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현의 일기
1. …XX년 X월 XX일
요 며칠간 꿈자리가 이상하다. 아빠 목소리가 꿈 속에서 나를 부르는 꿈을 자꾸만
꾸고 있다.
몸이 너무 피곤한 걸까.
2.
아빠가 날 부르는 꿈을 다시 꿨다.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시며 날 부르는 꿈이었다.
등굣길에 누나한테 그 이야길 했더니 누나도 같은 꿈을 꿨다고 말하더라.
혹시… 진짜 아빠인걸까?
3.
오늘 또 그 꿈이었다. 누나도 그랬다고 했다!
나도 누나도 그 목소리가 정말 아빠라고 확신했다!
그 목소리는 꼭 어딘가에서 우릴 부르는 것 같았다. 누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내일 누나가 마침 아르바이트 쉬는 날이니, 먼저 뭐라도 해보겠다고 말했다.
누나도 간만에 얼굴이 덜 어두워졌다. 정말 다행이야.
…
-"방심하지마라, 처음의 한 장이 모두를 침몰시킬 수 있다. 포기하지마라, 최후의 한 장이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다! 네, 벌써 LT유스도 16강 최후의 대진을 앞두고 있습니다! 마지막 듀얼은 나미아 선수 대 유수영 선수, 유수영 선수 대 나미아 선수 되겠습니다."
캐스터가 경기를 앞두고 기운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용연도 오늘만큼은 적당한 곳에 걸터앉는 대신 무대가 잘 보이는 자리에 자리잡고 곧 있을 듀얼에 온 신경을 집중하기로 했다.
화면에 양 선수의 전적과 기록이 표시되는 와중에 캐스터는 능숙하게 상황설명을 이어갔다.
-"이번 매치업의 특이사항이 있다면 역시 나미아 선수! 나미아 선수는 이번 LT유스 본선 진출자 중 유일하게 일반계 학생에 공식전 기록 전무한데요. LT유스 역사상 이런 선수 전무후무했거든요!!"
-"네, 그렇습니다. 공식전 기록이 없는 경우나 일반계 학생이 유스 본선에 오르는 일이라면 전에도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 다에 속하는 케이스는 정말 나미아 선수가 처음이거든요?"
-"이 도전이 시작과 함께 멈출지, 아니면 LT! 로드 테일! 그 말대로 군주의 이야기를, 길을 개척하는 이야기가 될지! 자! 밴픽 시작합니다!"
화면에 떠오른 덱 리스트를 본 남해의 표정이 안좋아졌다. [충혹마], [메멘토], 그리고… [키메라].
설마했지만 정말로 그 덱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 장소에서 어둠의 듀얼을 벌일 것 같지는 않겠지 생각해도 이사와의 결승전이 떠올라 불길함이 영 가시질 않았다.
"저게… 그 덱이야?"
"응. 그 덱."
-"나미아 선수의 밴픽은 예상하기가 어렵네요. 데이터도 데이터인데 덱 셋이 다 장점이 다 달라요. 다만 예선에서 가장 자주 쓴 키메라를 살리고 싶어하지 않을까하는 예상을 해봅니다."
-"네, 게다가 충혹마도 메멘토도 장단점이 워낙 명확한 테마라 어느 쪽에 셀프 밴 카드가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메멘토>
제일 먼저 <메멘토> 패널이 어두워졌다. 미아의 셀프 밴이었다. 그 다음에는 수영의 패널 중 <리브로맨서> 패널이 어두워졌다.
-"네, 나미아 선수… [메멘토] 밴, 그리고 이수영 선수는 [리브로맨서]. 셀프 밴 끝냈습니다."
-"두 선수 다 장단점이 명확한 덱 하나씩 밴 했습니다. 상대에 대해 잘 모른다면 역시 역상성을 피할 수 있게 무난한 덱을 고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죠."
-"셀프 밴은 별다른 고민없이 양 선수 다 빠르게 끝냈고요. 이제 상대 덱을 밴할 순서인데… 나미아 선수 꽤 오래 고민하고 있습니다."
