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프랑스 전쟁 1870-1871]: 독일 제국의 탄생과 세계대전의 서
저자 - 레이철 크라스틸
역자 - 이진모
출판사 - 책과함께
쪽수 - 704쪽
가격 - 43,000원 (정가)
유럽의 판도를 재편한 19세기 최후의 대전쟁
근대 유럽에서 수차례 갈등을 거듭해온 프로이센과 프랑스. 에스파냐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두 나라의 갈등은 프로이센 총리 비스마르크가 여론전을 벌이며 이내 전쟁으로 치달았다. 신식 소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프랑스가 호기롭게 선전포고를 했지만, 프로이센이 반격해 순식간에 프랑스를 무너뜨리고 황제 나폴레옹 3세의 항복을 받아낸 뒤 수도 파리를 포위했다. 프랑스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프로이센의 승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전쟁으로 프로이센은 독일 통일을 이룩하고 제국을 세우며 강대국으로 우뚝 섰고, 프랑스는 그동안 유럽 대륙에서 차지해온 주도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200만 명 넘는 병사가 참전하고 18만 명 이상이 사망한, 나폴레옹 전쟁과 세계대전 사이에 유럽에서 발발한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다.
이 책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 도서로, 20여 년간 이 전쟁을 연구해온 레이철 크라스틸 교수가 집필했다. 저자는 전쟁의 전말을 충실히 소개하는 동시에 이 전쟁이 세계사·전쟁사 측면에서 중요한 분기점이었음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전략·전술, 외교, 동원 체계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이 전쟁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뿐만 아니라, 지도부를 비롯해 하급 장교·병사·시민 등 전쟁에 휩쓸린 주체들의 증언을 활용해 전쟁이 사람들의 감정과 일상의 질서를 어떻게 뒤흔들었는지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를 통해 독일-프랑스 사이 민족주의 갈등의 폭발, 군국주의의 강화, 대량 살상무기의 등장, 전국가적 동원이 이루어진 총력전의 대두 등 이 전쟁의 양상이 곧 20세기 세계대전을 예시했음을 드러낸다.
비스마르크가 자극하고 프랑스가 시작한 전쟁
19세기 후반 유럽은 산업화가 진행되며 정치·사회·경제가 크게 변화하고 있었다. 특히 급성장을 이루어낸 프로이센이 총리 비스마르크의 주도 아래 독일 통일을 위해 움직이면서 국제 질서가 요동치고 있었다. 프로이센은 덴마크(1864년), 오스트리아(1866년)를 상대로 한 전쟁을 승리해 북독일연방의 맹주로서 독일 국가들을 병합해나갔고, 마지막 남은 국가들을 병합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프랑스와 프로이센 사이에서 결정적 위기가 발생했다. 1870년 여름, 왕위가 공석이 된 에스파냐에서 프로이센 빌헬름 왕의 친척인 레오폴트에게 왕위를 제안했는데, 비스마르크는 이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프랑스가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역사적으로 합스부르크 왕조의 포위 전략에 불만을 품어왔던 프랑스가, 프로이센이 이를 되풀이하는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레오폴트가 왕위를 포기했지만, 프랑스는 빌헬름 왕에게 앞으로 다시는 이런 제안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도록 압박했다. 빌헬름 왕은 정중하게 거부 의사를 표명했는데, 비스마르크는 이를 더 퉁명스럽고 모욕적으로 보이게 편집해 공표하며 여론전을 펼쳤다. 이른바 엠스 전보 사건이다. 이 소식을 접하고 분노한 프랑스는 같은 해 7월 선전포고를 했고, 프로이센을 비롯한 독일 전역에서도 전쟁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프랑스는 동맹국을 찾았지만, 프로이센은 그동안 비스마르크가 주도해온 외교 정책의 성과에 힘입어 각국으로부터 중립을 얻어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동원 체계와 병력 집중이 가른 승패
저자 크라스틸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전개를 충실히 소개하는 동시에 그 역사적 의미를 다양한 층위에서 보여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전쟁 과정에서 드러난 산업화와 기술의 발전으로 생긴 변화다. 대표적으로 철도 등 근대적 운송 수단의 등장으로 대규모 병력과 군수물자를 신속히 전선에 투입할 수 있게 되면서, 근대적 교육을 통해 국민군을 육성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전쟁에서 매우 중요해졌다. 전국가적 동원이 이루어지면서 과거와 같이 전쟁이 단순히 왕조나 군대 사이가 아니라 국가/국민 간의 전쟁으로 확장되었다. 이 책은 초반부에 ‘동원’과 ‘병력 집중’에 관해 상세히 서술하면서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동원 체계와 이를 지휘하는 지도부 역량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프로이센은 수차례 전쟁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정예 병력을 적재적소에 집중 배치했지만, 프랑스는 그 체계가 정립되지 않아 혼선을 빚었다. 그 결과 프로이센은 100만의 예비 병력을 남기고도 42만 병력을 집중적으로 집결시킨 반면, 프랑스는 동원 가능한 병력의 60퍼센트인 30만 병사를 긴 전선에 늘어놓은 채 무기와 식량도 제대로 보급하지 않고 전쟁을 시작했다.
