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거 봐! 엄청나게 큰 놈을 잡았다!」
「어디어디? 우왓, 도망 못 가게 잘 잡고 있어, 지금 당장 가져올게!」
「서둘러! 막 발버둥치고 있다고!」
구름에 가려진 조각달이 을씨년스레 비추는 밤하늘 아래서 분주히 뛰어다니던 사내아이들 중 하나가 급히 어디론가 달려갔습니다.
무리에 남은 한 아이의 손에는, 커다란 반딧불 한 마리가 사로잡혀 하릴없이 엷은 빛만을 띠우고 있었습니다.
반딧불이 빛을 내면 낼수록 돌아오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채 뚫어져라 바라만 볼 뿐인 원망스러운 눈길 뿐이었습니다.
아까 달려갔던 아이의 돌아오는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아이의 손에는 검고 작은 단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여깄어! 그럼 이제 이것만 넣으면 되는 거지?」
「그럴거야. 도망갈지도 모르니까 조심해서 열어!」
「하나, 둘, 셋!」
아이들 무리에서 나던 작은 빛이 사라졌습니다.
다만 빛이 사라진 자리를, 어디선가 불어오는 음산한 바람이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그럼 언제 다시 열어보면 되는 거지?」
「뭐야, 그것도 모르면서 하자고 한 거야? 위험하다고!」
「겨우 벌레 몇 마리 넣은 것 가지고 호들갑은!」
아이들은 금세 단지에서 시선을 옮긴 채 저들끼리 수군거렸습니다.
그 사이 단지의 뚜껑이 덜그럭거리며 '끼이이'하는 작은 소리가 새어나왔으나, 아이들은 눈치채지 못한 듯 떠들 뿐이었습니다.
그 때 어디선가 작은 돌이 날아와 단지를 깨뜨려, 그 안에 있던 온갖 것들 - 지네, 거미, 두꺼비, 작은 뱀이니 하는 것들 - 이 한순간에 사방으로 뛰쳐나가고, 날아올랐습니다.
갑자기 뛰어드는 벌레 떼에 화들짝 놀란 아이들은 냅다 내빼었습니다.
불어오던 음산한 바람은 벌레의 날갯짓소리와 아이들의 비명 소리 등을 타고 서서히 사라져갔습니다.
달빛 아래 어두운 적막만이 흐를 뿐이었던 그 자리에서 다시금 빛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찣긴 날개, 굳어가는 다리며 덜렁거리는 더듬이 등을 필사적으로 움직이려 애쓰는 반딧불로부터, 빛은 뿜어져나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빛은, 산산조각난 검은 조각들 사이에 묻혀 그대로 사라져버려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만큼 엷은 빛이었습니다.
쉴새없이 깜빡거리며,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으응, 그래도 저걸 저렇게 놔 두면, 지나다니는 사람들한테 위험하겠지?」
단정히 머리를 묶은 소녀 하나가 다가와 조심스레 깨진 단지의 파편들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차곡차곡 파편을 쌓아올리던 소녀는, 조각들을 치워갈수록 눈을 가득 채워오는 빛을 눈치챘습니다.
시선을 옮겨 찬찬히 빛을 좇던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암록색 날개를 가진 큰 반딧불이 하나.
「아직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고독에 휘말린 불쌍한 반딧불이구나.. 반가워, 난 요루카라고 해.」
짤막하게 인사를 마친 그녀는 서둘러 대강 정리를 마친 후, 반딧불을 안아올리고 근처의 물가로 향했습니다.
「읏, 근데 반딧불이가 뭘 먹고 사는진 전혀 모르겠는데.」
반딧불 앞에 꿀이 가득한 꽃이며 신선한 물 등을 놓아둔 소녀였지만, 허둥지둥거리는 모습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죽은 듯 가만히만 있던 반딧불은 천천히 몸을 움직여 꽃 쪽으로 기어갔습니다.
향긋한 꿀 향을 맡고 기분이 좋아지기라도 했던 걸까, 반딧불은 꽁무니를 살짝 움찔거렸습니다.
곧이어 그것은 나뭇잎 위에 고인 물로 몸을 적셨습니다 - 날개를 펄럭거려보았습니다.
희미하기만 하던 빛이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밤하늘에 가득 걸렸던 구름이 사라진 밤하늘을 수놓은 별, 마치 그 중 하나가 된 것마냥 찾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맑은 눈에 별이 한가득 박히도록 밤하늘을 쳐다보며, 그녀는 소리쳤습니다.
