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예고한 바와 같이, 오늘은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6편에서 미처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어 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6편을 통해 결련택견협회가 어떻게 세력으로만 따지면 가장 열세임에도 다른 두 협회 못지 않는 무게감과 그 둘을 뛰어넘는 인지도를 가질 수 있었는가를 살펴보았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택견에 있어 근본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송덕기 택견'을 결련택견협회가 계승하였기 때문임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여러 번 말씀 드립니다만, 택견을 한다는 사람들 가운데
송덕기 옹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기억하실 겁니다. 결련택견협회의 황금기를 이루어 낸 가장 큰 원동력이 송덕기 옹의 택견이었지만 동시에 결련택견의 황금기를 끝내는 방아쇠가 된 것 또한 송덕기 옹의 택견이었다는 말을 말입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결련택견협회의 성장을 견인하던 가장 든든한 뒷배였던 송덕기 옹의 택견이 결련택견협회의 목을 겨누는 칼로 뒤바뀌었던 것일까요?
(흠... 인떠레스띵......)
그것을 말하기 위해선 먼저 결련택견협회의 가파른 성장 이면의 문제점들과 당시 결련택견협회의 내부적인 사정 등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천재지변이 아닌 다음에야 모든 일은 그 바탕이 되는 사유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당연한 소리지만 뭐든지 바탕을 알아야 이해가 쉬운 법입니다.
그럼 서문은 이쯤 되면 충분한 것 같으니, 이만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결련택견협회의 황금기과 그 뒷면에 대해 말하자면 결련택견협회의 메인 컨텐츠인 택견배틀을 빼놓고는 도저히 전개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결련택견협회의 성세를 실질적으로 견인한 것도, 인터넷에 있어 협회의 인지도를 책임진 것도 전부 이 인사동에서 매해 열렸던 택견배틀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단 타 협회의 택견꾼들뿐만이 아니라 택견이 아닌 다른 무술 수련자들도 팀만 이룰 수 있다면 참가가 가능한 이 경기는 시작부터 커다란 주목을 받았으며, 극진가라데, 카포에라, 쿵후 등, 한국에 있는 어지간한 격투기들은 다 한 번 정도는 팀을 이뤄 참가해 볼 정도의 인기를 누린 경기였죠.
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것처럼 택견배틀은 참가 자격에 협회 불문이 떡 하니 박혀 있었기 때문에 대한도, 충주도 협회 차원은 아니더라도 도장 차원에서, 아니면 개인 차원에서 많이들 선수를 내보내었던 경기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와따시의 빅 피챠!)
그런 측면에서 보면 2002년 이후 공식적인 통합 대회가 더 이상 열리지 않아 협회들 사이의 연결 고리가 사라진 상황에서 택견배틀이 일종의 민간 외교단(?)이자 선수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통합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이란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택견배틀 또한 몇 가지 문제점들이 있었죠. 그리고 개중 결련택견협회에게 있어 치명적으로 작용한 두 개의 문제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선수 수급을 위해 전수관이 아닌 대학 동아리 위주의 운영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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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배틀이 본래의 취지를 어느 순간부터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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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실험장이냐 싶을 텐데, 여기서 확실하게 말해두어야 할 것은 엄밀하게 따지자면 현재 3개 단체가 따르고 있는 택견 경기의 룰은 '미완성' 상태라는 것입니다.
송덕기 옹께서 우리에게 택견을 전해주시기는 하셨지만 안타깝게도 누락된 것이 몇 부분이 있는데, 개중 하나가 바로 '구한말에 어떤 규칙으로 택견 경기를 하였는가' 입니다.
물론 아예 전해주시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두 손으로 상대가 땅을 짚게 만들면 이긴다."는 규칙을 말씀해 주시긴 하셨거든요.
