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정말 정의로운가?’
오래전
세상은
좀 더 단순했다.
혹자는
그걸 야만적이라고 말하지만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복수할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사적 복수는 금지됐다.
한 가지 의문인 건
이것이
정말 모두를 위한 법이냐는 점이다.
황금으로 성을 쌓은 부자와
가진 건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거지가 싸운다면
법은 과연 누구 손을 들어줄까?
백에 아흔아홉은
비싼 변사辯士를 고용한 쪽이 승리할 것이다.
법은
세상 무엇보다
자본에 최적화됐다.
법은
어떤 정치인보다
정치논리에 밝았다.
고로
사법제도는
조금도 공평하지 않았다.
“ 그래도
민주주의는
역사상 어떤 체계보다 공평하지.”
“ 이건
그럼 확률의 문제인거야?”
“ 그래서
보편적이란 단어의 쓰임새가
무서운 거지.
나는 분하고 억울해도
세상일은
평균치를 따라갈 수밖에 없거든.
백에
마흔아홉 명이 싫어해도
쉰한 명이 좋아한다면
그것은
참이 되니까.”
다수결과 통계의 함정이
여기서 발생했다.
“ 다수결이 나쁘다는 거야?”
“ 옳고 그름이나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지.
이를테면...
개성의 거세라고나 할까?”
대다수 국민은
민주국가의 탄생이
자유와 평등을 촉발했다고 믿지만
그건 착각이다.
인류는
오히려 수직계열화됐다.
쿠도 신이치가 본
고이즈미 신지로는
썩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아주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애초에
선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건
오로지 자기주관일 뿐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대국민 기자회견으로
촛불시국은
새 전기를 마련했다.
각종 음모설이 들불처럼 번졌고
일본 열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은밀한 거래(?)에 초점이 맞춰지자
각국 대사관은
몰려든 시위대로 몸살을 앓았다.
나케 오다 외무성 남미총괄국장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놓고
세간의 관심은
경시청에 집중됐다.
도쿄의 모든 거리가
인파로 혼잡하고
정계와 재계분위기가 뒤숭숭한 것과
반대로
시부야, 긴자, 신주쿠 거리는
오늘도
젊음과 늙음의 열기로 달아올랐다.
뉴스로 바라본
일본은
분명
나라가 뒤집힌 분위긴데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선
예나
지금이나
욕망이 꽃을 피웠다.
여기는
일본이 아닌 다른 곳일까 싶을 만큼
분위기가 천양지차다.
“ 무가 씨는
나케 오다 외무성 남미총괄국장의 죽음이
타살이라고 생각합니까?”
“ 공안 사람들은
그렇게 믿더라고요.”
“ 타살이라면
누가 그랬을까요?”
쿠도 신이치의 질문에
옆에 있던
소노코는
큰 눈동자를 껌뻑이다 말했다.
“ 킬러?”
“ 저항의 흔적은 없었는데 어떻게 죽였을까?”
“ 치명적인 독극물을 주사하지 않았을까?
그 때
신이치 너가
에도가와 코난이 되었던 원인이 된
그 아포톡신 4869 같은
그런 흔적이 안 남는
특수한 독약같은 걸로 말이야.”
그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에 큰 영향을 받는다.
사람을 한 방에 보내버리는
치명적인 독극물을 만드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뭐 농약자살이나
이런 것과 비교하면 곤란하다.
영화나 드라마를 주름잡는 킬러처럼
전문화되고 체계화된 뛰어난 살인기술을 가진 자는
매우 드물었다.
“ 그 검은 조직의
진이나 워커, 키얀티나 코른처럼
칼질이나 총질로 살인하는 건 쉽지.
하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혀.”
그리고
그런 전문가의 공통점은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일은
어지간하면 사양했다.
킬러가
다 제이슨 본이나 007은 아니니까.
“ 너는 그럼 자살이라고 보는 거야?”
“ 병사는 어떨까?”
“ 병사?”
“ 그 외무성 남미총괄국장의 나이도 적지 않지.
감금당한 건 짧은 시간이지만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심장마비로 죽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
과거 80년대 한국에서처럼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명언을 남긴 누구와는 달리
일단
나케 오다의 나이는 적지 않았다.
당연히
심장마비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테니까.
차라테 인질사건의 본질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였다.
아무리
잘 포장해도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미국의 의도라든가
중남미의 복잡한 정치상황이라든가
스펙터의 뒷조종이라든가
여러 변수가 뒤섞여
알 수 없는 화학작용을 일으킨 부분도 있지만
결국은
돈이 목적이었다.
