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이잉...’
수복기가 돌아가고 있다.
새하얀 환자복을 입고 있는 그야말로 진짜 환자로 보이는 그것이 곧 깨어날 시간이 되어간다.
지휘관이 부재한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났지만, 지휘부에는 먼지 하나 없다.
마치 지휘부 안에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이곳은 텅텅 비었다. 인형들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숙소에는 한때 인형들로 북적였다는 흔적뿐만 가구들로 남아있다.
요정, 그 시끄럽고 유치한 날아다니는 드론들을 위한 시설들,
카리나가 매일 같이 투덜거리며 작전보고서를 쓰던 자료실도,
따스한 미소를 지어주며 매일 스프링필드가 커피를 타주던 지휘부 내 카페도 전부 텅 비었다.
카리나마저 리베롤만 남기고 떠난 지 오래이다.
이미 그녀는 지휘관이 떠날 때부터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으리라.
그리폰 상부에서도 해당 지휘부에 대한 기록은 없다. 밖의 분위기는 한창 심각해서 사라진 지휘부에 관심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휘관이 버리고 간 붉은 그리폰의 정복만이 계속 지휘실에 걸려 다시 안 올 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같이 깔끔한 채로. 책상의 검은 명패는 그 까만 몸속의 반짝거리는 이름을 빛내며 아직 이 사람이 여기 있다는 듯이 호소해왔다.
책상도 깔끔하다. 지휘부엔 아직 생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때 리베롤의 더미 하나가 지휘실로 들어왔다.
생명력이 가득한 공간 속에 움직이는 그것에는 생명력이 없다. 그러나 생명력이 없는 것이 이곳에 생명력을 불어주고 있었다.
더미는 지휘실 책상에 커피를 놓았다. 누군가 돌아온다면 다시 이 자리에서 업무를 볼 수 있게끔.
허나 아무런 소용 없는 것이었다. 아무런 소용이 없는 불필요한 행위를 하는 리베롤의 더미는 그 행위의 의미가 없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
그저 기다릴 뿐. 지휘실을 나와 복도에서는 나머지 세 명의 더미들이 지휘부 내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전부 의미 없는 행위를 한다. 매일같이. 매일같이.
‘치이이이익...’
수복실에서 증기 뿜는 소리가 지휘부 복도에 메아리친다.
더미 하나가 이를 듣고 수복실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복도의 걸려있는 안내판만은 갈지 않았는지 지휘관이 떠났을 적 날짜 그대로다. 떠나기 전의 군수 담당 인형들의 목록이 걸려있다.
아마 그 인형들은 그 목록표를 보고 투덜거렸을 것이다.
그중엔 그런 인형들을 놀리다가 화난 인형에게 도망치던 꼬맹이 인형도 있었을 것이고,
군수를 하러 밖에 나간다는 것에 설레던 인형도 있었으리라.
복도에선 철혈의 디너게이트를 개조한 인형들의 애완동물들이 뛰어다녔을 것이고,
노란 머리의 친절한 인형들은 그런 로봇들을 마치 강아지 몰듯이 몰고 다녔을 것이다.
어떤 인형은 작전을 나가야 하는데 잠을 자다 늦어서 동료 인형에게 강제로 볼꼬집혀져서 나왔을 테다.
몇몇 인형은 거짓말을 하고 그걸 순순히 믿는 순진한 빚쟁이 인형도 있을 것이었고,
어젯밤 카리나의 심야 라디오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하던 인형들도 있었을 것이다.
북적였을 것이다.
뛰놀던 디너게이트는 낡아져서 복도 한 구석탱이에 쭈그려서 앉아있었다. 그 활기차게 몰려다니던 깔끔했던 디너게이트는 없다.
그 자리에 남은 건 홀로 늙어 죽을 때를, 주인을 기다리는 늙은 개가 있을 뿐이다.
디너게이트가 리베롤 더미가 수복실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는지 낡은 다리로 그 자신에게 무거운 조그마한 몸뚱이를 들어 올렸다.
더미의 발걸음은 빠르지 않았기에 늙은 디너게이트가 옆에서 걷는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마치 더미가 디너게이트의 발걸음을 맞춰주는 듯 보였다.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면서 디너게이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것, 아니 그건 살아있는 걸까? 인공지능이 정해진 패턴대로 행동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런 프로그래밍으로만 된 기계라면 어째서 그것에게서도 아직 삶의 흔적이 보이는 것일까?
무릇 애완동물이라 함은 그 주인의 품에 안겨 있을 때, 그것이 애완동물로써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이러저러한 철학적 고민을 해봐야 그것은 아직 움직이고 그렇기에 아직 그것에겐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할 시간이 있다.
더미가 멈춰섰다. 디너게이트는 수복실 안으로 그것이 젊었을 적보단 느리지만, 자신에게 무리가 되는 속도로 한 수복기 앞으로 다가갔다.
열린 수복기 안에서는 리베롤이 있었다. 그것은 더미가 아닌 본체였다.
늙은 디너게이트는 수복기 앞에 줄을 서듯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디너게이트는 그 카메라 같은 머리를 위로 들고선 얌전히 있었다. 그때 디너게이트에게로 새하얀 팔이 마치 천사처럼,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를 들려는 주인의 팔처럼 내려왔다.
“정말이지. 또 기다린 건가요? 절 주인으로 생각하는 걸까요?”