-"[얼터가이스트]가 제일 요주의 덱이긴 합니다만 [비틀트루퍼] 또한 엔진 가동 시작하면 매서운 덱이거든요. 공진충의 턴제 없는 효과도 강력하고 크루엘 새턴으로 어드밴티지 폭발 시키는 것도 성공하면 다른 두 덱 못지 않는 요소가 있어요. 지금은 사실 어떤 덱이 밴 당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수영은 참을성을 갖고 기다렸다. 미아는 한참을 버벅거리는 움직임으로 D-패드를 누르다가 동작을 멈췄다. 그렇게 또 몇 초를 더 멈춰있던 미아는 다시 D-패드를 눌렀다.
-"나미아 선수 자신감이 부족한 것 같아요. 장고 끝에 [얼터가이스트] 밴했습니다."
-"이수영 선수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픽입니다. 리스크가 적은 밴. 그렇죠. 그리고 이수영 선수의 밴은 [키메라]!"
-"그렇죠. 이수영 선수도 마찬가지로 리스크 크게 업고 가고싶진 않을 거에요. 이렇게 되면 양 선수 덱은 [충혹마] 대 [비틀트루퍼], [비틀트루퍼] 대 [충혹마]!"
-"나미아 선수 [충혹마]와 이수영 선수의 [비틀트루퍼]로 매칭 확정됐고, 잠시 후에~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듀얼 필드에서 은은한 구동음이 퍼졌다. 솔리드 비전을 출력하는 기기가 작동하며 중앙에 스르륵 우자트의 눈이 그려진 거대한 동전이 생겨났다.
벌써 이 대회에서만 8번째 보는 모습. 동전은 한참이나 회전하다 미아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멈춰섰다.
"듀얼!!"
뭔가 평소랑 달랐다. 객석에서도 이상함을 눈치챈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미아가 개전 구호를 외치지 않았다. 못한 걸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흔히 보이는 광경은 아니었다.
어째 남해의 눈 앞에 PD가 한숨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미아는 그러고도 몇 초간 더 눈동자를 고정시키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D-패드에서 나는 효과음에 패를 뽑아들고 거기로 시선을 돌렸다.
"아, 네… [푸티카의 충혹마]를 일반 소환합니다. 그리고… 이제 푸티카의 효과로…"
미아는 상대방이 아닌 D-패드를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듀얼에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남해가 처음으로 D-패드를 쓰던 때에나 보던 그 모습이었다.
만일 저게 연기가 아니라면 저런 모습은 듀얼에 익숙하지 않을 때나 나온다.
그것도 듀얼만 그런 게 아니고, 덱까지 다루는 법이 손에 익지 않았을 때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저거도 금선이 너처럼 롤플레잉 그런 거야?"
"진짜면 연기 천재인 거고, 아니면 듀얼 천재겠지. 둘 다 아니라면 뭔가 개수작이 있었을 거고."
앞서 있던 7번의 듀얼에서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던 모습에 낙랑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금선에게 질문했고, 금선은 미아를 비꼬는 말로 대답했다.
미아는 한참이나 D-패드를 확인하다가 스윽 덱에서 뽑혀나온 카드를 천천히 패에 넣었다.
아, 그렇지. 여기서 푸티카의 효과로 패에 넣을 카드라면…
"덱에… 서… [충혹의 동산]을 패에 넣고, 푸티카를 링크 마커에 세트해… 서, 링크 1 [세라의 충혹마] 링크 소환."
[세라의 충혹마/Lnk-1/800/↓]
미아의 필드에 풀밭이 생겼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풀빛 머리카락의 소녀가 앉아있었다.
언뜻 보면 귀엽고 작은 소녀처럼 보였지만 쳐다볼수록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모습이었다.
그 동안에도 풀밭은 점점 넓어져서 필드 전체를 뒤덮었다. 곳곳에는 꽃처럼도 보이는 식물들도 섞여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꽃은 없었고 모두 식충식물이었다.
아름답지만 기괴한 풍경이었다.
"동산의 효과로… [란카의 충혹마]를 일반 소환하고요… 효과로 [키노의 충혹마]도 패에 넣고… 여기서 세라의 효과 발동하니까 [홀티아의 충혹마]를 세트."
하나씩 다음 방향이 떠오르는지 미아의 동작에 약간 속도가 붙었다.
"패에서 [무덤 홀]을 버리고 홀티아의 충혹마를 발동해요. 여기서 세라의 효과가 발동하니까 덱에서… [티오의 충혹마], 특수 소환."
[티오의 충혹마/Lv4/1700/1100]
풀밭에서 커다란 식물이 자라났다. 그 그늘 아래에서 노란 눈빛을 반짝이는 충혹마가 하나, 그리고 파리지옥의 닫혀있던 입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충혹마가 또 하나. 그렇게 두 충혹마가 더 늘어났다.
