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사
박동하는 행성
박동하는 행성. 나는 홀로 이 기괴한 펄사 행성 궤도를 떠다니고 있었다. 놀라운 발견에 나는 한껏 고무되어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현실 도피이기도 했다. 심장이 뛰듯 주기적으로 파장을 내뿜는 이 행성에 매료되어 미친 듯 연구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쩌면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되는 수가 있었다. 이 세계에 나 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사단에서 나 홀로 미아가 되어 정처 없이 구조신호를 보내다 이 행성 계에 도착했다.
창조주가 창조물을 만든 이유는 성서에 적혀있지 않다. 인류에게 지혜를 준 것은 행간을 읽어 주길 바라서 였을테다. 그래서 내 생각으로는 외로워서 창조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이렇게 지금 내가 마주한 신비를 파헤치고 감탄하고 경외하길 바라서였을 것이다. 칼 세이건이 말했다. 창조주가 생명체를 만든 것은 이 아름다운 우주를 감상해줄 무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동의하는 바다.
극도의 무료함으로 인해 찾아오는 무력함 그 탈출구는 연구였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내 작은 우주선에 비하면 거대하기 짝이 없는 펄사 행성을. 위를 보아도 아래를 보아도 옆을 보아도 온통 행성만 보인다. 수축 성장을 되풀이 하는 맥동성도 아닌데 어째서 이 금속 덩어리가 펄사를 내뿜고 있는 것일까.
문득 펄사를 기록하다 어떠한 규칙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자료가 부족했지만 모자라는 부분은 컴퓨터에게 맡겼다. 문득 나는 이것이 언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상천외한 생각을 하기로 했다. 길어지는 고독의 시간에 내가 미쳐가는 걸까. 나는 비슷한 파장을 되돌려 보냈다.
믿을 수 없게도 파동이 달라졌다. 달라진 파장은 마치 놀란 것처럼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 했다. 마치 어린 소녀가 흥미를 끄는 무언가를 발견해 기뻐 중얼 거리듯이. 한참을 그러다가 다시 또 같은 파동을 내보냈다. 나는 이것이 언어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반경 7000km의 언어. 컴퓨터는 지구 시간 일주일을 해독했다. 그리하여 나는 이 파동이 무슨 의미 인지 알아 낼 수 있었다.
“누구세요?”
“누구세요?”
“누구세요?”
“누구세요?”
“누구세요?”
“…….”
미친것이 아니라면 맞겠지. 나는 대답해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잠시 조용해졌다. 어째서 일까. 내가 뭔가 실수 했는지도 모른다. 대답이 없다. 다시 말했다. “안녕하세요?” 하루 뒤에야 행성은 다시 파장을 내뿜는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똑같다. 아무래도 착각이었나 보다. 누군가 대화할 상대가 필요해 이 거대한 행성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고 믿어 버렸나보다. “안녕하세요?” 마지막으로 보냈다. 우주선의 큰 화면에는 다시 “누구세요?” 라고 뜨지 않았다. 나는 마시던 커피를 엎질러버리고야 말았다. 화면에는 선명한 글씨로 다른 말이 적혀 있었다. “거기 누구 있나요?” 나는 커피를 닦을 생각도 못하고 얼이 나가버렸다.
“당신은 누구죠? 나는 무엇인가요?”
“나는 인간입니다. 당신은 행성이고요.”
“인간? 인간은 무엇이죠? 행성? 행성은 또 무엇인가요?”