리베롤은 늙은 강아지, 디너게이트를 들어 올려서 품에 안은 체, 그것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디너게이트는 매우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P7씨나 SAT-8씨가 남으셨으면 혼자 남지 않았을텐데... 제가 원망스럽진 않으신가요?”
리베롤은 자신이 부른 이들을 떠올리며 과거 그들이 디너게이트들과 즐겁게 다니던 것을 떠올렸다.
만일 그들이 남았으면 디너게이트가 1마리만 남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많이 있던 디너게이트들이 하나, 둘 사라져갔다. 사유는 관리 소홀로 인한 파손. 사고사.
리베롤은 디너게이트를 길러본 적이 없었기에, 미숙했기에 그들은 하나 둘씩 부셔져갔고 그렇게 수많은 시간이 흘러 단 한 마리만 남았다.
그마저도 낡아져서 예전만큼 활발하지 못하다.
부품을 교체해주어야 하나 그녀는 어떻게 교체해줘야하는 지 모른다.
더 중요한 건, 자동적으로 들어오는 보급품을 제외하고는 지휘부로 들어오는 물자가 없기에 디너게이트의 교체 부품은 이 지휘부 내에 없다.
리베롤은 미안한 마음에 계속 디너게이트를 쓰담아준다.
한때 지휘관이 그녀를 쓰다듬어준 것처럼. 그녀는 지휘관 곁에서 부관의 일을 잘 담당했었다.
아니, 그때도 미숙했었다. 그러나 지휘관은 매번 칭찬해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담아 주었다.
옆에서 그걸 지켜보던 G41이라던지 MK23이라던지 여러 질투쟁이들이 많았지만 지휘관의 애정을 가장 많이 받은 건 리베롤이었다.
리베롤은 행복했던 그 나날을 떠올리며 디너게이트에게 자신이 지휘관에게 받고 싶었던 만큼 머리를 쓰담아주었다.
그런 리베롤의 정성이 통했는지 디너게이트는 리베롤의 따스한 품속에서 잠시 잠에 빠졌다.
디너게이트가 잠들자 옆에 서있던 더미가 와서 디너게이트를 조심히, 깨지않게 옆에 놓여져있던 방석으로 내려놓는다.
이윽고 다른 더미가 깔끔하게 세탁된 옷을 들고 수복실로 들어온다. 그러고는 더미 2마리가 리베롤의 옷을 갈아입히기 시작했다.
“아, 그렇군요...”
리베롤은 얌전히 그들의 손에 의해 옷, 옷이라 할것도 없는 그저 천조가리인 환자복이지만 그것이 벗겨졌다.
더미가 들고온 옷은 그것과는 달랐다.
“손님이 왔군요.”
리베롤은 더미들의 통신과 그것이 가져 온 옷을 통해 짐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맞았다.
책상 위에 놓여져있던 화분의 꽃이 활짝 폈다. 리베롤은 목도리까지 다 차려입고 수복기에서 일어났다.
안에서 보았을 때는 더미들이 관리를 해서 방치되었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지만 밖으로 나오면 그것의 속살을 볼 수 있다.
지휘부의 지상부 건물들은 하나같이 균열이 가있고 담장너머론 덩쿨이 자라났다.
위치가 좀 더 적지와 가까웠다면 이 곳도 위기를 면치 못했을 것이었다. 다행히 이 지휘부는 그러한 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격전의 포화을 겪지 않은 지휘부는 대신 세월의 흐름 앞에 허름해졌다.
그렇게 아무 손님도 없이 계속 방치되었다. 그리폰 본부에서는 자동화시스템을 통해서 계속 보급이 되고 있었다.
아마 그리폰 본부쪽은 정신이 없을 것이다. 사장이 체포되었다느니, 군부에 의해서 토벌당하고 있으니 등등 여러 논란이 있으니까.
하지만 시스템은 사람이 없어도 계속 돌아간다. 조그만 지휘부에 자동으로 소량 보급이 계속 되는 건 마치 ㅁㅁ비내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혼란스럽기에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 지휘부 밖을 어슬렁 거렸다. 밖에서 보면 폐 지휘부나 다름없는 이 지휘부에 간만에 손님이 찾아왔다.
“으... 지휘관이 떠났다지만 이렇게까지 방치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그녀는 후드를 걸친 체로 지휘부 주변을 어슬렁 거렸다.
그녀가 떠난지 벌써 5년은 되었다. 5년동안 관리가 안 된 지휘부 겉면은 폐허가 된체 방치되었다.
그녀는 철창의 덩쿨을 잡았다. 문득 놓고온 리베롤이 떠올랐다. 리베롤은 안에서 아직도 있을까? 설마 아직도 날 기다리고 있을까?
지휘부에 있던, 자신과 서약했던 리베롤이 생각났다.
그녀는 지휘부를 떠날 때 다시는 안 올 각오를 했고 수많은 인형들을 해체, 그러니까 사람으로 따지자면 전역을 시켜버렸다.
장난를 너무 많이쳐서 수도 없이 혼냈던 P7, ART556 같은 꼬맹이 인형,
매일같이 머리를 쓰다듬어달라며 조르던 G41, 매일 같이 메이드처럼 날 도와준 G36,
거짓말쟁이 동생과 밝은 인성의 카르카노 자매....
그렇다. 모두 그녀가 직접 떠나보냈다.
