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눈을 떠보니 익숙한 내 방 안에 있었다.
오늘도 무사히 살아남았다….
눈을 뜨자마자 떠오른 생각이 그것이었다.
자기 스스로 잠이 들고 깨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메커니즘인지 새삼 깨닫는다.
잠이라는 것을 통제 당한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일이었다니…지금까지는
너무 당연하게 느껴왔던 일이라서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일어났냐?"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려보니 기혁이 녀석이 밥상까지 펼쳐놓고 콘플레이크를 우유에 말아 먹고 있었다.
저건 내 일용한 양식인데 저렇게 멋대로….
그래도 태평하게 앉아 있는 녀석을 보니 그제야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한다.
녀석을 보자 나는 반가움과 함께 약간의 실망감을 느꼈다.
"왜 안 깨웠어?"
막상 꿈에서는 문제 푸느라 정신이 없어서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현실로 돌아오고 녀석의 얼굴을 보게 되자, 그제서야 잠들면 깨워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이 생각났다.
녀석은 뚱한 얼굴로 대답한다.
"안 깨우긴. 10분마다 깨웠다. 눈을 뜰 생각을 안 하더군. 이대로 의식을 잃고 못 일어나는 줄 알았다."
"뭐? 너 그럼 잠 안 잔거냐?"
내가 깜짝 놀라 그렇게 말했지만 녀석은 별 것도 아니라는 듯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우물우물 씹으며 말한다.
"아니? 한 3시쯤 잤을걸."
"그, 그래? 뭘 좀 알아냈어?"
"아니. 실패다. 하나도 분석하지 못했어."
녀석은 내 기대를 완벽하게 무너트린다.
그야 녀석도 분명히 쉽게 되진 않을 거라고 말했었지만,
그 자신만만한 태도에 기대를 했었던 게 사실이었기 때문에
남의 일일 뿐이라는 듯 태평하게 먹기만 하는 녀석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역시 내가 너무 자만했었던 것 같아. 그렇게 쉽게 분석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건데.
어쨌든 한 가지는 알았다. 백날을 붙잡고 있어도 분석은 불가능할 거라는 사실을."
"그, 그럼 이제 어떻게 해?"
사실 진짜 급한 건 녀석이 아니라 나였기 때문에 이렇게 우는 소리 할 때가 아니었지만,
유일하게 믿고 있던 희망이 눈앞에서 박살이 나니 울고만 싶었다.
"뭐, 일단 밥이나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너도 이거 먹을래?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는데?"
너 같으면 이 상황에 밥이 넘어가겠냐! 짜증을 내려던 나는…녀석의 여유 있는 모습을 보니
아직 끝난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군말 없이 부엌에서 그릇과 숟갈을 가져 온다.
그리고 녀석과 마주 앉아 우유를 듬뿍 부은 콘플레이크를 우적우적 먹기 시작했다.
녀석은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말을 꺼낸다.
"음. 이따가 너 방 한 번 뒤져봐라."
"방? 여기 내방?"
"그래. 청소하라는 게 아니라…. 너도 모르는 무언가가 이 방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지도 몰라."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알아듣게 설명 좀 해봐라."
내 초조함과는 별도로 녀석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여유 있게 말을 시작했다.
"해킹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은 원거리에서 너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고 있잖아."
"그래."
"그런데…그걸 전파를 통해서 신호를 보내는 거라고 생각하기엔 뭔가 이상한거야.
대체 놈들은 어디에서 조종을 하고 있는 걸까? 전파라는 건 그렇게 멀리 닿지 않거든.
휴대폰이 전국에서 터지는 것은 기지국과 중계기가 수 없이 많이 있기 때문이야.
그런 것도 없는데도 놈들은 어떻게 여기까지 전파를 보내오는 걸까?
우선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건 놈들이 이 근처에 살고 있다는 거지.
아주 가까이에서 신호를 보낸다면 거리가 문제될 게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이건 아닐 거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 많은 피해자들도 다 이 근처에 살고 있다는 말인데,
그 중 얼굴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설령 모두 서로 모르는 사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알게 되어 버린 지금, 돌아다니다가 거리에서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금방 알아보게 될 거 아냐?
그런 일은 놈에게 있어서 달가울 리가 없겠지?
그게 아니라면 답은 뻔해. 이 근처에 중계기가 설치되어 있거나
그에 해당하는 물건이 이 집안에 있거나. 둘 중 하나겠지.
헌데, 중계기 같은 걸 이 주변에 설치하면 눈에 확 띌 거라는 말이야.
어쩌면 이 근처의 집을 매수하여 그 집안 어딘가에 중계기를 설치해놨을지도
모르지만…그 많은 사람들의 주변 집들을 모두 매수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번거롭고 불편하고 또 위험한 일이야.
그러니 내 생각엔 이 방 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 물론 거실이나 화장실에 있을 수도 있겠지."
"아니, 이 방이라고 해도 이상하잖아? 이 조그만 방에 그런 기기를 어떻게 숨겨?"
"아마 있다고 하더라도…커다란 게 아니라 조그마할 거다. 조그만 것을 여러 개 놓아뒀을 수도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 남자가 실험 마지막 날에 치킨을 사들고 왔다고 했잖아?
사실 그 남자 입장에선 너와는 한 번이라도 덜 만나는 게 좋아.
그냥 기계만 회수하면 될 걸, 굳이 치킨에 맥주까지 사 들고 와서
같이 몇 시간이나 시간을 보낸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부자연스러워."
하긴, 그때만 해도 진짜 실험이라고 생각했기에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좋아라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처음부터 나를 속일 생각이었다면 쓸데없는 지출과 시간을 소모할 이유가 없다.
"아마 그때 네가 잠들었을 때 이 집 어딘가에 그런 것을 설치해뒀을 거라고 생각해."
"숨긴다고 해도…그럴 만한 공간은 기껏해야 서랍이나 옷장 정도밖에 없을 텐데.
그런 장소라면 19명중에 한 명 정도는 물건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해도 이상할 것 없잖아?
그걸 지금까지 아무도 눈치 못 채고 있다는 건 좀 이상한데?"
"아니.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작을지도 몰라.
예를 들어, 책과 책장 사이의 공간에 끼워둔다거나, 겨울용 옷 주머니에 넣어둔다거나…."
"그, 그렇게 작다고?"
"지금으로선 크기를 짐작할 수도 없어. 가설일 뿐이니까."
어... 엉??? 한동안 안본사이에 32~34화는 어디로 증발했나요?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