이건 어떻게 꾸며내도
결코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 여기에 양념을 친 게 제너럴 애쉬포드지.”
“ 제너럴 애쉬포드?”
“ 우리는 범죄인도인 혹은 크라임 서스펙트 제로라고 불러.”
일정 이상의 규모를 가진
범죄조직은
기업을 운영하는 것보다
더 세밀한 관리가 필요했다.
예전 갱단과 마피아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했다간
수사당국에 금세 적발될 테니까.
세월과 유행의 흐름에 따라
범죄기술도 빠르게 발전해왔다.
“ 음. 홈즈와 대결하는 모리아티 교수 비슷한 자구나?”
“ 아니,
제너럴 애쉬포드는
딱 어느 한 명을 지칭하는 표현은 아니야.”
“ 아니라고? 그럼?”
“ 일종의 플랜그룹 같은 거지.
한국말인가 일본말론...
동호회?”
“ 허!”
신이치의 마지막 말에
소노코와 모미지
그리고
이오리 무가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 범죄가 취미가 될 수도 있단 말이야?”
“ 소노코.
네 생각보다
이 세상엔
돈 많은 미친놈이 많거든.”
마르지 않고 솟아나는 부를 과시하기 위해
온갖 명품을 수집하고
아름다운 이성과 섹스에 몰두하는 것도
한때다.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쾌락을 섭렵한
그들은
좀 더 자극적인 망상에 빠져들었다.
“ 서로가 계획한 범죄에 베팅하고
완전범죄에 가까울수록
높은 점수를 얻는 거지.”
“ 범죄토토?”
“ 오! 비슷해.
다른 점이라면
돈과 함께
사람목숨도 오간다는 거야.”
“ 미친!”
소노코와 모미지는
두 손으로 입을 가렸고
이오리 무가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세계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과거 공안에 있으면서
많은 흉악사건을 접했던 그는
자기가
꽤 대담한 성격이라고 믿었는데
신이치의 얘길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 FBI나 CIA가 이걸 몰라?”
“ 고위층은 알고 있어.”
“ 근데 왜 잡아들이지 않는데?”
“ 증거가 없거든.
무엇보다
미국인이 아닌 자도 많으니
외교나 관할문제로 번질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겠지.”
“ 국제깡패가
남의 시선을 신경 쓰다니 어울리지 않아.”
소노코와 모미지는
반미까진 아니어도
미국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 그러니까......
차라테 인질사건은 그들이 계획한 거다?”
“ 한 삼십 퍼센트 정도는.”
“ 흠. 삼십 프로는 약한데... 증거도 없다며?”
“ 그들에겐 없지만 우리나라엔 있어.”
신이치의 알쏭달쏭한 말에
소노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입을 벌렸다.
“ 설마.....일본회의?”
“ 괴상한 취미는 국경이 없으니까.”
힘 있는 자는
어떻게든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고
갑질에 무감각한 일본사회는
아주 좋은 실험장소다.
소노코는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 다른 건 몰라도
우리나라의 치안상태는 최상급이야.
완전범죄?
있을 순 있겠지만
사면이 바다인 일본에서 가능할까?
소문이 돌았어도
벌써 돌았어야 해.”
탈세나 탈루 같은 화이트칼라도 아니고
살인과 강도 같은 강력범죄는
체감 정도가 달랐다.
아무리 재벌이 막나가도
살인을 밥 먹듯 벌이고 은폐할 순 없는 것이다.
“ 물론
리스크가 큰 살인은
쉽게 계획하거나 실행하긴 어려워.
대신
폭행이나 성범죄는
처벌수위가 많이 낮다고.”
“ 스와핑이나
그룹섹스 같은 걸 말하는 거야?”
일본은
성매매가 불법이지만
유흥가 주변에선
공공연한 비밀처럼 행해졌다.
이 나라의 부패지수가 높은 이유는
뇌물보다
불법성매매의 영향이 더 컸다.
불륜과 매춘은
한 번도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단 말이 있다.
“ 우리의 성문화는
겉으론 보수적인 척 내숭떨다
뒤로 호박씨를 까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거든.”
“ 소문으론
서로의 약점을 쥐기 위해
일부러 매춘을 불법화했다는 썰이 있던데?”
“ 그럴 수도 있겠지.”
미국의 경우
정치스캔들의 태반이
섹스스캔들일 만큼
유명인의 아랫도리사정은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오래된 직업이자 가장 사랑받는 직업을 꼽자면
매춘부는 1, 2등을 다퉜다.
다른 직업은
100년, 1000년 뒤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성을 파는 직업은
인류의 생식기가 퇴화되지 않는 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너무나도 국제정치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