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러다 제대로 피 본 실패 사례도 바로 세종
정창손과 신숙주를 능력 좋다고 쓰다가 태어날 때 그렇게 기뻐하며 애지중지 하던
손자가 둘째 아들 손에 폐위당하고 비참하게 교살당하는 원인을 만들어냄
게다가 정창손은 계유정난 참가자에 단종복위운동 핵심 밀고자라서 이 인간만 아니었으면
사육신을 통해 다시 단종의 복위 가능성도 있었다는 점에서 훨씬 악질
저것도 있겠지만 거의 유배초기에나 그랬고 정약용 약전 형제 유배가 길어진 이유는 까먹어서임 진짜임 실무진들이 주기적으로 유배자들중 풀어줄 애들 명단 윗선에 올리면 검토하는데 이 형제는 사실 끕수가 딸려서 몇년 지나니 실무진애들이 유배갔다는것을 기억조차 못해서 사면명단에 못올라감
근데 저당시 뇌물은 필요악이라는 느낌도 없지않아 있었음. 조정에서 급여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거든. 때문에 관료 양반들 사이에서는 선물경제(주고 받는 선물)라는 것도 존재함. '얼마 전에 사슴 육포를 얻었다는데, 좀 나눠주시오.' 라고 편지를 써서 보내서 받고, 나중에 저쪽에서 필요한게 있으면 또 선물을 주는. 거의 물물 교환식의 경제 네트워크가 있는데, 이게 때로는 현물이 아닌 청탁이 되는 거지. 이런 상황에서 뇌물을 너무 깐깐 하게 단속을 하면 미움 받는 게 당연한 거임. 심지어 이건 왕실과도 연결이 되어 있어서 함부로 재단을 해서 엄한 죄를 추궁하지 못함.
현 시대로 보면 부패인데, 당시 관습을 감안하면 가치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거지.
순조 때는 아무래도 초기다 보니 안동 김씨 체제가 그닥 공고하진 않았나 보네
정약용도 뇌물받게 만들면 되지 요즘엔 그러는데
김조순이 안동김씨 세도 정치의 초석을 다진 인물은 맞지만. 정작 본인은 세도 정치를 안함. 후손들이 했지.
??? : "브레이크가 없는 차는 탈수가 없다" ㄹㅇ 이논리로 "깐부"하려면 치명적인 비리기록 하나씩 가져야 되서 죄다 부패하더라 ㅋㅋㅋ
김조순이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시작이라고 불리긴 하는데 정작 본인은 후손들보다는 훨씬 더 몸 사리고 주변 눈치 봐가면서 권신 노릇 했다는 소리 듣긴 함.
안받으면 죄가 두배
"확신가지고 증거조작하면 범죄아니다" feat. 검찰 "겨우 5천만원은 뇌물 아니라 친구비" feat. 경찰
괘씸죄였구나
높은자리에 찌질한 애들이 앉으면 피해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짐 ㅎㅎ
정약용도 뇌물받게 만들면 되지 요즘엔 그러는데
루리웹-7198984126
안받으면 죄가 두배
루리웹-7198984126
??? : "브레이크가 없는 차는 탈수가 없다" ㄹㅇ 이논리로 "깐부"하려면 치명적인 비리기록 하나씩 가져야 되서 죄다 부패하더라 ㅋㅋㅋ
루리웹-7198984126
"확신가지고 증거조작하면 범죄아니다" feat. 검찰 "겨우 5천만원은 뇌물 아니라 친구비" feat. 경찰
부패해도 대신 그만큼 업적 쌓는다면 결과적으론 이득이지. 이걸 잘 이용한 군주가 세종이고
이그젝틀리!
하지만 그러다 제대로 피 본 실패 사례도 바로 세종 정창손과 신숙주를 능력 좋다고 쓰다가 태어날 때 그렇게 기뻐하며 애지중지 하던 손자가 둘째 아들 손에 폐위당하고 비참하게 교살당하는 원인을 만들어냄 게다가 정창손은 계유정난 참가자에 단종복위운동 핵심 밀고자라서 이 인간만 아니었으면 사육신을 통해 다시 단종의 복위 가능성도 있었다는 점에서 훨씬 악질
순조 때는 아무래도 초기다 보니 안동 김씨 체제가 그닥 공고하진 않았나 보네
애초에 순조가 마음만 먹었으면 조질 수 있는게 세도가문이었으니 조심해야지
만해그만해
김조순이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시작이라고 불리긴 하는데 정작 본인은 후손들보다는 훨씬 더 몸 사리고 주변 눈치 봐가면서 권신 노릇 했다는 소리 듣긴 함.
김조순은 절대 전면에 나서질 않았음. 대신 자손들이 권력을 차지했지 그래서 순조 중반 이후가 되면 주요 관직은 김조순의 아들들이 다 차지한 거
말 그대로 장동 김문 세도기의 시작점이니까. 순조 바로 전이 신하들을 쥐락펴락가지고 놀던 정조 시기임을 고려하면 뭐...
그런 성향이기 때문에 오히려 신유박해와 병인갱화의 콤보로 견제세력이 없어질 때까지 존버하 게 가능하지 않았을까 함
서용보 입장에선 나 탐관오리라고 짤리게 만든 놈이 기사멸조 저지르고 있었네? 였겠지
서용보, 김조순, 정약용 모두 정조의 신임이 두터웠던 신하들이다. 정조는 서용보를 왜 신임한 거지
대구 서씨도 안동김 반남박만큼 세력이있던 가문임
그럼 정약전은?
저 이유는 극히 일부고 서학쟁이라는 딱지가 븥어서 용서하고싶어도 할수가 없는 싱황 배교를 선언했는데도 그럼 그만큼 뢍사영사건이 ㄹㅇ큰거였음
김조순이 안동김씨 세도 정치의 초석을 다진 인물은 맞지만. 정작 본인은 세도 정치를 안함. 후손들이 했지.
김좌근: ㅋㅋㅈㅅ
예나 지금이나 일잘하면 고달프네
저것도 있겠지만 거의 유배초기에나 그랬고 정약용 약전 형제 유배가 길어진 이유는 까먹어서임 진짜임 실무진들이 주기적으로 유배자들중 풀어줄 애들 명단 윗선에 올리면 검토하는데 이 형제는 사실 끕수가 딸려서 몇년 지나니 실무진애들이 유배갔다는것을 기억조차 못해서 사면명단에 못올라감
그건 탄원 몇번 올렸음 서용보 라인이 짬시킨거지
근데 저당시 뇌물은 필요악이라는 느낌도 없지않아 있었음. 조정에서 급여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거든. 때문에 관료 양반들 사이에서는 선물경제(주고 받는 선물)라는 것도 존재함. '얼마 전에 사슴 육포를 얻었다는데, 좀 나눠주시오.' 라고 편지를 써서 보내서 받고, 나중에 저쪽에서 필요한게 있으면 또 선물을 주는. 거의 물물 교환식의 경제 네트워크가 있는데, 이게 때로는 현물이 아닌 청탁이 되는 거지. 이런 상황에서 뇌물을 너무 깐깐 하게 단속을 하면 미움 받는 게 당연한 거임. 심지어 이건 왕실과도 연결이 되어 있어서 함부로 재단을 해서 엄한 죄를 추궁하지 못함. 현 시대로 보면 부패인데, 당시 관습을 감안하면 가치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거지.