미아는 D-패드를 이리저리 조작하다 묘지에서 나온 카드를 확인하고 패드에 세팅했다.
"티오의 효과로 묘지의 [무덤 홀]을 세트하고… 란카와 티오를 오버레이, 랭크 4 [플레시아의 충혹마]… 를 엑시즈 소환."
[플레시아의 충혹마/Rk4/300/2500]
또 하나 커다란 꽃이 피었다. 꽃의 한가운데에서 잠옷 같은 옷을 걸친 소녀가 하품을 하고는 기지개를 켰다. 언뜻 보기에는 무해하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다른 충혹마들처럼 사람이 아닌 뭔가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지금 [충혹마] 몬스터가 있으니 패에서 [키노의 충혹마]까지 특수 소환하고 키노와 홀테어를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2 [클라리아의 충혹마]를 링크 소환한 다음 카드 한 장을 세트하고 차례를 마칠게요.
…아, 그… 그치, 이때 클라리아의 효과로… 푸티카를… 수비 표시로 소… 환."
[클라리아의 충혹마/Lnk-2/1800/↓→]
-나미아/LP 8000/패 1장
시간이 걸리긴 했어도 미아의 필드는 꽤 알찬 포진이 완성됐다.
확실히 수십 장의 몬스터를 연달아 고속 전개하는 덱보다 이렇게 강한 함정 몇 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덱이 차라리 미아가 사용하기엔 더 나을 수도 있겠지. 남해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제는 수영의 차례. 남해는 저 덱은 수영의 플레이를 기대하며 카드를 꺼내길 기다렸다.
"흐흠, 드로우. 그럼 어디… 패에서 [비틀트루퍼 스카우트 버기]를 일반 소환 하겠어요."
커다란 무당벌레를 탄 곤충 기사가 포르르 수영의 필드로 날아왔다. 충혹마들의 시선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제히 그 기사에게 고정됐다. 안그래도 무언가 어색하던 움직임에 의식이라도 공유하듯 머리를 다 함께 같은 곳을 향해 움직임까지. 심지어 식물들마저 바람을 거슬러 충혹마들과 같은 곳을 향해 방향을 돌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낙랑은 자신도 모르게 차오르는 혐오감과 불쾌함에 몸을 움츠리고 남해의 옆으로 달라붙었다.
미아는 굳어있는 표정으로 패와 세트 카드들에 번갈아 눈을 돌렸다. 수영은 처음에 그랬듯 미아를 한 박자 기다려주고 D-패드를 조작했다.
"이제 버기의 효과가 발동해요. 그리고 [비틀트루퍼 스케일 폭탄]의 효과를 체인해서 스케일봄을 패에서 내고 두 번째 버기를 덱에서 특수 소환 하겠어요."
두 번째 버기, 그리고 이번에는 호랑나비를 탄 기사가 팔랑팔랑하고 수영의 필드에 합류했다.
[무덤 홀]은 아직도 격발되지 않았고… 다른 세트 카드와 패트랩도 반응이 없다.
원래라면 이쯤에서 간을 봤으니 세라를 잘라내고 싶었겠지만 플레시아가 부여하는 내성 탓에 세라를 치우려면 파괴 외의 제거를 하던가, 플레시아를 우선적으로 걷어야 했다. 플레시아를 걷어내도 충혹의 동산이 있고.
"두 장의 버기를 링크 마커에 세트! 기갑충단의 선봉장, 링크 2 [비틀트루퍼 암드 혼]을 링크 소환해요!"
[비틀트루퍼 암드 혼/Lnk-2/1000/↕]
미아의 얼굴에는 여전히 긴장한 빛이 드리워있었다. 이번에는 중무장한 장수풍뎅이를 탄 기사가 수영의 필드로 전진했다.
수영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갤 끄덕인 다음 패 하나를 더 뽑아들었다.
"암드 혼의 효과로 곤충족 몬스터 [BF-연격의 트윈보우]를 추가로 일반 소환 하겠어요.
이 다음 트윈 보우와 스케일봄을 링크 마커에 세트해 링크 2 [인잭터 피코팔레나]를 링크 소환!"
인잭터. 남해는 꽤 오랫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옛날에 해황 덱을 처음 짰던 그 무렵에는 자주 들었던 이름이었는데 여기 떨어진 이후로는 거의 듣지 못했지.