(이것 외에도 송덕기 옹의 첫 제자였던 태권도의 박철희 사범님(2편 참조)께서 송덕기 옹께 들으시기론
"손바닥으로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어쨌든 택견배틀이 막 개최되었을 당시, 그리고 그 이후로도 한동안 결련택견협회의 구성원들은 현재의 택견 경기와 거기에서 나오는 모습들이 구한말의 전통적인 택견 경기의 양상과는 달랐을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현재 3개 단체가 따르고 있는 택견 규칙은 신한승 옹과 이용복 총사의 합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장 송덕기 옹께서 그 경기 모습을 보시고 당신께서 현역으로 뛰었던 택견판과는 다르다며 불쾌감을 표현하셨다는 뒷이야기마저 있을 정도였으니 '송덕기 옹의 택견'을 계승하는 결련택견협회의 입장에선 이를 수정/보완해야 할 의무가 있던 셈이죠.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실험'이란, 택견배틀을 통해 구한말의 택견을 복원하기 위한 데이터를 쌓아올리는 과정을 말한 것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제가 앞에서 뭐라고 말했죠?
<<택견배틀의 취지와 역행하는 규칙이 계속하여 만들어졌다.>>
네 그렇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결련택견협회는 구한말의 택견을 복원하겠다는 취지를 잊고, 택견배틀 그 자체의 흥행만 신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충주택견 측 선수를 견제하기 위해 태기질(그래플링)에 제한을 가하기 시작하고,
도기현 회장의 철학에 따라 중단 발차기를 복장지르기/는지르기 외엔 금지했으며,
마구잽이(태클)로 승부가 자주 난다는 이유로 경기에서 마구잽이 자체를 금지하는 등...
초창기의 목표는 온데간데 없고, 일방적으로 지지 않기 위해. 다른 택견 단체를 배려하기 위해 구한말의 택견 경기엔 있었을 리 없는 금지 규정을 남발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신한승/이용복 택견 경기와 근본적으로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경기를 하게 되었던 것이죠.
(나두 모루겟소요.....)
물론 결련택견협회 또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박철희 사범의 증언과 같이 손질을 하는 택견으로는 '옛법택견'이 있었고, 택견배틀은 언젠가부터 위에서 말한 것처럼 3개 단체의 택견꾼 전부가 출전해 기량을 겨루는 통합의 장이 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나만의 길을 가겠다고 경기에 손질을 추가하고, 신한승/이용복 택견의 상징과도 같은 얼굴 한 판도 없애는 경기로 바꾼다구요? 그럼 당장 내년 택견배틀에 출전하는 팀들의 90퍼센트가 떨어져 나갈 것이 뻔했습니다.(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결련택견협회는 절대적으로 전수관과 수련자의 숫자가 타 협회들에 비해 밀렸습니다.)
그랬기에 결련택견협회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내부의 목소리를 묵살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하지만 문제는 택견배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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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옛법택견은 언제 배울 수 있음????------------------------------------------------
(당시 결련택견협회의 옛법 장못치기와 도끼질 영상)
(....어 으음... 그만 알아보자)
...라고 적고 나니 소수의 열성적인 수련생과 사범들이 마치 접해선 안 될 금단의 무언가에 손을 댄 것 같은 뉘앙스가 되었으므로 첨언을 해야 할 것 같아 적습니다만... 실은 저러한 사고방식은 당시의 결련택견협회에 있어선 매우 일상적인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결련택견협회는 '송덕기 택견을 계승한다' 와 '송덕기 택견을 복원한다'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전반적으로 매우 강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건 조사하면서 저도 이게 대체 뭔 소리지...? 했던 부분입니다.
실제로 도기현 회장이 쓴 칼럼들(협회의 공식적 입장)에선 "송덕기 옹의 택견이 아닌 것은 택견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한편으로, 협회 내부적으론 협회원들이 영춘권이나 무에타이와 같은 타 무술을 배워와 해당 무술들의 기술을 택견에 접목시키는 것을 장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모순된 행보야말로 당시의 결련택견협회가 송덕기 옹의 택견을 '계승'한다는 것과 송덕기 옹의 택견을 '복원'한다는 두 개념의 이질성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다만, 당시의 결련택견협회의 환경을 감안하면 저 두 개념이 애매하게 혼재되어 있던 것이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도기현 회장의 경력 이슈가 있었거든요.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2편 - 송덕기. 그리고 현대 택견의 시작 - 편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도기현 회장의 택견 사사 경력은 약 4년. 엄밀하게 말하면 4년에 약간 못 미치는 기간동안 주 2~3회를 다른 제자들과 함께 배우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이 4년이라는 시간은 한 무술을 전부 익히기엔 터무니없이 짧은 기간입니다.
