년 최고 기록인 12000점보다도 높은 공격력이에요!"
-"야아아아 박영애 선수! 라이프가 4만이 넘는데도 뒤도 안 보고 달린 이유가 이거였나요!!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초노급포탑열차 저거너트 리베/A 10200 → 12200
여기에 저거너트 리베에겐 자신의 소재 숫자만큼 몬스터에게 추가로 공격할 수 있는 효과까지.
남해는 저 카드가 바로 영애의 '믿는 구석'이구나 깨달을 수 있었다.
곧이어 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것처럼 [Battle Phase] 패널이 빛났다.
"그 뜨겁고 고결한 마음을 여기서 폭발시키자구요! 저거너트 리베로 모든 몬스터를 공격하겠사와요!"
철컥철컥철컥... 철커덕.저거너트 리베의 포탑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든 포탑이 남해의 필드 우측을 향해 그 포문을 돌렸다.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 필드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럼 받아주시길. 버닝 빅뱅!!"
영애의 외침을 신호로 저거너트 리베의 전신에서 포탄이 빗발쳤고 폭염이 남해의 필드를 난타했다.
트랜스코드 토커가 권총을 꺼내 포탄 하나를 요격했다. 두 발, 세 발째의 포탄이 작렬했다. 네 발째의 포탄이 작렬하고 트랜스코드의 팔이었던 것이 포탄의 잔해와 함께 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엑스코드 토커도 방패를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방패는 들고있는 팔째로 삭제당했다. 두 발째의 포탄에 우측 하반신이 데이터 잔해로 사라졌고 채 쓰러지기도 전 세 발째 포탄의 폭염이 엑스코드 토커의 나머지를 집어삼켰다.
슈팅코드 토커도 무언가 하려 했지만 그럴 필요 없었다. 저거너트 리베의 주포탄이 슈팅코트 토커의 몸을 관통했다. 슈팅코드는 말 그대로 산산조각났고 이어진 폭발 속에서 그 잔해들도 완전히 증발했다.
남해에게 후두둑 정크가 되버린 데이터 파편들이 쏟아졌다. 툭, 투둑하고 바닥에 떨어진 데이터 더미는 금새 소멸했다.
-"박영애 선수 단 한 차례 동안 라이프를 3만점 넘게 깎았습니다!!"
-"이건 네 명을 꺾고도 데미지가 남는 수준인데요!!"
-"강남해 선수 정신 차려야죠. 지금 전쟁영화에서 쉘 쇼크 당한 군인 같은 얼굴입니다."
-강남해/LP 39300 → 7150
"네, 턴 종료에요."
-박영애/LP 6700/패 없음
"끝났네."
장미는 카메라에 비춰진 남해의 눈동자를 보고 혼잣말했다.
한 장의 절대적인 파워 카드 앞에서 어중간한 카드들이 여럿 모여봐야 한계는 크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받아칠 수 있을지 모른다.
허나 교환비가 밀리기 시작하는 이상 그것도 잠시, 이내 힘의 차이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뿐.
고만고만한 중견급 몬스터 뿐인 덱을 들고 나올 때부터 예상했던 흐름이다.
-"자 이제 강남해 선수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지금 저거너트 리베의 공격력이면 어니스트 같은 카드라도 없이 정면돌파는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여차하면 도라로 내성까지 부여할 수 있어요. 사실상 턴스킵 하라고 들이대는 수준입니다."
-"사이버스족 소환 제약이 많은 덱 특성상 파괴수 계열 몬스터도 없을 거고요. 이거 강남해 선수 묘책이 있을지, 아니면 이대로 깔려버릴지!"
남해는 말없이 저 앞의 저거너트 리베를 올려다봤다.
이 듀얼의 한참 전부터 에이스 몬스터의 필요성은 느꼈다. 그러나 저렇게 혼자서 승부의 향방을 가를 비장의 수를 대면하니 그 빈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도 언젠가는 그런 한 장이 없어서 무너지는 듀얼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다.
영애는 이걸 믿던 거구나. 저 카드라면 남은 라이프가 얼마라도 이길 수 있다고 믿었구나. 남해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다.
이 덱은 남해에겐 승리의 상징이다. 그러니까 자신도 이 카드들과 함께라면 승리를 붙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아무리 강한 몬스터가 가로막는다고 해도 말야.
"내 차례다. 드로우! 묘지의 [도트스케이퍼]를 게임에서 제외하고 패에서 [스크립튼]을 특수 소환. 거기에 도트스케이퍼는 자신의 효과로 필드로 복귀한다!"