하루아침에 갑작스레 있어야할 곳을 잃어버린 인형들은 모두 그녀를 찾았지만 그녀는 그런 그들을 만나지도 않고 보내버렸다.
허나 리베롤만큼은 다른 곳으로 차마 보낼 수 없었는지, 리베롤을 수복기 안에 잠재워놓고 모든 인형들과 함께 지휘부를 같이 떠나버렸다.
무책임했다고 그녀는 생각하면서도 그 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며 지금의 그녀는 되새겼다.
철저히 자기 변론이었다.
‘끼이이익’
낡은 철제문이 녹슨 소리를 내며 열렸다. 갑작스레 난 소리에 그녀는 쏜살같이 벽 뒤로 숨었다.
몸을 구부리고선 품속에서 총을 꺼내 들었다. 지휘부에 숨어든 철혈일수도 있다.
그녀는 긴장의 침을 삼키고 기다렸다. 자신의 적일지도 모를 무언가가 나올 때까지.
열린 문 사이로 사람의 형태를 한 무언가가 시꺼먼 그림자를 문에 얽히고설킨 칙칙한 넝쿨에 드리우며 나타났다.
그녀는 제대로 그것을 보았다.
그 그림자는 한발짝 한발짝 문 밖으로 나왔고 그녀의 검지손가락도 그것의 발걸음에 맞춰 총의 방아쇠로 다가갔다.
그녀가 느렸다.
느렸기에 다행이었다.
“저기... 누구신가요?”
문밖에서 나온 것은 그녀가, 내가 해체하지 않았던 리베롤이었다.
분명 복장이 다르지만 알 수 있었다. 복실복실한 은발의 머리카락이며 새하얀 눈같은 피부는 하얗다 못해 창백한 느낌이었다.
총은 어깨 뒤로 맨체로 리베롤은 밖에 나왔다. 무엇보다도 리베롤의 손엔...
아직 내가 건네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또 리베롤이 입고 있는 옷. 부드러워 보이는 베이지색의 스웨터와 붉은 목도리. 그건 그녀가 만들어준 것이었으니까.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총을 든 손을 내렸다. 하마터면 쏠 뻔 했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터질뻔 한게 터지지 않았던 것이지 아직까지 여러 문제가 있다.
자기를 왜 남기고 갔느냐라며 질책할 리베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아니면 엉엉 울 리베롤을 어떻게 달랠지. 그런 걱정을 말이다.
그러나 리베롤 입에서 들은 말은 그녀를 당혹시키기에 충분했다.
“혹시... 길 잃은 전술인형이신가요?”
리베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잠시 당황했다.
리베롤이 농담을 하는 걸까? 허나 그녀의 눈 앞에 리베롤은 거짓말 하는 아이는 아니였다.
벽안의 눈동자 속은 맑다. 그녀가 버리고 떠나왔을 때와 같았다. 수년의 세월이 거짓말인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였다. 어차피 오래 머물 생각이 없던 그녀는 리베롤에게 잠시 거짓말을 하기로 하였다.
또, 떠날 때 상처를 줄까봐.
“응. 이 주변에서 격전이 있었거든...”
그래. 선의의 거짓말이다.
어차피 그리폰 제복도 입지 않았다. 이런 곳을 돌아다니기엔 그런 제복은 맞지 않는다.
도망쳐 나온 내게 가장 어울리는 건 허름한 복장에 내 목숨을 지키기 위한 것들 뿐. 겉만 보면 버려진 인형들과 같다.
“아,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잠시 여기로 들어오시겠어요?”
리베롤은 고운 손을 내게 내밀었다. 황무지 속에서 리베롤만이 생기가 넘쳐보였다.
손을 내밀자 죄책감에 등줄기로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내 자신에 대해 경악한 것이 아닐까.
“그래. 잠시동안...”
난 거짓말쟁이다. 그렇지만 나쁜 줄 아는 거짓말쟁이.
그래서 더 나쁜 줄, 걸 알고 있다...
잠시동안, 리베롤의 마음에 못을 박을 순 없다. 그렇기에 더 나쁜 사람이 되기로 했다. 후회도 많이 해왔다... 그녀는.......
리베롤의 안내를 받으며 지휘부 지하 쪽으로 들어왔다.
대부분의 그리폰 지휘부가 그렇듯이 지휘부는 지하 쪽으로 시설이 집중되어있기 때문에 지상으로 튀어나온 부분은 빙산의 일부분 같은 것이다.
덩쿨과 녹이 슨 지상부를 지나 승강기로 지하부로 들어갔다. 지상부와는 다르게 깔끔한 지휘부 안쪽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지나다니는 더미를 보며 그녀는 이 지휘부가 리베롤의 더미들로 유지되고 있단 걸 느꼈다.
더미들은 하나같이 아무도 올 일 없는 복도를 청소하고 알림판에 먼지를 닦고 있었고 숙소 안에선 이젠 없을 손님 맞이를 위해 더미가 정성것 청소를 하고 있었다.
리베롤의 더미는 본체와는 다르게 병약한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더미들은 죽어있는 것 같았다.
가엽게도.......
“여긴 너 혼자 있는 거야?”
그녀는 은근슬쩍 리베롤에게 말을 건다. 적막한 지휘부는 이 곳에 리베롤 혼자라는 걸 이미 말해주고 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리베롤 밖에 없다는 걸 그녀는 안다.
