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이 없는 거리,
함께라는 이름의 기적을
믿음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생겨나지 않습니다.
또 믿음에는 강도가 있죠. 얼마만큼 믿을 수 있는가,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믿음에 어디까지 내던질 수 있는가
아이리, 켄야, 카요. 이 셋은 처음부터 사토루를 믿었던 것이 아닙니다.
사토루 또한 사건을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 할 뿐. 도움을 청하지 않았죠.
작품에서 계속 나오는 주제가 그저 맹목적으로 상대를 믿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간의 신뢰를 통해 만들어지는 굳건한 믿음. 그것이 기적을 만들 단초가 된다는 것이죠.
카요는 불행하고 동시에 무력한 인물입니다. 엄마의 상습적인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학급 내에서도 소외되어 있으며 본인 또한 누군가의 구원을 기대치 않죠.
나만이 없는 마을이라는 카요의 시를 보면 그게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라지고 싶다, 자유로워지고 싶다. 하지만 그 안에는 누구도 없죠.
오리지널 시간선에선 그런 카요를 누구도 도와주지 못합니다.
시를 보고 어렴풋이 눈치를 챈 켄야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가쿠는 상황을 인지했으나 오히려 그걸 이용하죠. 옆에서 방관하는 엄마의 남자친구 또한 상황을 회피할 뿐이고요.
그런 것이 당연하기에, 당연했기에 카요는 어떤 것에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아빠의 폭력으로 부터 도망친 엄마가 자신을 겹쳐보이고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할 때 카요는 결국 스스로의 구원을 포기했을 겁니다.
그렇기에 사토루가 처음 그녀에게 다가왔을 때도 크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날카롭게 반응하진 않지만 사토루에 대해 무심하다는 듯 행동하죠.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사토루가 카요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카요는 비로소 자신 또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켄야는 처음 사토루의 변화를 감지하고 의심하는 인물입니다.
동시에 가장 적극적으로 사토루에 동조하고 깊게 신뢰하게 되는 인물이죠.
켄야는 오리지널 시간대에서 악인이 아닌 인물 중 유일하게 카요의 이상함을 눈치챈 사람이지만 결국 구해내지 못한 실패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토루와 달리 루프와 관련 없음에도 상당히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켄야지만 개인의 한계, 그리고 망설임 속에서 끝내 용기를 내지 못하였고 카요를 구하는데 실패하죠.
하지만 루프로 스스로의 진심을 깨달은 사토루는 달랐습니다. 문제를 알아채고 바로 행동에 옮겼죠.
사토루는 자신과 달리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는 용기를 보여주었고 켄야는 거기에 이끌리게 되죠.
아이리는 앞선 둘과 조금은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과거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 믿고 싶기에 믿는다라는 말을 해서 맹목적인 믿음 혹은 자기만족을 위해 사토루를 믿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사실 완전히 다릅니다.
카요와 켄야가 사토루의 용기에 이끌리고 믿음을 가진다면 아이리는 사토루가 트럭 사고를 막을 때 보여준 다른 모습과 더불어 평소 행실, 어머니와의 원만했던 관계등 자신이 바라본 사토루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으로서의 믿음이죠
켄야는 과거파트에서 사토루를 돕는 우군 역할이라면 아이리는 현대파트에서 흔들리는 사토루를 잡아주고 사토루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굳건하게 해주는 키 펄슨에 해당합니다.
사건에 휘말려 위기에 빠진 사토루를 직접적으로 구하는 영웅이자 포기하려하는 사토루를 다시금 일어서게한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거죠.
그리고 사토루에겐 또 한 명의 든든한 조력자가 있으니 바로 어머니 사치코 입니다.
사치코는 오리지널 시간대에서 아들을 믿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파트에서 가장 먼저 진범을 찾아낸 인물이자 작품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인물이죠.
오리지널 시간대에서는 이미 사건이 벌어진 이후 아들인 사토루에 악영향이 갈 것을 우려해 사토루를 믿고 행동하지 못하였지만 리라이벌 이후에는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일어나기 이전이기에 사건을 막기위해, 자신이 바라는 것을 위해 용기를 내는 사토루를 온전히 믿고 지지해줄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렇기에 사치코의 대사들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들이 됩니다.
이해자이자 적극적인 행동으로 사토루를 돕는 켄야와 위기에 빠진 카요를 구원하던 사토루처럼 그를 구원하는 아이리가 그저 한 방향으로만 영향을 받거나 주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거든요.
"나중에 자기 탓이라고만 생각하는 건 자만이야
한 사람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잖아?"
-후지누마 사치코-
켄야와 그 친구들은 사토루만이 없는 거리에서 사토루를 보고 깨달은 것을 바탕으로 그걸 펼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카요는 자신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 고립된 삶으로의 도피 원했지만 사토루가 건넨 온기가 이전에 없었던 가족이라는 따뜻함을 찾아주었고 이젠 새로운 가정을 꾸려 사토루의 용기있는 행동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죠.
사토루는 리라이벌 이후에 15년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사토루만이 없는 거리에는 그가 남긴 흔적이, 용기가 만든 씨앗이 어느새 만개했고 긴 시간이 흐른 후 사토루가 절대 헛된 노력을 하지 않았음을 보여주죠.
사토루에게서 영향을 받은 켄야와 카요를 친구들이 말이죠.
그리고 동시에 사토루 또한 그들에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켄야와 친구들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조언과 행동을, 카요는 사토루의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꾸준히 증명해주었고 아이리는 사토루가 겪는 여정의 시작과 위기 그리고 끝까지 이정표이자 등대가 되어주죠.
분명 사토루에겐 정의로운 마음이 있었지만 그걸 꽃피우고 거대해보이는 악을 물리칠 용기로 바꾼 것은 주변에서 보여준 믿음 덕분입니다.
사토루의 정의가 힘을 낼 수 있도록 곁에서 믿어주고 그 믿음에 응해 용기를 내어 스스로의 행동에 감화되게 만들어 일궈내는 '함께'라는 기적.
그것이 나만이 없는 거리가 펼치고 싶었던 주제 의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입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보여준 믿음에 용기를 얻고 개인의 무력함을 벗어던진다면 그 한계는 '함께' 라는 기적으로 깨 부숴지고
절대 해결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문제를 이겨내고 세상을 바꿀지도 모릅니다.
의심과 회피가 아닌 믿음과 신뢰로 만드는 선함의 연쇄, 그것이 만드는 기적을 논하는 '나만이 없는 거리'가 말합니다.
"‘믿는다.’라는 말이 거짓말 같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게 아니야
‘믿는다.’라는 말은
‘믿고 싶다.’라는 희망의 말이라는 거야"
-후지누마 사토루-
애니메이션에서 '함께', 그리고 '믿는다'가 어디까지 기적을 보여줄 수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 애니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맞습니다. 나만이 없는 거리는 주제의식 전달을 정말 잘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