[스크립튼/Lv5/1500/1500]
거기에 그런 걱정을 했다면 대비책도 준비해두는 것이 상식. 오늘의 이 덱에는 비장의 카드도 들어있다.
"여기에 패에서 [사이버스 가제트]를 일반 소환해서 묘지의 동글도토리까지 부활시킨다. 그 다음 사이버스 가제트와 도트스케이퍼, 동글도토리를 링크 마커에 세트!
소환 조건은 효과 몬스터 둘 이상! 링크 3 [디코드 토커]를 링크 소환!"
[디코드 토커/Lnk-3/2300/↙↑↘]
남해의 필드에 링크 게이트가 열렸다. 그 안에서 검은 갑주를 입은 검사가 남해의 필드에 등장했다.
남해가 기억하는... 원래 세계에서 본 단 셋 뿐인 링크 몬스터. 그 중 하나인 [디코드 토커]였다.
"후, 하아... 그래. 할 수 있어."
언젠가는... 결정적인 한 장이 없어서 무너지는 듀얼도 있을지 모른다. 그래, 그럴지도 몰라.
그렇지만 그 듀얼이 이번 듀얼은 절대 아니야.
"묘지로 간 가제트의 효과로 가제트 토큰을 특수 소환한 다음, 패에서 장착 마법을 디코드 토커에 장착한다. 그럼 이제 배틀!!"
남해의 외침에 디코드 토커가 검을 고쳐쥐고는 저거너트 리베를 향해 질주했다. 듀얼을 지켜보던 준오와 원형이 당황한 표정이 됐다.
저거너트 리베의 차체 곳곳에 난 포탑들이 디코드 토커를 요격하기 위해 포탄을 응사했다. 아슬아슬하게 이리저리 포탄을 피하며 디코드 토커는 계속 저거너트 리베와의 거리를 좁혀갔다.
"저게 무슨..."
-"강남해 선수 무슨 생각이죠 대체?!"
-"디코드 토커의 공격력은 2300. 지금 저거너트 리베와의 공격력 차이는 9900으로 1만에 가깝습니다! 강남해 선수, 비장의 한 수라도 쥐고 있는 건가요?!"
남해는 필드의 몬스터들을 보고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그 전 차례에 하필 엑스코드 토커를 소환한 이유가 있었다. 필드에 있는 슈페리어 도라의 위치는 3번 몬스터 존이었다. 그리고 엑스코드 토커가 소환되던 순간 영애의 필드에서 비어있던 몬스터 존은 양 끝의 1번과 5번 몬스터 존이었다.
슈페리어 도라는 남해가 치우지 못했고 양 끝의 몬스터 존은 막혔다. 그렇게 되면 사용할 수 있는 몬스터 존은 단 둘 뿐. 엑스트라 덱에서 소환된 몬스터가 엑스트라 몬스터 존에 소환될 수도 있겠지만 링크 몬스터가 포함된 덱을 쓴다면 그 자리는 가능하면 비워두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 디코드 토커의 마커 앞의 몬스터는 총 셋! 따라서 공격력은 1500 포인트 오른다!"
-디코드 토커/A 2300 → 3800
"그, 그래도 턱없이 모자르잖아요! 이대로라면 당신의 패배이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몬스터의 공격력 차이는 아직도 8400. 남해의 라이프인 7150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였다.
어느새 필드를 질주하던 디코드 토커는 거의 저거너트 리베의 코 앞까지 닥쳐왔다.
콰앙-!! 그 순간 디코드 토커에게 저거너트 리베의 주포탄이 작렬했다. 원형은 못보겠다는 듯 양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장착한 몬스터가 상대 몬스터와 전투할 때 [참기도 나유타]의 효과 발동!! 덱에서 참기 몬스터를 묘지로 보내고 그 수치만큼 공격력을 올린다!
거기에 나유타의 효과를 체인 1로 하고, 패의 속공 마법 [일곡집중] 발동!!"
남해는 이 순간만을 노렸다.
홀수 몬스터 존이 모조리 막힌다면 당연히 짝수 몬스터 존을 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짝수 몬스터 존은 둘 다 정면에 엑스트라 몬스터 존이 위치한다.
"디코드 토커의 링크 앞에 있는 몬스터의 레벨과 랭크를 전부 합치면 17!! 따라서 일곡집중의 효과로 6800점 상승!! 여기에다 나유타의 효과로 공격력이 500 더 상승해!!"
-초노급포탑열차 저거너트 리베/Rank 11
-스크립튼/Lv 5
-가제트 토큰/Lv 2
-디코드 토커/A 3800 → 11100
디코트 토커는 폭발 속에서 상처 하나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히려 그 폭발을 추진력 삼아 아주 높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디코드 토커가 들고있던 검에서 불꽃이 걷히며 새하얗고 아주 거대한 대검의 형태로 변했다.
