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가야겠어?"
누군가 그렇게 물었다.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렇게 큰 돈을 얻을수 있는 기회는 날마다 오는게 아니였다.
날이 흐릿흐릿한 와중에 닻을 풀고 돛을 바람에 맞겨 목적지로 향하는 나의 가슴은 일확천금의 꿈으로 가득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커다란 풍선마냥 부풀어오른 꿈이 나를 차가운 바다 속에서 건져주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때 기억나는것은 하나도 없었다.
어디 출신인지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나중에 바지를 내려보고서야 알았다)
이름이 뭔지 나이는 몇살인지 그리고 왜 내가 이런 썩어가는 몸뚱아리로 계속해서 살아있는건지.
알수없는것 투성이였고 기억나지 않는것 투성이였다.
머리속이 푸른 안개로 꽉꽉 둘러쌓인듯한 느낌이였다.
잠시 자세를 바로잡아 두 눈을 감고 천천히 생각을 했다.
그때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명이 아닌거같았다. 수십...수백명의 울음소리가 어디선가 마구 울려퍼지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 머리를 깨어버릴듯 울리기 시작했고, 나는 울음소리를 피해 두 귀를 막고 마구 달렸다.
하지만 두개골이 박살날정도로 세게 두 귀를 눌렀는데도 울음소리는 줄어들기는 커녕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미쳐버릴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알수 있었다.
이 울음소리는 어디선가 들리는게 아닌 내 머리속에서 들리는 소리라고.
피범벅이 되어 썩어 문드러져가는 옷을 간신히 추스리고 상처가 크게 벌어져 보기 흉한 가슴은 붕대로 감아 상처를 가렸다.
이내 새어나온 썩은 검붉은 피가 붕대를 축축히 적시기 시작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문득 도달한 장소는 황폐한 돌무더기들이 한가득인 장소였다.
땅 위에는 두갈래로 갈라진 철골들이 퍽퍽 박혀 고정되어있었다.
바닥은 검은 돌로 메워져있었고 돌무더기들은 하나같이 여러개의 네모난 구멍이 뚫려있었다.
호기심에 들어간 바위 안에서 발견한 거울로 내 모습을 알수 있었다.
사방이 찢겨진 상처 썩어들어가는 살점으로 보기 흉했다.
아마 내가 사람이였더라도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두 팔에는 푸른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고 눈에는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눈으로 용케 나는 앞을 보고 다니고 있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눈까지 썩어 지금 보고있는 상황이 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는 바위산의 모습을 나는 사람이 없는 장소라고 착각하고 있는걸지도 모른다.
애당초 죽은 사람이 몸에 파란 불이 붙은채 죽지도 않고 터벅터벅 걸어다니는것이 기묘한 일인걸.
세상은 원래 그런가보다.
한동안 이 바위숲에서 지내면서 사람의 흔적을 발견할수는 있었지만 진짜 사람을 찾는것은 불가능했다.
너무나도 삭막한 이 공간이 지겨워서 좀더 화려한것을 찾아 사람들은 떠나버린 모양이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예전에 내가 살던 곳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듯한 느낌이였다.
적어도 내가 있는 곳은 이렇게 높지 않고 무언가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장소였다.
...적어도 내 기억속에서는 말이지.
하루는 바위숲을 돌아다니다 바위가 무너지면서 떨어진 파편이 내 머리와 부딪쳤다.
충격으로 한쪽 눈이 톡 빠져서 여기저기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한쪽눈이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사방으로 시선을 분산시켜준 덕분에 하마터면 눈을 밟아 톡 터트릴뻔했다.
다행이 밟기전에 발견해 끼워넣는데에는 성공했지만.
살아있었을때 나는 어땠을까?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영원히 잊혀져버린걸까?
그러면 나는 무엇을 찾아다녀야 하는걸까?
누구를 만나기 위해 돌아다녀야 하는걸까?
"내가 답을 알려줄게"
낮선 목소리.
내 앞에서 하늘이 갈라지더니 수백개의 눈이 나를 쳐다보는 공간이 생겼다.
그 틈을 가르고 한 여인이 나타났다.
"어머, 설마 이정도로 심할줄은 몰랐는데"
"누구시죠?"
