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 갈매기
술만 마시면 북에 두고 온 아들 타령을 하며 눈물을 글썽
이던 덕대 황씨는 아버지 주선으로 장터 한옆에 사진관을
냈다. 이름을 남포사진관이라 짓고, 첫날 우리 식구를 초청
해서 사진을 찍는데, 배경이 남포 선창이었다. 그의 고입으
로 아버지는 상고선과 갈매기를 등에 지고 마도로스파이프
를 입에 물었고, 할머니는 고향 떠나는 아들 배웅 나온 북
도 아낙처럼 무명 수건에 남바위를 썼다. 자아, 인차 우리가
다 남포 부두에 와 있는 기야요, 기적 소리가 들리디요? 슬
프고 애달프지 않아요? 그가 언제 어떻게 자취를 감추었는
지 나는 알지 못한다. 전쟁이 끝났을 때 남포사진관은 없어
져 있었고, 주인은 부역으로 감옥을 산다더라 또는 아들과
아내를 찾아 고향으로 갔다더라 같은 뜬금없는 소문만 나
돌았다. 휴전선 근처에서 총 맞아 죽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남포를 찾은 내 머리에는 마도로스파이프를 문 아버지와
남바위를 쓴 할머니의 영상이 먼저 떠오르면서, 황씨가 어
딘가에서 불현듯 나타나 나 알아보간? 하고 금니를 보이며
웃을 것 같은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사진관 배경 그림과
는 달리 시내 구석구석 호수물이 들어와 있는 듯 아낙네들
이 조각배에 올라 안개가 걷히지 않은 물 위를 느릿느릿 노
저어 가고 있었다. 한산한 거리에 드문드문 국수집 리발소
양복점 간판이 보였다. 나 알아보간? 여기가 바로 그 아름
다운 남포란 말이다!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
는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라는 붉은 글씨 밑
에서 어른거리는 수많은 야윈 얼굴들 속에서 갑자기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서해 갑문에서 듣는 갈매기 소리
는 담 뒤에 숨어 엿보는 사람들의 얼굴과는 거꾸로 밝고 힘
찼다.
고향엘 갔더니 장터 한 모퉁이에 남포집이라는 식당이
새로 생겼다. 벽에는 남포 포구의 옛 사진도 한장 걸려 있
다. 젊은 여주인은 그 사진의 내력을 알지 못했으나 나는
멋대로 그것이 남포사진관과 유관하다고 상상했다. 그러면
서 그 사진에서 마도로스파이프를 문 아버지와 남바위를
쓴 할머니를 이끌어냈다. 남포에서 사진관을 했다는 이력
을 자랑하며 아들 얘기를 하던 덕대 황씨는 어쩌면 지금쯤
저 세상에서 할머니와 아버지를 만나 남포 얘기를 하고 있
겠지. 저 사진에서 갈매기 소리가 들린다니까 여주인은 눈
을 크게 뜨며 반색을 하고, 식당을 나오니 갈매기 대신 동
쪽 하늘에 둥그런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사진관집 이층
신경림, 창비시선 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