다만 그 모습이 남해가 기억하던 인잭터 몬스터들의 모습과 엄청 괴리감이 크긴 했다.
꼭 디자인이 저래야 했을까. 저래야만 했던 겁니까.
"피코팔레나의 효과 발동, 패 한 장을 버리고 덱의 [공진충]을 피코팔레나에 장착하겠어요. 이제 링크 2 피코팔레나와 암드 혼을 링크 마커에 세트!
지진 같은 힘으로, 파도 같은 기세로! 전쟁의 노래와 승리의 함성을!! 링크 4, [비틀트루퍼 인빈시블 아트라스] 등장이요!!"
[비틀트루퍼 인빈시블 아트라스/Lnk-4/3000/↙↕↘]
"아? 에… 으아…"
콰앙-!!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꽃밭이 요동쳤다.
곤충이라기보다… 성채나 전차 같은 모습의 갑충이 수영의 필드로 전진했다. 미아의 동공이 한순간 확 커진 다음 D-패드로 향했다.
인빈시블 아트라스에게는 대상 내성과 파괴 내성이 있다. 거기에 링크 몬스터라 표시형식 변경 카드에도 내성이 있으니 미아에겐 까다로울 만도 하다.
'[시공의 폭풍 속으로] 아니면 딱히 손댈만한 카드도 없을 내성이네 저 정도면…'
"묘지로 간 공진충의 효과 발동 하겠어요. 덱에서-"
"자, 잠깐만! [무덤 홀] 발동!!"
어느새 풀밭으로 올라와 날개로 노래를 연주하던 공진충. 그 발 밑에 구멍이 열리더니 공진충은 채 날아오를 새도 없이 그 안에 빠져버렸다. 구멍 안에는 액체라도 고여있었는지 작게 퐁당, 소리가 났다.
물 소리를 들은 충혹마들이 작게 웃기 시작했다. 인간이 아닌 뭔가가 인간을 흉내내는 것 같은 그 동작은 여전히 기괴하고 기분나빴다. 낙랑은 다시 시선을 슥 돌리고 그 모습을 외면했고 금선은 대놓고 싫다는 표정과 같이 솔직한 감상을 뱉었다.
"윽, 역겹다."
-이수영/LP 8000 → 6000
"클라리아의 효과랑, 세라의 효과까지 발동! 무덤 홀을 다시… 필드에 세트! 한 다음… [아트라의 충혹마]를 수비 표시로 특수 소환 합니다!
이제 세라의 3번 효과로 [충혹의 함정 속으로]까지 세트!"
-"포진이 무너지긴 커녕 점점 더 튼튼해지고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아직 세트 카드와 패도 하나씩 남아있고요. 나미아 선수 지금 아트라의 충혹마까지 필드에 낸 덕분에 효과가 무효로 당할 걱정도 없습니다. 순간적으로 화력 엄청 끌어올려서 세라한테 십자포화 집중시키는 것 말고는 마땅한 대책도 없어보입니다."
-"깃털 같은 대규모 제거 카드도 없는 모양이고 이수영 선수 이 상황에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이제 남은 세트 카드가 한 장, 그리고 플레시아의 효과로 격발할 한 번이 남았다. 수영은 잠시 필드를 살펴보며 고민하다가 마음을 다잡았다.
"묘지의 공진충, 트윈보우, 스케일봄을 제외하고 암드 혼의 효과를 발동하겠어요! 암드 혼을 필드로 소생해요! 흐흠, 이번엔 게임에서 제외된 공진충의 몬스터 효과 발동!"
"잠깐만요! 아, 여기… 플레시아의 효과 발동!! [무덤 홀]!"
수영의 뒤에서 날아오른 공진충. 얼마 가지도 못하고 바닥에서 갑자기 휘둘러진 끈끈이주걱에 붙잡혀 땅 속으로 끌려가버렸다.
이제 남은 견제 수단은 세트된 카드 하나. 언제까지 아껴둘 수 있을지 한 번 보자.
"좋아요. 이번에는 암드 혼을 릴리스하고 아트라스의 효과를 발동하겠어요!
덱에서 비틀트루퍼 몬스터, [비틀트루퍼 스팅기 랜스]를 특수 소환! 그 다음 스팅기 랜스의 효과로 [비틀트루퍼 디센트]를 패에 넣겠어요!"