"1만 넘겼다!!"
"아아아악!! 그래도 모자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원형이 준오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디코드 토커는 칼 끝을 아래로 향하고 마치 유성처럼 저거너트 리베를 향해 떨어졌다.
"그래도 제 몬스터 쪽이 한수 위랍니다! 불꽃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일 그만 두시와요!!"
"그리고 이 순간 묘지로 간 참기 몬스터의 효과 발동."
디코드 토커의 등 뒤에 금색 포인트가 들어간 검은색 부스터 한 쌍이 생겼다.
파앙-!!! 두 부스터가 분홍색 불꽃을 뿜었다. 디코드 토커는 공기를 찢는 폭음과 함께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로 가속을 붙였다.
"멀티플라이어가 묘지로 보내졌을 경우, 엑스트라 존의 내 사이버스 족 몬스터 하나의 공격력을... 두배로 늘릴 수 있어."
-"이렇게 되면 디코드 토커의 공격력은..."
"22200!!!"
-디코드 토커/A 11100 → 22200
콰아앙-!!디코드 토커는 마치 포탄처럼 저거너트 리베의 선두로 떨어졌다. 디코드 토커가 떨어진 부분이 마치 운석이라도 맞은 양 푹 패여있었다.
디코드 토커는 깊숙하게 꽂힌 대검을 뽑는 대신, 그대로 검자루를 쥐고 저거너트 리베의 위를 질주했다.
"가라아아아아아!!!"
디코드 토커의 대검이 두텁고 튼튼한 저거너트 리베의 장갑 위를 마치 종이 위에 붓으로 선을 긋는 것처럼 지나가며 거대한 선을 그었다.
두 부스터의 애프터버너가 점화됐다. 시야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의 거체를 순식간에 주파한 디코드 토커는 두 손으로 대검을 쥔 채 바닥으로 착지했다.
"아... 아아.... 앗..."
저거너트 리베의 패널라인이 모조리 암전됐다. 덩치에 걸맞지 않게 부드럽게 움직이던 포탑들도 침묵했다. 불길한 침묵 속에서 드럼통 찌그러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균열 안으로 저거너트 리베의 동체가 말려들어갔다.
또캉... 치이익... 이윽고 균열 사이에서 새카만 매연 한덩이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콰아아아아앙-!!!
이윽고 저거너트 리베는 균열에서 지금껏 발사한 어느 포탄보다도 커다란 굉음을 울부짖으며, 어떤 탄막보다도 커다란 불꽃을 일으키며 폭침했다.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았고, 그 어떤 몬스터에게도 패배하지 않을 것 같던 초거대요새가 남해와 영애의 눈 앞에서 두동강났다.
"이 승부, 내가 가져간다!!"
-박영애/LP 6700 → 0
빠아아아아앙-!!
-"8강 1경기! 승자는 강남해 서, 선수!! 강남해 선수입니다!!"
-"이번 듀얼로 올해 최고 수치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갱신됐어요!!!"
-"한 턴만에 라이프 3만을 깎는 화끈함, 그리고 그걸 공격력 2만으로 맞받아치는 패기까지!! 진짜 기대 이상으로 폭발적인 경기력이었습니다!"
영애는 저거너트 리베가 폭발하는 모습을, 무너져가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봤다. 장미는 믿을 수 없는 거라도 본 것처럼 동공과 몸을 같이 떨었다.
엑스코드 토커로 양 끝을 막은 건 이걸 노린 거였구나. 짝수 존은 어디에 몬스터를 세워도 디코드 토커의 링크 앞이 될 수밖에 없고, 대형 몬스터 투성이인 어스머신은 일곡집중에게 카운터 당하기 너무 쉬운 구성이니까.
아냐, 방금 여기서 도라로 디코드를 찍었으면 막았을텐데? 그랬다면 디코드의 공격력은 리셋된다. 그러면 해결이잖아. 설령 디코드의 효과로 막아냈어도 카넬의 트리거가 된다. 그 다음 카넬로 리베를 자괴시키면 적어도 수비 표시의 카넬이 벽이 될테니 이번 차례는 넘겼을 거야. 하지만 영애가 그걸 떠올리지 못했을 리 없어. 왜?
"설마..."
남해가 패에 넣었지만 게임 끝까지 쓰이지 않았던 그 사이바넷 카드. 묘지에서 격발시킬 수 있는, 그리고 팬텀으로 패에 넣자마자 버린 그 카드구나. [사이바넷 리프레시]!
