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참 장난을 좋아하시는 분인 것 같네요.”
탐정의 마지막 말로 선생이 정신을 차렸는지 나서서 시체의 수습을 지휘했다.
계속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선생은 먼저 주부와 예린에게 피의 청소를
그리고 나와 샐러리맨, 탐정에게는 시체의 정리를 부탁했다.
그리고 물론 선생 자신도 시체의 처리를 도왔다.
먼저 우리 남자 넷은 아저씨의 시체를 창고에 두기로 했다.
샐러리맨은 뭐가 기분에 맞지 않은지 시체를 옮기면서도 뭔가 투덜투덜 거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날라리녀의 시체를 처리하려 방으로 들어갔을 때
날라리남은 넋이 나간 얼굴로 멀찍이서 날라리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충격이 크겠지.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여자 친구를 지켜주지 못했으니까.
사람들이 배려했는지 날라리남에게는 아무 일도 시키지 않았다.
넋이 나가있는 사람에게 일을 하라고 시키는 것 자체가 무리겠지 싶다.
날라리녀 마저도 창고에 들어가게 되자 이번에는 여자들의 차례였다.
창고에 있던 마포를 가져와 바닥을 닦고 또 닦고 또 닦았다.
아마 냄새가 배지 않게 하기 위함이리라.
아침부터 식당에 모두가 모여 있다.
아니, 아저씨와 날라리녀가 빠져서 9명에서 7명으로 줄어버린 모두 아닌 모두였다.
주부와 예린은 아직도 떨림이 멈추지 않는지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었으며,
남자들도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게 해준다.
물론 탐정은 시체를 보고 놀랐다던가, 그런 기색은 일체 없었다.
서슴없이 시체에 다가간 걸 보면 그런 건 이미 익숙해 졌음이 틀림없다.
나는 아무래도 시체에 익숙해지긴 싫다.
더 이상 그런 장면은 눈에 담고 싶지도,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내가 가장 떠올리고 싶지 않은 건.. 바로 어제.. 아저씨가 웃으며 말을 건낼 때.
어제까지만 해도.. 어제까지만 해도.. 말하고, 듣고, 생각하고, 숨 쉴 수 있는,
생기가 넘치는, 살아있는 사람이었는데.
다음날 아침에는 그 모든 생리적 기능이 멈춰버린.. 시체가.. 크윽!
내가 회상하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떠오르는 아저씨의 시체를
머릿속에서 억지로 지우려 애쓸 때,
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러분, 이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선생이 다음 말을 이으려 했으나 샐러리맨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여기서 나갈 방도나 찾지!”
샐러리맨은 한 시라도 빨리 이 저택을 나가고 싶은 모양이다.
선생이나 다른 사람들은 저택에서 어떻게 죽음을 피할 수 있을까
해결책을 강구하려는 듯 보이는데, 유독 샐러리맨만이 저택을 나갈 방도를 찾자고 한다.
그건 무리야..
이미 게임이 시작 됐으니 범인을 잡지 않는 이상 우리들에게 자유란 없어..
“그러지 말고 모두의 방을 검사하면 어떨까요?”
탐정의 하이 텐션의 목소리가 미간을 좁히게 만든다.
제기랄, 저 녀석은 뭐가 좋다고 저렇게 실실 거리는 거야.
마음에 안 들어.
“총이 여기서 나와 버리면 너무나도 싱겁게 끝나버려서 나오진 않겠지만
형식상으로 해두자는 겁니다.”
탐정의 말에 선생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개인적인 프라이버시가 걸린 문제라
당사자들에게 물어봐야 되지 않을까요?
“개인적인 프라이버시 때문에 한 사람이 더 죽을 수 있다는 걸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하고 탐정이 말하니 선생은 답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래.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일 것이다.
방을 수색하는 것.
숨길 곳도 없으니 총은
금방
나올.. 것..
이다???
아아아아아아!!!!!!
총!!!
내가 일어났을 때 내 주머니에 있던 총!!
그... 그건...
헉!!
이...이불 속에 파..파묻혀 있다!!!
“그럼 내 방부터 시작해”
매도 먼저 맞는 게 낮다고 여겼는지, 아니면 자신의 결백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샐러리맨이 선뜻 자신의 방의 수색을 허락한다.
아니, 그렇게 멋대로 수색을 시작하면..
먼저 2층에 샐러리맨, 주부의 방 그리고 날라리남의 방.
그리고 1층으로 내려와서
이미 죽었지만 아저씨의 방 그리고 탐정, 선생, 비어있는 방 순으로 수색이 이루어 졌으나
총은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남은 건 내 방과 예린의 방.
어떡하지, 어떡해.
젠장!
이런 빌어먹을 내 신세!
이제 와서 그만 두자고 말하면 이미 수색을 당한 사람들이 비난을 할 테고,
아니, 그전에 수색을 회피한다고 없는 의심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 그래.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해볼까?
방이 좀 어질러져 있어서 치우겠다고 하고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총을 숨기는 거야.
그래, 그 방법 밖에는 없어.
그런데 어디다 숨기지?
아니, 아니, 아니지.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다.
어떡해든, 어떡해든 해야 한다.