-"그래도 이대로 흐름 유지합니다!"
-"네! [비틀트루퍼 디센트]는 단순하게는 토큰을 내는 카드입니다만, 인빈시블 아트라스와 같이 공격력 3000 이상의 곤충족 몬스터가 있다면 필드의 마법이나 함정을 하나 파괴할 수 있는 부가효과가 있습니다!"
-"저 세트 카드를 치울 수 있다면 남는 내성은 플레시아랑 동산이 부여하는 파괴내성 뿐! 지금 이수영 선수의 화력이면 저 마지막 패의 한 장이 무엇이냐에 따라 방금 임청춘 해설 말마따나 세라한테 십자포화 집중시켜서 게임 터트릴 수도 있습니다!!"
수영이 패에 넣은 [비틀트루퍼 디센트]가 곧바로 필드에 나타났다. 수영의 필드에 개미를 닮은 병사가 창을 들고 필드로 달려왔다. 병사가 창자루로 땅을 세게 몇 번 두드리자 미아의 필드에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콰앙-!!거대한 공벌레가 세트 카드에 내리찍혔다. 그 순간 거대한 포효가 필드를 휩쓸었다. 풀밭의 식물들이 돌풍에 살랑거리며 포자와 이파리가 수영의 필드를 향해 날아왔다. 포효가 걷히자 비틀트루퍼들은 몸을 움츠리며 경계태세를 갖췄고 충혹마들은 약속하기라도 한 듯 동시에 기분나쁜 고음의 웃음소리를 내며 깔깔거렸다.
-"아, [위협하는 포효]! 이렇게 되면 이번 턴은 넘겨야겠는데요 이수영 선수."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분위기 뒤집혔습니다. 그러면 최선의 수는…"
용연은 해설들의 목소리가 거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대를 훨씬 높은 자리에서 내려보던 용연의 눈에는… 그 포효와 함께 마구 요동치던 미아의 그림자가 보였으니까.
그 포효음은 절대 저 버러지나 잡초들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자의 것이다.
"그러면…"
정작 충혹마들과 달리 미아는 십년감수한듯 눈을 크게 뜨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공격권이 사라진 수영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수영이 고민하는 표정으로 D-패드를 이리저리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제와서 견제 능력을 가진 몬스터를 갖추기엔 자원이 모자라다. 하지만 지금 필드의 포진은 너무 불안하다.
인빈시블 아트라스는 공격력도 높고 내성도 튼튼하지만 무적의 몬스터가 아니다. 다른 두 몬스터인 스팅기 랜스와 비틀트루퍼 토큰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 흐음… 음… 할 수 없군요. 카드 하나를 세트하고 차례를 마칠게요."
-이수영/LP 4000/패 없음
그래도 수영은 선택지가 없었다. 세트한 [무덤의 지명자] 또한 충혹마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거라도 하는 수밖에는 없다. [End Phase] 패널이 빛난 다음 미아의 차례가 돌아왔다.
미아는 자신도 모르게 가빠진 호흡을 진정시키려는 듯 한참동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표정을 다잡고 덱으로 손을 가져갔다.
"내 턴. 드로우!"
미아의 눈이 바빠졌다. 심호흡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아는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자기가 가진 카드들을 향해 이리저리 시선을 움직였다. 그리고는 무언가 결단한 것처럼 수영을 노려봤다. 더는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럼 클라리아와 플레시아를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3 [아티푸스의 충혹마] 링크 소환!"
플레시아와 클라리아가 조소를 흘리며 땅 속으로 가라앉았다. 우르릉 땅울림과 함께 풀밭에 커다란 싱크홀이 생겼고 그 안에서 하얀 실을 두른 소녀가 두둥실 떠올랐다.
[아티푸스의 충혹마/Lnk-3/1800/←↓→]
"그리고 아티푸스의 몬스터 효과 발동! 스팅기 랜스의 효과를 무효로 하고 파괴하겠어!!"
스팅기 랜스의 등 뒤에서 또 다른 싱크홀이 열렸다. 싱크홀의 안에서 갑작스레 거미줄이 잔뜩 뻗어나와 스팅기 랜스를 꽁꽁 옭아맸다. 싱크홀 안에서 붉은 눈동자 두 개가 번뜩인 후 여섯 개의 눈동자가 더 빛났다. 이윽고 부질없는 저항과 함께 스팅기 랜스가 추락하듯 끌려갔다.
