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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막에서도 두꺼운 이불을 깔고 잠을 청했었다.
충분히 포근했긴 했지만, 역시나 매트리스가 최고였다.
이날 시계의 알람에도 불구하고 모두 늦잠을 잤다.
미르까지도 밤새 칭얼거리지 않았다.
비가 그쳐 맑아진 하늘에는 뜨거운 해가 떴다.
거실 위에는 적은 먼지만이 부유하며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와장창!!"
갑자기 거실의 유리가 깨지며 여름의 고요함을 깼고, 태린과 태연은 일어나서 무기를 들었고, 태신은 미르를 감싸안았다.
거실에는 앞쪽에 못을 단 거대한 종이비행기가 들어와 있었다.
테이프로 코팅이 되어 있었고, 날개 양쪽에는 각각 글씨가 적혀 있었다.
'코스트코 3층 회의실', '구해줘요'
태린은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어제 보았던 코스트코를 쳐다보았다.
태린일행이 묵은 곳에서 코스트코까지 각종 종이 비행기들의 행렬이 뻗어 있었고, 그 끝에는 다시금 구해달라는 표지가 보였다.
종이비행가 눈길을 끈 탓인지 그 밑에는 좀비들이 꽤나 많이 모여있었고, 종이비행기를 따라 오는 좀비들도 있었다.
"에효~좆됐네"
태연은 태린을 빤히 보며 말했다.
어차피 무조건 구하러 갈 것을 알았기에 욕만 뱉었다.
태신도 그저 나갈 채비만 단단히 하였다.
꽤나 큰 소리가 났기에 좀비들의 이목을 끌었고, 삼십여마리의 좀비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태린은 어제 수색하면서 보았던 외부의 LPG가스통이 생각났다.
”일단 다 따라 나와”
일행은 밖으로 나와 LPG가스통과 연결되어 있는 호스를 자르고 건물 안으로 가지고 갔다.
태린은 1층 가스통을 던져놓은 후에 모든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고, C팀장 배에 칼을 찔러 휘발유가 새어나오게 하였다.
"먼저 차부터 마트 주차장에 세운 다음에 폭발시킬거야. 좀비들 시선 거기로 끌리면 마트안으로 들어갈거고. 사람들 구출해서 차 있는 쪽으로 갈게. 혹시라도 내가 신호하면 나 있는 쪽으로 차 타고 오고"
태신이 무언가를 말하려하자 태린은 뭔지 이미 안다는 듯이 오른손을 내밀어 흔들었다.
"같이 가자고? 안돼. 미르 울면 어쩔거야? 그리고 태연이는 혹시 모르면 운전해서 와야하는데 따라 오는게 더 안 좋아."
태신은 태린이 너무 자신들의 안위를 챙기려한다고 느껴 같이 다니고 싶었지만 이번만은 너무 안되는 이유가 명확해서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태린은 도끼로 C팀장의 코를 막은 헝겁을 대충 잘라낸 후에 사람피가 담긴 유리병을 꺼내 마트의 주차장 쪽으로 던졌다.
오랜만에 맡은 냄새여서인지 냄새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 C부팀장은 깨진 유리병 쪽으로 미친듯이 달려갔다.
태린 쪽으로 오던 몇몇 좀비들도 피냄새를 맡고 깨진 유리병 쪽으로 향했다.
이때를 이용하여 태린일행은 차를 가지고 나왔다.
얼마 안 있어 좀비들은 다시 태린 일행을 쫓기 시작했고, 적당히 모였다고 생각한 태린은 라이터를 꺼냈다
"이짓을 또하네"
입가에는 미소가 만발했다.
태린은 C팀장을 향해 나 있는 휘발유 위에 일회용 라이터를 세게 던졌고, 라이터는 깨지며 스파크를 냈다.
곧이어 불줄기가 생성되어 한쪽은 C팀장을, 한쪽은 태린일행이 나온 빌라를 향해 나아갔다.
"퍼엉!!!"
소리와 함께 빌라 주변은 화염에 휩싸였고, 근처에 있던 좀비들은 불이 붙은채로 허우적대었다.
큰소리를 들은 코스트코 안의 좀비들도 밖으로 뛰어나갔다.
"야 됐어!!!! 됐어!!!!"
"오 씨발!!!!! 이게 되냐!?!!!"
"야 진짜 잘했어!!! 민칠이새끼"
"야 저게 진짜 저기까지 가는구나?"
"당연하지 몇번을 시도했는데!!"
"우리 한 200번 했냐? 이제 종이도 없네"
"쨋거나 됐어. 저정도면 알겠지"
"야…. 근데… 생각보다 좀비들 많이 있는데?"
"어?? 저거 왜 비행기쪽으로 따라가냐?"
"어?어?어? 시발!! 저 사람들 죽는거 아냐?"
"………..."
"………."
"어? 야! 봐바! 밖으로 나왔다! 저거 가스통 아냐?"
"맞는것 같은데? 근데 왜 다시 들어가지?"