「다행이다, 맘에 들었나보네! 만나서 반가웠어! 건강히 지내렴!」
요루카는 그 후로도 벌레들을 데리고 짓궂은 장난을 치려는 아이들로부터 벌레들을 지키기 위해 힘썼습니다.
고독뿐만이 아니라, 서로 싸우게 되거나, 잔인한 실험에 희생될뻔한 죄없는 벌레들을.
요루카는 어려서 부모님을 이름모를 병으로 여의었습니다. 가난한 형편에 가능하다는 것은 모두 해 보았지만 이별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와 남동생은 부모님을 작은 산길을 따라가다보면 나오는, 멀지만 양지바른 곳에 정성스레 모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남동생 또한 같은 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어떤 정성을 쏟아 부어도 그를 오랫동안 연명시키기엔 역부족이란 것을 그녀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가까운 곳에서 생명을 잃는 것의 슬픔을 알던 그녀였기에, 더 벌레들을 구하는 데에 힘썼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 날 밤 갑작스레 남동생과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몇 번이고 웃으며 흔들어 깨워 보아도 꼼짝하지 않는 남동생. 그의 잠든 얼굴 위로, 그녀의 뜨거운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습니다.
이미 모두를 잃고 지칠대로 지쳤던 걸까, 그녀는 소리내어 울지 않았습니다 - 아니, 아마 그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문틈으로 새어들어오는 추운 밤바람이 눈물진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습니다.
겨우 마음을 추스른 그녀는 남동생의 몸을 조심스레 업고 부모님이 묻힌 곳으로 향하려 밖으로 나섰습니다.
그녀가 올려다본 하늘은, 비가 올것만 같이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가까운 곳도 알아보기 힘들만큼 어두웠습니다.
길을 찾을 도리가 없어 탄식하던 그녀는 갑자기 작은 빛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 아앗, 도... 도깨비불!?」
깜짝 놀라 집 쪽으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던 요루카는 갑자기 빛무리가 길게 뻗어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빛의 줄기는 마치 도움을 주기라도 하려는 듯, 그녀의 부모님께서 계신 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빛의 정체가 무엇일까 의심할 겨를도 없이 주춤주춤, 익숙한 곳으로 뻗은 빛줄기를 따라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녀가 남동생을 부모님 곁에 뉘이고 집에 다다르자 길게 늘어진 빛이 희미해지다가, 금세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의아해하던 그녀가 다시금 가족을 위해 기도를 하려는 찰나, 하늘에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빛줄기의 도움이 없었다면 돌아오는 길에 꼭 비에 젖어버리고, 길도 잃어버려 요괴에게 당하고 말았을 터였습니다.
한숨을 내쉬는 그녀의 얼굴에 안도하는 빛이 어리었습니다. 기도를 끝낸 요루카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자꾸만 되뇌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요루카는 마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병에 걸려 희생당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족을 잃고 뿔뿔이 떠난 사람들이 남긴 마을에, 그녀는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힘없는 생명들을 지키기 위해 힘쓸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저 때가 되면 변하는 계절과 쉼없이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지내었습니다.
하지만 이따금 날아와 낡은 지붕을 노랗게 하얗게 색색이 수놓는 나비 떼,
마당을 어지럽히는 쓰레기 따위를 분주히 움직여 열심히 치워주는 개미 떼,
홀로 지새워야 할 밤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풀벌레, 반딧불 떼가 있었기에,
그들 덕분에 그녀는 자신의 외로운 삶을 가득 채웠을 저주와도 같은 고독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명랑하고 활기넘치던 소녀 요루카에게는, 그녀의 삶을 채워온 비애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무구한 생명을 지키려 노력하던 그녀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 자신의 생명조차 지키려 힘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겨울날, 그녀의 삶 또한 그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금방 다시 만날 수 있겠구나, 모두. 무척 반가울 거야.」
마루에 앉아있던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켜 눈이 소복이 쌓인 산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남동생과 함께 슬퍼하며 부모님을 모시고 갔던 길,
어두운 밤, 정체모를 빛의 도움을 받아 남동생을 업고 갔던 길,
그리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 자신이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지나야만 할 길.
길을 따라 천천히 나아가던 요루카의 몸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하고 흔들렸습니다.