이리하여 행성과 나의 기묘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 행성에게 지루한 학술명은 떼어버리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가이아’ 다소 진부한 이름임에도 가이아는 무척 좋아했다. 나는 가이아에게 가이아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가이아는 자신의 이름을 굉장히 좋아하게 되었다. 가이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소녀 같았다. 눈도 없고 팔도 없고 다리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다신 몸에서 내뿜는 펄사로 자신의 의사를 전하는 방법을 깨우쳐 태초 이래로 억겁의 시간 동안 이 우주에 질문을 던져 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요?”, “나는 무엇인가요?” 하고 말이다. 이 우주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의식만 존재해왔다. 컴퓨터에게 가이아의 목소리를 소녀의 목소리로 읽도록 했다. 가이아는 우주에 대해 이야기를 듣길 좋아했다. 또 이해력이 빠른 학생이기도 했다. 빅뱅이라는 한 점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였다. “그럼 당신과 나 가이아는 태초에는 하나이었겠죠?”, “그렇겠지.”, “신기해요. 당신과 내가 하나라니.” 가이아는 또 지구 이야기를 좋아했다. 지구 이야기를 할 때면 마치 유모차에 누운 아기를 엄마처럼 보듬어 주려고 애쓰는 어린 소녀 같았다. “대단해요 지구란 아이. 저와 같은 크기의 행성인데도 생명체를 키워냈네요. 당신과 같은 아이들 말이에요. 저도 언젠가 성장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제 안에 생명을 탄생 시킬 수 있을까요? 당신과 같은 아이를 만들 수 있을까요?” 나는 이 행성에 대해 조사를 이미 마쳤기 때문에 어렵다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테라포밍 즉 행성개조에 대해서 말했다. 가이아는 또 경이로운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자신도 그렇게 생명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나를 조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빨리는 할 수 없어. 그리고 인간의 테라포밍 생명체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야 그저 이사하기 좋은 집을 짓는 것일 뿐이야.”, “그런가요. 그런가요. 그렇군요.”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나는 그녀 몰래 작은 이끼를 가이아의 지상으로 투하시켰다. 그녀는 감정이 풍부했다. 그리고 무척 감성적이었다. 소행성들이 날아와 몸에 박힐 때면 그 고통에 아파하면서도 불타 먼지가 된 소행성들에게 눈물 흘렸다. “불쌍한 아이들. 불쌍한 아이들이에요.” 또 어느 날은 탄생에 대해 이야기 했다. 가이아에게 작은 먼지가 모이고 모여서 형성 된 거라고 설명했다. “당신도 작은 먼지가 모이고 모여서 형성된 것인가요?”, “아니 달라. 인간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다음 인간을 낳지. 그런 식으로 형성되어.”, “사랑하는?”, “그래 사랑하는.”, 나는 사랑이란 감정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무지 애를 써야 했다. 가이아는 상상하기 어려워했다. 선문답 같았다. “사랑은 좋아하는 거야.”, “좋아하는 건 또 뭔가요.”, “쉽게 말해 그 사람이 옆에 없다고 생각하면 괴로운 거지 괴롭다는 것은 자꾸 그 사람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나서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걸 말하는 거고.”, “당신은 언젠가는 떠나나요?”, “응.”, “그럼, 그때는 알게 되겠네요.”, “뭘?” 모니터에는 아무런 글자가 뜨지 않았다. 잠시 뒤 또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이번엔 내가 아무 대답도 못했다. 반경7000km짜리 소녀의 고백을 받은 셈이다. 가이아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면 우리 이제 다음 인간을 낳을 수 있겠죠?”
언젠가 가이아는 말했다. “당신이 보고 싶어요. 당신은 어떻게 생겼나요? 나 가이아는 당신과는 있을 수 없나요?”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나는 아주 작은 인간이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진 피부. 나는 멀리 아주 멀리 달아나서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무섭도록 거대한 인간 아이러니하게도 외모는 작은 소녀였다. 빛나는 별처럼 반짝이는 눈은 조금씩 움직여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나는 작은 티끌. 먼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나를 손 위로 올려놓았다. 내가 손바닥 위에 올라왔을 때는 이미 그것이 손바닥이 아니라 거대한 대륙 위에 서 있다는 착각이 들었지만. 가이아는 손바닥을 들어 올려 자신의 눈높이와 맞추었다. 나는 경이로울 만큼 거대한 소녀의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당신은 이렇게 생겼구나.”
“그래.”
가이아는 한참이나 내 몸을 관찰했다. “당신을 갖고 싶어.”, “당신 같은 생명체를 내 안에 만들고 싶어.”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계속 관찰 했다.
“당신은 언제 까지 나와 있겠어? 언제나 나를 사랑해 줄 거야?”
“가이아, 너의 삶에 비하면 나의 삶은 순간이야. 사랑할 수 없어.”
그렇게 반경 7000km의 소녀 가이아를 차버렸다. 가이아는 슬퍼하거나 충격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가만히 나를 다시 관찰하는 것이다. 그리다 나를 올려놓은 손을 서서히 자기 얼굴에 가까이 가져가더니 입을 벌리는 것이다. 그리고 손을 털었다. 끝도 없이 깊고 거대한 가이아의 입 안으로 삼켜졌다.
잠에서 깼다. 가이아와 나는 또 아무 일도 없던 듯 계속해서 대화를 했다. 가이아의 생각이 자고 있던 나의 꿈에 들어와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속에서 본 가이아의 모습은 정말 가이아의 모습이고 정말 가이아의 생각이고 정말 가이아의 말이라고 믿겨진다.
