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유봉은 왜 죽었나?
유비의 뒤를 이은 유선은 고자가 불러온 무당의 말만 믿고
대장군의 지원군 요청을 무시한 등신이었고 그렇기에
차라리 유능한 양자인 유봉이 유비의 후계자가 되었으면 어떨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정사에서 유봉은 왜 죽게된걸까?
1. 입지가 애매해진 유봉
정사에서 유봉은 유선이 태어나기 전에 유비가 양자로 들였다.
즉 유비는 유봉을 이미 40대라서 자식을 보기 힘든
자신의 후계자 후보로 판단하고 양자로 들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선이 태어나고 유비가 형주의 일부와 익주를 손에넣고 안정을 찾자
후계자 후보로 양자가 된 유봉의 입지는 대단히 애매해졌다.
게다가 나이가 어려서 능력을 검증받지 못한 유선과 다르게
유봉은 유비가 익주를 정벌할 때 공적을 세우고 한중 공방전에서도 활약하는 등
군사 방면에서는 대단히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기에 유선의 후계구도를 튼튼히 하려는
신하들에게 견제받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2. 상용으로 떠난 유봉
물론 이러한 애매한 상황에서도 유비는 유봉을 중용했다.
상식적으로 마음에 들지도 않는 젊은이를 아들로 삼지는 않았을꺼 아닌가?
게다가 유봉은 여태까지 큰 사고도 치지 않고 열심히 자신을 위해 싸운 유능한 장수 아니던가?
그렇기에 유비는 유봉에게 맹달을 도와서 교통의 요충지인 상용을 점령하라고 명령한다.
이러한 상용은 장안의 바로 남쪽에 위치한 전략적인 요충지로
형주와 익주의 통로이자 북벌의 진로가 될 수 있던 유비입장에서 정말 중요한 땅이었다.
만약 유봉이 여기서 처신만 잘했다면 촉한에서 나름 중용되면서 능력을 펼치는 노년을 보냈을 수도 있다.
3. 맹달과 싸우는 유봉
맹달은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는 것을 도운 공신이기도 했고
그 명성이 위나라까지 알려졌을 정도의 네임드였으며
동시에 상용을 지키기 위해서 유봉이 반드시 협력해야하는 사람이었다.
헌대 유봉은 맹달과 반목했으며 맹달의 군악대를 빼았는 등 맹달을 탄압했다.
이 당시 군대의 명령은 깃발과 북소리 등으로 전달되었기에
맹달의 군악대를 강탈한 것은 사실상 그의 지휘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소리와 다름 없다.
문제는 이러한 다툼이 그 둘사이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4. 관우의 지원 요청을 무시한 유봉
그리고 유봉이 상용을 점령하지 얼마지나지 않아서 관우가 군대를 몰고 북형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관우는 우금과 그가 이끌던 3만의 병력을 포로로 잡고 방덕을 죽였으며 번성과 양양성을 포위해서 맹공을 퍼부었다.
허나 두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서 병력과 물자가 더 필요했던 관우는 상용의 유봉과 맹달에게 지원군을 요청했지만
서로에게 상용의 주도권을 빼았기기 싫었던 유봉과 맹달은 그 요청을 거부한다.
결국 관우는 서황이 이끄는 1만 2천명을 상대로 5천명을 보내서 싸워야 할정도로 병력부족에 시달리다가
미방의 배신으로 형주가 오나라 손에 넘어가고 형주가 고향이던 군대가 와해되었기에 패배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유봉과 맹달이 제때 구원군을 보냈으면 관우가 안죽었을 수 있었기에 유비는 이 둘을 원망하게 된다.
5. 상용을 빼았긴 유봉
이러한 큰 사고가 있은 후에도 유봉은 맹달과 다투기를 멈추지 않았고
안그래도 유봉이 꼴보기 싫은데 심지어 관우 문제로 유비한테 찍혀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맹달은
자신 휘하의 부곡 4천 가(대략 2만명 쯤)를 이끌고 위에 투항한다.
게다가 맹달이 서황과 함께 상용을 공격하자
상용의 호족이었던 신의와 신탐은 유봉을 배신하고 위나라에 다시 투항하고
유봉은 상용을 빼았기고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유봉은 관우를 구원하지 않으죄 +
맹달을 탄압하여 배신하게 만든죄 +
상용을 잃어버린 죄로 자결을 명령받고 생을 마감한다.
덧붙여서 유비는 유봉에게 자결을 명령하고 굉장히 슬퍼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것도 관우의 죽음과 함께 오나라를 공격한 원인일 가능성도 있겠다.
만약 손권이 그 때 형주를 공격하지 않았다면 자기 손으로 양자를 죽일 일은 없었을테니.
6. 결론
유봉의 죽음은 그가 유비의 양자였기에 제갈량 등의 정치공세에 휘말린 감도 없지는 않으나
애초에 그의 처신이 너무 막장이었다. 애초에 나름대로 거물이었던 맹달과 반목했고
상용을 안정적으로 제어하는데 필수적이었던 호족 신탐/신의 형제를 확실 포섭하지도 못했다.
그러한 그의 처신 덕분에 관우는 병력 부족에 시달리다가 패사하고
유비가 간신히 포섭한 신탐과 신의 형제와 맹달은 위나라로 투항했으며
북벌의 중용한 보급로 + 진격로로 사용할 수 있던 상용은 상실해버렸다.
만약 유봉이 유비와 정말 남남이었으면 열받은 유비가 유봉의 가문을 결딴 낼 수 있을 만큼 피해가 막심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애초에 제갈량이 유봉을 제거할려고 했던 이유도
유봉의 성격이 강맹해서=더러워서 유선의 직위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결국 유봉의 최후는 자업자득이라고 볼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