그 카드라면 도라로 찍어도 흘려보낼 수 있다. 요격이 아니니 도라는 파괴되지 않고, 묘지의 카넬을 꺼낼 기회도 오지 않는다.
대체 어디까지, 어디부터 설계했는지는 모르지만... 말문이 막힐 정도의 플레이였다.
"이겼다아아아아!!"
"남해 최고다!!!"
객석의 준오와 원형은 환호했다. 낙랑도 십년감수한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잘 해냈다는 듯 화면에 비춰지는 남해의 얼굴을 봤다.
청코너에 우두커니 서있는 영애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졌다. 슬프다. 분하다. 하지만 후련하기도 했다. 당장이라도 터져나올 것 같은 눈물을 억누르고 영애는 남해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엑. 어."
목도 아프고 귀청도 떨어질 것 같다. 번쩍이는 폭발과 빛나는 특수효과들을 워낙 많이 본 탓에 눈도 아프다.
그런 상황에 톡 치면 터질 것만 같은 모습의 영애가 자길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영애는 남해의 앞에 서서는 두 손을 모으고 고개숙여 인사했다.
"이번 듀얼 정말 즐거웠어요."
"어? 어... 아, 네.."
남해는 눈치를 살피다가 엉거주춤 비슷하게 손을 모으고 인사했다.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남해가 열심히 방전된 머리를 굴리던 사이 영애가 남해를 향해 기합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를 꺾었으니! 이 다음에 져버리면 용서 안할 거에요! 꼭 가장 높이 올라가서 최고로 멋있게 우승하시와요!!"
설마했던 패배. 그래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 다짐한 패배.
너무 분하고 억울하지만 전력을 다한 승부에서 졌기에 후회는 없다.
남해는 영애의 외침에 잠시 굳어있었다. 이내 듀얼할 때의 진지한 눈을 하고는 고갤 끄덕이며 대답했고.
"응. 당연하지."
객석의 홍영호와 권성균도 필드를 내려오는 남해를 쳐다보고 있었다.
"헷, 보기보다 대단하잖아 저녀석."
"상대가 나라서 그렇지 예선 결승까진 갈 만한 애 맞네."
...
"다음 번에는 반드시, 반드시 승리하는 거에요!"
영애는 장미의 옆에서 이번 듀얼에 대한 이야기를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장미는 그 이야기가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 정도였나..."
이번 대회 전까지... 아니, 와일드카드전 때까지도 장미는 남해를 일년 반짝하고 가라앉은 소포모어 징크스라고 생각했다.
와일드카드로 진출한 것도 운빨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다. 저 애는 강하다. 분명히 강하다.
분명 남해의 모교인 금천고는 포스트시즌 진출 같은 건 꿈도 못 꿀 학교다. 그렇지만 금천이 약체일지언정 저 애는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어쩌면 머지 않은 미래에 저 아이가 자기 앞을 막아설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아니, 아예 이번 대회의...
"야야야야!! 거기서 어떻게 딱 그걸 잡냐!!"
남해 역시 듀얼 필드를 내려와 대기실에서 친구들과 만났다. 그리고 방금 그 듀얼로 한참 활기차게 떠들고 있었다.
"으응? 원형이 너 설마 이게 안되냐? 덱이랑 유대가 부족하네."
"이새기가 진짜."
"원형아 남해 말이 맞는 거 같아 너는- 크아아아아아악"
준오는 원형에게 헤드락 당해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고 있는 남해의 모습은 흔한 고등학생의 모습이었다. 지금 저렇게나마 무거운 짐을 덜고 평범한 학생 같은 시간을 보내는 어린 주군을 지켜보며 용연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남해의 시선이 대기실 천장에 설치된 TV로 향했다. 준오의 머리를 붙잡고 있던 원형은 뭔가의 낌새를 눈치채고 같은 곳으로 고갤 돌렸고 준오도 간신히 숨을 몰아쉬며 비틀비틀 그쪽을 쳐다봤다.
"이제 곧 시작하겠다."
LT유스 8강 2경기.
금선이의 차례가 코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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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접이식 침대]는 최초에는 라꾸라꾸침대라고 부르는 그 저렴한 초저가형 침대를 생각하고 묘사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2년씩 쓰기엔 너무 저렴하고 비리비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편에서 설정을 추가했습니다.
근래에 있던 사건들을 보고 느낀 점으론 연재처를 한 곳 더 늘려야겠다고 생각 중입니다. 단지 마땅한 연재처를 찾지 못해서 그렇지...
슈팅코드 토커는 진짜 가공듀얼 최적화 몬스터 같습니다.
