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외곽,
한 일본 전통 구조의 가옥에
양복을 입은
두 명의 사람이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그들이 앉아 있는 공간은
로테이(料亭)라고 불리는
고급 요릿집의 한 내실이었다.
방 한쪽에 마련된
도코노마(床の間, 일본식 방에 마련된 장식 공간)에는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가
말년에 그린
우키요에(浮世繪, 에도시대 말 유행한 풍속화)가 걸려 있었다.
걸려 있는 우키요에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다색목판화인 니키시에(錦絵)가 아니라
우타가와 히로시게가
말년에 남긴
몇 안 되는 육필화 중 하나였으며,
민간이 소유한
유일한 육필 유키요에였다.
방에 앉아 있는
두 명 중 한 명인
코시자와 카네모토(越沢兼友)는
그 유키요에를 바라보고 있었다.
“훌륭한 그림입니다.”
코시자와 카네모토 앞에 앉은 남자가 말했다.
코시자와 중공업의 회장이자
일본 최대의 우익단체인 ‘일본을지키는국민회(日本を守る国民会)’의 2대 회장이었던
코시자와 카네모토는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코시자와 회장은
에도시대의
니혼바시의 풍경이 그려져 있는
저 유키요에를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계속 그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그림에 농축되어 있는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있었다.
“얼마나 할까요?”
앞에 앉은 남자가
다시 말했다.
코시자와 회장의 시선이
천천히 그를 향했다.
불쾌한 질문이었다.
“87년도에
우타가와의 니키시에 중 하나가
15억 엔에
거래가 된 적이 있었지.”
그러나
코시자와 회장은
상대방의 체면을 살려 주기로 했다.
“대단하군요. 15억 엔이라니.”
“당시에는 놀랄 정도의 가격은 아니었네.”
코시자와 회장이 말했다.
버블 시기에
일본에는 돈이 넘쳐흘렀고,
넘쳐흐르는 돈으로
전 세계의 명화를 사들였다.
대표적으로
1988년에 손보재팬닛폰코아가
창립 백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를 53억 엔에 사들여
세계 미술계를 술렁거리게도 했었다.
코시자와 회장이 생각하기에,
우타가와 히로시게는
반 고흐 이상이었다.
고흐가 53억 엔을 받았다면
우타가와의 작품에는
그 배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은 가격이 많이 빠졌겠군요.”
앞에 앉은 남자가 말했다.
코시자와 회장의 시선이 다시 그림으로 향했다.
버블이 꺼진 지금에야
아무리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작품이라고 해도
그 정도로
가격이 나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5억엔은 넘어갈 것이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그 정도다.
더군다나
지금 도코노마에 걸려 있는
저 유키요에는
판화가 아닌 육필화이니까.
코시자와 회장은
고개를 돌려
내실 공간을 둘러보았다.
5억 엔이나 하는 문화재급 작품이
장식용으로 걸려 있는 공간에
위화감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에도시대부터 내려온
전통 있는 료테이는
이제 몇 개 남지 않았고,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아카츠카(紅塚)였다.
태평양전쟁 이전에
긴자에서
이곳 외곽 히가시쿠루메(東久留米)로 옮긴 덕분에
도쿄 대공습을 피할 수 있었던 아카츠카는
전쟁 이전에도,
그리고
전쟁 이후에도
높은 사람들이
은밀한 이야기를 하는 장소를 제공해 주었다.
지금
그들이 앉아 있는 내실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일본 내에서도
스무 명이 되질 않았다.
그 스무 명만이
우타가와의 우키요에를 감상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아깝게 되었군요.
짐빔에게 들어간 노력이 적은 게 아니였는데.”
코시자와 회장의 시선이
다시 앞에 있는 남자를 향했다.
사와베 노리히데(沢辺法偉),
일본의 방위를 담당하는
방위성 내부부국 방위정책국장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렇군.”
코시자와 회장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임스 붐,
일명 짐빔은
오랫동안 미국과 일본을 연결해 온
무기 브로커였다.