작은 길이었지만, 옆은 경사가 심한 비탈이었습니다. 그녀는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기우뚱 기우는 몸 ---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뜬 그녀는 자신의 몸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를 공중에서 지탱하고 있는 것은, 처음 보는 조그만 소녀 하나.
짧은 암록색 머리 사이에 한 쌍의 더듬이를 단 소녀는, 검은 망토 같은 것을 펄럭이며 요루카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요하게 빛나는 청록색 눈으로 요루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너.. 너는 누구지?」
「나는 리글. 그리고 요루카. 너는 내 생명의 은인.」
「그게 무슨 말이야?」
「공중은 인간이 있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지. 잠시만 기다려.」
잠시 후 요루카와 리글은 묘비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는 작은 터에 서 있었습니다.
방금 전의 일에 놀랐던 것일까, 아니면 서 있는것만으로 지쳐버리게 된 것일까, 요루카는 숨을 몰아쉬며 리글에게 물었습니다.
「하아.. 그래, 리글이었지? 네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나를 도와준 건지 알려줄래?」
「그래, 그럼 다시 소개할게. 나는 반딧불이 요괴 리글 나이트버그. 수십 년도 전에 네가 구해준 첫 번째 반딧불.
기억해? 어느 날 밤, 남자애들 여럿이 독기를 품은 벌레들을 넣은 항아리에 날 가두고 고독(蠱毒)이란 주술을 하려던 걸.
당시 난 요력이 충분하지 않아서 그 항아리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지. 그대로 죽을 운명이었던 거야.
그리고 그 때, 주술을 파괴하고 죽어가던 나를 도와주었던 것이 요루카라는 이름의 소녀.」
가만히 얘기를 듣던 요루카는 무언가 떠오른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복잡한 표정이었습니다.
리글은 싱긋 미소짓고선 꾸벅 목을 숙여 인사를 하고 얘기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렇게 한참 얘기를 듣던 요루카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리글을 도왔을 때 주술을 강제로 저지한 요루카에게는 고독(孤獨)의 저주가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 저주로 인해 가족과, 친구들과, 다른 소중한 사람들을 잃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벌레를 돕던 요루카의 모습을 지켜보며 고마워하다가 요괴가 된 리글에게는, 안타깝게도 그 저주를 해제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다만 필요할 때마다 반딧불을 시켜 그녀가 안전할 수 있도록 하고, 벌레들을 부려 그녀가 조금이라도 덜 쓸쓸하도록 노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방금 그녀가 집에서 나서는 것을 보고,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를 할 량으로 그녀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고마워 리글... 정말 고마워... 네가 날 지독한 고독에서 구해준 거구나...」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는 인간을 아무런 말도 않고, 리글은 꼭 안아주었습니다.
추위에, 혹은 힘에 부쳐, 달달 떨리는 연로한 인간의 몸을, 작은 요괴는 꼭 끌어안았습니다.
꼭 오랜 친구를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반갑게, 오래도록.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떨림이 잦아든 몸은, 폭신하게 쌓인 눈 위에 파아란 하늘을 이불삼아 뉘여졌습니다.
인요의 왕래가 드문 산길가의, 양지바른 작은 터에는 네 개의 묘비가 서 있습니다.
세 개의 돌 비석, 그리고 나무로 된 묘비 하나.
그 나무 묘비에는 '요루카'라고, 허나 꼭 나무벌레가 갉아먹은듯한 모양으로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단지 무덤일 뿐인데 무엇이 그렇게나 좋다고, 무덤가에는 벌레가 가득합니다.
슬픈 듯 노래하고, 아쉬운 듯 주위를 맴돌며 날 뿐, 그 곳을 떠나지 않습니다 -
꼭 무언가를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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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써본 자작글!
리글과 인간의 이야기네요. 왠지 자주 등장하지 않는 아이들로 글을 쓰다가 보면 더 열중해서 쓰게 됩니다.
아마 머리속에 동인 이미지가 남아있지 않기에 더 빠지게 되는 거겠죠 :)
벌레, 하면 자주 떠오르는 소재인 고독을 주제로 써 봤어요. 물론 다른 한자를 차용했지만.
모쪼록 즐겁게 읽어 주셨다면 기쁘겠네요 :)
ㄹ이이그류ㅠㅠ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리글이 주인공인 팬픽도 많을 것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