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폐 이발소가 생긴 이유
이걸 보니 퇴폐이발소를 모르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
퇴폐이발소의 유래와 그 발생원인을 좀 찾아보고자 한다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이발소는 이미 1960년대 부터 있었고
70년대 80년대는 엄청나게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 지금은 많이 사라진것 처럼 보이지만...
지방(주로 중소도시)에는 아직도 남아있는 곳이 있다고..
이발소 성매매에 대한 모습은
장혁과 이범수 주연의 영화 '정글쥬스'라는 영화를 보면 나오는데
남편이 손님 커트를 하고 있는 와중에 커튼 하나치고
손님에게 매춘을 하고 나와 빤스를 올리는 아내
그 장면을 보고 민망해 하는 아들 이범수
아무리 그래도...
설마 저랬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하여간 저런 식으로 매춘이 이루어지긴 했나보다
그럼 어떻게 해서 하필 이발소에서 성매매가 이루어졌는지
그 유래를 살펴보자
어쩌다가 들어가 본 블로그에서 본 글이다
읽어보니 한 10년쯤 전에 작성된 글인데
작성자는 이미 그때 70대 곧 80대가될 원로 이발사였는데
10여년이 지났으니 80대시고 90대를 바라보는 나이니까
어쩌면 이미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겠다
국가에서 창녀를 잡아다 갱생을 시킨답시고
이발 기술을 가르쳐 강제로 이발소에 취업을 시켰더니
거기서 매춘을 하게되고 이게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다는 말인데...
좀 황당 하잖아?
그래서 팩트체크를 위해 검색질을 좀 해봤다
정부에서 창녀와 깡패를 결혼시켜 간척사업을 시킨다는 기사
60년대 소위 국토개발단 같은 걸 만들어 길게는 1년 짧게는 몇달간 부랑자 깡패 전과자등을 잡아다 강제노역을 시켰는데 이중 몇몇에게 매춘굴에서 잡아온 창녀들을 강제로 엮어준 것이다
결국 국토개발단 강제노역이 끝난 깡패들은 도시로 돌아갔는데
깡패와 창녀가 만났으니 뻔하지.... 갱생이 되겠나?
그때 강제 결혼했던 창녀들을 데리고 가서 다시 매춘을 시키는
기둥서방이 된것이다.
거기에 일조한 또다른 정부정책

80년대 까지 전국 대도시에 여자기술원이란게 있었는데
여기는 사실 단속된 창녀를 수용하는 시설이었고
위의 캡처에 나오듯
미용 양재 자수등을 가르쳤다
이중 양재와 자수는 옷만드는 일인데
전태일의 분신자살로 널리 알려진 청계피복공단의 사례처럼
고된 노동과 저임금의 대명사 같은 곳이었으니
몸팔던 여자들이 버틸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미용을 배운 창녀들이
저 위에 블로그 글을 쓰신 할아버지 말대로
제버릇을 못버리고 이발소에서 몸을 팔았던것...
이발소에서 성매매를 하는 이 이상하기도 하고
심지어 엽기적인 영업형태는
풍선효과는 고려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매춘을 막아겠다며 실시한
정부의 탁상행정이 만든 참사였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