"너를 구원해줄 사람"
"나를 구원해줄거라면 이 머리속에서 지끈거리는 울음소리부터 어떻게 해주실수 있나요? 안그래도 미쳐버릴거같은데?"
노란 머리를 한 묘령의 여인은 나를 한참 바라보았다.
아득히 들려오는 울음소리로 지끈거리는 고통을 억누르며 나도 여인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그런건가?"
여인이 자기 혼자 생각을 하더니 뭔가를 깨달았다는듯 손뼉을 쳤다.
"역시 너는 영혼의 집합체구나?"
"무슨소리를 하는건지 모르겠는데요"
"네가 죽으면서 그 근처에 있는 영혼들이 네 몸을 중심으로 모여든거라고 생각하면 될거야. 그래서 네 머리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거고"
"그러면 그 영혼들이 제 몸을 떠나면 되겠네요"
"그게...맞는 말이기도 한데 이쪽 영혼들은 외로움에 사무쳐있네. 대화할 상대가 있다면 일찌감찌 성불을 할테지만..."
"대화할 상대? 그러면 당신이 하루종일 도와줄래요? 이 몸을 잡고 있는 영혼들이 우루루 빠져나갈때까지?"
여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고통으로 인해 짜증이 나서 나도 모르게 실언을 한 모양이다.
아니면 그냥 내가 예의바르게 말하는 방법또한 잊어버렸다거나.
"곤란해. 나도 이래저래 바쁜 사람인걸?"
여인이 말했다.
"하지만 이런건 어떨까? 네 몸에 있는 영혼들이 모조리 성불하고도 남을정도로 많은 대화상대가 있는 장소가 있어"
"그곳으로 저를 데려다 준다는 소리인가요?"
"그래. 아마 그곳이라면 너라도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수 있을거야."
"하지만..."
"뭘 걱정해? 어차피 너를 기억해주는 사람은 없잖아?"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맞는 말이네요. 좋아요. 당신을 따라갈게요"
"그럴줄 알았어"
여인이 아직 벌려져있는 틈새사이로 들어가고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살짝 잡은 그녀의 손은 매우 따뜻했다.
그녀의 손을 잡자 가슴에 이상한 느낌이 느껴졌다.
머리속에서 들리는 울음소리또한 살짝은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그럼...환상향에 어서와. '잊혀진 자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잊혀지지 않게 노력하길 바랄게"
그리고 내가 알던 익숙한 풍경은 사라지고 모든게 새로운 장소로 옮겨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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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에...그게 당신이 이곳에 온 계기군요"
"그래. 어느정도 많이 빠져나가긴 했지만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
어느날 갑작스레 한 여자가 나를 이 거대한 저택에 초대했다.
히에다 가문의 9번째 당주...라고 했던가?
그런 유서 깊은 가문이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나 했더니 요괴 조사란다.
"그나저나 신기하네요. 이렇게 활활 타오르면서 어떠한 열기도 느껴지지 않는다니..."
"닿으면 오히려 체온을 뺏어가. 그리고 닿은 상대는 우울해질걸"
"그렇다면...능력은 슬픔을 조절하는 정도의 능력..."
"능력까지 정해주는건가?"
"네. 그렇게 인요에 대한것을 알려주는것이 저희 가문의 일인걸요"
"그렇구먼..."
당주가 책에 무언가를 슥슥 적어나가더니 기세좋게 나에게 자신이 적은 내용을 보여주었다.
옆에는 그럴싸한 나의 모습까지 그려져있었다.
"흠흠...나쁘지는 않네. 그나저나 기분이 이상한걸. 이곳에는 널리고 널린게 요괴인데 나같은 요괴를 조사하러 오다니 말이야"
"사실 마을에서 소문이 나있거든요. 도깨비불이라는거요. 그래서 저도 새 요괴인가 싶어서 조사를 했더니 당신이더라고요?"
"마을에서는 이미 도깨비불 요괴가 되버린건가..."
