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린호의 통신이 끝나기 무섭게 나린호 주변에 머물러 있던 다른 착륙선 40여 대가 일제히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연기를 내뿜는다. 나린호에서 빛이 나는 듯한 모양으로 구름모양을 만들어낸 착륙선들이 일제히 착륙선 101호를 향해 날아오더니 일렬로 서서 나린호까지 길을 만들어내었다.
“착륙선 101호, 1번 데크 입항을 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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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륙선들의 도열을 지나니 착륙선 101호의 코 앞에 나린호의 황금빛 선수가 나타난다. 그 아래로 1번 데크가 경고 램프를 번쩍이며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입항 준비 완료. 1번 데크 진입.”
항해사가 선장을 향해 보고하자 선장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조종실 출구로 향했다.
“이제부터 지휘권은 항해사가 맡는다. 착륙 준비하고 최종 기계 점검까지 마친 후, 하선하라.”
마지막 명령만 남긴 선장은 곧장 조종실 출구로 나가버린다. 그의 모습이 사라지기 무섭게 제헌을 비롯한 몇몇 승무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사히 나린호에 도착했다는 안도감보다는 선장이 제일 먼저 자리를 비우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더 강했다.
박수원 선장은 항해 때마다 늘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없었다. 때문에 그에 대한 승무원들의 평가는 대부분 같았다.
'아무리 착륙만 남은 상황이라고 해도 자리를 비우다니. 같이 일한지 이미 4년째지만 존경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선장은 아냐.’
제헌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착륙선 101호 항해사 강진우입니다. 본 선은 이제 곧 나린호 1번 데크 1번 격납고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선체가 데크에 고정될 때까지 전 승무원은 자리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선장부터 저 모양인데 퍽이나.’
항해사의 안내방송에 제헌이 속으로 대답했다. 표면적으로는 선장과 사이가 나쁘지 않은 그였지만 어디까지나 기관장으로서 지위 때문에 그런 것일 뿐, 개인적으로는 말도 섞지 않을 정도로 혐오하는 사이였다.
“착륙 준비”
항해사가 제헌을 향해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낸다. 제헌은 그 신호에 맞추어 추진기 압력을 천천히 줄여 착륙에 적절하게 조절했다.
조타수가 시스템의 힘을 빌려 미세하게 선체를 조정하여 1번 격납고 위로 배를 올려놓자, 제헌이 천천히 엔진 출력을 줄였다.
“나린호, 착륙 준비 완료됐다. 격납고 자력 고정장치 준비 바란다.”
항해사가 나린호에게 향해 통신을 보냈다.
“착륙선 101호, 알겠다. 자력 고정장치 준비됐으니 착륙 바란다.”
나린호의 응답을 들으며 항해사가 착륙장치를 내린다. 기체가 가볍게 떨더니 무엇인가 아래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착륙장치 사출 완료. 자력 고정장치 동조 시작.”
제헌은 계기에 녹색 불빛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엔진 회전을 최저로 줄였다. 기체가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한다. 곧이어 착륙장치가 땅에 닿자 선체가 가볍게 쿵하고 흔들린다.
“나린호, 착륙완료했다.”
“착륙선 101호, 환영한다. 함교에서 기다리겠다.”
항해사가 나린호와 통신을 주고 받는 사이 제헌은 주 엔진을 천천히 세웠다. 미세하게 선체에 남아있던 진동이 완전히 사그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제헌은 조심스럽게 안전벨트를 풀었다. 중력의 제한이 사라진 몸이 자리에서 살짝 떠오른다.
“착륙선 101호 승무원 여러분. 나린호 승선을 환영합니다. 잊은 것 없이 모두 하선하시기 바랍니다. 하선 이후 전원 함교 아래에 집결하도록 하겠습니다.”
항해사가 선내통신을 마지막으로 보내고 자리를 뜨자, 제헌은 전원계통까지 모조리 꺼버렸다. 착륙선 101호는 완전히 동작을 멈추었다.
[2069년 4월18일 오전 11시18분]
착륙선 출구로 걸어나오며 제헌은 우주복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보았다. 손목의 달려있는 동그란 버튼을 누르자 헬멧의 유리부분에 상태 정보 영상이 출력된다.
- 잔여 산소량 : 4시간 32분 (90.6%)
- 잔여 축전량 : 6시간 32분 (93%)
- 현재 위치 : 나린호 선두 22m 지점
- 현재 시각 : 오전 11시 18분
- 보행 보조 전자석 작동중
- 완전 밀폐 실행 중
그가 입은 우주복은 선내용으로 나린호 내부에서 간단한 작업을 할 때나 혹은 지금처럼 데크에 착륙해서 본선으로 갈아탈 때를 위한 우주복이다. 선외용에 비해 가법고 산소량과 축전량이 적은 대신 무게는 절반도 채 되지 않아 가벼운 동작이 가능하다.