정확히 말하면
양국 정부와 방산기업에 모두 선이 닿아 있는
유일한 브로커였다.
거기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얀 베르그만의 회사인 크레디트 에우로파와 연결되어 있는
미국 내에서의 유일한 무기 브로커이기도 했고
코가 닌자 가문이 공식적으로 운용하는 그룹인
코우가 홀딩스 그룹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아니
정확하게는
코가 닌자 가문 전 당주대행이자
그 카가 토키시로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그 미노베 키도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인물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가장 유용하게 쓰일 수 인물이기도 했으니까.....
1976년 발생한
록히드 사건 이후로
일본에서 방산 브로커의 입지는
그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좁아져 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브로커로서 살아남아
스스로의 입지를 다져온 인물이
짐빔 그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사쿠라바 잇토키 손에 죽은
얀 베르그만이 키우고 있던 장기말 중
폰이 아닌 나이트 급의 인물이라고나 할까?
얀 베르그만과 연결되지 않았다면
짐빔 그도 다른 브로커들마냥
잊혀지거나 도태되어서
그냥
미국 내에서
부동산 거래나 하는
그런 삼류 브로커가 되었을테니까.......
코시자와 회장도
그가 조만간 현직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는
너무 건강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몸을 함부로 굴렸다.
그래도 너무 빨랐다.
그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 일을 위해서
코시자와 회장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공을 들였는데,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그를 대체할 인물이 마땅하지 않은데,
이래저래 걱정입니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사와베 국장이 말했다.
코시자와 회장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1970년부터 시작된
초장기 플랜의 결실을 맺을 날이
멀지 않았다.
만약 이번에
그 결실을 수확하지 못하면
다음 기회는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었다.
코시자와 회장의 나이를 감안할 때,
결실을 보려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다.
“왔나 봅니다.”
사와베 국장이 말했다.
코시자와도
나무 복도를 통해 들려오는
발 소리를 들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발소리가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
첫 번째 미닫이문(ふすま)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
발걸음이
두 번째 미닫이문 앞까지 다가왔다.
“모셔 왔습니다.”
문 너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사와베 국장이 말했다.
곧이어
미닫이문이 열리고
실크로 만들어진
이로무지(色無地) 기모노를 입은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20대 후반,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고개를 숙인 후
자신이 모셔 온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가자 조용히 문을 닫았다.
곧이어
그녀가 멀어지는 종종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세 사람은
그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서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완전히
그 발소리가 사라지고 난 후에야
마지막에 들어온 남자가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코우가 홀딩스 그룹 본사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품에 끼고 온 서류 봉투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사와베 국장이
서류 봉투를 개봉한 다음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을 꺼내
코시자와 회장에게 전달했다.
코시자와 회장은
A4 용지보다 조금 작은
8 X 10 크기로 인화된 사진을 건네받았다.
사진에는
두 사람의 남자
아니
어떻게 보면
일본의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교복 차림의 두 소년의 모습이 인화되어 있었다.
“코우가 홀딩스 그룹 본사에 들어갈 때 찍었습니다.
이름은 쿠도 신이치
데이탄 고등학교 2학년의 소년이고
일명 '일본 경찰의 구세주' 라고 불리는
그런 소년 탐정입니다.”
코시자와 회장의 시선이 여자에게 포커스를 맞췄다가
이어지는 설명에
그냥 들고 있던 사진을
테이블 위에 던지듯이 내려 놓았다.
그런 뒤
코시자와 회장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옮겨졌다.
“다른 소년은
사쿠라바 잇토키 라고 합니다.
이번에
이가 닌자 가문을 이어받은
19대 당주라고 합니다.”
마지막에 나타난 남자는
회장의 시선 이동에 맞춰
사진 속에 찍힌 잇토키에 대해 말했다.
“이가 닌자 가문 당주?”
사와베 국장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코시자와 회장은
말 없이 사진 속의 잇토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별다른 특징이 보이지 않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일본의 고등학생의 모습이었다.
다만
다른 고등학생들보다 운동을 좀 한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풍긴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나 할까?