따라서 도기현 회장은 언제나 본인 또한 택견을 전부 배우지 못하였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본인이 송덕기 옹의 정통 택견을 계승하고 있기는 하였으나 고작 4년이라는 시간밖에는 배우지 못하였으므로 본인조차 모르는 기술이, 그리고 그걸 간직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다른 제자분들이 많을 것이다. 따라서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임하겠다. 이것이 도기현 회장이 밝힌 입장이었고, 동시에 결련택견협회의 공식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으아아... 너무너무 복잡해....)
따라서 결련택견협회는 '송덕기 택견을 계승한다'는 정통성에 죽고 정통성에 사는 협회였지만 역설적이게도 '타 무술의 기술 도입에 가장 관대한 협회'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택견은 격투기이고, 격투기의 일반론에 따르면 사람이 두 손과 두 발이 달려 있는 한 나올 수 있는 기술과 그 형태는 결국 유사한 형태로 수렴될 수밖에 없으므로 타 격투기에 있는 기술이라면 택견에도 있었을 것이다(?) 는 기적의논리가 결련택견협회 안에선 마치 정설처럼 인정이 되고 있었다고 하거든요.
(실제로 웃음벨로 취급받는 좌측의 도회장님이 하시는 도끼질만 해도
우측의 기천/수벽치기의 연속 도끼질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 근데 배낄 거면 좀 잘 배끼지(...)
어쨌든 저 논리가 과연 맞냐 틀리냐(...)에 대해선 우선 접어두고. 이쯤 되면 어째서 송덕기 택견에 열성적인 수련생과 사범진이 스스로 나서서 본인들이 생각하는 송덕기 택견을 완성시키려 나섰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결련택견협회에선 그게 매우 당연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분명한 것은, 위에서 언급된 '태견책'을 이용해 송덕기 택견을 복원하는 것이 위와 같이 타 무술의 기법을 흡수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올바른 방법이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 태견책이란 다름이 아니라
이와 같이 송덕기 옹께서 직접 택견 기술들을 시연하신 사진들로 구성된 서적이었거든요.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저작권법 때문에 여기에 올리지는 못하지만 제가 예시로 가져온 시연 사진이 하나만 달랑 있는 게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하기 위한 연속 동작까지 전부 나와 있어 택견꾼들에게 어마무지한 가치를 지닌 서적이 바로 태견(책)입니다.
당장 도기현 회장 또한 저 책을 접하고 나서 진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공언하였을 정도였으니 뭘 거리낄 게 있겠습니까?
이것을 분석해, 결련택견협회에 도입해 낸다면 마침내 송덕기 택견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기대 속에서 열성적인 수련생들과 고인물들, 그리고 소장파 사범들은 저 보물단지를 열심히 탐독하고, 실제로 저것들이 가능한 기술인가를 나름대로 검증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지금까지 아무도 떠올리지 못했던 그리고 결련택견협회를 파멸로 몰아 넣을 발상을 마침내 해 내고 맙니다.
"잠깐만. 여기 (송덕기)할아버지 시연 받아주시는 분들, 혹시 아직 살아 계시는 거 아니야?"
(...어???????)
놀랍게도 그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태견 책에 출연했던 두 제자, 고용우와 이준서. 이 둘은 아직 멀쩡하게 살아서 송덕기 옹의 택견을 계승하고 있었던 겁니다.
때마침 LA에서 송덕기 옹께 택견을 배웠다는 인물이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가 났었고, 수련생들 가운데 일부가 직접 LA로 찾아가 컨택에 성공하게 되면서 모두의 기억 속에 잊혀졌던 고용우와 이준서란 이름이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야 내가 선배한테 들었는데, 저기 미국에 할아버지 택견을 전부 배운 분이 살아 계시대. 그리고 할아버지께 후계자로 인정 받으시던 분도 아직 한국에 계신다더라."
"헐 진짜로??? 그게 아직 까지 안 알려졌었다고? 소오름.. 그런데 그렇게 되면 말인데-
.
.
.
.
...우린 이제부터 어떤 분께 배워야 하는 거임???"
오싹오싹 택견 근현대사 9편 - 결련택견협회의 내전과 위대태껸의 등장 - 편에서 계속.
살펴보면 결국 정통성은 위대인건가 참 시대가 시대여서 제대로 전승 안되고 꼬여버린게 참.... 하다하다 전통무술조차 갈라서 싸우다니....