"어, 다시 나왔다."
"근데 또 뭐하는 거지? 뭐 던지는데?"
"저거 피 아냐?"
"…..맞는 것 같은데… 저 사람들 정상적인 사람들… 맞겠지?"
"…………………..이상한 사람들이면 굳이 우리 구하러 안 오겠지"
"차 탄다!"
"우리쪽으로 오겠지? 그치? 저대로 사라지는거 아니겠지?"
"좀 닥쳐. 오겠지..."
"어? 저거 불 아니냐? 빌라쪽으로 옮겨가는데?"
"빌라 폭발시키려는거 아냐?"
"에이… 그런가? 아 시발 야 다 책상 뒤로 숨어!!"
"아 미친 인간들이네!!!!"
"퍼엉!!!!!"
큰 소리와 함께 폭발이 일어났고, 가스통에서 튕겨져 나온 벨브는 박하진 무리가 열어놓았던 유리창을 통해 들어와 박하진 머리 위의 파티션에 박혔다.
"와...오...씨….씨이...바..알..."
박하진은 덜덜덜 떨며 겨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다른 아이들은 경악하며 쳐다볼 뿐이었다.
좀비들은 빌라를 향해 불나방처럼 모여들었다.
박하진 무리가 있던 사무실에서 좀비가 문 두드리는 소리도 조금씩 작아졌다.
하얀색 하이브리드 SUV는 천천히 소리없이 주차장에 다가와서 사무실 바로 밑에서 멈췄다.
"차태연! 이제 니가 운전석에 있어"
태린은 열쇠를 태연에게 던지고, 문을 닫고 나갔다.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몇몇 좀비를 태린이 제거하자 차에 달려드는 좀비는 더 이상 없었다.
태린은 도끼를 꼬옥 쥐며 비상계단 쪽으로 향했다.
다행히 문은 열려 있었고, 태린은 빠르게 3층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 태린과 맞닥뜨린것은 수십마리의 좀비떼였다.
좀비들이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너무 많은 좀비들 때문에 막혀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귀찮은 상황은 피하고 싶었기에 몸을 낮추고 조용히 했지만 갑자기 태린 앞에 떨어진 전구 때문에 순식간에 시선이 쏠렸다.
좀비들은 괴성을 지르며 태린에게 달려들었다.
"어우 염병.."
태린은 언제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상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야지 다른이들하고 같이 있을때도 그들이 무서워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한번 배신을 당한 이후로는 자제가 잘 되지 않았다.
지금도 입으로는 당황한듯 욕을 뱉었지만 얼굴 전체에는 미소가 피어났다.
심장은 빠르게 펌프질을 하며 발과 손과 같은 말단 기관들에 피를 신속하게 보냈다.
머리에 심장이 자리잡은 듯이 머리가 두근거렸고, 시야는 넓어졌다.
날렵하게 생긴 좀비가 태린의 앞에 놓인 진열대를 뛰어넘으며 태린을 덮치려했다.
태린은 왼발을 축으로 몸을 시계방향으로 빙글 돌려 좀비의 두개골을 으깨었다.
소리는 3층 전체에 울렸고, 좀비들은 한꺼번에 태린을 덮치기 시작했다.
안면을 부수고, 다리를 자르고, 목을 썰어버리고, 얼굴을 딱딱한 군화로 으깨어버리고, 도끼날을 입속에 박아넣고, 보호대를 찬 무릎으로 목을 짖이기고, 유리조각으로 눈을 후벼파 뇌를 꺼내고, 도끼를 내리치고, 내리치고, 내리치고, 내리치고, 내리치고, 마지막으로 두손으로 기도하듯 경건히 도끼를 잡아 두개골을 으깨어버리고.
약 20분가량 좀비를 죽인 태린은 무릎을 꿇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다행히도 에스컬레이터에 끼인 좀비들은 꽤나 꽉 끼였는지 소리만 지를 뿐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끼익-"
이민철이 문을 닫으려다 자기가 낸 문 소리에 깜짝 놀랐다.
놀란 토끼눈으로 다시 태린을 쳐다보니 태린 또한 이민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민철은 서둘러 문을 닫은 뒤에 잠궜다.
"야 어떡해?? 눈 마주쳤어"
민철은 벌벌 떨며 말했다.
5명의 고등학생들은 20분간 태린이 한 일을 문을 살짝 열고 보고 있었다.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자신들 쪽으로 오면 열어줄려고 살짝 열었던 것인데, 수십마리의 좀비를 단신으로 처리하고 다니는 인간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들은 그 광경을 보고 모두들 속으로 큰 고민에 빠졌다.
'과연 저정도의 인간이 우릴 구하려고 찾아내는 걸까?'
근거는 없었지만 태린이 보여준 무자비함은 그들이 겁내기에 충분했다.
"어쩌지?....."
박하진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러나 저러나 뒤지는건 똑같잖아. 그냥 나가보자 좋은 사람일수도 있잖아?"