우주복에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제헌은 짐꾸러미를 챙겨 걸음을 옮겼다. 그가 걸음을 옮기는 박자에 맞추어 우주복 발바닥에 있는 전자석이 그의 발을 선체와 붙였다가 뗀다.
전자석의 켜지고 꺼지는 타이밍이 발걸음과 미묘하게 어긋나면 걸음마 갓 뗀 아기처럼 어기적어기적 걷게 된다. 실제로 우주복을 입고 자연스럽게 걸어다니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데 제헌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정말 짜증난다니까.’
제헌은 연이어 박자가 어긋나자 살짝 약이 올랐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은 기분에 속으로 좌우명을 한번 되뇌어보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급할수록 돌아가라. 급할수록 돌아가자.’
속으로 서너번 반복하고 잠시 멈춰서서 심호흡을 깊게 들이쉬었다. 덕분에 답답함이 조금 가시는 기분이 든다.
급할 수록 돌아가라. 본래 급한 성격이었던 그를 냉정하게 돌릴 수 있는 마법과 같은 말이다. 제헌은 답답함이 가시자 조금씩 가시처럼 돋아났던 성질이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데크 내 승무원들에게 알립니다. 착륙선들의 연이은 착륙으로 인하여 데크 내부가 소란스럽습니다. 격납고에 착륙을 완료한 착륙선의 승무원들은 신속하게 데크를 이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데크 내부로 안내방송이 울려퍼진다. 제헌은 고개를 들어 데크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데크로 연이어 진입하는 착륙선들과 이미 격납고에 자리한 착륙선에서 하선한 승무원들이 어지럽게 돌아다닌다. 마치 휴일 백화점 같은 모습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아아~ 통신 체크! 제헌아찌… 아니 기관장님! 들리십니까?”
때마침 제헌의 청각을 타고 낮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낮익은 목소리지만 그는 어깨가 흠칫할만큼 놀랐다. 심장이 벌컬 벌컥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제헌은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주변을 살핀다.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안심한 제헌은 다시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처음보다 더 서두르는 바람에 박자가 더 어긋났기 때문인지 그의 걸음걸이는 더 엉거주춤해졌다.
“아! 또 무시한다! 너무해!”
이번엔 소름이 돋는다. 제헌은 청각을 어지럽히고 평정심을 박살 내는 바로 이 목소리를 차단하고 싶었다. 다급하게 차단 가능한지 음성 신호가 들어온 회선을 급하게 체크했다.
- 수신 채널 : 기관 승무원 채널
‘역시…… 망할 승무원 채널.’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상했던 바다.
나린호의 승무원들은 모두 3세대 단말기 사용이 의무화 되어있다. 만일의 상황이나 불의의 사고에서 어떤 식으로든 상황 보고가 가능하게 하기 위한 안전장치의 개념이었다. 3세대 단말기가 신체에 삽입되어 항상 소지할 수 있다는 점과 연상 인터페이스를 활용하면 긴급한 상황에서 빠른 보고가 가능하다는 점을 활용한 정책이다.
이런 3세대 단말기 의무화를 통하여 만들어진 보고체계가 차단이 불가능한 공용회선, 승무원 채널이다. 보통 부서별로 채널이 배정되며 주로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부서 전체가 듣기 때문에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이 일반적이고, 때문에 사용 빈도가 매우 낮다.
3세대 단말기 사용을 의무화 한 후에도 단 한번도 쓴 적 없는 부서가 대부분일 정도지만 기관부는 예외였다. 정확히 말하면 기관부가 예외라기보다 어느 한 사람이 예외였다.
“기관장님~ 보고 드릴 것이 있어요! 아아 듣고 계세요? 안 듣고 계시다면, 히히, 별 수 없이 이럴 수 밖에 없는데……”
부서 채널을 개인 회선 마냥 점령한 이 망나니 같은 녀석이 바로 그 예외다. 제헌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망나니는 부서 채널로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여러분~ 기관장님께서 막둥이의 보고 요청을 거부하시고 아장아장 아기 걸음마로 데크 출입구를 향해 걷고 계십니다! 우리 귀여운 기관장님의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공유 해드릴까요?”
