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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나 손목 시계를 보자 새벽 5시였다. 태연과 미르는 아직 자고 있었고, 비는 그쳐 있었다. 태린이 한번도 잠에서 깬 적이 없는 것을 보니 태연이 시간마다 깨어나서 미르에게 분유를 먹인 모양이었다. ‘아직 자고 있어서 다행히다’ 하며 생각하고 있을 때, 미르가 칭얼거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태린이 주위를 둘러보자 이미 준비된 분유병이 보였고, 적당히 식어있었다.
‘철저하네… 도움 좀 되겠다.’
태린은 태연의 준비성을 보며 이번 동행이 생각보다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르는 배가 고팠는지 빠르게 분유통을 비웠다. 태린은 미르와 태연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태신과 태연은 일란성 쌍둥이인지 미르와도 상당히 닮아 있었다. 눈부터 코,입, 머리까지.
분유를 다 마신 미르는 태린의 얼굴을 보며 배실거렸다. ‘얘는 배신 하지 않겠지....’ 그 웃음을 보며 태린 또한 따라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하아아아암~~”
태린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태연도 잠에서 깨어났다. 태린이 일어나 있을거라고 생각을 못했는지 태연은 당황하며 머리를 조금 숙여 아침 인사를 하였다.
“잘 잤어?”
태린이 인사하자 태연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이부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태린은 멀티플랙스에서 챙겨온 레토르트 스프 2봉지를 중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중탕시킨 스프를 다시 적당히 식힌 뒤에 태연에게 1봉지를 건넸다. 그들은 액상 약을 먹듯이 봉지를 빨아 스프를 먹었다.
태연의 표정은 눈에 띄게 좋아보였다. 그 굴다리에서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꽤나 배가 고팠던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미르의 상태는 좋아보였기에 태연이 얼마나 책임감 있게 잘 보살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곧이어 일출이 시작되었고, 그에 맞추듯이 비도 그치기 시작했다. 하천 상류의 작은 산위로 오르는 해는 지금까지 본 어떤 일출보다도 예뻐보였다. 이때는 성숙한 기운이 느껴졌던 태연도 그 나이 또래로 보일 정도로 순수하게 기뻐하며 일출을 보았다.
날이 밝아지자 태린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어제 조임쇠와 여러 쇠붙이를 모으기는 했지만 사람뼈에 장착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공구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주변에는 공구가 있을만한 트럭이나 봉고차가 많았기에 배터리가 방전되지 않은 공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전에 할 일이 있었다.
“태연아?”
미르의 기저귀를 확인하던 태연에게 태린이 말을 건넸다.
“왜?”
태연은 기저귀 갈아입히기에 열중하며 답했다.
“어제 같은 일 일어날까봐 미리 얘기하는 건데 오늘 할 일이 있어”
바쁘게 움직이던 태연의 손은 멈췄고, 잠깐이지만 동공이 흔들리는 것이 태린의 눈에 보였다.
“널 보기 전에 식인하는 사람 2명을 마주쳤었어”
“식인?”
흔들리던 태연의 동공에는 호기심이 떠올랐다.
“어. 그리고 아마 더 있을거야. 마지막에 자기들 엄마를 불렀거든”
태연은 태린의 말에 골똘히 생각하는 듯이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지막?”
태연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어, 내가 죽였어. 목욕하고 있는데 날 죽이려고 했거든. 어쨋거나 그 사람들이 써먹기 전에 총기는 우리가 가지고가는게 나아. 그리고 최대한 활용할 수 있으면 하는게 좋고. 그래서 어제 자전거에서 떼어낸 가늠쇠를 이용해서 내가 데리고 다니는 좀비들한테 거치시킬거야. 지금 여기서 해야지 재료도 많아서 좋고….. 난 다 말했다? 도망치는건 상관 없는데 괜히 놀라지 말라고 말하는 거야.”
태린은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을 바라보았다.
“넌…. 진짜 미친거 같아.”
태린은 다시한번 어깨를 으쓱였다.
“어찌되었든 오늘은 넌 여기 있어 애기 우는 것도 문제고, 괜히 나 따라다니다가 좀비 만날지도 모르니까”
“미르야”
“응?”
“애기 이름 미르라고”
누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이 세상에서 태연은 미르라는 아이가 있었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싶었기에 이름을 부르는 것을 고집하였다. 자신을 불러줬던 이들은 많지만 미르를 불러줬던 이들은 자신의 언니와 자신 밖에 없었기에.
“아아아. 알았어. 미안.어쨋든 미르 데리고 여기 있어.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도로 앞쪽으로 도망치거나 호루라기를 불어”
태린은 태연에게 작은 호루라기를 목에 걸어주었다.
“그럼 챠오~ 이따보자”
인사를 마친 태린은 미니 버스의 문단속을 철저히 한 뒤에 묶어두었던 애좀들을 끌로 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태연에게 태린의 존재는 여전히 이상하고 기이했지만 적어도 옆에 있으면 다른이들로 인해 자신이 위험해질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미쳤다고도 생각했지만.
“생각해서 뭐해.. 그치 미르야? 이모가 생각이 너무 많지?”