모를 리가 없다.
그녀는 알아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네... 지휘관님께선 전에 나가신 뒤로 아직까지 돌아오시지 않았어요.”
그녀는 리베롤의 얼굴을 살짝 봤다. 침울해 보였다.
그녀는 무언가가 그녀의 발을 잡는다고 느꼈다. 리베롤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
아마 리베롤은 그녀의 지휘관이 돌아오지 않으리란 걸 이미 알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래도... 언젠가 돌아오실거에요. 돌아오셨을 때 지휘부가 엉망이면 혼날 테니까요. 봐봐요.”
리베롤은 자신의 왼손을 들어서 내게 서약 반지를 보여준다. 끼워져 있었다.
처음 그녀가 끼워준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 서약 반지는 리베롤처럼 리베롤의 약지손가락에서 제 일을 다하고 있었다.
“전 지휘관님의 부관이자, 서약한 인형인걸요. 지휘관님을 도와서 이 지휘부를 이끌어가야 하는게 제 일이에요.”
리베롤은 오로지 책임감만으로 그동안 이곳에서 버텨온 것이었다.
서약 반지는 리베롤에게 있어서 희망일까 족쇄일까. 내려진 닻줄이 배를 멈춰 세운다.
그녀는 주머니 속의 반지를 움켜쥔다.
지휘부 안쪽으로 계속 걸어간다. 갑자기 디너게이트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일순 움칫했지만 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그건 P7이 기르던 디너게이트였다.
예전에 작전에서 복귀한 P7이 다친 디너게이트를 데리고 온 적이 있었다.
키우겠다고 P7이 굳게 고집부리던 것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 디너게이트가 무해하다고 판단했기에,
솔직히 그 누가 봐도 위험하다고 보이지 않았다. P7 품안에 안겨져 있던 그 디너게이트는 전장 속의 철혈의 디너게이트와는 분명히 달랐다.
마치 한 마리의 강아지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물렀으니까.......
“어? 손님 마중이라도 나오셨나요?”
리베롤이 허리를 굽혀 디너게이트를 안아들었다. 과거 P7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녀는 순간 과거의 추억 속에 빠져들었다.
‘지휘관! 나 얘 키우면 안 돼?’
P7이 품 안에 디너게이트를 꼭 안고서 마치 아이가 장난감 사달라고 조르듯이 말했다. P7의 모습은... 검은 수녀복의 어린 아이.
‘P7 씨, 지휘관님을 곤란하게 만들면 안 돼요.’
부관인 리베롤이 연약한 몸으로 P7을 말리려 했다.
그 당시 지휘부는 들썩였다. 개성 넘치는 인형들이 하루 하루 매번 색다른 사건 사고를 불러일으켰으니 매일같이 지루할 틈따윈 없었다.
그녀는 매우 물렀다.
‘일단은 그리폰 내에서 철혈 쪽 병력을 들이는 건 안 되지만.......’
그녀가 살짝 내뱉은 말에 P7은 절대 물러설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P7은 기어이 자신을 따르는 그 디너게이트를 기를 생각이었다.
지휘관은 아마 사실 그리폰 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은 없던 게 틀림없다.
그녀는 그런 P7의 고집을 단숨에 파악하곤 이내 말을 이었다.
‘그래도 무장을 해제한 디너게이트 정도라면 상부에서도 괜찮다고 하지 않을까?’
P7의 쾌제를 부르던 소리가 지휘부를 가득 매웠다.
이윽고 SAT-8이나 다른 여러 인형들도 디너게이트를 돌보고,
데리고 오면서 수마리의 디너게이트들이 지휘부 인형들의 애완동물로 자리잡았다.
헬리안은 그런 지휘관에게 한숨을 내쉬며 인형들이 해달라고 곧이곧대로 들어주면 곤란하다며 그녀를 구박했지만 결국 헬리안도 알고 있다.
지휘관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란 걸.
“저기.......”
현실 속에서 리베롤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노크를 했다.
순간 추억에 빠졌던 그녀는 이제 현실로 돌아와야한다. 그녀는 제일 먼저 리베롤 품 속에 안 긴 디너게이트를 보았다.
혹시 이 아이는 알까?
내가, 그녀가 지휘관이란 걸.
“아, 아무것도 아냐. 그 디너게이트는 혹시 기르는 거야?”
다 알지만 처음 만났으면 할 법한 질문을 했다.
“예... 여기 지휘부에서 지내던 인형들이 키우던 디너게이트 들이었어요. 이젠 한 마리 밖에 남지 않았지만요.”
리베롤은 말했다. 리베롤의 말에 그녀는 그 많던 디너게이트들 중 이 한마리만 남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리베롤은 애완동물로 디너게이트를 기르지 않았으니까. 그거에 대해선 서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겉보기에도 그 디너게이트는 많이 낡았다. 늙었다. 빛바랜 디너게이트의 도색이 세월이 낡아버린 헌 책 같이 벗겨졌다.
이젠 그리 빨리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차. 지휘부를 구경시켜드린다고 했었죠?”
리베롤은 그대로 디너게이트를 안고서 지휘부 안내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지나가다가 문득 열린 방을 지나가게 되었다.
수복실. 그 안은 마치 최근에라도 쓰였던 것처럼.
문득 그녀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상할 수 밖에 없다.