지금 2명이 범인에게 살해당한 상태에서 내 방에서 총이 발견되면
살인자로 몰리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거니와 범인을 찾은 대가로
나에게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방법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는 일부러 알려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
가장 최악의 결말인 내 방에서 총이 발견된다는 것을 전제로
사람들의 태도를 예상해 보았다.
예상은 3초도 채 지나지 않아 끝났고, 그곳에는 ‘절망’이라는 단어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바로 행동에 옮기기로 했다.
“저기..”
나는 먼저 사람들의 이목을 모았다.
“예린이 방 먼저 하면 안될까요?”
“네?” 선생이 물었다. “무슨 일이죠?”
“아.. 그게.. 방이 좀 어질러져 있어서 정리 좀 하려고요.”
숨을 쉬지 않고 단숨에 말했더니 조금 숨이 찼다.
선생은 내 말을 듣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예린 양의 방부터 할까요?”
휴~
다행히도 의심받지 않고 동의를 얻은 것 같다.
어서 치워버려야 되.
그렇다면 다음 문제는 어디에 숨길까 하는 것인데.
정말 산 넘어 산. 문제 넘어 문제로군.
나는 첫 번째 산을 넘은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안이한 생각이었다.
“그건 안되죠.”
“에?”
방금 들린 목소리에 주인을 포착한다.
탐정이 실실 쪼개며 말했다.
“이것 때문에 일부러 아무도 방에 돌려보내지 않았는데요?”
“윽!”
이런! 젠장!
내 얼굴 근육이 팍 하고 경직된다.
내 당황하는 얼굴을 보더니 탐정은 범인을 잡았다는 뜻인지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당했다.
드디어 내 방 앞에 선 일행.
그 중에 가운데가 바로 나였다.
그것은 탐정이 지시한 것인데 아무래도, 그 방의 주인이 뭔가 손을 못 쓰게
서로 감시하기 위함이란다.
이런 작은 것까지 신경 써주니 아주 고맙구만. 젠장!
탐정이 앞서서 내 방 문을 개봉한다.
지금 내 심장은 폭주하는 버팔로같이 미♡ 듯이 날뛰고 있고,
눈앞은 핑글 돌아 현기증을 느꼈으며, 목이 잠겨 호흡마저 떨렸다.
어떡하지를 심중에서 수십 번.
탐정이 먼저 방에 들어가고 차례로 나머지 일행들이 내 방으로 빨려들어 간다.
“어라? 깨끗한데요?”
탐정이 내 방을 둘러보더니 감상을 말한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입가를 귀에 걸며,
“방이 어질러져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윽!”
변명거리로 한 말이 나에게 덫이 되어 돌아올 줄이야..
이제 탐정은 나를 완전히 범인으로 확정 지었는지, 크크크크큭 하는 소리를 흘리고 있다.
아, 그래.
그게 그렇게 좋냐? 젠장..
이제 걸리는 건 시간 문제다.
그리고 내 방의 수색이 시작 되었다.
“여기는 안 열리는 건가?”
샐러리맨이 물었다.
책상 밑에 서랍은 잠겨있어 열쇠가 필요했다.
방송실의 책상 서랍도 안 열렸지 아마.
탐정은 성실하게 “열쇠가 필요한 것 같은데요?” 하고 답해 주면서도
내 방을 수색하는 손을 멈추진 않는다.
방을 구석구석 쥐 잡듯이 수색하던 탐정이 침대 앞으로 다가간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등이 긴장에 의해 축축해졌다.
손은 땀으로 끈적끈적. 발은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
탐정이 이불 위로 손을 가져간다.
큭..
여기서 끝인가.
어제, 아침에 나온 목소리는 당연히 누군가의 장난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 2명의 사망자가 나오면서
더 이상 장난이라고 치부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범행 흉기가 총.
그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방에서 발견 된다면..
범인 확정이다.. 젠장!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이제 자신의 입지가 얼마나 좁아질까를 생각해 보았다.
발 디딜 틈도 안보였다.
살인자에게 관용이란 필요 없는 것이다.
그때 빨리 없애버렸어야 했어.
어째서 나는 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대로 방 안에다가 방치해 뒀을까.
사망자가 나왔다는 게 실감이 안 나서?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데, 실감은?
아니,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어째서 내 주머니에 총이 들어 있었던 거지?
도대체 누가 내 주머니에 총을 넣은 거냐고..
탐정이 내 얼굴을 살피며 침대 위의 이불의 가장자리를 덥썩 잡았다.
아.. 끝났다.
“크흑..”
미간이 절로 좁혀지며, 입술 사이로는 신음이 흘러나온다.
탐정이, 어떻게 보면 쾌활한 미소와 함께 모두에게 선언하듯이 말했다.
“자, 그럼 엽니다!”
나는 눈을 콱 감았다.
눈을 뜨고 나서는 이제 나에게로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180˚ 달라져있을 것임을 알기에.
휘리릭
이불이 넘어가는 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하아..”
나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렇게 체념한 채로 시간이 흘러가기를 빌었다.
이제 비명이 터져 나오며
내가 이 눈을 떴을 때 모두가 나를 노려보고 있겠지.
‘이 살인자’ 라는 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