그날도 지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구는 정말 그렇게 아름다운가요? 아뇨 분명히 아름다워요. 당신을 품어낸 아이니까요 분명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겠죠. 당신은 지구를 좋아하는 게 분명해요. 그러면 이제 나를 봐줘요 나 가이아와 지구를 비교하면 어때요?” 나는 화면 너머 숨 막히도록 거대한 가이아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거대한 무언가가 나를 짓뭉개는 느낌을 받을 만큼 거대했다. 지구는 아름답지만 구름으로 가득한 가이아도 아름다웠다. 경이로웠다. “왜 말이 없나요? 나 가이아는 지구보다는 아름답지 않나요?”, “당신은 지구로 돌아가고 싶은 거죠? 지구가 훨씬 아름다운 거죠? 그렇죠? 말해 봐요.”, “아니야. 그냥. 아름다워서. 바라보고 있었어.” 가이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험!]
갑자기 우주선에 온통 경고음이 울렸다. [위험! 접근중!] 컴퓨터는 자동으로 화면을 분할해 상황을 보여 주었다. 소행성 작은 소행성이 이곳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젠장.”, “피하면 되잖아 피하면!” [에너지 부족] [위험! 접근중!] “무슨 일인가요?” 가이아가 물었다. “아니 아니야. 지금 소행성이 내 쪽으로 날아오고 있어.” 가이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렇군요.” 방법이 없을까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했다. 방법이 없었다. 우주선을 이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고 두 물체의 궤도는 완벽히 일치했다. 앞으로 1시간 후. “죽는 건가.”, “당신 죽어요?”, “응 소행성에 맞아서.”, “죽으면 더 이상 없는 거죠?”, “그렇지.”, “그건 안 돼요.”,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걸.” 나는 멍하니 앉아서 화면을 바라보았다. 두 개의 곡선은 하나의 점에서 만난다. 그런데 하나의 곡선이 점점 변하는 것이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하더니 가이아에게 빨려 들어갔다. “네가 한 일이야?”, “그래요. 이 아이도 불쌍하지만 당신을 죽게 놔둘 수 없어요. 당신은 언젠가 지구에게 돌아가야 할 테니까요. 지구 그 아이에게요.” 가이아는 그날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다음 시간 일어났을 때 가이아가 말했다.
“있잖아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뭔데?”
“가이아는 당신의 마음을 잘 알았어요. 그래서 오늘은 이별을 배워보려고 해요. 작별 인사를 한다는 말이에요.”
나는 곧바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 가이아는 당신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걸 알았어요. 그래서 나 가이아는 이제부터 제 몸 안에서 생명체를 잉태하려고 해요.”
바로 대답하지 못하자 가이아는 계속 말했다.
“가이아는 지구, 그 아이가 부러워요. 그리고 가이아를 사랑할 수 없는 당신의 마음을 알기에 지구처럼 되려고 해요. 나 가이아는 내 몸 안에 생명체를 잉태해서 당신과 같은 아이들을 키워낼거에요. 우리가 하나의 점에서부터 출발했다면 우리가 서로 어디에 있던지 우리는 항상 같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죠? 나 가이아는 당신이 나에게서 태어났을 때 나를 아름답다고 말하게 하고 싶어요. 당신이 올 미래를 만들거에요. 그러면 그때 당신은 나 가이아를 지구보다도 더 아름답다고 말해주겠죠. 나를 지구보다도 더 사랑해 주겠죠.”
“가이아…….”
“이제 작별이에요. 나 가이아는 가이아의 몸을 바꿀 기나긴 잠에 빠질 거니까요.”
가이아의 파동은 서서히 느려졌다.
“정말로 안녕이에요. 당신, 안녕.”
눈물을 흘렸다. 가이아에게서 나오는 파동은 완전히 정지 했다. 화면에는 두 번 다시 가이아의 파동을 띄우는 일이 없어졌다. 이 노랗거나 하얗거나 한 거대한 행성은 묵묵히 회전했다. 행성의 표면에 부는 바람이 약해지고 구름이 걷어지고 태풍 횟수가 줄어든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가이아에선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로부터 1년 뒤 구조대가 나를 구출 했지만 누구도 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행성과 이야기를 나눴다는 말에 모두들 미쳤다고 나를 정신 감정을 받게 했다. 의사는 홀로 고독히 있으면 사물이 말을 걸어오곤 하는 증세가 생길 수 있다고 나를 애써 안심 시키려 노력했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안타깝게 여겼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거짓이 아님을 알고 있다. 가이아는 분명히 나를 사랑했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지금은 잠을 자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언젠가 내가 가이아의 안에서 태어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바꾸고 있다는 것을. 가이아.
목성의 노래 이야기를 토대로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