분명 이 지휘부엔 리베롤 뿐이고 누군가 쳐들어오지 않고 방치되었던 게 틀림없을텐데.
어째서 수복실을 누가 썼다는 건가?
리베롤이 연약하다고는 하지만 전투도 나가지 않는데 전술 인형이 수복실을 쓸 이유는 하나도 없다.
“누가 전에 다쳤나봐?”
그녀는 리베롤에게 묻듯이 살짝 떠보았다.
혹시 이 지휘부가 그녀가 자리를 비운 그동안, 적의 공격을 받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기에도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다.
이 지휘부에 현재 있는 인형은 리베롤 단 한명. 나머지는 리베롤이 다루는 더미 4개뿐.
철혈에서 이 지휘부를 공격했을 때, 과연 리베롤 혼자서 막을 수 있을까?
그럴리가. 매일 같이 혈액팩을 꽃고 다니는 이 아이는 전장에 나가본 지 꽤 오래됐다.
혼자서 철혈 부대를 상대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남기고 떠난 건 그녀의 탓이다.
그녀가 리베롤 혼자만 남기고 갔으니 만일 적의 공격이 단 한번이라도 들어오는 순간 이 지휘부는 물론 리베롤의 몸이 벌집이 될 것이다.
그녀의 탓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그럼으로써 책임회피를 시도해본다.
그래, 그 때는 적어도 이 지휘부는 전선이 아니였다고. 리베롤이 그런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 따윈 고려의 대상이 아니였다.
나...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본부가 통신두절된 지휘부를 찾아와 리베롤을 수거해갈 거라고.
그렇게 그녀는 이 책임으로부터 도망갈 생각이었다. 리베롤은 본부에서 잘 지내리라고, 그리 믿었었다.
그러나 자기 뜻대로 모든 게 흘러가지 않는 게 일상이었다.
군부로부터 그리폰이 불법 단체로 지목받은 것에서부터 갑작스럽게 상황이 급변했다.
그렇게 원래대로, 계획대로였다면 진작에 수거되어야할 리베롤은 계속 여기에 남아 이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게 된 것이었다.
“아뇨. 다친 인형은 없어요. 여긴 저 혼자뿐이니까요.”
저벅저벅. 리베롤은 계속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지휘관님이 그러셨어요. 이 지휘부는 전선과 거리가 멀어 이 지휘부 근처에선 큰 철혈 부대가 활동하고 있지 않다고.
네. 지휘관님 말씀대로 여기는 철혈에게 한 번도 공격당하지 않았죠.”
속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뇌리를 순간 스쳐간 이 불안함은 무엇일까?
다친 인형도 없고, 그 어떤 적도 이 지휘부를 공격한 적이 없다. 그런데 어째서 저 수복기는 방금이라도 돌아간 듯이 쌩쌩할까?
마치 드라큘라의 침대, 관처럼. 그것에게서 음산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불안함이 자물쇠가 되어 더 이상 그것에 관해 묻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계속 리베롤을 따라간다. 저벅저벅. 리베롤이 멈춰선다.
“여기가 지휘실이에요.”
리베롤은 문을 열었다.
리베롤 품 속에 있던 디너게이트가 리베롤의 품 속에서 빠져나와 지휘실 한 켠에 있는 헤진 방석들 가운데에 자리 잡아 앉았다.
저 방석은 전에 SAT-8이 디너게이트들을 위해서 만들어 준 방석들이었다.
갯수마다 하나하나 만들어주다보니 마치 방석은 산마냥 쌓였고 수많은 디너게이트들이 각자의 방석에서 자는 모습을 보면 마치 강아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젠 그 많은 디너게이트들은 없고, 단 한 마리의 늙은 디너게이트만이 홀로 남아 주인잃은 방석들이 한 데 뭉쳐 그걸 오르는 늙은 디너게이트는 마치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SAT-8씨가 만든 디너게이트들의 방석이에요. 원래는 각 숙소에서 지냈었는데요.”
시선이 리베롤의 시선을 따라 다시 디너게이트에게로 갔다.
그 눈길에는 다른 디너게이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안쓰러움이 묻어나왔다. 리베롤은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남은 건 저 아이 한 명 뿐이라 이곳으로 방석을 전부 옮겨놨어요. 혼자 지내는 거 보단 둘이 같이 지내는 게 나을 테니까요.”
리베롤도 마치 저 디너게이트와도 같아보였다. 측은함은 그녀가 들기엔 너무나도 무거웠다.
귓속으로 온갖 기억의 조각들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그만... 나도 너무 힘들었다고.......
그녀는 디너게이트, 십자가의 무게를 진, 한 명의 고행자가 되어, 그건 고행이 아니다.
도망이었을 뿐. 자기 자신 속 두 명이 서로 위로와 비난을 번갈아갔다.
“여기 앉으세요. 얘기할 시간은 있으시죠?”
리베롤은 지휘실에 놓인 접대용 테이블의 의자를 뒤로 당기며 말했다.
사실 접대용이라지만 이 지휘부엔 손님이 올 일이 없었다.
주로 콜트 리볼버나 M1919A4 같은 꼬맹이 인형들의 차지가 되었다.
그 아이들은 가죽으로 된 의자에 눕고 떠들고 매일 같이 지휘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다가 G36에게 끌려가는 게 일상이었다.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싫진 않았다. 인형들에게 불만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폰 상부는 후방에 있던 지휘부를 전방으로 이전시키려 했다.