그 후의 모습은 알 수 없었지만… 대신 무언가 갑각이 으깨지고 짓눌리는 소리가 안에서 울리며 맞이한 운명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소리가 멎은 직후 아티푸스의 충혹마는 미식을 먹은 미식가처럼, 장난감을 받은 아이처럼 소리내어 웃었다.
"아티푸스의 효과가 발동했으므로 덱에서 [홀티아의 충혹마]를 필드에 세트! 그 다음, 패 한 장을 버려 홀티아를 발동!"
미아는 멈추지 않고 패에서 계속 카드를 냈다. 목표를 포착하고 거길 향해 달리는 주자 같은 눈빛이었다.
"거기에 필드의 홀티아와 푸티카를 오버레이, 랭크 4 [시트리스의 충혹마]까지 엑시즈 소환 하겠어!"
[시트리스의 충혹마/Rk4/2500/300]
커다란 꽃들이 화악 미아의 몬스터 존에서 피어났다. 그 아래에서 잠에서 깨듯 또 다른 충혹마가 잎을 걷어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시트리스의 개화가 끝난 후 충혹마들은 일제히 수영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얼굴은 웃고 있었다. 이빨을 드러내는 표정을 하는 맹수처럼.
"그… 치만… 공격력 모자라잖아?"
"원래라면 그렇긴 한데, 아티푸스 2번 효과가 지속 효과거든? 묘지에 일반 함정 카드가 있으면…"
낙랑은 아티푸스의 2번 효과를 한 번 확인했다. 동시에 [Battle Phase] 패널이 붉게 빛났다.
"…충혹마 몬스터의 공격력이 1000 포인트 올라."
[시트리스의 충혹마/A 2500 → 3500]
[세라의 충혹마/A 800 → 1800]
[아티푸스의 충혹마/A 1800 → 2800]
[아트라의 충혹마/A 1800 → 2800]
제일 먼저 시트리스의 충혹마가 사악 손짓하자 바닥에서 자라난 제비꽃잎들이 아트라스의 한쪽 다리에 달라붙었다. 아트라스의 거체에 비하면 너무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지만…
쿠웅-!! 제비꽃잎이 붙은 아트라스의 다리가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균형을 잃은 아트라스는 주저앉고 말았다. 아트라스의 몸 곳곳에 피어난 식충식물들이 닿았다
끈적거리는 식충식물들에 의해 옥죄인 것처럼 몸을 다시 일으키지 못하고 그렇게 식물들에게 닿은 곳마다 녹아내리며 아트라스의 거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비틀트루퍼 토큰 역시 주변에 자라난 끈끈이주걱들이 팔 하나, 손가락 하나 보이지 않게 꽁꽁 삼켜버렸다.
이윽고 끈끈이주걱이 풀리며 녹슬고 찌그러진 갑옷만이 안에서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세트한 카드인 [무덤의 지명자]는 지금 상황에서는 무용지물. 이제 수영은 패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단지…
"좀… 너무한 거 같다…"
죽어가는 아트라스를 향해 아트라가, 아티푸스가 그 이빨을 들이밀었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저항하던 아트라스의 움직임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낙랑은 자신도 모르게 아트라스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냈다.
완전히 숨통이 끊긴 아트라스의 몸이 무너져내리는 동시에 듀얼의 종료를 알리는 버저음이 울렸다.
빠아아아아아앙-!!
그렇게 LT유스의 마지막 8강 진출자가 가려졌다.
남해는 솔리드 비전이 완전히 걷히는 걸 확인한 다음 화면에 떠오른 8강 대진표를 확인했다.
LT유스 8강 1경기.
강남해 vs 박영애.
미아와 남해의 조는 서로 정반대. 여기를 뚫지 않으면 그 다음도 없다.
당장 가장 중요한 건 이쪽이다.
…
교회 다락방은 평소처럼 사람 한 명 없었다. 대신 정령 한 명… 용연이 홀로 서서 고민하고 있었다.
용연은 하나 둘씩 자신이 아는 정보들을 나열해봤다.
미아는 남해를 노렸고, 실패했다. 대신 가이저의 영혼을 손에 넣었다.
가이저의 영혼은 아직 살아있다. 가이저는 자신의 영혼 파편을 흘리고 있다.