연속 공격을 통해 필드 스윙도 되고, 가공 듀얼 특유의 막대한 패 소모도 어드복사로 보충하는 몬스터지만 내성도 없고 타점도 엄청 높진 않어서 활약한 직후 쓸려나가 긴장감 높여주는 흐름으로 잇기 진짜 좋은 친구네요. 브레인즈 제작진은 얘를 좀 일찍 내서 자주 썼어야 했다...
이번 로그는... 진짜 엄청 만족스럽습니다.
엑스코드 봉쇄를 이용한 큰 그림, 디코드라서 가능했던 마무리, 한 에피소드 내에서 최고 타점도 두 번이나 갱신됐고 마무리 씬의 폭침도 옛날부터 구상해온 장면이라 그런지 생각대로 뽑혔네요.
글 자체가 주인공의 심적 부담이 훨씬 가벼운 전개였기에 흐름의 구상도 상대적으로 가벼웠고요. 크으으으으 이래야 로그지. 오히려 지금 이거보다 남은 로그들을 더 잘 쓸 수가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진짜로요.
이 이상 적고싶은 내용은 많습니다만... 너무 투고가 늦었기에 지금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주말 마무리 편안하게 하시길 바래요.
솔직히 말하면 2시즌 안에서는 깨질 일 없을 거 같고, 3시즌 가도 라이프나 타점이나 저거 못 깰 거 같습니다 아하하항 라뷰린스는... 로그 묘사하기가 너무 끔찍해서 많이... 어려울지도...
화력은 역시 기계의 숙명이란 말인가... 기록이 깨질날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라뷰린스도 분명 보게 될 날이 있는 것이겠지요
솔직히 말하면 2시즌 안에서는 깨질 일 없을 거 같고, 3시즌 가도 라이프나 타점이나 저거 못 깰 거 같습니다 아하하항 라뷰린스는... 로그 묘사하기가 너무 끔찍해서 많이... 어려울지도...
정원사가 나와서 좀 머리 덜 아프게 굴러가면 해결(적당)
땅기계에 사이버스, 둘 다 바로 떠오르는 플레잉의 이미지란 게 있기 마련인데 극한의 타점싸움이라니. 이런 로그야말로 팬픽을 읽는 묘미 아닌가 싶네요
평소랑 달리 로그를 짜고 씬을 연출한게 아니라 씬을 구상하고 로그를 짰던지라 이런 흐름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공 듀얼이라면 생각도 못한 플레이나 카드가 한 번씩 나와서 팟킹하고 빛나주는 것도 즐거움이니까요. 미즈키 던져서 라이프 왕창 뻥튀기하고, 리베로 맞대응해서 3만 까고, 디코드로 받아쳐서 2만 찍고 턴킬하는 듀얼 소설 아니면 어디서 보겠습니까
땅기계와 사이버스의 싸움... 가슴이 웅장해지는 싸움이군요...!!!!!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고 봤습니다. 그리고 구스타프 맥스와 저거너트 리베가 등장하는 장면에선 저도 모르게 머릿속에 "기모찌이이이이!!!!!!" 음성이 자동으로 들려왔습니다.
아 그 마듀 라투디말이군요 포신 연장되는 연출이 잘 뽑히긴 했어요
저도 마스터 듀얼에서 사이버스 덱을 쓰는데 파이어월 시리즈로 집짓거나 죽창(액세스 코드, 멀티플라이어 먹인 네오템페스트 등...)으로 턴킬내는 것밖에 힐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너무 복잡한 전개 없이 낭만 가득한 디코드 토커로 피니시 내는게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마듀에선 대부분 선공잡은 사람이 이기는데 여기서는 필드에서 힘 겨루기를 하다가 하이라이트에 서로의 에이스가 맞부딪히는게 꼭 유희왕 애니를 보는 것 같더라고요. 확실히 기다린 시간에 걸맞는 퀄리티의 글이였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실은 글은 더 일찍 썼는데, 삽화 때문에 더 늘어졌네요 ㅁㄴㅇㄹ... 가공듀얼은 듀얼이란 점에서는 오프나 마듀와도 통하긴 합니다만, 반대로 가공듀얼에 따르는 캐릭터성이나 개연성 같은 이유로 또 다른 흐름이 나오는 즐거움이 있지요. 일반적인 게임은 한 쪽으로 흐름이 쏠리면 스으윽 기울다가 어느 순간 한쪽으로 넘어지는 것이 주된 흐름이지만 그런 예상할 수 있는 흐름이 아니라 나오는 재미도 있는 거잖아요. 댓글 감사합니다. 독자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