물론 전술인형을 이렇게 후방에서 평화롭게 낭비하는 건 회사에게 있어서 손실이나 다름없을테니 이유는 이해가 간다.
허나, 그녀는 안다. 그 이후의 일을.
그녀는 그 전에 꿈을 꿨다.
끝없이 전장에 투입되어 머리의 반이 아스라지고 사지가 분절되는 인형들을.
어릴 적에도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세상이 난리통이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홀로 서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저기.......”
“어, 응... 알았어.”
그녀는 잠시 딴생각을 하다보니 멈칫했다.
리베롤의 말에 따라 그녀는 가죽 의자에 앉았다. 앉자마자 오래간만에 느껴지는 푹신함이 그녀를 감싸안았다.
“흐아아....... 이 느낌... 푹신푹신해!”
편안하다. 확실히 인형들이 매일같이 이 자리를 차지하고선 장난감을 물고 안 놓치려는 이유를 잘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이 느낌을 몰랐을 것이다.
자신의 자리는 저기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지휘관이라고 적혀있는 명패가 놓인 그 자리니까.
그 자리로 그녀는 지긋이 고개를 돌려서 본다. 과거 그녀가, 떠나오던 때와 같다. 오래되었지만 관리는 제대로 되었다.
더미들을 이용해서 지휘부 곳곳을 관리하고 있는 거겠지.... 떠난 사람을 위해서.
그 생각에 그녀가 앉아있던 의자는 편안함으로 그녀를 잡는 것이 아니었다.
의자는 이미 준비된 사냥꾼의 덫이 되어 그녀를 잡았다.
안 된다. 잡혀버린다.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요. 그 가죽 의자는 매일 다른 인형분들이 서로 앞다퉈가면서 차지하려고 했었으니까요.
그래서 지휘관님이 매일 다른 분들을 위해 관리를 직접 하셨어요.
저도 부관이었으니 옆에서 도와 드렸었구요.”
리베롤이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항상 이 의자는 그녀가 닦고, 청소하고 그랬었지.
리베롤도 옆에서 자기도 거들겠다며 그 연약한 손으로 아둥바둥 지휘실 청소를 도와주었다.
아마 지금의 리베롤은 그 때를 추억하고 있겠지. 리베롤은 한층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P7씨와 ART556씨가 의자를 두고 다퉜을 때가 제일 심했죠.
의자 구석 구석에 털이 안 붙은 곳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땐 정말 지휘관님이랑 둘이서 애를 많이 먹었었죠.
후후... 정말 좋았던 때였어요.”
리베롤의 추억이 끝나고 다시 지금으로 돌아왔다. 리베롤에게 지금은 지휘관이 없는,
빛바랜 과거만을 회상해가며 지내야 하는 고독함만 가득 할테니까.
“리베롤은 지휘관이 그렇게 좋아?”
그녀에겐 리베롤의 입에서 긍정의 대답을 들을 자격따윈 없다.
그래선 안 되는 것이다. 오히려 부정해줬으면 하지. 그래야, 그녀가 떠날 수 있을테니.
그러나 마음 한 편에선,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소망이었다.
역설 속에 리베롤이 입을 열었다.
“네.......”
리베롤이 대답했다. 그녀는 알고 있던 답변이었다. 그녀의 기억 속의 리베롤은 아프지만서도 행복해보였으니까.
지금의 리베롤도 그녀가 아는 그 리베롤이니까. 그러나 말 끝을 흐린 리베롤의 손이 떨고 있었다.
리베롤의 입은 무언가 말하기를 꺼리고 있었다.
“그래...? 지휘관이 얼마나 좋길레, 이렇게 널 버려두고 갔는데.......”
그녀는 씁쓸하게 말했다.
그러나 리베롤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그 말을 부정했다. 아니라고 해주길 바랐던 그녀는 또 미안해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다음에 리베롤의 말은 그녀는 사실 아까부터 알고 있었다.
아무리 오래간만에 만났더라도 인형이 사람마냥 시간이 흘러서 까먹을 리 없으니까.
“마인드맵에 문제가 생겼어요... 더 이상 지휘관님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게 됐어요.......”
씁쓸했다. 그녀도 리베롤도. 그토록 기다리던 지휘관이 왔으나 알아보질 못하고 계속 기다리는 리베롤이나,
떠난 이후로 이리 슬프게 지내는 리베롤을 보는 그녀나.
전부 속으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거야?”
그녀의 잘못이다. 그녀가 있었더라면 리베롤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텐데.
홀로 외롭게 지내지도, 디너게이트들을 잃게 되지도 전부, 그녀 탓이다. 그녀만 아니었어도.
나같은 거 보다,
나보다 더 좋은 지휘관이 있었더라면....
“기억은 나질 않아요.... 그래도... 지휘관님이라면 찾아오셔서 말해줄테니까요. 다만.......”
리베롤은 울먹거리며 말했다. 그녀는 말해야 한다. 허나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기적이니까.......
“기다리는 동안... 지휘관님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게... 제가 살아있는 거 같지 않다고 느껴져요.......”
마음이 미어진다....... 이건 전부 내 탓이다. 어서 말해야 한다. 그렇지만 과연 리베롤이 용서 해줄까?
아니, 용서하지 않더라도 말해야한다.
