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을 구성하는 삼군중 육군은 친일파들이 중심이 되서 만들어졌다고 많은 비판을 받아왔음. 해군은 아예 시작부터가 임정출신중심이었고 공군은 창설맴버 7인이 친일파와 독립운동가가 고루 섞여있는데다가 상대적으로 찬밥신세라 거의 논란이 되지 않았고. 그럼 육군은 왜 친일파들이 바글바글하다고 인식하게 됬을까.
해방이후에 미군정은 한국에 군대를 창설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어. 먼저 장교진을 확보하기 위해 군사영어학교를 만들었고, 당시 난립하던 수십개의 군사단체를 통폐합해서 조선경비대를 창설함. 이 군사영어학교를 만들때 미군정은 일본군.광복군.만주군 출신들이 각각 1:1:1의 비율로 들어오길 원했어. 갸들입장에서는 당연한게 조선인으로 일본군에 복무한 사람들의 숫자가 20만에 달했으니까 그중에서 장교경험자들을 쓰는게 합리적이었거든. 거기에 광복군출신들이 국군을 장악하는걸 그리 반기지 않았음.
이 조치에 광복군 출신들이 반발했고 이건 군사영어학교 입교 거부라는 결과로 돌아옴. 그래서 초반에는 군사영어학교의 입교자의 대부분을 일본군 출신이 가져감.
이때 당시 미군정의 군사고문으로 있던 이응준(친일파)이 유동렬(독립운동가)을 설득해서 광복군출신들이 군사영어학교에 들어오도록 조치했다. 그 덕에 그나마 장교진에 광복군 출신들이 들어가게 됨 유동렬은 조선경비대의 통위부장으로 부임했고, 정부수립 후 국방장관에 이범석, 초대 육군총사령관(훗날 참모총장으로 직위 명칭이 변경)에는 송호섭(독립운동가)이 부임하게됨.
보다 시피 초기 국군의 수뇌부는 임정 출신들이 가져갔어. 그런데 왜 한국전쟁때 장군들 보면 죄다 일본군들이냐. 이게 군규모가 확대되면서 사단들이 창설됬고 이 초대 사단장들까지는 원로들로 어떻게 채워넣었는데 사단장 자리가 더 필요 해지니까 군사영어학교를 나온 장교들이 초대 사단장들이랑 자리를 맞바꾸게됨. 이들이 일본군 출신들이었다.
이것도 전부 다 일본군 출신들은 아니었고, 8사단장으로 임명된 이성가(독립운동가) 장군 같은 경우도 있었음. 그리고 기수에 밀려서 초반에 사단장 자리를 못가져간 광복군 출신들도 그 이후에 장군자리들 많이 가져갔음.
창군 초창기에 군경력을 가진 인력을 필요로 하다보니 일본군 출신들을 받아들인건 있을수 있다고 봄. 초대 수뇌부를 구성했던 이범석이나 유동렬같은 사람들 생각은 저러햇을걸로 보임. 그 해군조차도 해병대 창설할때 손원일 제독이 일본군 출신을 스카웃해와서 해병대 창설을 주도했거든.
다만 문제는 경력이나 능력을 보고 자리에 임명하는게 아니라 언제 국군에 입대했나를 기준으로 보직을 주다 보니까 625전쟁 즈음되서는 고급지휘관들 인사가 꼬여 버렸고,
심지어는 초대 육군참모총장 자리도 일본군 출신인 이응준이 가져가게됨. 원래는 송호섭이 있었지만 이 양반이 납북되는 바람에 기록말살형에 처해졌거든.(오마이뉴스가 이응준깔때 기록말살형 이야기는 한마디도 거론 안하더라)
3줄요약
미군정이 임정이랑 사이가 안좋아서 광복군들이 육군 창설 보이콧함.
광복군출신 높으신분들과 일본군 출신 높으신분들 사이는 의외로 친밀했음.
창설 보이콧 때문에 광복군출신들이 기수에 밀리면서 사단장 자리를 일본군들이 가져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