박성진은 긍정적으로 말했지만 그의 동공 역시 흔들리고 있었다.
"좀비한테 물려 죽으면 다행이고, 저사람한테 고문당하다 죽지 않으면 다행이지. 저번에 우비 입은 인간들 기억 안나?"
욕을 내뱉는 것과는 다르게 태린의 입의 미소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양손으로 도끼를 잡고 위에서 아래로 크게 휘둘렀고, 괴성을 지르며 맨 앞에서 뛰어가던 좀비의 두개골은 둘로 나뉘어졌다.
피는 바닥에 흩뿌려졌고, 더 많은 좀비들이 태린에게 달려들었다.
이후로는 즐거운 이태린만의 시간이었다.
아무생각도 없이 눈 앞의 무언가를 없애는 일.
단순하고 쉬웠다.
항상 정신이 온전한 일반적인 사람인양 조심스럽게 움직였지만, 스위치가 켜지는 상황이 오면 모든 가면을 벗고 본능에 충실히 따랐다.
모든것이 끝나고 나면 항상 개운했다.
약간의 근육통, 약간의 땀, 편안해지는 머리속.
오늘도 그는 목숨보다 더 소중한 어떠한 기분, 느낌에 모든 것을 걸고 좀비를 죽여나갔다.
이번에도 최중혁은 냉소적으로 말했다.
"똑똑"
이태린은 도끼날 위의 피를 뚝뚝 흘리며 문 앞으로 걸어가서 두드렸다.
"후우...이제 안전해요. 근데 아무래도 에스컬레이터에 있는 애들 좀 있으면 나올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하아... 빨리 나가야해요."
아무래도 20분동안 도끼를 휘두르니 힘들었는지 태린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저기요?"
태린은 계속 노크를 하며 말을 걸었지만 겁에 질린 고등학생들은 쉽게 문을 열지 않았다.
태린은 일단 기다려보자는 생각으로 문 앞에 앉아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그러면서도 눈은 에스컬레이터 쪽을 살피고 있었다.
"야 진짜 어떡하냐아아아?"
이민철이 앙탈을 부리듯이 말했다.
"몰라 씨발."
김하성은 옆으로 누워 동공이 풀린채로 책상 밑 공간을 바라보았다.
"그냥 열자. 어차피 저 인간한테 도망갈 수 있겠냐? 다들 무기 하나씩 들고 열자!"
박하진은 무언가 결심한듯이 아이들에게 말했고, 다들 동의하는 듯이 하나 둘 무기를 집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하성만은 그대로 누워 있었다.
"야 뭐해 병신아! 빨리 일어나"
박성진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야 니들 완강기라고 알아?"
김하성의 말투는 여전히 힘이 없었지만 동공은 다시 조여져 있었다.
"뭐라는거야 시발. 니 헛소리 들어줄 시간 없어!"
"잠깐!"
박성진의 짜증을 멈춘 박하진은 김하성의 시야를 그대로 따라갔다.
그곳에는 완강기 세트가 있었다.
"야.. 우리 왜 이걸 지금 봤지? 병신같이..."
박하진이 울듯이 말했다.
"야!! 마침 밖에 좀비도 거의 없어! 빨리 가자"
"시발 살았어"
"밖에 차도 있으니까 훔쳐타고 가자!!"
"OK!!! 시발 가자!"
살 가망성이 생기자 그들은 전에 없던 팀워크를 보이며 완강기를 설치하고 1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민철, 최중혁, 박성진, 김하성 마지막으로 박하진까지 1층으로 내려오자 그들은 태린 일행의 차로 뛰어갔다.
200m를 달려 차로 도착해 차문을 열자 차태신과 차태연은 상당히 당황했다.
그리고 고등학생 무리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차태신이 말했다.
"빨리 가 고고고고. 빨리 가라고!!!"
당황했으나 빨리 정신을 차리고 박성진은 차태연에게 말했다.
차태연은 당황했지만 곧 차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생각에 태린은 절대 무언가를 실패할 리가 없고, 아마 이들이 먼저 온 것은 태린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태린이는?"
차태신이 말했다.
이때 고등학생 무리는 차태신과 차태연을 보고 깨달았다.
태린이 위험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태린을 버리고 온것과 마찬가지였기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이태린은 어딨냐고!!!"
차태신이 소리를 질렀다.
"쨍그랑"
갑자기 차 대각선 방향의 마트 유리가 깨지며 좀비들이 쏟아져 나왔다.
끝에서 부터 순서대로 깨지며 쏟아졌고, 이미 떨어진 좀비들은 건물안의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이 다시 마트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차태연은 그 광경을 멍하니 보며 계속 운전했다.
"야!! 앞에!!!!!!!"
박하진이 소리를 질렀지만 브레이크가 밟는게 늦었는지 퍼억 소리가 났다.
좀비겠거니 생각하고 시체를 피해가려고 할때 무언가 벌떡 일어났다.
태린이었다.
태린은 무언가 중얼거리며 운전석쪽으로 비척비척 걸어오더니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