“저기.......”
‘끼이익.......’
방문이 열리고 더미가 들어와 그녀의 말을 끊는다. 창백함이 따뜻했던 지휘실로 스며들었다.
“아, 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잠시 해야할 일이 있어서요.”
“어... 응.......”
리베롤은 서둘러 지휘실을 빠져나갔다. 리베롤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더미가 그 문을 닫았을 때, 더미의 눈에서 서슬퍼런 한기를 느꼈다.
‘쾅’
더미도 의식이 있었나? 그럴리 없다.
그녀는 자신의 지식에 기대어 더미에겐 본체와 달리 개인적인 의식이 있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떠올렸다.
하지만 그건 분명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더미는 그녀가, 내가 누군지 안다. 기억...
분명 리베롤은 마인드맵이 고장났다고 그랬다. 하지만 무엇때문에? 철혈의 공격도, 다른 인형들과의 불화도 없다.
이유를 찾던 중 문득 그녀의 눈에 한마리의 누워있는 디너게이트가 들어왔다.
'지휘관님, 뭘 하시는건가요?'
디너게이트를 건드리던 내게 리베롤이 말했었다. 당시엔 P7이 장난을 너무많이 쳐서 지휘부 내에서 많은 인형들이 곤란해 했었다.
누구는 물건이 바뀐 것부터 시작해서 냉장고에 이상한 살아움직이는 생명체가 들어가 있다던가 등등의 일이 있었다.
물론 P7이 했다는 증거는 없다만 모두가 P7이 그랬을 거라 의심하고 있었다.
'디너게이트 안에는 이렇게 초소형 기억칩이 있어.
이걸 이용하면 디너게이트가 본 것들을 볼 수가 있지.
심지어 조작하면 일정 부분을 비디오마냥 녹화할수도 있어.
이걸로 P7이 그랬는지 안 그랬는 지 알 수 있을 거야.'
그 날 반의 문제는 해결됐고 나머지 반은 결국 미결된 문제가 되었다.
그 디너게이트는 항상 P7을 쫓아다녔던지라 분명 놓친 건 없었다. P7 본인도 디너게이트를 들이밀자 대부분의 문제에 대해선 인정했었다.
뭐, 아마 ART556이나 다른 꼬맹이 인형들의 짓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그닥 큰 문제는 아니어서 지휘부 내에서도 금방 말이 사라졌다.
그렇다. 리베롤의 마인드맵이 한순간에 망가지지 않았더라면, 리베롤이 무언가 남겼다면. 그것은.......
‘터벅터벅’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방석의 산에 누워있는 마지막 남은 디너게이트에게 다가갔다.
디너게이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자세히 보니 그 때 그 디너게이트였다.
아마 이 디너게이트가 지휘부에 첫번째로 들어온 디너게이트였고 나와 리베롤이 제일 아끼던 디너게이트였으니,
리베롤도 어떻게든 이 디너게이트를 살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디너게이트의 머리 부분을 빼서 그 안의 칩을 꺼냈다.
그 때 그 칩이다.
나는 디너게이트의 머리를 다시 끼워주고는 원래의 내 책상으로 향했다.
칩에 무엇이 찍혀있을지는 모른다. 아마 아무것도 안 찍혀있을 수도 있다. 그랬으면 좋을 것이다.
그랬으면.......
“리베롤!”
나는 지휘실을 빠져나와 지휘부 곳곳을 뒤졌다. 리베롤을 찾으러.
설마했었다. 리베롤은 기록을 남겼다. 기특한 리베롤은 내가 그 시절 했던 말을 기억했다.
그리고는 내가 알려준 방법으로 자신을 남겼다.
그래. 무언가 뒤틀렸다. 리베롤의 마인드맵은 정확히는 고장나서 기억을 잃은 게 아니다.
리베롤은 마인드맵이 고장나 뒤틀려 망가졌다.
온 지휘부를 샅샅히 뒤졌으나 리베롤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수복실이었다.
리베롤은 다친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수복실은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남은 건 그곳 뿐이었다.
‘끼이이익...’
아까와는 달리 문이 닫힌 수복실 문을 열자.......
“........!”
바로 달려들었다. 천장에 매달린 하얀 인형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주머니칼로 리베롤의 목에 달린 밧줄을 끊어버린다.
땅으로 떨어진 하얀 인형은... 마치 하늘로 못올라간 천사마냥 분한듯이 숨을 토해내며 내게 말했다.
“케...케흑... 어, 어째서죠?”
늦지 않았다. 리베롤이 괜찮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고 싶었으나, 사실 그러지 못한다. 이미 그건........
“내가 묻고 싶은 거야. 대체 왜.......”
숨을 헐떡이는 리베롤을 안고 얘기했다. 이미 리베롤의 마인드맵... 정신이 갈갈이 찢겨져 나갔다.
더이상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다. 그럴 수 있는 시기는 지난 것이다.
이대로 본부로 대려간다 한들 마인드맵 복구 불가로 해체될 것이다. 어쩔 수가 없다.
그 밧줄을 끊더라도 결국, 무엇을 하더라도 리베롤의 끝은 정해진 셈이다.
“대체 왜 그러는건데.... 아직 지휘관을 기다린다면서.......”
나는, 그녀는 리베롤에게 따졌다.
난, 그녀는 리베롤이 살길 바랐는데....... 무슨 일이 리베롤을 이렇게 망가트렸단 말인가.
