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강성현
출판사 - 푸른역사
쪽수 - 368쪽
가격 - 25,000원 (정가)
은폐와 회피를 넘어 제노사이드를 묻다
이 책은 라파엘 렘킨의 연구와 활동, 유엔 제노사이드 협약의 탄생 과정, 그리고 그 한계를 심도 있게 분석하여 제노사이드의 정의를 사회학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국내외 제노사이드 이론과 다양한 사례를 깊이 연구해온 지은이는 제노사이드가 단순히 법적 틀에 갇혀서는 안 되며, 사회적 파괴와 그에 따른 폭력의 구조적 맥락에서 더 넓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 이후 서구 학계에서 이루어진 정의 논쟁definition debate은 제노사이드의 개념을 더욱 명확히 하려는 시도였지만, 그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민족 청소’ 같은 개념이나 폴리티사이드, 에쓰노사이드, 젠더사이드 등 다양한 하위 개념들이 등장하면서 학문적으로 제노사이드의 정의는 혼란스러워졌다. 이 책은 이러한 흐름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새로운 정의를 제시하려는 의도로 집필되었다.
“단순 대량 학살이 아닌 사회적 파괴”
지은이는 마틴 쇼를 따라 제노사이드가 민간인 사회 집단을 파괴하려는 무장 권력 조직과 이에 저항하는 사회 집단 간의 폭력적 사회 갈등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리고 제노사이드 행위가 무장 권력 조직들이 민간인 사회 집단들을 적으로 다루거나, 무장 권력 조직들이 그 집단들의 성원으로 간주한 개인들에 대해 살해와 폭력, 강제력을 이용해 그 집단들이 실제 가지고 있거나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회적 힘을 파괴하려는 행위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와 함께 제노사이드 메커니즘 연구를 통해서 사회적 파괴와 물리적 폭력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한다. 제노사이드는 단순히 살해 행위 이상의 것을 포함하며, 이는 사회적 파괴를 통해 집단의 정체성과 문화를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주 4·3 사건 등 한국의 대량 학살 다시 보기
지은이는 앞선 논의들과 차별적으로 제주 4·3 사건, 여순사건, 예비검속 사건, 형무소 사건, 국민보도연맹 사건, 부역 혐의 사건, 군경토벌 관련 사건, 미군 사건, 적대세력 관련 사건으로 범주화된 작전·처형·보복의 성격을 갖는 대량 죽음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고, 연속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대량 학살 사건들은 국가 및 전쟁 형성이라는 두 국면과 맞물려 발생했던 하나의 제노사이드 내 여러 ‘에피소드적 사건’들이라 주장하고 있다.
지은이는 가해 무장 권력 집단들의 조직화, 표적이 된 민간인 사회 집단들에 대한 타자화, 그리고 총체적 파괴와 부정 단계에서 작동한 정치·사회심리적 메커니즘들로 구분해 한국의 제노사이드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구체적으로는 무장 권력 집단들의 조직화에서 이데올로기, 내부집단의 조직화, 상호 보복과 광기화라는 단계로, 민간인 사회 집단들의 타자화에서 분류와 낙인, 상징화, 비인간화와 젠더 단계로, 파괴와 부정에서는 내전 상태와 국지적 학살, 전면전 개시와 ‘불순분자’ 처리, 미군의 피란민 인식과 대량 폭력, ‘부역자 처리’와 극단적인 대량 폭력, 부정으로 구분해 역사사회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의도’ 입증 여부, 폭력과 ‘학살’의 의미를 꼼꼼히 따지며 이 과정에서 이러한 폭력이 발생하기 전 사회적 갈등이 어떻게 폭력으로 발전하는지를 보여준다.
전시 민간인 학살은 불가피하다고?
지은이는 뉴라이트인 김광동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이 법 취지와 상반되게 전시에 민간인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인식하고 발언하는 것은 불법성 차원을 넘어서 국가 및 국가 후원에 의한 가해자 단체들의 부역자 학살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제노사이드의 책임을 회피하고, 폭력적 행위를 합리화하려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시도와 유사하다고 강조한다. 이 두 사례는 모두 민간인 학살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며, 제노사이드 범죄에 대한 새로운 대응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제사회가 제노사이드 발생을 막기 위해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도 모색한다.