제헌은 등골이 서늘했다. 녀석이 근처에 있는 것이다! 그의 발걸음이 급해진다. 이 순간만큼은 그의 좌우명도 그를 차분하게 만들어주지 못했다. 행여나 녀석의 홀로그램 영상 공유 사정거리에 들면 기관장으로서 위신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 그저 망신이다.
조급한 마음에 엉클어진 머릿속 때문일까. 제헌은 발걸음이 꼬인 끝에 몇걸음 가지도 못하고 결국 제자리에 엎어지고 말았다.
“어머 기관장님 오늘도 부서원들 사기를 위해 자상하게도 몸개그를 보여주시는 거에요?”
즉각적인 반응, 녀석이 근처에 있는 것은 이걸로 명백해진다. 제헌은 엎어지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엎어져서 고개를 땅에 쳐박고 있으면 홀로그램 채널 공유를 한다고 해도 누가 그인줄 알아보겠는가.
“아아~ 기관장님은 왜 답이 없으실까? 귀여움을 기관부 전체에 홀로그램 공유를 통해 어필하고 싶으신걸까?”
그래 너는 떠들어라. 나는 엎어져 있을란다. 엎드린 김에 제헌은 잠시 뒤 기관부 조회 때 이 조그마한 망나니를 혼내줄 방법을 고민해 보았다. 얼차려를 줄까? 아니면 호통을 칠까? 아니 기관실 하나 지정해서 가둬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 평온함도 잠시, 제헌의 등을 누군가 툭툭 찔러보는 것이 우주복 너머로 느껴졌다.
“흐음. 정말 안 움직이시네?"
녀석이다. 녀석의 대답한 접근에 제헌은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녀석의 홀로그램이 그의 얼굴까지 스캔했을까?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분이다.
"이 분은 저희 기관장님이십니다. 평상시에는 아주 위엄이 넘치는 분이시죠. 하지만 지금은 그저 훌륭한 홀로그램 영상 캡쳐 공급원일 뿐입니다."
제헌은 화가 치밀었지만 애써 평정을 유지했다. 이 녀석 페이스에 말려들었다간 얼굴까지 스캔 당하고 빼도 박도 못한 채 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다. 제헌은 연상 인터페이스를 불러 급하게 메시지를 하나 작성했다. 그의 짤막한 메시지가 순식간에 전송된다.
"기관장님, 괜찮아요? 많이 놀랬죠?”
망나니의 조롱이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제헌은 이 위기만 넘기면 이번엔 정말 가만두지 않겠다고 이를 빠드득 갈았다.
망나니 녀석은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이나서 현의 등 뒤에서 떠들어 댄다.
"아 동네 사람들~ 여기 엎어져 계신 분이 누구신지 아세요~ 그 유명한 나린호 기관장님이에요~"
그때였다.
"그건 잘 모르겠고, 장유나. 네 녀석이 미친 짓을 하고 있다는 건 알겠다."
누군가가 망나니의 뒤통수를 후려 갈긴다.
"아야!! ......천 선배님?"
유나라고 불린 망나니는 목을 잔뜩 움츠리고 잘못하다 걸린 어린 아이 마냥 부들 부들 떨면서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데크로 들어서는 또다른 착륙선의 불빛이 천 선배의 등 뒤로 지나가며 실루엣만이 비친다. 오직 실루엣 뿐이지만 유나는 알 수 있었다. 장난은 여기서 끝이라는 것을.
"당장 데크 밖으로 안 튀어나가?"
"힝...... 네!"
불호령 한 마디에 유나가 벌떡 일어서서 뒤도 안 돌아보고 제헌의 걸음마와 비교되는 능숙한 모습으로 데크 출입구를 향해 뛰어 나갔다. 그동안 제헌의 구세주는 그녀가 출입구가 있는 데크 뒷쪽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그는 제헌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동시에 제헌의 시야에 문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 9번 엔진 부기관사 천정욱 무사히 나린호 탑승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유나는 갔습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기관장님.
구세주 정욱이 연상 인터페이스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데크 내부에서는 승무원 회선 통화 밖에 활성화 되지 않기 때문에 승무원 회선을 이용하지 않으려면 메시지를 보내는 수 밖에 없었다. 혹여 도망간 유나가 바닥에 엎드려 있던 사람이 자신의 기관장이 맞다고 생각하게 되면 곤란해질 것을 정욱이 배려한 것이다.
제헌이 바닥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고 정욱의 손을 맞잡는다. 그의 부축을 받으며 힘들게 몸을 일으키며 제헌은 메시지를 보냈다.
- 고맙다 정욱아. 악마로부터 구해줘서
정욱이 제헌과 눈을 마주치며 씨익 웃어보인다.
오늘도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