동원 체계와 이를 활용하는 역량에서 나타난 차이는 전쟁의 승패와 직결되었다. 프랑스군은 샤스포 소총, 미트라이외즈 기관총 등 신식 무기를 갖추고 있었고 그 위력을 충분히 발휘하긴 했지만, 프로이센군은 신식 크루프 대포를 적극 활용하고 전쟁 초기에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면서 프랑스군을 점차 밀어냈다. 더욱이 황제 나폴레옹 3세와 프랑스 지휘관들의 전략적 무능이 맞물려 프로이센군이 빠르게 주도권을 잡았다. 개전 2개월 만에 스당 전투에서 프로이센은 결정적 승리를 거뒀고 나폴레옹 3세의 항복을 받아냈다. 프랑스는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 정부인 국민방위정부를 수립하며 전쟁을 이어나갔지만, 수도 파리가 포위당한 채 남은 지역에서도 연달아 패배하면서 이미 기울어진 전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1871년 1월, 프로이센은 점령지인 베르사유에서 독일 통일을 선언하고 독일 제국을 수립하며 사실상 승리를 과시했다. 프랑스는 곧 휴전에 동의했고, 이에 반대한 사회주의자들이 3월에 파리 코뮌을 수립하기도 했지만 곧 진압되었다. 결국 5월 프랑크푸르트 조약이 체결되면서 전쟁은 막을 내린다.
‘이 전쟁은 유럽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독일의 승리가 지닌 의미
이 전쟁의 결과는 저자가 ‘유럽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평할 정도로 향후 유럽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근대 유럽의 국제 질서가 재편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프로이센은 프랑스에 압도적으로 승리하면서, 당시까지 유럽 대륙에서 프랑스가 차지하던 주도권을 결정적으로 종식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독일 통일을 이루고 제국을 수립함으로써 이후 유럽을 넘어 세계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새로운 강대국 독일의 등장을 알렸다. 반면 프랑스는 제정이 무너지고 공화정 수립으로 가는 길을 열면서 유럽 정치 지형의 변동이 일어났다.
이와 더불어 이 전쟁은 다방면에서 1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했다. 승리한 독일 국민은 통일이 독일의 군사적 위력에 힘입은 것이라고 여겼고, 군부 지도자들은 행운과 온건한 정치가 이러한 성공을 가능하게 하고 지속시켜주었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정치와 사회에서 계속해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유럽 전역에서도 프로이센 군대의 사례를 모방하며 군사적 우위를 점하려 했다. 결국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독일이 승리한 것은 독일과 나머지 세계 모두에 재앙이었다고 저자는 평한다. 아울러 이 전쟁에서 드러난 독일-프랑스의 민족주의적 반감, 전국가적 동원 체계의 중요성, 대량 살상무기의 등장에서 비롯된 전술의 변화와 잔혹 행위 등은 장차 벌어질 세계대전을 예시했다.
다만, 저자는 이 전쟁이 1차 세계대전의 직접적 원인이었다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프랑스-독일 갈등이나 1914년에 주요 유럽 국가를 상호각축전으로 몰아넣은 동맹 체제의 발전으로 직접 연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전쟁 후 비스마르크가 주도한 외교 정책은 그러한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데 목표를 두었고, 프랑스와 독일 모두 서로를 향한 반감을 조장하는 데 앞장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대인들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하는
지도자들의 고뇌와 민간인의 참혹한 현실
저자는 전쟁에 휩쓸린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면서 적재적소에서 구체적인 증언들을 적극 활용하며 다큐멘터리처럼 서술한다. 나폴레옹 3세 황제와 빌헬름 왕, 비스마르크 등 주요 정치가와 군 지도부뿐 아니라 하급 장교와 일반 병사, 그리고 민간인과 외국인까지 아우르며 생동감을 더한다. 정치-외교-전쟁 전반에서 주도권을 두고 벌인 참모총장 몰트케와 총리 비스마르크 사이의 갈등은 복잡하게 뒤엉킨 이 전쟁의 한 편린을 보여준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세자와 바이에른 출신 중위 라스베르크의 기록을 따라가며 상층 지도부와 하급 장교의 시선을 비교해서 보여주는 것 또한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여러 당대인의 기록, 특히 조르주 상드, 쥘리에트 아당, 에르미온 키네 등 당시 여성 작가들의 기록을 통해 전쟁에 휘말린 수많은 민간인의 고통스런 전쟁 경험과 행동 양태에 주목하면서 이 전쟁이 당시 민간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들여다본다. 전국가적 동원이 이루어지고 전장이 확대되면서 전쟁에 휩싸이는 민간인의 수 역시 크게 증가했다. 나아가 이 전쟁 기간 동안 민간인은 포격의 직접적인 표적으로 여겨졌고, 국가가 식별해서 강제 이주시켜야 하는 국가적인 적이라고 간주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적·군사적으로 불안정은 작은 불씨만으로도 쉽게 폭발할 수 있는 강력한 긴장감을 조성했다. 이렇게 전쟁의 성격이 달라지면서 민간인의 전쟁 경험 또한 크게 변화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남성이 대부분 징집된 후 남겨진 여성들의 피난 경험과 후방에서 맡았던 역할이다. 이 책은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를 통해 놓치기 쉬운 전쟁 속 인간의 현실을 포착함으로써, 전쟁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 머리말
지도
1장 선전포고
2장 동원
3장 병력 집중과 전쟁 지휘
4장 전투
5장 후퇴
6장 전환점
7장 스당으로 가는 길
8장 스당과 바제유
9장 새로운 시작
10장 파리의 전략
11장 선택
12장 포위전
13장 파리의 가을
14장 관대함
15장 고통의 날들
16장 크리스마스
17장 겨울의 극장
18장 최후의 저항
19장 휴전에서 평화조약까지
20장 전쟁의 결산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주
도판 출처
찾아보기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1870-1871]: 독일 제국의 탄생과 세계대전의 서_1.jpg](https://i3.ruliweb.com/img/25/12/06/19af1866e8a3890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