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작 '난로회'
위는 업살녹을 즐기는 조상님들의 모습이다
조선시대에는 '난로회' 라는 모임 문화가 있었는데
이는 친구들끼리 경치 좋은 곳에 둘러 앉아 화로를 가운데 두고 소고기를 구워 먹는 행사였다
아쉽게도 철사로 만든 석쇠에 소고기를 구워 먹는 모습은 그림으로 남아있지 않다
물론 우유도 짜 마셨다
농업 기반인 조선시대에 소를 귀하게 여겨서 함부로 도축하지 못해 소고기가 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대의 상식인데
실제 역사적 사실을 들여다 보면 우리가 알던 상식과는 다른 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숙종 당시 승정원일기에는 조선 전역에서 하루 평균 약 1000여 마리의 소가 도축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목민심서에도 정부 도축장에서 약 500마리, 개인이 비슷한 수의 소를 매일 도축한다는 통계가 실려 있다
이를 조선 당시의 인구수인 1500~2000만명에 대입 해 본다면 1인 평균 연간 3kg 정도의 소고기가 돌아 갈 수 있는 양이다
실제로는 부의 격차로 공평하게 분배되지는 못했겠지만 적어도 소고기 구경조차 못할 정도는 아니란 소리...
* 참고로 조선 중기 소 한마리 값은 약 쌀 세 가마니 정도였다고 한다
에도시대 소설 잡지에 수록된 '조선 우육환 유사상표를 조심하세요' 광고
조선 명법 우육환 포장지
조선의 소고기 문화는 17~18세기에 바다건너 일본까지 전파되는데
당시 강력한 육식 금지령을 내리고 있던 일본에서는 조선에서 소고기를 수입하여 알약 형태로 가공한 다음에 '약' 이랍시고 먹었다고 한다
조선에서 정말로 소가 귀했으면 수출까지 할 수 있었을까?
세종 : 하...농촌체험 개힘드네..야 거기 밭가는 소 한마리 잡아봐라
세종 : 하...농촌체험 개힘드네..야 거기 밭가는 소 한마리 잡아봐라
하도 잡아먹어대니 귀한 소좀 그만 잡아먹어라 ㅜㅠ 이래서 소가 귀했다는 말이 나왔다는 카더라가
조선 중기 이후 구제역때문에 소들 싹 날아가고 귀해졌다고 들었는데 어디서..
기본적으론 농사에써야하니함부로잡진못했고 잡은소는 우리처럼3살이전에파는게아니고 젖이나 새끼가안나오는암소가아니었을까싶음 일본이빼간거도있을거고 명에갖다준거도있을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