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구조 요청’을 수락했으나 끝내 살아남지 못한 27만권도 있었다. 학교의 ‘45만권 장서 폐기 방침’에 반대하던 울산대학교 인문대 교수들(② 45만권의 생사)이 폐기가 확정된 26만8천권을 살리기 위해 지난해 10월 통도사로 찾아왔다. 성파 스님은 서고를 보여주며 “얼마든지 보내시라”고 했으나 ‘운반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는 학교의 거부로 무산됐다.
‘구조 요청’을 수락했으나 끝내 살아남지 못한 27만권도 있었다. 학교의 ‘45만권 장서 폐기 방침’에 반대하던 울산대학교 인문대 교수들(② 45만권의 생사)이 폐기가 확정된 26만8천권을 살리기 위해 지난해 10월 통도사로 찾아왔다. 성파 스님은 서고를 보여주며 “얼마든지 보내시라”고 했으나 ‘운반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는 학교의 거부로 무산됐다.
‘구조 요청’을 수락했으나 끝내 살아남지 못한 27만권도 있었다. 학교의 ‘45만권 장서 폐기 방침’에 반대하던 울산대학교 인문대 교수들(② 45만권의 생사)이 폐기가 확정된 26만8천권을 살리기 위해 지난해 10월 통도사로 찾아왔다. 성파 스님은 서고를 보여주며 “얼마든지 보내시라”고 했으나 ‘운반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는 학교의 거부로 무산됐다.
세상에..
‘구조 요청’을 수락했으나 끝내 살아남지 못한 27만권도 있었다. 학교의 ‘45만권 장서 폐기 방침’에 반대하던 울산대학교 인문대 교수들(② 45만권의 생사)이 폐기가 확정된 26만8천권을 살리기 위해 지난해 10월 통도사로 찾아왔다. 성파 스님은 서고를 보여주며 “얼마든지 보내시라”고 했으나 ‘운반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는 학교의 거부로 무산됐다.
요즘엔 포토카드를 잃고 갈곳없어진 앨범들이 많은데 그것도 보내도 되나요?
아르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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