"뭐 좋잖아요? 덕분에 책으로 이렇게 당신의 모습도 남기고"
"조사 표본같은 꼴은 질색이네만"
"걱정마세요. 이런식으로 내용이 퍼져나간다면 아마 당신에 대한 오해도 줄어들거예요. 그렇게 된다면 대화할 상대도 늘어나고, 그러면 몸에 남아있는 영혼들 또한 빨리 성불할수 있을거 아니예요?"
"듣고 보니 그렇네. 과연 9대 당주라 이건가?"
"몸은 어린 아이! 하지만 정신은 어른!"
"그래그래"
나는 두 팔을 불끈 걷어 붙이고 자신만만해하는 당주를 보며 실실 웃으며 경박한 행동은 자제하라고 말했다.
"그나저나 생전의 기억이 전혀 안난다니...말이나 행동거지로 보면 높으신 분의 자제같은데 정말로 기억나는게 없으세요?"
"아쉽게도"
"그런가요...만약 기억나는게 생긴다면 저한테 즉시 와주세요. 당신에 대한 항목을 갱신해드릴테니까요. 그나저나 다과 어떠세요? 많이 이야기 하셨으니 시장하실텐데요"
"다과? 좋지. 준다면 잘 먹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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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누이-슬픔으로 얼룩진 불꽃
종족:시라누이
능력:슬픔을 조절하는 정도의 능력
인간 우호도:매우 높음
위험도:보통
주요 활동 장소:무연총, 미혹의 죽림
가끔 어두운 밤 길을 가다 일렁이는 푸른 불꽃을 본적이 있는가?
그것이 바로 시라누이라는 요괴다.
본디 야광충이나 한 밤 중 수면 위에 반사된 달빛을 보고 잘못 봐서 생긴 요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본모습은 한 육신에 수많은 영혼이 모여든 요괴이다.
한때 사람이였던 요괴이기에 사람에 대한 우호도는 매우 높은 편, 하지만 접근하면 사람들의 감정을 집어먹는 푸른 불꽃때문에 오래 있으면 기운이 빠지고 쉽게 우울해진다.
만약 조우시 겁먹고 달아나지 말고 친절히 인사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보자.
겉모습과는 달리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운 행동거지를 보인다.
목격 사례
늦은 밤에 길을 가다 일렁이는 두개의 푸른 불꽃을 보고 무서워서 급히 달려 도망쳤다.(익명)
가끔 길을 가다보면 슬픈 울음 소리가 들리는거같다. 그래서 문득 옆이나 뒤를 보면 파란 불덩이가 공중에서 흔들거리고 있다(마을사람)
-시라누이의 팔 부분을 본 모양이다. 밝은날에 본다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무서워하지 말자-
오래 보고 있으면 나도 슬퍼지는거같다. 슬퍼보이는 눈을 보면 위로해주고 싶다(마을 여인)
-먼저 다가가 대화를 시도하는것은 이 요괴에게 있어서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대화를 하지는 말것.-
불이 난줄 알고 물을 뿌렸다. 잠깐 잠잠해지는거같더니 확하고 불이 치솟길래 놀라서 도망쳤다.
-아무래도 화나게한 모양이다. 무섭더라도 직접 얼굴을 보고 사과하자. 분명 화를 풀고 야작의 칠성장어 꼬치를 사줄지도 모른다-
대책
본디 외로운 영혼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집합체니 먼저 말을 걸거든 해맑게 웃으며 말을 건네주자.
분명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해할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능력이 발현되는 유형이다보니 자신이 일부러 장소를 비켜주는 경우도 있다.
이럴때는 다음번에 또 대화를 하자고 약속을 잡아주자.
만약 너무 오래 대화를 해서 기분이 안좋아졌다거나 싶을때는 아무 이유를 들어서 대화를 그만두는것이 좋다.
팔에 붙은 불꽃은 절대로 만지지 말것.
사람의 감정뿐만이 아니라 생명력도 뺏어간다고 한다.
이런 수칙만 지킨다면 평범한 인간이나 요괴랑 다를바가 없으니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은 요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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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용 너무 길어졌다
어두운 내용일줄 알았어?
유감! 자캐 더 비긴즈였습니다!
어두운 내용은 장편에서 쓰고있잖아.
그러니까 단편만큼은 밝게 가자구요? 네?
:D
저런 자캐로 일상물쓰면 재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