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정말 지휘관님은 도대체 언제쯤 임관하시는 거야!”
지난 15시간동안 그렇게 좋아하는 낮잠도 자지 못한 채 이번 작전에 대한 사후처리를 하던 카리나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S09 지역에서 일어난 인형들과 인권단체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충돌이 있다는 신고에 임시 지휘관 카리나는 서둘러 AR소대를 출동시켰다. 하지만 이미 캠프의 인형들은 이미 인간들에게 당한 상태였고, 왠 반 죽음 상태의 민간인 아이를 구출해 오는 둥 정신없는 하루였지만, 카리나는 의사 수배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해 나갔다.
“고생하시네요. 카리나님.”
“M4 수술은 잘 끝났어?”
“네, 의사 말로는 출혈이 많이 심해서 어려울 것 같다고는 했지만, 다행이 이제 생명의 지장은 없다고 하네요.”
M4의 말에 카리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돌렸다.
“그래도 한시름 놨네.”
“아, 그리고 말씀하신 신원조회 말인데요.”
M4는 잠시 카리나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신원조회가 전혀 안돼요. 혹시 몰라서 실종자 목록을 찾아봤는데도 마찬가지고요.”
M4는 주머니에서 군 인식표를 꺼내 카리나에게 내밀었다.
“아이가 차고 있던 군 인식표인데. 저는 군 신원 조회 권한이 없어서요.”
인식표를 받아든 카리나는 인식표에 새겨진 이름을 확인했다. 보통의 군번줄이라면 같은 이름이 새겨진 인식표가 두 개였겠지만 M4가 가져온 것은 이름이 서로 맞지 않았다.
- 강승훈
45 – XXXXXXXX
- 벨로이 레이나
45 – XXXXXXXX
‘45년도?’
45년도면 17년 전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난 해였였다. 아이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시기. 아마 가족이나 지인인 모양이었다.
“알았어. 본사에 연락해서 신원조회 요청을 할 태니까. M4는 일단 수복부터 받아. 총 맞았다며.”
M4는 일말의 책임감 때문인지 죄책감 때문인지 기지에 돌아온 직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아이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아니에요 아이의 몸이 호전될 때 까지는”
“일단은 쉬어.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긴급 수복 권한을 써서라도 불러 줄 태니까. 아니면 강제로도 수복실로 데리고 가라고 한다?”
M4는 불만인 듯 카리나에게 불만을 토로 할것처럼 보였지만, 끝내 수긍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M4가 몸을 수복하기 위해 지휘관실을 나서자. 카리나는 곧장 그리폰 본사의 부사장실로 홀로그램을 연결했다. 작전 중에 민간인이 휩쓸린 건 보통일이 아니었기에 이미 보고서를 작성해서 본사에 올려놓은 상태였다.
“네 카리나.”
몇 번의 로딩 후에 홀로그램에서는 그리폰의 부사장 헬리안투스의 모습이 나타났다.
“보고서는 잘 받았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까.”
지극히 사무적인 목소리였다.
“네 다행이도요.”
카리나는 군번줄을 홀로그램 탐지기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자세한 보고를 올리기 전에 이 두 사람의 신원 조회를 부탁드릴게요. 아이의 신원 확인이 안돼는데 지금으로써는 이게 아이의 신원을 확인할 유일한 단서여서요.”
홀로그램에 나타난 인식표의 이름을 확인한 헬리안은 지금껏 유지한던 사무적인 태도는 사라지고 당혹스런 표정으로 카리나에게 캐묻듯이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인식표 어디서 났습니까?"
카리나는 평소의 냉철하던 헬리안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모습에 적지 않게 당황해 하며 대답했다.
“네? 아이의 목에서...”
“그럼 지금 아이는 어디 있습니까?”
카리나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릴 수가 없었는지 헬리안은 카리나의 말을 자르며 아이의 행방을 물었다.
“지금 의무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어요. 잠깐만요. 헬리안님, 이 두 사람이 누구기에 이러시는 건가요?”
헬리안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손으로 머리를 지긋이 감싸않으며 말했다.
“강승훈 지휘관, 레이나 하사. 저 두 사람은 크루거 사장님의 군생활 당시 휘하 중대원이면서, 그리폰 창설멤버 중의 한사람입니다.”
헬리안의 말을 들은 카리나는 그제야 그 이름들을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해냈다. 1년 전 카리나가 아직 본사에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맘때쯤 철혈공조의 반란으로 그리폰의 여러 지부들이 한창 난항을 겪고 있을 때였다. 대부분의 기지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긴 했지만, 대부분 전력을 보전한 채 후방으로 후퇴를 해온 것과 다르게 유일하게 한 기지의 상황만큼은 다른 기지와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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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04지역 피해 보고서]
전술인형 89기 중 89기 파손, 의체 복구 불가. 서버파괴로 인한 마인드맵 복구 불가
지휘관 강승훈(34세) 사망추정
부지휘관 벨로이 레이나(34세) 사망추정
그 외 가족 1명 강미르{Мир} (9세) 사망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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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 아이가 강승훈 지휘관이 아이란 말씀이신 건가요?”
“확인을 해봐야 알겠지만, 지금으로 써는 그렇다고 봐야 할 겁니다.”
헬리안의 태도는 종전의 것과 마찬가지로 사무적인 것으로 돌아와 있었지만, 카리나와 마찬가지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 했다.
“현 시간부로 S09기지는 최소한의 순찰 임무를 제외하고는 강미르 그 아이의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아이가 깨어나는 즉시 본부로 보고 해 주십시오.”
그날 이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S04기지 사건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아무리 철혈의 공세가 강했다 하더라도 단순히 물량과 장비의 격차만 있었을 뿐 아무런 체계도 잡히지 않은 공격이었다. 거기다 3차 대전 당시 크루거의 중대원들 중 가장 뛰어난 전투력과 지휘 실력을 갖춘 두 사람 이었기에 전멸이란 결과가 나올 레야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외에도 의심 적인 것들이 너무 많아.’
통화는 종료되었지만 여전히 홀로그램에 떠있는 인식표를 바라보며 헬리안은 그때 당시를 떠올렸다.
철혈공조 반란 1년 전에 발생한 대규모 암살로 그리폰의 주요 요인들이 죽어나 갈 때에도 살아남았던 인물이 강승훈과 레이나였다.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죽을 것이라고는 헬리안은 생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철혈의 S04기지 공격이후 폭격으로 인해 기지가 박살났다고는 하지만 전술 인형들의 사체가 발견 된 것과는 다르게 강승훈 지휘관의 일가족의 시신만큼은 그 어디에서도 발견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 그때 당시로써도 의문이었다.
만약 이번에 구출된 아이가 강미르가 확실 하다면 1년 전의 사건은 물론이고 그리폰에게 대규모 암살을 지시한 세력의 정체를 찾을 실마리 역시 얻을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에 헬리안이 이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헬리안은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자신의 책장 한쪽에 놓여진 액자를 바라보았다. 온갓 업무물품들로만 가득한 그녀의 책상에서 유일하게 개인적인 물건이었다.
"강승훈, 레이나"
사진에는 정규군의 군복을 입고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세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지금과는 달리 엣되어 보이는 헬리나와 환하게 웃고있는 미형의 동양인 남성 그리고 금발의 여성.
헬리안의 어느샌가 사진 속 그때 그시간으로 빠져들어갔다.
ps. 본편의 설정은 최대한 안 건들려고 노력하는 중이지만 워낙
세계관이 복잡하다 보니 오류가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별것 아닌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