지은이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으며, “우리는 단순히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에 응답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 머리말
제1장 폭력 비판에서 제노사이드 연구로
1. 폭력과 제노사이드
폭력이란|합법적 폭력과 정당한 폭력|법의 폭력성|반-폭력의 상상력|극단적 대량 폭력으로서 제노사이드
2. 폭력 연구의 계보
베버와 폭력 독점체로서 국가|갈퉁과 구조적·문화적 폭력|부르디외와 상징적 폭력|폭력의 사회학|현대성과 폭력
3. 망각에서 응답으로: 제노사이드 연구의 확장과 사회학
제노사이드 연구의 선구자들|사회과학과 제노사이드 연구|법학과 제노사이드 연구|제노사이드 연구가 봉착한 한계들
제2장 제노사이드의 탄생
1. ‘이름 없는 범죄’를 대면하고 응답하다: 라파엘 렘킨의 활동과 연구
생존을 넘어 운명을 자각하다|법과 언어로 미국과 유엔을 설득하다|“삶의 본질적인 토대들에 대한 파괴”
2. 국제법상의 범죄로 이를 방지·처벌해야 한다: 협약의 내용과 한계
3. 밀고 당기다가 타협하다: 협약의 쟁점과 논쟁
정치적 집단 포함 여부|제노사이드의 범위와 규모|‘의도’의 입증|제노사이드 방지와 처벌 방법|협약 논쟁의 의미
제3장 학계의 제노사이드 논쟁과 비판
1. 물리적인 대량 학살로 축소되다: 제노사이드 정의 논쟁의 쟁점과 비판
제노사이드를 정의한 첫 사회학자, 대드리안|협약 정의의 활용과 극복 사이에서, 페인과 초크·조나슨|초크·조나슨과 차니의 정의를 둘러싼 논쟁들
2. 어디까지가 제노사이드인가: 제노사이드 범위 논쟁
홀로코스트와 제노사이드|유일무이한 홀로코스트|홀로코스트 유일무이성의 상대화|‘민족 청소’|‘민족 청소’의 국제법 용법과 제노사이드|‘민족 청소’와 제노사이드에 대한 학술 논쟁|제노사이드와 ‘사이드’들|폴리티사이드|에쓰노사이드|젠더사이드|‘사이드’들
3. 제노사이드 메커니즘 연구로
구조적 접근과 메커니즘 연구|사회심리적 메커니즘 연구|단계적 메커니즘 연구
제4장 제노사이드 이론의 사회학적 재구성
1. 의도: 제노사이드 행위 의도와 사회적 관계의 사회학
의도에 대한 법적 접근의 한계|제노사이드 행위의 ‘의도’에서 사회적 갈등의 ‘구조’ 이해로
2. 집단: 민간인 사회 집단과 사회학적 접근의 가능성
집단에 대한 법적 접근의 한계|“국민·민족·인종·종교 집단”에서 민간인 사회 집단으로
3. 파괴: 사회적 파괴이자 전쟁의 한 형태
집단의 사회적 파괴|제노사이드와 전쟁 간의 관계
제5장 제노사이드와 한국전쟁 전후 대량 학살
1. 제노사이드 정의와 메커니즘의 재구성
다시, 제노사이드란 무엇인가|제노사이드 메커니즘의 재구성
2. 제노사이드로 구성한 한국전쟁 전후 대량 학살
정부 수립 및 한국전쟁 전후 대량 학살|무장 권력 조직들의 조직화|민간인 사회 집단들의 타자화|파괴와 부정
에필로그
“전시에는 사람을 재판 없이 죽일 수 있다?”|‘뉴라이트 김광동’|진실 규명이 아닌 부역자 심판기관?|제노사이드 범죄로 기소당한 이스라엘|76년 추방, 57년 점령, 17년 봉쇄|제노사이드 범죄에 대한 국가 책임과 가해자 처벌의 가능성
⚫ 주
⚫ 참고문헌
⚫ 찾아보기
개뜬금포로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 제노사이드 재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