난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하나만은 분명했다. 망가지기전 리베롤은 내게 마지막으로 부탁을 했다.
그러니.......
“지휘관 님이... 살아야 한다고 그랬으니까요.......”
그 말을 듣고 이게 무슨 이상한 소리인가 싶었다. 어떻게 ■■을 하는 것이 사는 것인 건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갸날픈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계속 기다리면서 느꼈어요... 지휘관 님을 기다리면서 전 죽어가고 있었으니까요.......”
“무슨 소리야. 인형이 죽어간다니... 넌 다치지도 않았잖아!”
리베롤의 연산제어장치가 맛이 가도 한참 간 건가? 리베롤의 몸은 다치지 않았다. 오히려 나와 있던 시기보다 더 건강했다.
“지휘관 님과 함께 있을 때는 이렇지 않았어요... 분명 저는 그때 살아있었죠...
그런데 지휘관 님이 없는 지금의 저는... 저에게 무엇이 살아있다는 증거죠?”
아... 리베롤에게 뭐라 말해야할 지 몰랐다. 리베롤을 설득할 수 없다. 그럴 논리는 없으니까.
리베롤만 남겨두고 간 건 나다. 내 잘못이다. 리베롤에게 뭐라할 자격이 없다.
“그래서 전 스스로 생각했어요... 살아있다는 증거를... 무엇이 살아있는 것만이 할 수 있는지를.......”
안겨 있던 리베롤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리베롤의 손이 점점 올라왔다. 난... 알고 있음에도 받아들였다. 리베롤이 내 목을 잡았다.
“으윽.......”
“그래요... 살아있는 것만이 오직 죽을 수 있어요. 거기서 끝이 아니에요.......”
그녀의 손아귀가 점점 내 목을 졸라왔다.
“인형은 죽더라도... 수복기로 다시 살아나면 되요. 그래서 전 결정했어요. 지휘관 님이 오실 때까지 살아있기로.......
이게 제가 살아있기로 한 증거에요.”
“리, 리베롤.......”
리베롤 목에 감겨있던 목도리가 사라지면서 리베롤의 목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당신도... 저와 같이 기다리죠... 그래요.... 지휘관님이라면 분명.... 당신도 좋아할거에요."
수십번도 목을 맨 그 흔적이....... 리베롤의 팔을 잡던 손을 놨다. 그래. 책임져야한다. 그녀가 이토록 망가진 건....... 내 책임이니까.
‘지휘관 님... 죄송해요... 제 마인드 코어에 이상이 발생했어요. 아마 저는 몇개월 내로 망가질 거에요.
이미 지휘관님의 얼굴도 점점 기억나지 않게 되었어요.... 죄송해요. 지휘관님....... 저도...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았는데.......’
영상 속 리베롤은 울고 있었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감정이 있게 설계된 인형에게 감정이 독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수년간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리베롤의 마인드맵을 갉아먹던 것이다.
‘이 영상을 보실 때 쯤이면, 저는....
아마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겠죠. 적어도 지휘관님과의 추억이 하나하나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은 이 디너게이트에게 메세지를 남길게요...
이번이 저로서 남기는, 지휘관님께 처음으로 드리는 부탁이 될거에요.’
목을 졸리는 가운데에 생각했다.
리베롤만 보낼 수는 없다. 역시 난...
이기적인 가보다....... 내 목을 조르는 리베롤을 감싸안았다.
이미 목을 조르는 손을 풀 생각따윈 없다. 리베롤의 손아귀는 나를 곧 죽게 만들것이다.
나도 그녀에게...
마지막 선물을 줄 것이다.
‘사랑했어요. 지휘관님. 오늘도 부상 치료 부탁드릴게요.’
“오늘도 부상 치료... 도와줄게.......”
매일 같이 리베롤과 나눈 아침인사. 어찌보면 리베롤과 나만이 아는 그것이...
바로 리베롤이 자신에게 심어둔 정지코드였다.
‘.......’
리베롤의 움직임이 멈췄다. 주위가 조용해졌다.
리베롤에게 잡힌 나는 곧 숨이 막힌체 죽는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속으로도 나를 그녀라 부르며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다니, 정말 우습지도 않은가?
누가 이런 얘기를 듣는다면 아마 나를 욕하겠지. 그러기를 바랐던 걸까,
아니면 욕먹기 두려웠던 걸까. 나는 속으로 계속 나를 그녀라고 했다. 피해왔던 거다.
이젠 아니다. 나는, 지휘관이었던, 리베롤의 부탁을 듣고 이러기로 결정했다.
내 실수로 리베롤을 죽게 만들었으니, 나도 같이, 리베롤과 마지막만은 같이 하기로 했다. 적어도 수년 간 홀로 보내게 했으니,
이번엔 평생 같이야.
‘미안해. 리베롤... 외로웠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안은 손으로 리베롤을 토닥였다. 그리고 리베롤의 눈을 보았다.
리베롤의 눈은... 따스해보였다. 편안해보였다.
리베롤은 내 품안에서 잠을 잔다. 나도... 리베롤의 품 속에서 잠들 것이니까.
이젠... 같이야.......
주머니 속, 반지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ㄷㄷㄷㄷㄷ
으아아아 여기선 자1살이 검열당했네 ㅁㄴㅇㄹ;;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