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요리 "팟타이"에 대한 이야기
오늘날 태국의 대표요리로 꼽히는 팟타이...
팟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타이 사람들은 쌀국수를 원래 안먹었다.
쌀국수라는 말 자체가 북송 시절 참파(지금의 베트남 남부)에서 자란 참파벼가 북송에 전해졌는데
이 참파벼가 미친듯한 성장속도로 한 밭에 일년에 2번 벼농사를 짓거나, 중간에 다른 농산물을 심어 농사를 지을 수 있게되었다.
이과정에서 북송이 거란과 여진에게 밀리기 시작하면서 남부로 몰렸는데 당시 중국 북부는 밀로 만든 빵이나 국수를 주로 먹었는데
당시 중국 남부는 참파벼로 넘치는 쌀밥이 잘 안맞았다.
결국 남송 시절 쌀로 쌀가루를 만들었고 이게 쌀국수로 이어졌는데
남송 시절 기록에 따르면 당대 남송 수도를 그린 그림이 있는데 그걸 보면 국수 장사가 뒤지게 잘되는지
냅킨도 있고, 국수 배달도 할 정도로 상업이 활발했다.
이는 곧 중국인 상인들이 동남아 전역으로 퍼지면서 쌀국수가 동남아에 전해졌다.
이중 시암(태국의 이전 국명)에 중국인 상인이 정착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인 이민자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10%를 달했다.
그래서 당시 시암에는 꾸아이띠아오라는 이름으로 시암에 정착한 중국인 후손과 중국인 이민자.중국인 상인들이 주로 먹던 쌀국수였다.
그럼 이 쌀국수를 우리가 아는 팟타이로 만들어낸 자는 누구일까? 요리사일까? 사업가일까?
아니
정치인이었다.
정확히는 군부였는데
때는 시암에는 군사 쿠데타가 벌어졌는데 이 결과로 시암은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된 이 사건을 시암 혁명이라고 불린다.
이를 주도한 것이 육군 출신 군부이자 총리이었던 쁠랙 피분송크람이었다.
쁠랙은 당시 날뛰던 파시스트의 바람을 따랐고 처음으로 한 짓이 시암이라는 국명을 타이로 바꾸어
타이 민족주의와 타이가 잃어버렸던 영토 회복을 울부짓었다.
그러나 일본이 타이를 치게되는데 타이는 잠시 싸우다가 바로 전투를 중지하고 일본과 협력하며 추축국의 일원으로써
일본에게 병참기지와 길을 내어주고 일부 영토를 회복하였지만
전세가 연합군측에 기울여지면서 타이는 연합군의 폭격을 뒤지게 맞게된다.
전쟁의 지속으로 쌀 생산량도 줄어들게 되었는데
이때 타이 사람들은 쁠랙의 정책에 반발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내세운게 쌀국수였다.
좀 쉽게 말하면
쌀밥보단 적은 양으로 만드는 쌀국수로 소비하면 쌀 소비를 줄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중국인 후손들이 먹던 꾸아이띠아오를 타이화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타마린드.피쉬소스.팜슈가.고춧가루등을 첨가하고 볶은 태국식 볶음 쌀국수가 탄생했고
쁠랙은 "점심만큼은 볶음 쌀국수를 먹으세요"라는 운동을 펄치며 소비시켰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대로 결국 쁠랙은 실각되었는데
후임 총리는 쁠랙의 정책을 철회하면서 유일하게 이 볶음쌀국수에 대한 지원은 유지했고
본격적으로 이 시점부터 팟타이라는 요리가 언급되기 시작한다.
오늘날 팟타이가 유명해진 계기는 베트남전으로
월남에서 지내던 미군이 휴가로 태국에 가게되었고 태국은 국가를 홍보할 필요성을 느꼈는데
이때 택한 건 팟타이로 홍보하기였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태국 요리를 대대적 홍보하는 태국 요리 외교를 펄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