...도끼도끼한 근현대사다. 이 참에 정독해봐야지! 땡큐베리감사합니다!
어...?지금부터가 제대로 꼬이는거라고..?
사실 정통성만 따지면 세 분 다 있는 게 맞긴 합니다 ㅎㅎ...
당연히 정통성 있는 후계 분께 배우는게 맞지!
뭐 까면 깔수록 흥미진진해져 ㅋㅋㅋㅋ
원화도랑 비슷하지 않음? 내가 아는 아저씨 말론 원화도 보고 만들었을꺼라던데? 위에 도끼질 천천히 한 모습임
이크에크추천
이크에크 아니에요...!
...도끼도끼한 근현대사다. 이 참에 정독해봐야지! 땡큐베리감사합니다!
당연히 정통성 있는 후계 분께 배우는게 맞지!
사실 정통성만 따지면 세 분 다 있는 게 맞긴 합니다 ㅎㅎ...
뭐 까면 깔수록 흥미진진해져 ㅋㅋㅋㅋ
사실 다음 편이 진짜입니다.. 이번 편이 프리퀄이라는 게 저도 안 믿겨지지만 현실이 그러네요.
커피크림우유
어...?지금부터가 제대로 꼬이는거라고..?
다음편을 보시면 제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를 자연히 알게 되실 거라 생각됩니다....
도끼질 그럼 원래 없는 기술이었다는거?? 위대는 결국 국내에서 도장은 없는건가요
조사한 바에 따르면 택견에 원래 있는 기술이 맞기는 합니다. 그런데 도기현 회장님께서 송덕기 옹께 배우시는 동안 발차기나 태질은 좀 배웠어도 손질을 별로 못 배우신 모양이에요(...)
그리고 위대태껸은 현재 서울 양천과 종로, 안양, 일산, 그리고 부산에 총 5개의 전수관이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커피크림우유
살펴보면 결국 정통성은 위대인건가 참 시대가 시대여서 제대로 전승 안되고 꼬여버린게 참.... 하다하다 전통무술조차 갈라서 싸우다니....
원화도랑 비슷하지 않음? 내가 아는 아저씨 말론 원화도 보고 만들었을꺼라던데? 위에 도끼질 천천히 한 모습임
결국 원래 배운 게 아니라 다 보고 배꼈다로 수렴이 되어 버리는 거네 맙소사..
이게 워낙 썰들이 다양한데 전반적으로 본래 택견의 형태였다기보단 도기현 회장님이 도입을 했을 거라는 게 공통적인 추측이더라구요... 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만약 저런 연속도끼질을 도입을 하신 게 맞다면 원화도보다는 도기현 회장님이 인연이 있으신 수벽치기의 육태안 선생님과 교류하시며 그 분께서 과거에 익히신 기천의 기술에 영향을 받으신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영상으로 가져오진 않았지만 안가지치기와 대풍력수의 형태적 유사성도 굉장히 큰지라..
저 도끼질이란 것도 중국 남파권의 특징인 안면을 주먹으로 때리지 않는다와 본질은 같은 것으로 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에치 어전수의 카타 분해 또한 안면은 반드시 장저로 가격하라고 나오는 걸 보면 당시 동양 무술의 특징으로 봐야....
오호 그렇군요...! 새로운 걸 배우고 갑니다.
읽을 수록 혼돈인데 이게 프리퀄이라는 게 무섭다...
저도 동의합니다.
자료 조사도 어마어마하네요 택견책은 잊고 있었던 내용이네요 사범님에게 이러한게 있다라고만 봤었던 잠깐 봤었던.. 잘 보고 갑니다
택견에 대해서 막연하게 관심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왜이렇게 안 흥할까? 싶었는데 이런 정황이 있었군요. 결국 이런 상황이 매끄럽게 교통정리 될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교통정리는 이제와선 너무 늦지 않았나 싶네요... 멀리 와도 너무 멀리 온 상황인 듯 싶거든요.
제 생각도 그러네요. 통합되더라도 파벌싸움 하겠죠 그런데 안타깝긴하네요. 큰 밥상이 있는데 자기 앞에 밥그릇만 보다가 엎어버린것 같아서요.
동감입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