태연은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잠에서 완전히 깬 미르와 놀기 시작했다.
“…아… 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수많은 사람들 남녀노소 불문하고도살하고, 가까이에서 가족잃은 슬픔을 직관하며 비웃었던 그녀로써도 자식잃은 슬픔은 동등했다. 김춘자의 비명소리는 하늘을, 하천을 가득 메웠다.그 소리는 좀비의 소리와 비슷했다. 죽음과 삶 사이에서 비명하는 소리.
피로 이어진 그녀의 무리였지만 그중 그 누구도 그녀에게 위로를 할 수도, 말릴 수도, 같이 울어 줄 수도 없었다. 너무도 무서웠기에.
다만 김춘자의 울음소리에 몰려들지도 모르는 좀비들을 막기 위해 김춘자와 두 아들의 시체가 있는 장소를 둥그렇게 둘러쌀 수 밖에 없었다. 김춘자의 짐승과 같은 비명소리는 멈출줄을 몰랐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무리의 공포는 커져만 갔다. 좀비를 향한 공포가 아닌 김춘자를 향한 공포가
그렇게 한참을 비명하던 김춘자가 쓰러지자 무리들은 두 형제의 시체를 자루에 담고, 김춘자는 등에 업고서 자신들의 거처로 향했다. 김춘자의 비명소리가 좀비와 비슷해서인지 생각보다 많은 좀비가 그들을 가로막지는 않았다. 무리는 일단 형제의 시체를 아파트 옥상에 올려놓고, 김춘자는 꼭대기층 안방에 눕힌채로 휴식을 취했다. 1시간이 체 지나지 않아 김춘자는 깨어났다.
“내 아들!내 아들 어딨어? 어? 내 아들 어딨냐고오오오!!!1”
김춘자는 가까이에 있는 자신의 자매를 뺨을 계속해서 때리며 말했다.
“언니 옥상!오 옥상!옥상에 있어? 제발 살려줘 어!언니!”
동생의 공포서린 대답을 듣자마자 김춘자는 옥상에 올라갔지만 차마 자루안을 들여다 보지 못했다. 그렇게 김춘자는 자루를 꼭 쥔채로 또 한참을 울었고, 어느센가 무리의 모든 일원이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김춘자는 울음을 멈추었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입 안에서는 검붉은 침이 끈적하게 흘러나왔다.
“찾아내, 어떤 새끼들인지는 모르지만 찾아내서 다 죽여. 그 새끼들 찾아내기 전까지는 잘 생각, 먹을 생각 하지마!”
20명 가까이 되는 그녀의 무리는 바로 김춘자의 명령을 이행하였다. 활, 도끼, 칼로 무장을 하고 아파트를 나섰다. 사실 김춘자는 무리 내에서 상당히 관대하고, 상냥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김춘자는 제일 먼저 나서서 사람을 죽이고, 먹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죽은 아들을 앞에두며 내질렀던 비명은 김춘자라는 인물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무리 사람들은 자신의 사촌, 자매, 남매, 오촌인 김춘자에 대해 저마다의 공포감을 품으며 아파트를 나섰다.
김춘자는 한동안 멍하니 자루만 바라보다가 비로소야 안쪽을 들여다 보았다. 널려있는 육편,조각난 뼈, 얼굴인지 배인지 조차 알 수 없는 어느 부분의 살점. 지금껏 꽤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먹어왔던 김춘자였지만 이 광경에서는 구역질이 나왔다. 워낙 순식간이어서 김춘자는 자루위에 토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놀라며 손으로 그녀의 토를 자루 위에서 치웠다.
“우리 아들들… 엄마가 미안해.. 못 지켜줘서 미안해.. 이러려던게 아닌데 흐흐흐흐흑흑흑”
김춘자는 옥상에 있던 목재들을 모으고 그위에 아들들의 시체를 놓았다. 그리고 말통에 있던 휘발유를 전부 쏟응 후 담배를 피웠다.
“다음생에도…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
그녀는 피던 담배를 장작 위로 던졌고, 불씨는 숙식간에 그녀의 아들들 흔적을 휩싸안았다. 그 불길 속에 김춘자의 눈물은 말라갔다.
김춘자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살짝 억척스러운 엄마일 뿐이었다. 남편과 함께 가게일과 육아를 하며 고생스럽게 살아왔다. 다만 그 고생은 온전히 그녀의 땀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진실된 것이었으며, 그녀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었다. 그녀의 두 자식들은 그녀의 바람대로 건강하고, 사람구실을 할 정도로는 커주었다. 그러다가 일이 벌어졌다. 조금씩 확장을 해왔던 가게는 좀비로 인한 피난민들의 약탈 과정에서 불타버렸고, 그때 남편은 맞아죽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가게 인테리어 공사를 마친 기념으로 가족들을 초대했기에 같은 핏줄에 의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가족들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과 아파트 한 층에 갇히게 된다. 거기에는 김춘자의 남편을 죽인 가족도 있었다. 피난 시도가 잘 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1주, 2주가 지나자 식량은 떨어졌고 굶주리게 된다.결국 남편을 죽인 가족의 일원 1명이 영양실조로 죽었다. 다들 어떻게 해야할 줄 모르는 사이 시체는 부패하고, 냄새에 좀비들이 이끌리게 된다. 욕조에 담긴 시체는 점점 썩은 물을 뿜어내며 더욱 부패해갔고, 그들은 결정을 내렸다. 샤워 커튼에 물을 뚝뚝 흘리는 시체를 둘둘 말아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시체의 가족 몇몇은 끝까지 반대하며 오열했지만 시체를 던져버리자 곧이어 냄새도 사라지고 좀비들도 조금씩 사라져갔다. 그리고 또다시 한명이 죽는다. 그는 이들과 홀로 갇힌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신속하게 시체를 버리려 했지만 김춘자가 막아섰다.