코시자와 회장은
보고 있던 사진을
사와베 국장에게 넘기고,
자신은
두 번째 사진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다정해 보이는 시선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이가 좋아 보이는군.”
코시자와 회장이
남자가 들어오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두 사람의 모습에서
위화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에 들어온 남자가 말했다.
두 번째 사진을 넘기자
사쿠라바 잇토키에 대한
신상 명세가 적혀 있는 서류가 나왔다.
코시자와는
소리 없이
서류 위의 글자를 읽어 내려갔다.
출신지, 학력, 가족 관계, 교우 관계 등이 적혀 있었다.
“그...쿠도 신이치라고 불리는
다른 소년은?”
서류를 다 읽은
코시자와가 물었다.
쿠도 신이치의 정보가 적혀 있는 서류가 없었다.
“준비 중입니다.”
마지막에 들어온 남자가 말했다.
“얼마나 걸리나?”
사와베 국장은
코시자와 회장이 건내주는 서류를 받아 들면서 물었다.
“검증까지 포함해 빠르면 일주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남자가 말했다.
“일주일?”
사와베가 반문했다.
“검증을 포함해서입니다.”
남자가 변함없는 어조로 말했다.
사와베는
그렇다고 해도
일주일은 너무 길다고 생각했다.
거의 50년 가까이 이어진 계획이
결실을 맞이하려는
이 시점에서
시간은
말 그대로
돈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었다.
그런 사와베와 달리
코시자와 회장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였다.
단순히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떻게 자랐고 하는
그런 단편적인 정보가 아니라,
아주 작은 부분까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전부 알아내는
그런 자세한 정보가 필요했다.
쿠도 신이치라고 불리는
그 소년이
경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고등학생 탐정으로 불린다고 해도
어차피
조사하고 검증했을 일이었다.
“방법은?”
코시자와가 물었다.
“우선 저희와 이치가야(市谷),
그리고
교차 검증을 위해 하쿠렌(博聯)에도 의뢰를 넣었습니다.”
코시자와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내각정보조사실(内閣情報調査室),
일명 나이초의
내각정보집약센터 국제교류연구반 반장 히사키소마(久木総馬)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코시자와의 시선을 받아 내고 있었다.
어찌되었건
일본 최고의 정보기관은 나이초다.
그러니
나이초가 빠질 수는 없었다.
도쿄 신주쿠 이치가야혼무라초에 위치해
이치가야라고 불리우는
일본 방위성 정보본부(情報本部, DIH)가 참여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외부 세력에 의뢰했다는 말에
코시자와는
뭔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하쿠렌,
하쿠부츠칸렌타이(博物館連帯, 박물관연대).
코시자와도
하쿠렌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홍콩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민간 정보 기업.
민간 군사 기업인 PMC가
의뢰를 받아 전투를 수행하는 것처럼,
의뢰를 받아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주는 일을 하는
민간 정보 기업이다.
꽤나 맡은 일을
잘 처리해 내던 곳이었다.
지금 현재 어딘가로 증발해 버린
전임자의 영향력이 워낙 커서
좀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는 해도
과거에
코시자와가 회장을 맡고 있는
코시자와 중공업에서도
몇 번 일을 의뢰한 바 있었으니까.
유능하다는 말은
반대로
정보가 새어 나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통제 가능합니다.”
나이초의 히사키 반장이 말했다.
코시자와는
대답 대신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두 명의 소년 중
이가 닌자 당주라고 하는
사쿠라바 잇토키 대신
예상하지 못한
쿠도 신이치라는
고등학생 탐정으로 알려진 소년의 얼굴에
포커스를 맞췄다.
하지만
그들이 상상하지 못한 부분은
신이치와 잇토키가
자신들을 일부러 드러낸 이유는
얀 베르그만을 처리하고 난 뒤에도
그들과 같이 움직이고 있던
일본의 배후 세력을
역추적하기 위해서
진행하는
역공격 작전의 목표물이 그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들의 완전한 파멸로 끝났으니......
[연재] 유니콘 프로젝트 3 독립닌자요원 잇토키 (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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