미아의 옆에는 미아가 '아빠'라고 여기는 존재가 있다. 진짜 아버지인지는 알 수 없다.
'아빠'를 살리기 위해 미아는 투기력-듀얼 에너지-를 모으고 있다.
미아는 이 대회에 참여했다. 목표는 상금으로 추정된다.
조금만 짚어도 이상하다.
투기력을 모으기 위해 어둠의 결투-듀얼-를 한다고? 어둠의 결투에서 승리한다면 물론 막대한 양의 투기력을 얻을 수 있다. 고위험 고수익의 투자다.
그러나 남해의 말이 사실이라면 미아는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 중일 터.
실력이 좋을 리가 없고 그렇게 되면 어둠의 결투가 상대적으로 가지는 이점인 '고수익'보다, 단점인 '고위험'이 더 크게 와닿을 것이다.
심지어 이 위험은 자산의 탕진이나 빚더미에 앉는 것 그 이상의 막대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면 굳이 남해를 상대로 고를 이유가 있을까?
남해의 성적에 대해서는 미아도 모를 리 없다. 교회 안에는 남해가 타온 상패가 진열된 공간도 있다.
둘이 가까이 지낸 만큼 남해의 실력도 들은 바 있을테지. 자신이라면 피하고 싶을 상대일 것이다.
가이저는 왜 살려두었는가? 가이저 정도의 정령이면… 정말 막대한 영력일 터.
투기력이 필요한 게 참말이라면 그 직후에 완전히 흡수해 투기력으로 바꿨을 것이다. 살려둘 이유를 종잡기 어렵다.
가이저가 스스로의 살점을 떼내는 일 역시 이상하다.
이를 모른다면 이런 일을 들키지 않을 정도로 감시가 허술할 것이고, 이를 안다면 스스로 제 영력을 줄이는 일을 묵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도 이상하다.
정리를 해나갈수록 미아의 동기와 목표 어느 것 하나 행동의 타당성에 대한 설명이 되질 않는다.
이 대회에 참여한 이유는 상금이라 하면 납득이 간다.
그런데… 어떻게… 이 대회 예선을 뚫은 걸까?
미아가 남해에게 승리한 건 사실이다.
아니, 그것도 사실 이상하다.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일반인이 교대표 우승자 출신의 남해에게 승리했다? 한 번이라면 그냥 운이 좋았다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아예 남해도 간신히 올라온 대회를 실력으로 진출했다? 그 정도의 실력이 있다고?
그런 실력자라면 어둠의 결투 없이도 투기력을 충분히 모을 수 있을 터.
정리해보면 모순 투성이의 결론만 나온다. 뭔가 중요한 열쇠를 놓쳤을까? 아니. 그보다는…
-"다른 목적이 있는 거겠지 역시…"
책사의 감이 불길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번에 봤던 그 요동치는 그림자, 똑똑히 들었던 괴성…
생각 이상으로 추악하고 역겨운 흉물과 엮여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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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글을 쓰다보면 저도 제 글에 대해 할 이야기가 계속 쌓이게 됩니다.
의식의 흐름 같은 이야기부터 글의 방향이나 주요 장면의 모티브라던가 숨은 패러디까지.
그러다보면 이런 걸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듭니다.
그래도 제 글의 이야기니까, 가능하면 제 글 안에서 해결하려고 해요.
자잘한 이야기들이니 굳이 글을 쓰기보다 차라리 글과 함께 쓰는 쪽이 나을 것도 같고…
흠흠. 그렇게 되어서 이야기 나온 김에 풀어보자면…
예전에 들은 이야기 중에 '소설의 장점은 바닥이 낮다는 것이고, 단점은 천장이 높다는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점은 사실 잘 체감이 안됩니다만, 단점은 정말 늘상 체감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다가 누구 대사인지 알아보기 힘들어서 글을 고친 적도 있어요.
효과음 같은 거를 적자니 너무 이미지가 망가지는데, 안 적자니 그 자리가 너무 비어서 고민한 적도 있고요.
열심히 적어놓은 다음, 너무 길어져서"아 이러면 그냥 안 읽겠구나"해서 그냥 통째로 다시 밀어버린 적도 있고…
글을 쓰다보면 진짜 이런 일이 계속 나와요.
내 문장이 어색하진 않나?
이렇게 말하는 게 이 캐릭터에게 적절한가?
대화가 누구의 것인지는 구분되고 있는가?
문장에 오타는 없는가?
