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위대한 수업 우울장애 편
*보는 사람은 없겠지만............
혹시나 볼 사람을 위해 링크를 걸었음.
후술하겠지만, 누군가를 죽음으로 잃는 경험을 겪으면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함.
그러나, 충분한 애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함.
그 이유 역시 후술.
우울함과 애도, 이 둘의 차이점은 우울함은 밑도 끝도 없지만,
애도는 시간이 걸리지만, 해소가 되는 것이라고 함.
그러나 문제는 현대 사회는 이 애도를 할 시간을 안준다는 것.
(마찬가지로 후술.)
애도가 나쁜 것이 아니라, 사람이기에, 살아있기에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마주하면서 겪는 감정, 행동이기에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것.
아마 겪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주변 사람의 죽음을
아직도 자신은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이 경우.
죽음의 5단계처럼 애도를 하는 단계가 있을 줄 몰랐음.
그런데 이것도 사람마다 단계에 다다르는 시간이 다르다고 함.
편집했지만, 린다 선생님은 1단계에 이르는데 2,3년 걸렸고
어떤 사람은 1단계에 이르는데 30년이 걸린 사람도 있다고 하니...
애도의 핵심은 정해진 시간은 없고, 충분한 애도를 취했을 때,
처음에 느꼈던 비애의 강도는 줄어든다고 함.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 슬픈 게 아닌,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감정에 가까운 것이라고.
어떤 사람은 잊어라, 이미 죽은 사람이잖아. 라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해결책이냐면, 아니오.
비록 고인은 떠났지만 우리의 삶은 이어진다.
그러나 그 사람과 같이한 기억은 우리 안에 남아있기에
어떤 의미에선 그 사람의 기억과 함께 살아간다고.
애도를 충분히 취했다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지만
문제는, 현대 사회에선 애도를 충분히 취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있고
이 사람의 죽음을 금방 받아들이지 못해 부정하고
계속 슬픔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있음.
이 사람들에겐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고인을 애도해야 하는데
그 애도를 계속 지연해 초기의 비애만 계속 남아있는 상태가 됨.
이 상태를, 지속성 복합 사별이라고 함.
애도가 지연되면 지연될수록 상실감에 빠지고
이것이 마음 뿐만 아니라 몸과 정신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함.
선생님은 우울장애 전문가라 우울증 쪽으로 많이 얘기하셨지만
충격을 받아서 병을 앓게 된 사람을 봐서 그런지.........
무슨 얘기인지 알겠더라고,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는 걸.
현대 사회에선 고인을 애도하는 시간이 지연되는 것을 문제 삼지 않고
그 사람이 슬퍼하는 것이 우울증에 걸렸네, 라고 착각하는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애도와 우울감은 엄연히 다른 것임.
선생님이 언급하신 궤도는 애도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말하는 건데
그 과정은 위에 있으니 다시 올라가서 보면 이해할 듯.
애도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회복을 함.
(고인에 대한 슬픈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러나 우울감은 밑도 끝도 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이것이 자동화된 부정적인 사고로 이어지고
삶을 이어가기 위한 행동도 스스로 멈추려고 하는 것.
(1강 참고)
죽음을 경험하고 슬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한 시간과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후술하지만 꼭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고 함.)
한국에선 상여매고 동네 한바퀴 도는 그거인가...
난 90년대 생이라서 그런 걸 본 적이 없지만.....
아버지, 어머니 세대 때에는 그런 걸 보셨다고 하더라고.
꼭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고.
그 사람의 슬픔에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함.
이건 국가와 지역사회에서 제공해야 할 의무로 보는 듯.
사실, 털어놓을 사람이 마땅치 않다면 정신보건센터나
정신과, 상담센터(제대로 된 곳에...)에 가는 걸 추천함.
일단, 비밀보장이 되니까...................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고 슬퍼하는 사람에게
그 사람들의 슬픔에 공감해야하는 이유라고 생각함.
*오늘이 2014년 4월 19일. 그날이군요.
기억하겠습니다.
인터넷에 유독 애도를 무시하는 사람이 많은거같아
위대한 수업에 나온다 = 업계 고인물 이란 느낌이니. 저사람도 굉장한 사람이겠군...
관습적으로 정착된 애도와 해소과정이란게 있었는데 요즘엔 개인화에다가 효율성 우선에 관습이나 전통을 구습이라면서 다 배척해버리니 감정적으로 취약해져버렸음. 공동체 붕괴의 한 부분이기도 하고.
맞음. 어디서 본 얘기인데 예전엔 죽음도 일상의 일부라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애도하는 방법을 익혔는데 현대 사회는 수명이 늘면서 죽음이라는 걸 터부시하면서 애도하는 방법을 겪은 사람이 아니고선 모른다고 하더라고. 근데 이 글이 어디에 노출됐나? 이 시간에 왜 댓글이 달리지..?
인터넷에 유독 애도를 무시하는 사람이 많은거같아
사람이 살아있는 이상, 당연히 느끼는 것도 있고 죽은 이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데 왜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고 터부시하는 지 모르겠음.
정상적인 애도반응과 ptsd의 기준이 6주였던가
사실 정상적인 애도반응도 사람에 따라 늦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정확한 기준을 내리긴 어렵긴 해...
이게 진짜 어찌보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될수도 있음 젊은 세대는 잘 겪는 상황이 아니라서 와닿지 않을수 있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우리는 상실이 더 많이 노출됨 그리고 대부분의 상실은 우리가 대비하지 못했을 때 예기치않게 갑자기 찾아옴
맞음. 특히 대형 참사으로 죽음을 접한 애들이 많음. (나역시 하루카씨 님으로 추모식 이런 걸 알게 되었고.,) 이런 거에 먼저 충격받고 애도를 무서워하는 애들이 많은데 이게 일상적이진 않지만, 언젠가 겪어야 할 일임을 인지해야 함.
ㅇㄷ
난 이편보고 꽤 많이 생각한 듯.
위대한 수업에 나온다 = 업계 고인물 이란 느낌이니. 저사람도 굉장한 사람이겠군...
일단 저서는 한국에 번역된 게 나의 특별한 우울이고.. 프로필하고 경력은 1강에만 올린 듯.
관습적으로 정착된 애도와 해소과정이란게 있었는데 요즘엔 개인화에다가 효율성 우선에 관습이나 전통을 구습이라면서 다 배척해버리니 감정적으로 취약해져버렸음. 공동체 붕괴의 한 부분이기도 하고.
맞음. 어디서 본 얘기인데 예전엔 죽음도 일상의 일부라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애도하는 방법을 익혔는데 현대 사회는 수명이 늘면서 죽음이라는 걸 터부시하면서 애도하는 방법을 겪은 사람이 아니고선 모른다고 하더라고. 근데 이 글이 어디에 노출됐나? 이 시간에 왜 댓글이 달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