“잠깐 잠깐 잠깐… 기다려봐”
김춘자가 시체를 던지려는 사촌 동생 앞을 막아섰다.
“? 왜? 빨리 버려야돼 누나”
사촌동생은 시체를 잡은 팔을 부들거리며 말했다.
“우리…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시체를 잡고 있던 두명의 사촌은 놀라서 시체를 바닥에 떨구었다.
“누나 미쳤어? 아무리 그래도 사람인데….”
“사람인데? 뭐? 이러다가 우리 다 죽어.살 사람은 살아야지. 네 애들, 조카, 형제들 죽는 꼴 볼 거야?”
“…아니.. 그래도”
“몰래라도 먹이면 돼. 누나가 먹으면 다들 따라할 거야. 걱정마. 누나가 앞장설테니까. 넌 가서 부루스타랑 후라이팬 가져와”
“… 이래도 되는건가?”
사촌동생은 혼잣말을 읆조렸지만 몸은 사촌누나의 말을 따랐다. 그 동안 김춘자는 시체를 얇게 포를 떠서 차돌박이처럼 만들어 비닐봉투에 담은 후에 옷에 숨겼다. 사촌동생이 부루스타와 후라이팬을 가져오자 몰래 옥상으로 가서 고기를 구웠다. 살짝 비만이었던 시체의 마블링은 굉장히 좋았다. 김춘자는 자신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몇번이고 입으로 갖다대고 싶은 욕망을 참아내며 모든 고기를 구어낸 후에 다시 비닐봉투에 담응 후에 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깊게 숨을 내쉰 후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의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애들아 엄마가 고기 가져왔다. ”
사람들은 고기라는 소리에 눈이 휘둥그레해져서 김춘자를 바라보았다. 김춘자의 오른손에는 구어놓은 고기 봉투가 있었다.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들었지만 김춘자는 고기를 한 덩이씩 던지면서 골구로 분배되게 하였다. 시체를 옮기던 두명의 사촌동생은 머뭇거리다가 고기 냄새가 코를 스치자 바로 입에다 갖다대었다. 이후 사람들은 어디서 고기를 얻었는지 물어봤지만 김춘자는 그저 얼버무렸다. 다만 몇몇 사람들은 이미 짐작을 한 것 같았다. 이후 몇번의 고기 파티가 있은 후에 시체의 살코기는 사라졌고 다시 굶주리기 시작했다.
“고기는 또 언제 나와요?”
남편을 죽인 가족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이라는 듯이 물었다.
“이제 없어요.”
사람을 죽이고도 뻔뻔한 인간들의 면상을 보기가 괴로웠던 김춘자는 눈을 맞추지 않은채로 마지못해 답했다.
“있잖아요~”
끈질기게 물었다.
“없어요”
김춘자는 피곤해지기시작했다.
“고깃집 사장님이잖아요~ 더 있을 것 같은데”
그들은 이미 이것이 사람 고기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고기집 사장이었던 김춘자에게 중의적으로 비꼬며 얘기하였다. 그들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거실에서 얘기해서 김춘자가 해코지를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춘자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요 뭐, 다음번에는 그쪽 가족에서 나왔으면 좋겠네요.”
들리는 듯 안 들리는 듯한 목소리로 김춘자의 신경을 긁었고, 김춘자는 분명히 들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의 가족을 건드리는 말은 참을 수 없던 김춘자는 옆에 벼려둔 칼을 집어 그들의 멱을 따버리기 시작했다. 그곳에 있던 김춘자의 핏줄이 아닌 사람들 몇몇은 그 광경을 보고는 잽싸게 도망쳤다.
“…개 씨발 새끼들이 어디서…”
춘자는 혼자 웅얼거리며 포를 뜨기 시작했다.
“씹새끼들 ”
“멍청한 개 새끼들”
“어디서 씨발, 더러운 것들이”
“천한 상것 같은 개새끼들”
“좆같은 것들”
춘자가 빠른 속도로 포를 뜨는 동안 춘자의 가족들은 도저히 그녀를 말릴 수가 없었다. 춘자의 돌발행동에 놀란 것은 둘째치고, 그들이 먹었던 것이 사람 고기였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 헛구역질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토를 하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춘자가 주는 사람고기에 길들여지기 시작했고 춘자는 그 고양감을 잊을 수 없게 된다.
이때부터 춘자는 피로 이루어진 이 무리의 왕으로 군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