가독성과 몰입감 문제도 작지 않습니다.
서로 갑론을박하며 치열한 수싸움을 해야 하는데 지금 나오는 카드가 뭔지 모르면 좀 그렇잖어요.
그렇다고 일일히 네줄 다섯줄 설명을 달면 이것대로 몰입감이랑 긴장감이 끊기고요.
…당장 지금도 이 작가 후기 대충 스크롤 내린 분도 없지 않을걸요.
진짜 쓰는 사람이 쓰고 싶은 것과, 읽는 사람이 보고 싶은 것은 엄청나게 충돌이 많이 일어나요.
결국 답은 "다양하고 많은 글을 보고, 계속 쓰고, 다시 쓰고, 그래도 쓴다." …라는 건 알지만, 실천하긴 쉽지 않네요.
몇번이나 한 이야기 같지만 그럼에도 반복하는 이유는 그만큼 중요한 이야기라서 그렇습니다.
많이 볼 수 없다면 최소한 가까운 곳에 꽂힌 글이라도 읽어봅시다. 꼭 거창한 명작, 대작 소설을 읽으라는 게 아니에요. 라이트노벨이나 웹소설이라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더 나은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니까!
글이 싫다면 예능이나 유튜브도 좋습니다. 무음 판토마임 같은 것만 아니라면 방송 장르는 거의 상관 없어요. 나레이션이나 출연진들 사이의 대화를 듣다보면 이런식으로 묘사하니 대화가 좀 더 부드럽고 자연스럽구나. 싶은 순간도 옵니다.
슬슬 사족이 너무 길어졌으니 제 이야기 말고 글 이야기로 들어가서, 미아를 마지막으로 16강이 끝났습니다.
8강 첫 로그는 본문에 나온대로 남해와… 오랫만에 복귀한 빡대가리영애 박영애쟝의 승부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분위기 밝고 꺄삐꺄삐한 고점이 목표! 훈훈한 전개 간닷!
…원래는 대진표 말고 4인방 삽화도 올리려고 했는데, 투고만 늦어지고 완성은 못했습니다 ㅁㄴㅇㄹ
아무튼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 일부 일러스트는 유희왕 게시판에서 팬픽을 연재하는 Lahmu 님의 허가를 받아 해당 소설에 사용된 일러스트를 사용했습니다.
8강 파트들 중에서 가장 먼저 짜인 파트니까 최대한 빨리, 그리고 잘 써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편에는, 삽화도 반드시 넣겠습니다!
역시 곤충은 충혹의 귀중한 단백질원이죠 후기는 본인도 매우 공감하므로 응원하면서 다음 편을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8강 파트들 중에서 가장 먼저 짜인 파트니까 최대한 빨리, 그리고 잘 써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편에는, 삽화도 반드시 넣겠습니다!
리버스 오브 아바타에 가까운지 아니면 초관에 가까운지 섣부른 판단은 역시 무리겠죠 그나저나 천장이 높은 건 인정합니다
그림이나 영상에 비해 확하고 한방에 꽂히기가 어렵지요... 유명한 마션의 첫 페이지 "나는 ㅈ됐다." 가 명문인 이유도 정말 간결하고 임팩트 있는 도입부라 누구나 한방에 꽂혔기 때문일테니.
서로 픽이 나오는 순간 '아' 했습니다. ARC-V에서도 나왔던 이 비유!! 얼마 전에는 또봇에서도 나왔다면서!! 그리고.... 미아의 동기나 목표가 '지금으로서는' 삐걱거린다는 사실도 눈치를 못 챘는데 띠용하군요. 과연 진의는? 그리고 후기에 관해서라면......은.... 모 독서 유튜버도 책의 장점으로 내세웠을 정도로 글은 시작하는 거야 각종 매체 중 가장 쉽지만, 반대로 고점을 찍거나 관심을 받는 것도 가장 어렵죠. '셀프 가시밭길'이라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달까요... 리스크는 큰데 리턴이 사실상 안 보이니까. 이래서 제가 팬픽을 절필한 거고, 다시 시작할 엄두도 안 나는 것 같습니다. 매번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착잡하군요
미아의 이야기는 미아의 로그 때마다 계속 진전시키는 것으로... 글이란게 참 아이러니한게 그래서 절필하고 망설이는 분들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그렇기에 쓰고 또 쓰고 계속 써봐야한다는 점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